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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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34회 작성일 23-02-17 14:13본문
1. 개요[편집]
2. 정의[편집]
"일을 하지 않고 버는 돈"이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다소 불완전한 면이 있다. '일'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돈을 주웠다면 '팔을 땅에 뻗는' 노력이 필요하며, 돈을 줍는 과정에서 팔이 움직였으므로 '물리학적인 일(W)'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임대료의 경우에도 건물을 관리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노력, 즉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일'은 그것과 좀 다르다.
불로소득의 법적 의미와 경제학적 의미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법적으로 정당한 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얻는 돈은 경제학적으로는 어찌 됐든 개인의 노동을 사용한 대가로 얻은 소득이므로 불로소득이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간주한다. 조직폭력배나 깡패들이 불법으로 자릿세를 걷는다면, 경제학적으로는 불로소득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간주된다. 구걸의 경우 범죄는 아니지만 법으로 규정된 노동이 아니라는 면에서 마찬가지로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을 정의내리자면 본인의 생산활동 없이 타인의 생산활동이나 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전자의 예로는 토지 임차인이 지불하는 임대료, 후자의 예로는 주변 지역의 개발이나 인프라 확충으로 인한 토지시세차익이 있다. 감정가나 가치의 증가도 미실현소득 중 하나이므로 땅값 상승은 경제학적으로 분명히 소득이며, 헌법재판소에서도 미실현소득에 대한 과세는 신중해야 한다고 할 뿐, 과세 자체는 합헌이라 판시한 바 있다. 단, 현행 한국 세법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현금화 등으로 실현된 소득에만 과세하고 있다.
경제학적 의미의 불로소득의 대표적인 예로 지대를 꼽는데, 이 지대를 연구하면 경제학적 불로소득은 한정된 공급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학 개론 수준의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지대가 불로소득이 되는 과정을 소개하자면, 동네에 식당을 할 수 있는 점포가 딱 하나 있고, 식당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고 생각해보자. 식당을 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음식의 질과 서비스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점포 주인은 식당 사장이 번 돈 전부를 임대료로 달라고 해도 식당 사장은 찍소리도 낼 수가 없다. 자기가 나가면 그 다음에 식당을 하려고 덤비는 예비 창업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법 같은 착취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점포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요에 비해 한정된 공급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불로소득의 범위나 정도가 달라진다. 방금 언급한 부동산을 보면, 토지는 간척이나 하천의 구획정리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급이 불가능하므로 관련 수익은 확실히 불로소득으로 본다. 반면 건물은 장기적으로 수요 증가에 따라 늘어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고, 상가는 주된 동선, 주택이라면 선호하는 입지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위치에 따라 계속하여 불로소득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한된 공급"으로 인해서 얻는 수입에는 어느 정도 불로소득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크게는 통신회사, 방송사 같은 대규모 시설사업이나 세월호 사건에서 문제가 된 언딘의 인양권, 버스노선 같이 관행적으로 독점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업부터, 작게는 의사, 변호사 같은 각종 전문직 자격증, 건물의 매점 운영권이나, 술&담배 판매권, 복권 판매권, 개인 버스&화물차&택시 면허 등 같이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는 가장 경쟁적인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진입 장벽이나 경제적 해자 등으로 얻는 이득에는 불로소득의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불로소득의 법적 의미와 경제학적 의미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법적으로 정당한 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얻는 돈은 경제학적으로는 어찌 됐든 개인의 노동을 사용한 대가로 얻은 소득이므로 불로소득이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간주한다. 조직폭력배나 깡패들이 불법으로 자릿세를 걷는다면, 경제학적으로는 불로소득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간주된다. 구걸의 경우 범죄는 아니지만 법으로 규정된 노동이 아니라는 면에서 마찬가지로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을 정의내리자면 본인의 생산활동 없이 타인의 생산활동이나 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전자의 예로는 토지 임차인이 지불하는 임대료, 후자의 예로는 주변 지역의 개발이나 인프라 확충으로 인한 토지시세차익이 있다. 감정가나 가치의 증가도 미실현소득 중 하나이므로 땅값 상승은 경제학적으로 분명히 소득이며, 헌법재판소에서도 미실현소득에 대한 과세는 신중해야 한다고 할 뿐, 과세 자체는 합헌이라 판시한 바 있다. 단, 현행 한국 세법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현금화 등으로 실현된 소득에만 과세하고 있다.
경제학적 의미의 불로소득의 대표적인 예로 지대를 꼽는데, 이 지대를 연구하면 경제학적 불로소득은 한정된 공급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학 개론 수준의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지대가 불로소득이 되는 과정을 소개하자면, 동네에 식당을 할 수 있는 점포가 딱 하나 있고, 식당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고 생각해보자. 식당을 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음식의 질과 서비스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점포 주인은 식당 사장이 번 돈 전부를 임대료로 달라고 해도 식당 사장은 찍소리도 낼 수가 없다. 자기가 나가면 그 다음에 식당을 하려고 덤비는 예비 창업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법 같은 착취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점포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요에 비해 한정된 공급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불로소득의 범위나 정도가 달라진다. 방금 언급한 부동산을 보면, 토지는 간척이나 하천의 구획정리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급이 불가능하므로 관련 수익은 확실히 불로소득으로 본다. 반면 건물은 장기적으로 수요 증가에 따라 늘어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불로소득으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고, 상가는 주된 동선, 주택이라면 선호하는 입지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위치에 따라 계속하여 불로소득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한된 공급"으로 인해서 얻는 수입에는 어느 정도 불로소득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크게는 통신회사, 방송사 같은 대규모 시설사업이나 세월호 사건에서 문제가 된 언딘의 인양권, 버스노선 같이 관행적으로 독점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업부터, 작게는 의사, 변호사 같은 각종 전문직 자격증, 건물의 매점 운영권이나, 술&담배 판매권, 복권 판매권, 개인 버스&화물차&택시 면허 등 같이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는 가장 경쟁적인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진입 장벽이나 경제적 해자 등으로 얻는 이득에는 불로소득의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3. 주된 예시[편집]
Now, though this state of affairs would be quite compatible with some measure of individualism, yet it would mean the euthanasia of the rentier, and, consequently, the euthanasia of the cumulative oppressive power of the capitalist to exploit the scarcity-value of capital.
그런데, 이와 같은 사태는 어느 정도의 개인주의(個人主義)와 완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安樂死)를, 또 따라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자본가의 누적적인 압력이 안락사당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1]
은행 예금이나 채권 이자, 주식 배당, 용돈, 부동산이나 골동품, 미술품과 같이 등 공급이 제한된 재화에서 나오는 시세차익과 임대소득[5]은 전부 불로소득이다. 특히 건물의 임대소득이나 지대는 2010년대 이후, 대다수 국민들에게 불로소득으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로또같은 복권 당첨, 상속 등을 통한 소득, 사회간접자본의 혜택, 복지제도의 혜택 등도 대표적인 불로소득으로 꼽을 수 있다. 연금의 경우 과거 근로의 대가로서 후불제로 받는 것이지만 일단 수령 시점에서는 일하지 않고 버는 돈이 맞는지라 좀 미묘하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연금액은 '과거 근로의 대가의 합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원금에 금융상품 운용에 따른 금융소득을 (상당수 경우 원금보다 더 많이) 추가하여 조성하게 마련이므로, 불로소득 속성은 있다.
4. 세금[편집]
같은 불로소득이어도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과세 비율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자, 지대, 임대수익은 불로소득 중에서도 투자소득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가령 로또 같은 복권 당첨금과 임대료 소득세의 세율이 다르다.
세금을 매김에 있어서는 소득 종류에 따라 그 부담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복권 당첨금이나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얄짤없이 고율의 세율을 매긴다. 반대로 소득세 자체가 기본적으로 열거주의이므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새로운 소득 획득 방법을 개발하거나, 국내 상장주식의 매매차익처럼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열거가 안 된 항목을 잘 찾으면 합법적으로 세금 한 푼 안 내고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금수저들이 얻을 만한 상속이나 수증(증여받는 것), 부동산 매매차익, 골동품의 매매차익 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각종 공제, 비과세제도의 한도를 없거나 아주 높게 두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이 평생 동안 버는 소득 정도 범위까지는) 실질적인 세부담이 낮은 수준이다.
한편, 부동산임대는 사업소득으로 분류되며 사업자등록 대상인 업종이며,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했는지 과세요건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물론 이는 2000년대에만 해도 법에만 임대소득에 대한 규정이 있었을 뿐, 대놓고 매출을 누락해도 과세관청에서 실제로 과세를 않았기에 그 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졌다는 뜻일 뿐이며, 2000만 원 이하 소득의 비과세 또는 저율 분리과세, 사실상 건물 구입 이후 소매업, 음식점 등 다른 상거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단순/기준경비율 설정 등 실질 세부담은 다른 소득에 비해 아직도 많이 낮은 수준이다.[6]
세금을 매김에 있어서는 소득 종류에 따라 그 부담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복권 당첨금이나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얄짤없이 고율의 세율을 매긴다. 반대로 소득세 자체가 기본적으로 열거주의이므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새로운 소득 획득 방법을 개발하거나, 국내 상장주식의 매매차익처럼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열거가 안 된 항목을 잘 찾으면 합법적으로 세금 한 푼 안 내고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금수저들이 얻을 만한 상속이나 수증(증여받는 것), 부동산 매매차익, 골동품의 매매차익 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각종 공제, 비과세제도의 한도를 없거나 아주 높게 두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이 평생 동안 버는 소득 정도 범위까지는) 실질적인 세부담이 낮은 수준이다.
한편, 부동산임대는 사업소득으로 분류되며 사업자등록 대상인 업종이며,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했는지 과세요건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물론 이는 2000년대에만 해도 법에만 임대소득에 대한 규정이 있었을 뿐, 대놓고 매출을 누락해도 과세관청에서 실제로 과세를 않았기에 그 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졌다는 뜻일 뿐이며, 2000만 원 이하 소득의 비과세 또는 저율 분리과세, 사실상 건물 구입 이후 소매업, 음식점 등 다른 상거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단순/기준경비율 설정 등 실질 세부담은 다른 소득에 비해 아직도 많이 낮은 수준이다.[6]
5. 관점[편집]
불로소득을 단순한 인간의 욕망으로 간주하는 관점이 있다. 이를 최소한의 투입으로 이루려면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잉여 문서에도 나온다. 예를 들어 워렌 버핏을 보면 그가 이룩한 부의 대부분이 불로소득인 재산(주식) 가치 증가에서 나왔으니 전세계 최고의 불로소득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평가된 자원(주식)을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들고 있고, 그 기간 동안은 배당을 받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탄받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자나 증권 투자 또한 저평가된 것을 사들여 가치가 높아질 때 팔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느정도 본인의 노력과 리스크 부담등이 존재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의미의 불로소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본인의 노동과 가치 상승의 폭의 상관관계가 미비한데다 일단 사들인 이후 본인의 노동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상승하는 경우도 매우 많아서 불로소득이 맞다. 게다가 주식의 구매, 주식의 구매 이후 투자 가치 선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등을 생각하면 불로소득이 아니지 않냐고 하는데 그건 적은 투자금을 어떻게든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부릴 돈도 없어서 스스로 종목 분석과 예측을 해야만 하는 개미들이나 그런 것이고 주식 시장 자체를 요동치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헤지펀드사나 거액 투자자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7]
반면 공무원 시험이나 의사 국가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이나 약사 국가시험 등 취직을 위한 시험은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가 주는 쾌락을 포기하는 데에 대한 보상,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부담의 감수와 함께 공무원(판사, 검사 포함),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이 된 이후로도 근무 등 실질적인 노동을 해야만 소득이 발생한다.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불로소득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수혜자 입장에서의 단순한 노력이나 위험감수일 뿐, 사회적, 경제학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는 지는 좀더 고려가 필요하다. 자격시험 또한 해당 시험의 응시자가 과도하게 몰려서 업무능력과는 상관없는 문제를 위한 문제를 출제한다면 각 개인의 과도한 수험공부는 사회 전체로는 도움이 안 된다. A가 벌어갈 것을 B가 벌었고 A가 덜 벌어간 양과 B가 더 벌어간 양이 같다면, 사회적으로는 A와 B가 벌어간 양의 합계가 같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빈부격차 문제를 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의 집중 원인을 다룰 때면 필연적으로 나오며, 수익의 대부분을 월세로 지불하는 대부분의 대도시 인구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볼 때 불로소득이 존재하는 사회는 소득분위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경제학적 관점으로, 불로소득 존재 여부만을 특정 국가의 소득분위적 성격 유무의 판단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무척 곤란하다. 이렇게 따지면 복지제도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는 소득분위적 사회가 되어버린다. 이런 광범위한 정의를 '합의에 따르지 않고, 자비와 선의에 의한 것도 아닌 불로소득'으로 제한하면 소득분위적 사회를 걸러내는 데 있어 어느정도 현실성이 생긴다.
한국 사회는 기부와 같은 불로소득에는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산과 같은 불로소득에는 개인의 권리라고 인정하는 편이다.[8]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자나 증권 투자 또한 저평가된 것을 사들여 가치가 높아질 때 팔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느정도 본인의 노력과 리스크 부담등이 존재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의미의 불로소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본인의 노동과 가치 상승의 폭의 상관관계가 미비한데다 일단 사들인 이후 본인의 노동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상승하는 경우도 매우 많아서 불로소득이 맞다. 게다가 주식의 구매, 주식의 구매 이후 투자 가치 선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등을 생각하면 불로소득이 아니지 않냐고 하는데 그건 적은 투자금을 어떻게든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부릴 돈도 없어서 스스로 종목 분석과 예측을 해야만 하는 개미들이나 그런 것이고 주식 시장 자체를 요동치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헤지펀드사나 거액 투자자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7]
반면 공무원 시험이나 의사 국가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이나 약사 국가시험 등 취직을 위한 시험은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가 주는 쾌락을 포기하는 데에 대한 보상,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부담의 감수와 함께 공무원(판사, 검사 포함),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이 된 이후로도 근무 등 실질적인 노동을 해야만 소득이 발생한다.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불로소득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수혜자 입장에서의 단순한 노력이나 위험감수일 뿐, 사회적, 경제학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는 지는 좀더 고려가 필요하다. 자격시험 또한 해당 시험의 응시자가 과도하게 몰려서 업무능력과는 상관없는 문제를 위한 문제를 출제한다면 각 개인의 과도한 수험공부는 사회 전체로는 도움이 안 된다. A가 벌어갈 것을 B가 벌었고 A가 덜 벌어간 양과 B가 더 벌어간 양이 같다면, 사회적으로는 A와 B가 벌어간 양의 합계가 같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빈부격차 문제를 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의 집중 원인을 다룰 때면 필연적으로 나오며, 수익의 대부분을 월세로 지불하는 대부분의 대도시 인구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볼 때 불로소득이 존재하는 사회는 소득분위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경제학적 관점으로, 불로소득 존재 여부만을 특정 국가의 소득분위적 성격 유무의 판단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무척 곤란하다. 이렇게 따지면 복지제도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는 소득분위적 사회가 되어버린다. 이런 광범위한 정의를 '합의에 따르지 않고, 자비와 선의에 의한 것도 아닌 불로소득'으로 제한하면 소득분위적 사회를 걸러내는 데 있어 어느정도 현실성이 생긴다.
한국 사회는 기부와 같은 불로소득에는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산과 같은 불로소득에는 개인의 권리라고 인정하는 편이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