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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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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92회 작성일 23-02-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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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과학 용어인 '엘리트주의'[편집]

Elitism, Elite主義

사회 속에서 권력의 형성과 정책의 결정이 다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수의 집단에게 좌우된다는 정치학의 개념.

주의할 점은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엘리트주의는 elite theory의 관점에서 정책의 결정이 특정 소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규범적, Normative)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기술적, Descriptive)하는 쪽에 가깝다. 따라서,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다원주의는 '지금도 충분히 다원적이다' 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는 '지금은 너무 엘리트주의적이기 때문에 다원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대로 진보적일 수 있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마르크시즘의 계급론을 인정하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화두가 된다. 엘리트주의는 소수 지배계층이 정책 결정 과정을 꽉 쥐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다원주의는 '그런 거 없던데?' 하고 부정하는 쪽이다.

1.1. 고전 엘리트주의[편집]

정부 혹은 공공기관의 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고전 엘리트주의 학자들은 정치권력이 특정 소수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의견에 의하면 엘리트들은 희소가치를 독점하여 지배계층으로 군림한다. 독점하는 희소가치에는 공권력, 부(富), 전문적 기술, 지식 등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권력이 창출된다. 근대에 들어서 밀스와 헌터의 실증적 연구는 실제로 미국 사회 속에 엘리트가 존재하며, 각종 기관 지도자들과 소위 지역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함을 드러내 보였다.

요약하면 정치는 민주적으로 굴러가지만 정책은 돈으로 결정된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 민주적인 정치는 그저 혼란변수, 허위상관의 변수이다. 바흐라흐와 바라츠 등 무의사결정론에 의하면 엘리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회 이슈를 표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묻어버린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매수, 폭력, 선동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1.2. 다원주의자들의 반대[편집]

우선 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도그마상 엘리트주의자들의 의견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정책이 돈으로, 매수로, 폭력과 선동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고 정책 결정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포기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엘리트주의자들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인용한다면 자신들이 그동안 연구해 왔던 정책 결정 과정들은 헛수고였다는 뜻이 된다. 쎄빠지게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연구했는데 그런 건 사실 이상론이었고 정책은 돈으로 결정된다! 고 주장하면 과연 누가 좋아할까? 무엇보다 '돈으로 정책이 결정된다'느니 '권력자들이 매수와 폭력, 선동으로 사회 이슈를 묻어버린다' 는 식의 주장은 너무 음모론적이었다.

심지어 초기 다원주의자들은 정치학자가 아니라 법학자였다. 라스키, 콜, 맥키버는 헌법학자로서의 다원주의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정책이 결국은 법의 실현이며 최종적으로는 헌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을 끝까지 고수했고 헌법학자로서는 이런 주장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엘리트주의를 반박했다. 대표적인 논의가 분산론이다. 우선, 사회 권력은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권력이 자신들의 이득을 우월하게 주장할 수 없다. 둘째로, 한 개인은 사회 조직에 복합적으로 소속되어 있다. 따라서 중복 집단이 발생하며, 그 중복 집단간에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이익을 우선해서 주장할 수 없다.[1] 대표적으로 <정책학>을 저술한 다알은 사회권력이 분산되어 있다고 주장했고 부를 가진 집단, 권력을 가진 집단, 명예를 가진 집단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한편 벤틀리와 트루먼은 중복집단으로 엘리트주의를 반박하려 했던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1.3. 다원주의와 고전 엘리트주의의 통합[편집]

물론 두 측면의 주장 다 지극히 관념적이고 이념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위의 의사결정론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정책의 유형에 따라서 다원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엘리트주의적으로 이루어지는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단순하게 권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다원적으로 이루어진다. 도로 건설, 철도 건설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누진세 신설 등 부의 재분배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에서는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이 강하게 반영된다.

콥과 로스는 내부 주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다르다고 주장했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다원적이고 정부 외부에서 정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시민사회(정부의 외부측)에서 정책 결정을 주도한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엘리트주의적이며 정부 내부에서 정책 결정을 주도하게 된다.

1.4. 신엘리트주의[편집]

무의사결정론이라고도 한다. 다원론적 이론을 재비판하는 입장으로, 기존의 엘리트주의가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며 출현한 견해이다. 엘리트 집단이 정책의제설정 이전 단계에서 이미 영향력을 발하여 집단 스스로가 꺼리는 의제를 사전 차단하는 권력작용이 있다고 본다.

게이트키핑 이론과 유사해보이는데 이론의 연구 대상이 다르다. 게이트키핑 이론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언론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 언론이 자기의 입맛에 맞는 의제를 취사선택한다는 이론이다. 반면 무의사결정론은 엘리트 집단이 의제 설정에 영향을 주는 정보 확산을 차단하거나, 개혁에 대해 반발하여 개혁주도세력을 기존 체제에 순응시키거나, 의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1.5. 반엘리트주의[편집]

말 그대로 엘리트들에 의한 결정을 강경히 거부한다는 이념이다. 민중주의마오주의[2]사상 등이 이에 속한다.

반지성주의와 결합하는 경우도 있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1.6. 관련 문서[편집]

2. 일부 사람들의 선민의식을 가리키는 말[편집]

엘리트주의가 선민사상과 통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선민사상은 선택받은 자들이 정해져 있지만 엘리트로 선택받은 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의 입장에서 엘리트를 중심으로 집단을 운용하는 교리를 짜는 것을 선민사상이라고 하진 않는 것은 그렇기 때문이라고 본다.

엘리트주의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사회에 엘리트가 존재하는 것 자체는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정상적인 엘리트주의에서 규정하는 엘리트의 역할은 단지 대중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문제는 소수 엘리트들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이들을 높게 평가하는 엘리트주의가 선민사상으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는 것. 그로 인해 엘리트주의와 선민주의는 상당히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이다. 엘리트 지위가 세습될 때 그런 문제가 발생하며,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문이 적어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엘리트주의가 일반 대중의 잠재력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는 엘리트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대중에게서 아예 사회 문제에 대한 자결권이나 주권을 빼앗자고 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 속한 자들로서 대부분의 구성원의 지지는 사회와 특정 집단의 모든 행위에 정당성과 당위성을 부여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힌 사회라면 소수의 엘리트들이 이것들을 뺏고 싶어도 뺏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엘리트주의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위험한 발상인데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자들은 "우매무지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적인 군중(mob)을 대신하여 현명하고 이성적인 엘리트가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현대사회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양대 축으로 삼아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기는 상호간의 긴장관계가 이 문제의 근원이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3] 각각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며, 이에 현대사회는 두 관점이 타협한 대의민주주의를 그 기반으로 삼아 운영되고 있다.[4]

민주주의가 폭주하게 되면 포퓰리즘으로 인해 히틀러우고 차베스와 같은 실패를 낳게 되고, 이에 엘리트주의자들은 정치학적, 법학적으로 상대 우위를 가지고 있는 정치 전문가인 엘리트들이 대중으로부터의 야합을 막아 사회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 플라톤이 엘리트주의적인 주장을 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사법판결도 판사 없이 배심원 투표로 하고 공직도 제비뽑기로 뽑는 아테네 민주정 하에서 스승의 부당한 죽음을 겪은 뒤 극심해진다. 정치 전문가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플라톤 대화편에 많이 나오는 논리중 하나가 병을 치료할 때는 의사를 찾아가고 배를 만들때는 조선공을 찾아가는데 왜 아테네에서 정치는 자질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가 참여하려 할까? 이다.

대중주의를 지지하는 측은 중우정치를 우려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국민을 주권의 주체가 아니라 피지배층이자 통치의 대상으로 본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서 엘리트주의를 인정하는 자들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변질된 엘리트주의일 뿐이지 엘리트주의의 본질이 아니며, 그 본래 취지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같은 논리라면 포퓰리즘 역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 뿐이니 엘리트주의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할 따름이다.

엘리트주의가 굉장히 강하게 반영된 사례가 바로 싱가포르의 교육정책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소수정예 지도자를 장기적으로 양성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엘리트주의를 인정하는 측에서는 현재 싱가포르의 발달한 경제와 선진적이고 깨끗한 사회모습을 제시하며 엘리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면 이처럼 매우 효율적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론하는 측에서는 싱가포르의 경제가 단순히 엘리트들에 의해 전적으로 일궈진 것은 결코 아니며[5] 무엇보다도 싱가포르는 매우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싱가포르에서 실행하는 정책과 제도의 좋은 모습만 보고 이를 도시국가의 사이즈를 명백하게 넘는 영토국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수일 뿐이며 무엇보다도 싱가포르부터가 엘리트주의의 폐해로 인해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비판받고 있다.

북한의 경우를 전형적인 엘리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지도자는 신적인 존재로서 인민을 구원한다. 엘리트주의는 선민사상과 일맥상통하고 엘리트는 당 간부로 대표된다.

대한민국에선 수능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주의가 기저에 깔려있다. 특히 수능 점수에 따라 학교와 과에 들어간 것이 그만큼 지성인인 것이란 주장을 펼치는 것이 목격되기도 한다. 다만 그래도 능력주의에 가까운 한국 사회상이 타국에 잔존하는 혈통기반 엘리트주의에 비해선 낫지 않냐는 주장도 있다.

보통 엘리트주의는 정치적 보수 성향에서만 강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선민의식 형태의 엘리트 주의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진보 진영이라고 해서 엘리트주의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고 오히려 결합한 예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저임금 노동자는 계급의 아래층에 있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 도와줘야 할 존재로 인식하며 정치 엘리트들이야말로 그들을 도와줄 존재로 인식한다. 진보 혁명가들은 역사적으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하층민보단 주로 교육받은 기득권층이나 중산층 출신인 경우가 많았고 민중이 자기들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엘리트주의로 빠져드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보수 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사회를 선도해야 할 자격과 의무가 있으므로 그들에게 사회적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 진영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파가 주창하는 엘리트주의를 실천한 국가가 소련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레닌주의의 경우 대놓고 엘리트로 구성된 공산당이 민중을 이끌고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소련에서는 민간인의 일상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6] 중국의 경우에도 최근에 들어서 시자쥔의 독재체제가 확립됐기에 그 색이 옅어진 것이지, 당 내부는 철저한 엘리트주의로 뭉쳐져 있다. 노조에 대한 탄압이 정당하고 타 집단의 침투가 어려울 뿐이지 자기들 안에서만큼은 능력주의로 이뤄진 자본주의 성향 집단이란 점에서 보면 중국이란 선입견만 없으면 대한민국 보수들이 가진 가장 이상적인 집단에 가깝다.

흔히, 평등교육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조차도 엘리트주의라 비판받는 제도,문화가 존재한다. 프랑스에선 대학 위의 대학인 그랑제꼴이 대표적이고, 영국은 아예 신분제와 그에 따른 사실상의 귀족학교를 운영중이다. 퍼블릭 스쿨 참고. 유럽은 한국에 비해 점진적으로 성장했고 전통을 좀 더 중시하다보니 한국이었으면 평등 저해라고 3불정책이나 사학법 등으로 금지했을 법한 제도들이 현역으로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 교육열이 상대적으로 적고 대학을 가는 사람만 가는 만큼 계층이 고착화되어있는 경우도 많고.

2.1. 대한민국의 경우[편집]

2.1.1. 나향욱[편집]

나향욱 개돼지 망언 사건으로 인해 삐뚤어진 엘리트주의로 인식되는 대표 인물. 다만 실제 엘리트주의는 이것과 다르다. 엘리트주의의 기본 이념은 '우수한 엘리트들이 확실한 정책을 만들고 책임감 있게 구성원들을 지도해서,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후생을 증가시키자'는 것이다.

나향욱에 대해 상당수의 엘리트들도 분개하며 공무원으로서 자격 없는 인물로 오만방자하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는 것에 유의하자. 나향욱의 사례는 대한민국 상류의 삐뚤어진 엘리트주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내 엘리트들 상당수들도 이러한 편향을 혐오한다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 사실 이는 나향욱의 발언이 엘리트주의적인 발언이라기보다도, 혈통주의에 근거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엘리트주의가 대중과 엘리트를 분류해서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음을 주장하더라도, 엘리트집단에 속할 수 있는 조건은 지식이나 경제력 같은 개인의 능력이지 혈통이 아니다. 즉, 나향욱의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는 발언이나, 개돼지 발언에 대해서 '나는 상위 1%로 올라가려고 하는 99%의 사람이다.' 라는 표리부동의 발언은 같은 엘리트들조차도 선민의식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는 발언인 것이다.

2.1.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편집]

대한민국의 흐름을 주도해왔던 엘리트주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문제점 문서에 나오듯이, 이 사태로 인해 대중들의 상류층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올라온 상태이다. 그 대신 대중주의가 힘을 얻게 되었다.

우선 보수 엘리트들은 국정농단의 주된 부역자이며 이런 사태가 나도록 가능하게 만든 핵심이다. 과거부터 박근혜와 최순실의 정치활동을 지원했으며 지식인들은 적극 변호하거나, 보수 언론매체에 영향력을 행사해 박근혜를 유능한 지도자로 포장하고 최순실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무능함을 노출하자 뒤늦게 안면몰수하고 최순실, 이후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몰락에 일조하며 빠져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보수 엘리트들은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자들인 만큼 거센 비판을 맞으면서 끝내 벗어나는데 실패했다.

여전히 보수 엘리트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과오들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 2020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탄핵을 부정하거나 흠집내기를 시도하고 있다.

진보 엘리트들도 일정 책임은 있는데 상당수의 진보 엘리트들은 보수 엘리트들과 손잡고 친노로 대표되는 한국에서 그나마 대중주의에 가까운 리버럴 정치인들을 비판해서 몰락시켰으나 정작 자신들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했으며 대중주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진보 정치세력을 형성하는데도 끝내 실패했다. 정의당녹색당으로 귀결된 진보 정치세력화는 지리멸렬하고 진보 언론매체의 말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대중들은 그나마 대중주의에 가까운 친노세력을 다시 선택해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진영불문하고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눈만 뜨고있는 장님이거나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에만 충실했던 자들이였다는 것에 매우 크게 충격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의 공직자들이였던 조윤선우병우김기춘 등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 코스 라인인 서울대(법대)+ 사법고시를 거친 인사들은 아예 자신들이 국정농단과 최순실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고 실토하였다.[7]

현재 자유한국당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황교안 또한 박근혜 정부당시 법무부 장관에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엘리트였음에도 자신도 최순실과 국정농단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인정하는 해명을 하면서 조윤선, 우병우, 김기춘과 달리 법적 책임 공방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로 인해 황교안 본인의 무능함을 보여줬다.[8] 황교안 “최순실 실체 몰랐다” 국정농단 책임론 ‘해명 황교안 "최순실 실체 몰랐다…안타깝고 잘못됐다 생각"(종합)

조윤선, 우병우, 김기춘, 황교안 등 박근혜 정부측 인물뿐 아니라 엘리트로서 이름을 떨친 수많은 보수계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 거의 몰랐다고 시인한다. 대표적으로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이 대표적. 그나마 유승민과 남경필, 원희룡은 황교안과 다르게 솔직하게 고개를 숙여 자신들은 무능했으며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을 깨닫지 못했으며 국민들에게 사죄드린다고 공식 사과를 하기라도 했다.

한국에서 대중주의가 강화되는 것은 그 동안 엘리트들이 한국 사회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견제하거나 막아내지 못하는 등의 치명적인 무능함들을 계속 노출했기 때문이다. 진보 엘리트들은 이를 견제하지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고, 몇몇 보수 엘리트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국정농단에 대해 반대측의 음모론임을 주장하며 왜곡된 근거와 주장을 일삼으며 억울한 모함이라고 우기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선동하고 있다.

재벌 엘리트들은 법률을 초월한 혜택을 받으며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도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며 혈연에 따른 경영권을 보장 받아왔다. 또한 지식인 엘리트들은 해외 명문대나 SKY를 중심으로 한 학벌주의의 혜택을 받으며 주요 언론사, 연구소 등에 취업하며 서민들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득을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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