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성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연대도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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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687회 작성일 22-03-08 16:29본문
10년 전 오늘,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와 길원옥 여성인권운동가가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각국의 전쟁 피해여성들을 돕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일본 정부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면, 전액을 콩고의 강간 피해여성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겠다”는 할머니들의 뜻을 따라서,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이 만들어졌다.
이 기자회견에서 故 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는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성들을 돕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나비기금은 콩고, 베트남, 우간다, 팔레스타인의 전쟁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고, 다양한 관련 연구와 운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나비기금의 10년 동안의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4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온라인으로 열린 <나비기금 10주년 라운드 테이블>이다. 참가자들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다른 피해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연대 활동으로 이어지며, 젠더 관점으로 전쟁 피해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지 드러냈다.
‘위안부’는 지난 일? 전시 성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시 성폭력은 전쟁과 분쟁 전후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극악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아시아 분쟁 지역에서 활동해온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지난 미얀마, 카슈미르, 스리랑카 사례들부터 최근 미얀마 ‘봄의 혁명’에서도 보고된 전시 성폭력 사례를 짚었다. 전시 성폭력이라고 하면 다 지난 일이라거나 우리와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유경 기자는 이런 전시 성폭력은 “전쟁의 방편이자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으며 “군사작전 과정뿐만 아니라 분쟁 후에도 발생하고, 분쟁 이후의 공간인 난민촌에서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폭력 및 성고문 피해자는 여성이나 여자아이에 국한되지 않고 남성과 남자아이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전시 성폭력을 예방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전시 성폭력을 범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가장 최근인 2014년 6월, 제68차 유엔 총회에선 122개 국가가 ‘분쟁지역 성폭력 근절노력 선언’을 채택”했다. 전시 성폭력으로 기소되어 처벌을 받은 사례들도 있다. “1998년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는 전시 성폭력이 제노사이드(인종청소)의 한 방편이었다고 인정”한 바 있으며, “전유고슬라비아전범재판소에선 기소된 93명 중 44명이 전시 성폭력과 연계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굉장히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이유경 기자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피해자와 연대하고, 피해자들의 회복과 재활을 돕는 것, 법정 투쟁을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피해와 가해를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함께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론 함께 “전쟁과 분쟁을 종식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서 가려져 있던 ‘성폭력’ 조명
그런 점에서 나비기금의 활동은 더욱 중요하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평화운동을 하는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활동가는 “여러 활동을 해 왔지만 그동안 마음의 부채의식처럼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바로 전시 성폭력”이라며, 나비기금을 통해 관련 활동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뜻부터 전했다. 그리고 “그동안 베트남전쟁 한국군 과거사 문제에서 한계가 있었던 부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젠더 관점’에서 다시 보고, 어떻게 피해자들과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 부분”을 설명했다.
먼저 권현우 활동가는 “대표적인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알려진 하미 학살 사건(1968년 2월 24일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주민 135명이 4개 장소에서 집단 희생되었으며 이후 군이 불도저로 피해 현장을 밀어버려 시신 또한 훼손한 사건)에서도 전시 성폭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알려진 사건은 “팜티호아(당시 40세) 강간 미수 사건과 팜티호아의 올케였던 만삭의 응오티까이(당시 24세)가 강간 당한 후 죽임을 당한 일”이다.
하미 학살의 경우, “전체 희생자 135명 중 여성이 100명으로 74%였으며, 남성 35명 중에서도 21~60세는 불과 5명”이었다. “피난과 정착의 과정에서 마을의 생존을 책임졌던 여성들과 그들이 부양한 아이들, 노인 등의 가족이 몰살당한 것”이다. 권현우 활동가는 “여성들이 전쟁의 주요 피해자였고, 학살 전후 상황들을 보면 전시 성폭력 사건도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동안 민간인 학살 차원에서만 주로 이야기가 되다 보니 전시 성폭력 문제는 파편적으로 이야기가 된 면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