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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되고 싶어요” 22살 장애인 준형씨가 꿈꾸는 세상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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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761회 작성일 22-02-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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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숲으로 떠나는 가족 휴식’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서울 한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올라왔다. 장애인 가족의 휴식을 돕는 취지에서 1박2일간 강원도 국립시설 숲체험 기회를 제공하니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1인당 비용은 1만5000원. 해당 구 거주 10가족(20명)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그런데 공지에는 ‘장애인 자녀 1명과 보호자 1명’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부모가 장애인이고 자녀가 비장애인인 ‘장애인 가족’은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자녀를 키우는 장애 부모의 척박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인식부터 재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 자녀와 비장애인 부모로 구성된 가족뿐 아니라 장애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가족까지 ‘장애인 가족’에 포함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복지법 제30조의2는 ‘장애인 가족 지원을 위해 국가가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 돌봄 지원, 휴식 지원, 사례관리 지원이 시책에 포함된다. 이런 시책이 현실에선 대부분 비장애인 부모와 장애 자녀가 있는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근거한 ‘일시적 휴식지원 서비스’의 경우 대상이 만 18세 미만의 모든 장애아 가족이다. 세간의 인식도 ‘장애인 가족’이라고 하면 ‘장애 아이와 그 아이를 힘겹게 키우는 비장애인 부모’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시군구 장애인가족지원센터도 장애인 자녀를 둔 가족 위주다. 한 장애인 전문가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주로 발달장애 아이를 둔 비장애인 부모들이 전달체계를 갖고 있어 장애 부모는 도움받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면서 “처음 설계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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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지체장애인 임형찬(왼쪽)씨와 아들 두현군이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자택 앞 놀이터에서 서로 바라고 있다. 이한결 기자

 


장애 부모가 장애인 가족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목소리를 냈는지가 영향을 미쳤다. 장애 아이를 둔 비장애인 부모들이 연대 조직을 만들고 지원을 요구해온 반면 장애 부모들은 그런 활동을 하지 못했다. 박지주 서울장애여성인권연대 대표는 “장애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만으로도 힘겹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뭘 더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가족이 아닌 당사자 중심인 것도 ‘장애인 가족’이 갈 곳을 잃은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문제에 접근해 왔다. 가족 담당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한부모, 다문화 가족을 지원하지만 장애인 가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장애 부모들이 모이는 모임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에서 현재 진행하는 사업을 다시 들여다보고 좀 더 큰 그림에서 장애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족 욕구부터 이해해야


장애인이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구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척수성근위축증(SMA)으로 누워 지내는 장애를 갖고 있는 김준형(가명·22)씨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가족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른쪽 손목과 발목은 움직일 수 있지만 팔을 들 수 없어 하루 18시간 동안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

 

준형씨는 아이를 직접 낳기보다 입양하고 싶다. SMA는 유전질환이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유전될 확률이 50%라는 설명을 들어서다. 그는 다만 “아이를 번쩍 들어올린다든지 기저귀를 가는 육아는 불가능해 미래의 아내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나사렛대 심리학과 4학년인 그는 장애인동료상담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미 2학년 때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직장을 갖고 돈을 벌면 30대 초·중반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폐성장애인인 장지용(33)씨도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미래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용씨는 그렇지만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계획을 쉽게 얘기하지 않는다. 아직 연애 경험도 없는 자신이 결혼, 자녀까지 계획하는 것을 두고 ‘오버’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에게 결혼, 출산에 관해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자폐성장애인의 결혼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자폐성장애인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용씨는 결혼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자립을 하기 어려운 탓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용씨는 정부기관, 대기업, 대기업 자회사 등에 근무했지만 세전 월급 200만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발달장애인이 나아갈 첫 번째 단계는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는 거예요. 연애나 결혼까지 논의하는 건 냉정히 말씀드리면 시기상조예요.”
 

장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고 있는 장애 부모들은 먼저 영·유아기 육아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장애 부모의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서울시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만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데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서울시 ‘홈헬퍼’ 제도는 홈헬퍼가 9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 장애인(지적·자폐·정신장애인은 만 12세까지) 집에 파견돼 육아를 돕는다. 자녀 나이에 따라 월 30~120시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21년 여성 장애인 143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여성 장애인들은 현재 9세 미만인 연령 기준을 높여 달라고 말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 한선화(가명·36)씨는 “홈헬퍼 선생님이 많이 도움이 된다. 중학교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서비스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성 장애인들은 아빠가 장애인인 경우에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경기도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김지민(가명·42)씨도 시간을 늘리고 연령을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경기도는 ‘장애인 맞춤형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대상이 36개월 이하 자녀를 둔 중위소득 180% 이하의 여성장애인 또는 한부모 남성장애인이다. 서울에 비해 이른 시기 서비스가 종료되고 이용 가능한 시간도 월 48시간 이내다. 김씨는 “서울시 홈헬퍼처럼 이용시간을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업무에 육아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홈헬퍼 서비스가 없거나 어려운 지역에선 대부분 활동지원사 도움으로 아이를 키운다. 규정상 활동지원사 업무에 육아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박지주 서울장애여성인권연대 대표는 “활동지원사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양육 활동 지원을 명문화하고 지원사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 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심리적 안전망도 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장애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부모의 장애를 알게 되는 시기 떠안는 충격이 상당하다”며 “초·중·고생 관점에서 정서적, 사회적으로 코치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지주 대표는 “누군가 아이에게 ‘너네 엄마 장애인이지, 너네 아빠 장애인이지’ 하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자기 생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 그거 하나는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장애 부모 지원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 부모들은 무엇보다 사회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성인들이 드러내는 편견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시각장애인 이용연(55)씨는 “무거운 짐을 든 걸 보고 한 아이가 ‘도와주고 가자’고 말했는데 아이 엄마가 ‘그런 걸 왜 네가 신경 써’라고 혼을 냈을 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여전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최지영(가명·21)씨도 “학교 친구들은 부모님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주변 어른의 편견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들을 키우는 시각장애인 교사 김필우(39)씨는 “어린아이들은 제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안 보이는데 교사를 하니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거나 지하철에서 부딪쳤다고 욕설하고 폭행하는 게 현실”이라며 “장애를 특이하고 독특한 것,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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