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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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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03회 작성일 23-0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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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편집]

 / bias

사전적 의미로는 "한쪽으로 치우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언론의 정치적 편향", "종교 편향 논란", "심판의 편향적 판정" 등의 용례가 있다. 위키 용어에 대한 설명을 찾고 있다면 POV 문서를 볼 것.

이 문서에서는 각종 사회과학 및 심리학, 그리고 연구방법론 상에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몇몇 편향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편향이란 쉽게 말해서 인지적 함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건전한 결론이 도출되지 못하도록 왜곡시키는 요인을 말한다. 보다보면 자신도 이런 편향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될 수도 있지만, 상당히 한심하고 황당해 보이는 편향도 있을 수 있다.

간혹가다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흥, 난 이런 편향들 따위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 라고 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하에 설명하겠지만 이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편향의 사례에 해당한다.[1] 애초에 편향 자체의 범주가 아주 넓어서 인류란 종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교만능주의무용론음모론추종과 선호 등도 편향의 일종이 된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 심지어는 무생물 역시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인공지능의 경우 딥러닝등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동식물이야 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인공지능 역시 환경을 제공하는 게 편향을 저지르는 인간이기 때문. 인공지능의 성능은 어떤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크게 달려있는데, 그 데이터를 제공하는 주체가 인간이기에 그의 선입견이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계량경제학에서 말하는 편향에 대해서는 그쪽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2. 종류[편집]

(가나다순)

2.1. 기억 관련 편향[편집]

2.1.1. 사후 확신 편향[편집]

hindsight bias
knew-it-all-along effect
"이런 간단한 생각을 지금껏 하지 못했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한가!"
- 토머스 헨리 헉슬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접하고 나서 남긴 말

후판단 편파, 후견편파, 사후설명 편향, 사후 과잉확신 편향이라고도 한다.

설명하기에 앞서서 우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 병사들을 주제로 한 많은 연구들을 토대로 실시한 다음의 문헌연구 예시들을 읽어보기로 하자.[2]
1.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전쟁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다. 즉, 엘리트 지식인들일수록 거리의 약삭빠른 건달들보다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2. 미국 북부 출신의 병사들에 비해 남부 출신의 병사들이 더운 날씨 속에서의 전투상황에 더 잘 적응한다.

3. 인종차별로 인한 억압이 성취동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 백인 병사들이 흑인 병사들보다 승진과 진급에 더 관심을 보인다.

4. 남부 출신 흑인 병사들은 북부 출신의 백인 장교보다 남부 출신의 백인 장교를 더 선호하는데, 이는 남부 출신의 백인들이 흑인과 상호작용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위에 정리된 내용들은 "누구나 알 법한 뻔한 상식" 이라고 생각되게 마련이다. 연구자들이 이런 당연한 상식들을 밝혀내기 위해 비싼 연구비를 꼬박꼬박 타 갔다는 것이 괘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지? 하지만 위에 적힌 진술들은 실제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결과와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전쟁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으며, 남부 출신이라 해도 열대 지방에서의 전투력 유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또한,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승진에 더 열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우스운 사실은, 만약 우리가 실제 밝혀진 사실들을 '먼저' 접하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역시 "당연한 거 아니야?"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콜럼버스의 달걀의 편향 버전. 즉 사후판단 편향이란, 과학자들에 의해 어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그럴 줄 알았어", "당연한 거 아냐?", "우리 할머니도 알고 있을 상식인데 저딴 것을 연구한다고?" 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미래에 대한 부정확한 예견과 과거 사실에 대한 잘못된 기억이 사후판단 편향을 초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대통령 선거 이후, 혹은 주식시장[3]의 급격한 변동 이후, 많은 언론인들과 전문가들이 쉽사리 빠지게 되는 함정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 뉴스에 세계 각지의 "놀라운" 연구결과가 인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에 순수하게 "놀라는" 네티즌들이 얼마 없는 것 역시 사후판단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일 수 있다. 가장 극적인 실제 사례는,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격언과 "사람들은 정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는 격언을 함께 보여주어도, 양쪽 모두에 대해서 전혀 놀랍지 않은 당연한 상식이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유유상종" 가설 쪽이 더 정확하다고 판명되었다.

실제 한 연구에서는[4] 대학생들에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격언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공포는 사랑보다 강하다."였고, 다른 하나는 "사랑은 공포보다 강하다."였다. 학생 평가자들 대다수가 양쪽 모두에 대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대립되는 격언은 굉장히 많이 있으며, 이는 사후판단 편향을 어느 정도 설명하는 사례라고 여겨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면, 왜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인가? 정말로 피가 물보다 진하다면, 왜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인가?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답안을 작성하지 못하는 것 역시 사후판단 편향과 일부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들을 읽을 때에는 "에이, 당연한 얘기네"라고 생각하고 넘기지만, 막상 시험지 위에서 문제의 형태로 그것이 출제되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인데, 간단히 말해서 그냥 보고 읽는 것과 질문을 받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전혀 다르는 것. 그런데 제대로 암기하고 머리에 담아 두려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보는 과정, 나아가서 백지에서 그것을 떠올려 보는(recall) 과정이 필요하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때로는 상식선의 주제를 놓고 연구한다 하더라도 그 연구가 무가치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상식의 오류" 라는 표현이 있듯이, 모든 상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누구나 무거운 물건이 가벼운 물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았지만, 어느 과학자가 실제로 실험해보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자들은 수많은 상식들에 대해서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그것이 과연 정말로 옳은지를 따져보았고, 만만치 않게 수많은 상식들이 과연 거짓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즉 과학자들이 어떤 상식적인 것을 연구해서 발표했다면, 이제 그 상식적인 주장은 "믿을 만한 주장" 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쓸데없는 연구나 편향된 연구에 돈이 낭비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2.1.2. 선택 후 지지 편향[편집]

choice-supportive bias
spreading-of-alternatives effect

사회심리학자 잭 브렘(J.W.Brehm)이 1956년에 발견하였다.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린 후에, 선택 당시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여러 근거들을 들어서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려는 경향.

쉽게 말해서 대중적 의미에서의 자기합리화(self-justification)와도 비슷하다. 먼저 결정을 내린 뒤, 그 근거를 뒤늦게 찾는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그때 자신이 바보같은 선택을 한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잘 된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어떠한 점에서 선택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 설명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특정 브랜드의 상품을 별 생각 없이 구매하거나, 특정 정치인이나 대통령 후보를 강한 정치적 신념 없이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들은 끊임없이 "그래서 이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이야기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내 삶의 철학이기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으로 과거 자신의 선택을 부연하거나, "그때 내가 그 사람 뽑기를 잘 했지, 그때 딴 사람 뽑아서 딴 사람이 대통령 되었어봐라, 끔찍하다."와 같은 식으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었음을 열심히 강조한다. 물론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부정적인 효과나 비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시한다.

결론을 내린 후 그 근거를 찾는다는 점에서 확증편향과도 닮았지만, 이쪽은 보다 기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거봐, 내가 옳았지!"에 가깝도록 기억이 왜곡(distort)된다는 것. 심리학에서 항상 강조되는 것이지만, 기억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으며 고스란히 보관되지 않는다. 한편 연구자들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수록 선택 후 지지 편향을 일으키는 경향이 증가함을 발견했다.

2.1.3. 좋았던 옛날 편향[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좋았던 옛날 편향 문서
 참고하십시오.

2.1.4. 진술 편향[편집]

카이가 실비아에게 말했다.
"수학 선생님이랑 음악 선생님이 데이트하는 사이 같지 않아?"
다음날 실비아가 피터에게 말했다.
"수학 선생님이랑 음악 선생님이 사귄대!"

-폴커 키츠 & 마누엘 투쉬,《스마트한 심리학 사용법》中

Statement Bias

간단히 말해 의문문을 진술문(평서문)으로 기억하는 현상이다.

겐트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리오 팬델러레와 루벤 카톨릭 대학교 지크프리트 드와이트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에게는 의문문을, B그룹에게는 진술문을 각각 읽어 주었다. 그 내용은 생물학이나 수학과 관련된 것으로 이를테면 "민물에 사는 뱀은 생존 기간의 절반은 배를 위로 보인 채로 헤엄친다" 혹은 "모든 모노이드 준동형사상 함수는 준동형사상 함수일까?" 같은 것들이다.
실험이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실험 감독은 참가자들에게 들은 문장들이 의문문이었는지 진술문이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자신이 들은 문장의 대부분이 진술문이었다고 답했다. 의문문을 들었던 A그룹 참가자들 중에도 한사코 진술문을 들었고 고집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이처럼 사람들은 의문문을 듣고도 진술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런 생각의 경향을 진술 편향이라고 한다.

왜 우리 두뇌는 쉽게 물음표를 지워 버리는 걸까? 우리의 기억은 모든 문장을 적절한 이미지로 저장한다. 예를 들어 "민물에 사는 뱀은 생존기간의 절반을 배를 위로 보인 채로 헤엄친다"라는 문장을 들으면 곧바로 거꾸로 헤엄치는 뱀을 떠울린다. 즉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기억에 저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문과 진술문은 대표적인 이미지가 똑같다. "민물에 사는 뱀은 생존 기간의 절반을 배를 위로 보인 채 헤엄칠까?"를 들었을 때도 머릿속엔 거꾸로 헤엄치는 뱀이 저장된다. 당연히 그림에는 물음표가 들어올 틈이 없다.[5]

이러한 현상은 카더라 통신이나 헛소문의 원인이 되곤 하는데, 뇌가 "○○가 아닐까?"를 "○○래!"로 기억하여 헛소문으로 번지는 것이다. 반대로 이를 통해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데, 《스마트한 심리학 사용법》에서는 "이 책은 당신이 읽은 책 가운데 최고입니까?"(...)를 예문으로 들고 있다.

2.2. 사회적 편향[편집]

2.2.1. 내집단 편향[편집]

ingroup bias
"...자메이카계 캐나다 출신의 단거리 선수 벤 존슨이 100m 경기에서 우승하자 캐나다 언론에서는 그를 "캐나다인" 으로 보도하였다. 그가 약물복용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하자 캐나다 언론에서는 그가 "자메이카인" 임을 강조하였다."
- Stelzl et al., 2008.
내 상대성 이론이 성공적으로 증명된다면, 독일은 내가 독일인이라고, 프랑스는 내가 전 세계의 시민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내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된다면, 프랑스는 내가 독일인이라고, 독일은 내가 유대인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아인슈타인-1922년 4월 6일, 소르본 대학에 보낸 편지에서.

개인이 합당한 이유 없이 내집단을 외집단에 비해 편애하거나 더 우대하게 되는 경향.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가재는 게 편이다.' 등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라고도 한다.

어떤 한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다른 집단들을 배제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집단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자동적으로 내집단 편향이 발생하게 된다. 서구 개인주의 사회보다는 동양의 집단주의 사회에서 더 잘 발견된다.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내집단 편향의 존재는 다소간 적응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즉 사람들은 내집단 편향을 강하게 유지함으로써 자긍심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조하면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짧게 설명하면, "나는 이 집단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집단은 좋다. 따라서, 나는 좋다."의 삼단논법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을 경우 개인은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집단에 소속되려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극단적인 집단문화가 존재하는 집단을 찾는다거나, 내지는 극단주의 정치 단체에 가입하려 한다거나, 무조건적인 파시즘이나 매카시즘에 분별 없이 찬동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6] 사이비 종교집단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 역시 사회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만의 독특한 특징은 두 가지 정도인데, 집단 내 규범에 과잉동조를 보이고, 외집단으로부터의 잠재적 위협에 더욱 편견어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7]

간혹 생각하기로는 "어떤 집단에 소속될지 숙고해 본 후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곳에 들어갔으니까 내집단 편향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와 같이 여길 수 있으나, 연구자들은 심지어 동전 던지기를 통해 즉석에서 집단을 배정하더라도 내집단 편향이 발생함을 확인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위에 설명된 선택 후 지지 편향과도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내집단 편향이 강해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있는데, 사회적으로 약자인 집단일 경우 편향이 더 강하게 일어났다.

많은 테러와 증오범죄편견 및 고정관념들은 내집단 편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흔히 믿어지곤 한다. 하지만 내집단에 대한 사랑이 외집단에 대한 증오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가? 연구자들은 내집단 편향이 항상 외집단에 대한 타자화를 수반함을 확인했다. 이것은 작게는 편견 및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테러리즘과 같은 형식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까지 포함한다. 가장 온건한 경우에도, 외집단 구성원들에게 인간적인 감정과 호의를 드러내는 것조차 가급적 꺼리게 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와 함께, 내집단을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외집단을 증오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8] 즉, "그들"이 없더라도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일단 "그들"이 있다면 그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비슷한 것으로 언어적 집단간 편향(linguistic intergroup bias)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내집단의 구성원이 좋은 일을 하면 구체적으로, 나쁜 일을 하면 애매하게 묘사하지만, 외집단의 구성원이 좋은 일을 하면 애매하게, 나쁜 일을 하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하의 집단고양 편향(group-serving bias)와도 유사하므로 함께 읽을 것.

2.2.2.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편집]

social desirability bias
"시청자들의 꾸짖음에 상처받고 모처럼 착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치자. 예상대로 칭찬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가족이 보면서 다 같이 울었단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고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이제야 나왔느냐고 개탄하는 시청자도 있다. 하지만 다음 날 시청률을 받아보면 그래프가 X축을 따라 바닥에 납작 붙어 기어간다. 칭찬만 하고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시청자들의 배신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받는다."
-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권석, p.337

여론조사나 인터뷰, 시장조사 등에 있으면 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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