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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과 인간관계,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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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95회 작성일 23-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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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과 인간관계

사회성이 낮은 것과 친구가 없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타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거나 심지어 타인에게 피해를 많이 주는 사람들이 친구가 꼭 없는 것은 아니다.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면 유유상종인 친구들은 있게 마련이며, 교묘한 사회기술이 없더라도 외모, 사회적 권력 등을 갖춘 사람은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만만한 사람이나 집단 밖의 사람들에게 계속 부정적 영향을 주고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어도, 이 사람이 교묘한 인간관계 기술을 갖추고 있으면 집단 내에서 그 행동에 공개적으로 비난받는 경우는 드물며, 오히려 다수파의 중심에 서서 타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학창 시절의 일진, 국가에서는 나쁜 정치인, 직장에서는 뒷담화의 근원 같은 간신배 같은 경우다. 이런 사람은 처세술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타인과 진정한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이런 사람들은 진짜 친구(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람)는 없고 가짜 친구들(필요할 때만 본인한테 찾아오는 사람)이랑 잘 어울리는 타입이다. 그러므로 사회성과 인성과는 다르다.

권석만(1997)[5]은 미숙한 인간관계를 '소외형'과 '반목형'으로 나누었다. 소외형은 미숙한 사회기술로 인해 은따를 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학창 시절의 집단괴롭힘이나 학교폭력과 달리 누가 주동해서 'A와 아무도 말 섞지 마'라고 시키는 등 격렬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소외형은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유형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상당한 욕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반목형은 다툼과 대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행동에 쉽게 감정이 상하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 적을 많이 만들게 된다.[6]

소외형과 반목형에 동시에 해당하면 어느 집단에서든 쉽게 배척당하지만, 사회 기술도 우수하고 분란도 일으키지 않을 때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주변에서 성격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호감을 얻고 혐오감을 얻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과 직감에 의해 결정된다. 논리적으로 “이런 이런 이런 이런 이유 때문에 넌 날 싫어하면 안 돼.”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제발 절 좋아해 주시고 배척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애원한다고 혐오하지 않게 바꿀 수도 없다. 매우 똑똑하고 성실하고 유능하고 배려하는 사람인데 극심한 혐오감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고, 매우 어수룩한 말투에다 느긋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호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혐오감을 주는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들을 모두 피함으로써 호감을 살 수 있다.

비언어적 단서가 서양에서보다 더 중요한 동양에서 사회적 의사소통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미숙한 인간관계 유형에서 소외형인 경우가 많다.

이 사회성이 전혀 안 되면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뿐더러 평생 소외당하고 차별당하기 쉽다.

사회성이란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부보다 더 불규칙해서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에 공부가 사회성보다 어려운 사람도 있다.

사회성이 낮은 건 죄가 아니다. 차근차근 천천히 늘리고 익히면 되는 거고 사회성 낮다고 자책하고 힘들어 하지 말자.

사회성과 처세술[편집]

'사회성이 부족하다'라는 말은 '처세술이 부족하다'의 완곡표현이 되기도 한다. 감정노동이 미숙하거나, 똥군기에 맞춰 주지 않거나,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못할 때 주로 나온다. 기업의 비리에 대해 내부고발을 한 사람들이나 독재정권 시절에 정권을 비판하고 일을 그만둔 판사들, 군대에서 군법에 어긋나는 병영부조리나, 가혹행위를 원칙대로 신고하는 사병이나 간부 등이 듣는 소리가 바로 이런 경우. 합법적이거나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 집단이 닫힌 사회라면 '사회성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처세술이란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이득을 얻거나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기술에 가깝다. 타인과 완만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기술인 사회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타인이 저지른 불의를 눈감아 주는 것이 과연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는지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구분하고 넘어가야 한다.

적당적당히 넘어가는 것과 진심으로 친한 것이 사람도 싫지만, 이 사람이 그 사람보다 덜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케이스들도 간혹 있다. 인간관계나 처세술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중에는 이런 케이스를 구별 못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의외로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사회성, 눈치는 결국 남이 늘려주는 게 아닌 자기자신 스스로가 늘리고 키워나가는 것이며 남이 늘려주는 건 보조적인 것으로 생각하자. 때에 따라 변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직접 사람과 부딪히며 스스로 길러야 한다.

사회성이 낮다고 해서 낙담하지 말자. 사회성이 낮다고 꼭 불행한 건 아니며 스스로가 천천히 기르면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성이란 것도 생존을 위해서나 있는거지 자본이 생존을 역전시킬 수 있는 자급자족화에 성공한다면 사회성은 부수적인 과시용으로 전락될 뿐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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