군 성폭력, 3명의 목숨으로 바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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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566회 작성일 22-04-12 15:03본문
“군 검사가 부대 관계자에게 피해자의 피해 상황 및 수사 내용을 보낸 에스엔에스(SNS) 관련 부분, 피해 부사관의 국선변호인과 그의 동기 법무관들이 가입한 SNS에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눈 부분 및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압수수색 집행 전날 군사법원 직원과 통화한 부분에 대하여 추가 조사를 실시할 것.”
2022년 3월30일 공군20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사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이다. 앞서 3월15일 피해자 유족은 가해자인 장아무개 준사에 대한 구속 수사를 방해하는 등의 혐의(직권남용)로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으며,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검사 임명 법안은 특검 추천 방식과 수사범위에 대해 여야의 이견이 있다며 4월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무산됐다.
인권위 권고 내용이나 유족 대응은 군 내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은폐되는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어떤 추가적인 고통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7월1일부터는 군 안팎에서 발생한 성범죄와 관련해 군 외부에서 수사·재판이 진행되지만, 군이 가담하는 ‘2차 가해’ 사건의 상당수는 여전히 군에서 수사·재판이 진행된다. 성범죄사건 재판권을 이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반쪽짜리라고 평가받는 이 유다.
2017~2021년 육해공군 소속 군인이 일으킨 성범죄사건은 총 1874건이다(군이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성범죄 내역’ 참조). 이 중 간부(장군·장교·부사관·군무원)가 751건(40.07%), 병사가 1123건(59.93%)의 성범죄사건을 일으켰다. 남성 가해자가 1868건(99.68%), 여성 가해자는 6건(0.32%)이다. 2021년 인권위에서 발표한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부대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이 제기됐을 때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2012년 75.8%에서 2019년 48.9%로 줄어들었다. 조사 보고서는 ‘성폭력 고충처리과정에서 공정성이 훼손됐으며 사후 처리가 미흡했고 2차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성폭력 범죄의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군이 성폭력을 은폐하거나 피해자들이 사건을 알려 해결하는 일 자체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2021년 군에서만 성폭력 피해자 3명이 숨졌다. 2021년 5월 열흘 간격으로 공군20전투비행단, 공군8전투비행단에서, 8월에는 해군2함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연달아 죽음에 내몰렸다. 군은 성폭력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보고에서 누락하기도 했고, ‘스트레스성 자살’이라 명명하며 유족에게도 성폭력 사실을 알리지 않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 은폐에 나섰다.
2013년 육군에서 상관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한 피해자가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뒤, 군은 2015년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요란하게 발표하고 2018년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며 각종 성폭력 사건 매뉴얼을 쏟아냈다. 하지만 2021년 세 명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2021년 군은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군사법원법 일부 개정에 부랴부랴 협조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숨진 범죄, 군인이 입대 전 저지른 범죄 등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군 밖으로 이양하고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에 찬성했다. 2021년 12월 군 인권 향상을 위해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과 ‘군인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처리됐고, 2022년 2월 국방부는 여러 부서에 산재한 인권 관련 기능을 통합한 ‘군인권개선추진단’을 신설해 군 인권 문제를 전담하겠다고도 밝혔다. 또 군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연 1회 정기화하고 성고충전문상담관을 기존 47명에서 103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7월부터 이관되는 성범죄사건에 대해 경찰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도 홍보 중이다.
그러나 7월 시행 예정인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한계가 많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로 이어지지 않아 사건의 30%가량만 군 밖으로 이양될 예정이다.
군 내 성폭력 사건 발생시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조직적 가해(2차 가해)는 이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해자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가 밟아야 할 수사 절차도 매우 복잡해졌다. 군 성폭력은 조직적 은폐와 피해자 대상 보복 등 ‘2차 가해’가 특히 심각한데, 가해자가 군 장성일 경우에는 공수처에서, 성폭력 직접 가해자는 경찰에서, 그 외 ‘2차 가해자’들은 군에서 담당하면서 피해자는 한 사건을 두고도 여러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아야 하는 고충을 안게 된다. 군인권보호관 역시 인원수, 권한 등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군인권개선추진단’도 국방부가 검토했던 미 국방부 산하 ‘성폭력 예방대응국’(SAPRO) 모델보다 후퇴한 형태라서 2018년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했을 때처럼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7월부터 군 성범죄 사건을 맡게 될 경찰은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 후속 조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으나,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업무 과중과 사건처리 지연 등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던 경찰이 제구실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원은 기존 형사소송법 규정 등에 맞춰 군사법원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할 예정이다. 서울고법은 2022년 2월 형사 재판부 1개를 증설하며 업무량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사무 분담에 대한 우려는 큰 상황이다.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 소중한 생명까지 빼앗기게 된 것은, 개인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를 넘어 국가가 군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판단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군 내 성폭력으로 인한 생명권 침해 근절 권고’ 2022년 3월31일)
성폭력 피해자들의 죽음에 대해 언론은 ‘극단적 선택’이라 명명한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처럼 그들의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군이 저지른 ‘살해’이며, 피해자들은 존귀한 ‘생명권을 침해’당했다. 군은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협박한 것도 보복이 아니라 판단했고, 피해자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지른 이들에 대해서도 무죄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선처했다. 피해자의 사망 원인에 대해 그 가족들에게도 거짓말하거나 관련 수사·재판 기록을 넘기지 않고 버텼으며, 숨진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는 파렴치한 일도 지속했다. 2021년 숨진 세 피해자는 그 가족이 생계도 포기하고 지속적으로 싸우고 있기에 그나마 외부로 알려지고 시스템 변화까지 이끌어냈다. 그러나 변화된 시스템도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군의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다. 무엇보다 군을, 국가를 사랑했던,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했던 군인들을 죽음으로 끌고 간 군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군은 변할 수 있을 것인가. 군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