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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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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68회 작성일 23-03-0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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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염세주의(, Pessimism) 또는 비관주의는 세상이나 인생을 추악하고 괴로운 것으로 해석하는 사상이다. 철학적 비관주의(philosophical pessimism)는 반(反)낙관적인 세계관 또는 윤리적 관점을 뜻한다.

2. 성향[편집]

대개 세상과 인간은 본질적인 개혁이나 진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현상 유지 내지 최악은 면하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획기적인 개선보다는 더 나빠질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염세주의자는 낙관주의자 특유의 민폐와 오지랖을 혐오하는 경향이 강하다. 염세주의자는 대부분 최악의 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두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낙관주의자는 막연히 결과가 좋을 거라 믿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다 타인도 좋아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행동이 때로는 좋은 결과도 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1]

염세주의자는 남들이 보기에 물질적으로 평균 이상이어도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남의 불행을 더 눈여겨보고 부조리에 민감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세뇌에 약해 선동 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염세주의를 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로는 염상섭 등이 있으며, 문학 중에서도 이를 주제로 쓴 디스토피아가 꽤 많다. 비극의 카타르시스와 일맥상통한다는 설이 있다. 루쉰이 염세주의적이라는 해석도 있다.[2] 

3. 오해와 반박[편집]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조건 낙관주의를 좋게 보고 염세주의를 나쁘게 보는 편견이 기반이 되어 생기는 오해들이다.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에 의하면, 낙관 편향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어 인간의 약 8할이 가지고 있다.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성향을 분류한 것일 뿐이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류는 아니다. 애초에 과 의 기준도 불분명하다.[3]

안광복은 <처음 읽은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에 대한 극도의 혐오는 역설적으로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높은 기대치에서 나온다. 염세주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비판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순수한 사람들은 어릴 때에는 현실에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믿지만 점점 크면서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절망하여 염세주의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염세주의자들이 불의에 민감하고 현실에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높은 이상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4] 

3.1. 중2병과 비교[편집]

중2병이 자기 과시나 만족감을 위해서 비관적인 모양새를 취하기에 염세주의와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2병이 "세상은 썩었지만 나는 그것에 저항하는 멋진 존재"와 같은 식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듯이 포장하거나, 혹은 "너도나도 다 쓰레기"라며 "다 같이 얼른 멸망해버려야 한다"며 억지를 쓰는 경향이 있기에, 중2병과 염세주의는 엄연히 서로 다르다.

염세주의는 그냥 “세상을 보는 관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 간 우열이 없다. 자신이 염세주의임을 자랑스러워 하거나 자신이 상대방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하는 것 전부 염세주의가 아닌 그냥 중2병이다. 단순히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맘에 들어한다면 모를까 그걸로 자신과 상대방의 우열을 논하는 건 중2병, 깨시민이다.

염세주의는 타인, 자기 자신, 다른 대상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때로는 자기 자신도 싫어하며, 자신이 전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역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염세주의자들이 독설을 하는 것은 다른 대상을 추어올리는 것이 아니며 비하하기 위한 것도 아닌 대다수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조차 솔직히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도 없이 무책임한 잔소리만 늘어놓는 거냐며 비판할 수도 있고 이런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염세주의자가 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해결 역시 불가능한 문제라면, 구태여 언급할 가치가 있느냐는, 즉, 단순히 혼자 깨어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 역시 여전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깨어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은 중2병이지 염세주의가 아니다. 염세주의는 중2병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실에 절망해 함부로 해피엔딩이나 덕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덕담이나 해피엔딩은 큰 도움이 되지 않기에, 혹은 자신이 할 수 없는데 그런 식으로 주장할 수 없기에 독설을 내뱉는 식이다. 결국 자포자기를 다른 방식으로 표출한다고 할 수 있으나, 어쨌든 현실에 체념하나 순응하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감정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소리를 하고 싶지만 동시에 정말로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게 되고 자신은 그러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못난 점을 맞이하게 된다.

염세주의는 "너는 뭐가 달라?" "너는 깨끗해?" "너는 정의로워?" 라는 질문에 아니 라고 대답하고, 자신이 한 없이 못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자신의 한계와 못난 모습 모조리 인정하지만 속 안에 분노와 한이 담겨져 나오는 것이 독설이다. 거기에는 스스로도 난? 이라는 말이 있을 것 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비판이 모두 담겨져 있다. 듣는 사람에게는 중2병과 뭐가 다른가 싶겠지만 실상은 그 독설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창작물에서 염세주의를 묘사할 때 소재 자체가 작가의 능력부족으로 제대로 표현되지 않거나 너무 과하면 중2병 쪽으로 새기 쉬운 소재다. 대표적으로 '세상은 다 썩었지만 나는 썩지 않았어'로 표현되는데, 일단 상술되었듯 염세주의자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염세주의와 거리가 멀다.[5] 

3.2. 자살에 대한 관점[편집]

염세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자살을 옹호하는 염세주의자도 존재하지만, 오히려 염세주의자이기에 자살조차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죽음을 통해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 자체도 무의미하고 추하다고 보고 '어차피 낳음 당해 살아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의미없는 인생,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고 가는 게 본전이다' 같은 기묘한 인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염세주의자들이 보는 이상적인 결말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 뒤에 펼쳐질 영원한 공허에 가깝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염세주의조차 형편없고 무의미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염세주의자들이다.

유명한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 역시 정작 인생 즐길 건 다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신나게 즐겼기에 세상의 어두운 면을 더 잘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염세주의자라고 해도 밝지 않다면 자살하거나 만성 우울증에 걸려 평범한 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을 힘겹게 할 것인데, 평상시에도 낙관적이고 밝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어두운 면이나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면 한 없이 어두워지고 괴로워하는 게 염세주의자일지도 모른다.

3.3. 자국 혐오와 비교[편집]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자국 혐오는 염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염세주의는 인간과 세계 전체를 두고 불신하는 반면에, 자국 혐오자들의 불신은 오로지 자국의 영토 내의 국민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선진국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며 유토피아로 여기는 행동(타문화 우월주의)은 염세주의의 철학과는 도저히 상응될 수 없다. 진짜 염세주의자라면 자국은 물론이고 타국도 마찬가지로 지옥과 같은 곳으로 간주한다.[6]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 탈조선을 하여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나, 비행기 표값만으로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믿음은 염세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낙관주의에 가깝다. 그 반대로 스스로가 유토피아에 산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한 자국을 치켜세우기 위해서 타국을 지옥으로 여기는 자문화 중심주의 또한 정반대의 방향으로 낙관주의에 가까운 경우다.

결론적으로 염세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어떤 방식이나 조건이든 결국 즐거움이나 행복은 그것이 있다고 해도 결국엔 없는 것이 된다는 것으로 추릴 수 있다.

3.4. 피해의식과잉, 자기연민[편집]

간혹 비관적으로 생각하니 피해의식이 과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모든걸 변명하며 노력 안하는 사람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 그런것은 아니고, 원래 세상은 더럽고, 힘든게 맞으니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염세주의자는 세상의 어두운 면에서 자기의 무력함, 비겁함, 비열함 등 안 좋은 감정을 모조리 경험한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작고 약한 생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런 상태가 되면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워지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해도 결국 자기 보호 그 이상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여기에서 염세주의자는 자기 보호로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을 보이지만, 동시에 자기 혐오도 발동한다. 남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모습에 대한 물음에 빠진다.[7] 

3.5. 차별[편집]

염세주의자들은 낙관주의자들만 경멸하고 같은 염세주의자끼리는 싫어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앞서 안광복의 글에 나온 것처럼 염세주의자는 대개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어서, 이에 어긋나는 사람은 같은 염세주의자라도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애당초 진정한 염세주의자라면 자기 자신에게부터 엄격할 것이므로 이는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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