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42회 작성일 23-02-27 16:12본문
1. 개요[편집]
2. 용어의 역사[편집]
3. 목적의식[편집]
4. 형태[편집]
반지성주의자들은 지적인 사고와 논리적 고찰보다는 감성과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행동, 직관의 우위를 주장하며[2], 철학, 수학, 자연과학, 연구방법론, 교육, 지식인을 배척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전체주의, 근본주의, 파시즘, 정부 및 사이비 종교가 반대자를 억압하고 민중들을 우민화시켜 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이용한다. 더 무시무시한 점은, 반지성주의가 대중들의 취향에 더욱 맞아떨어지기 때문에[3]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훨씬 덜해 대중들이 빠져들기 쉽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사회나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가질 수준의 지성과 교양을 갖추려면 공부라는 수고를, 그것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랜 시간을 들여 많이 해야 한다.[4]하지만 반지성주의는 오히려 공부할 필요가 없고 공부는 샌님들이나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주의로 앞에서 언급한 공부라는 '수고'를 건너뛰기 때문에 당장 듣기에는 더욱 달콤하다. 문제는 그것이 설탕으로 포장된 독약이라는 점이지만.
4.1. 전체주의[편집]
국가, 민족 등 거대한 이념을 최우선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이견의 표출을 억압한다. 또 불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지식을 금서 지정, 이론 사장 등의 방식으로 은폐하며 위협이 되는 지식인들을 제거하고 의도적으로 낮은 수준의 교육을 일률적으로 실시하여 소속 구성원들을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다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등 획일화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지식에 대한 말살 및 전체주의의 진행 과정 때문에 우민화나 군국주의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4.1.1. 파시즘과 반지성주의[편집]
파시즘은 전체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성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태도는 단기적으로 다수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들의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파시즘은 실질적인 통치에는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집단에 많이 의존했다. 반지성주의처럼 보이지만 전문가주의이기도 한 것이다.
나라에 문제가 있다면 권력이나 폭력(전쟁 등)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 형태에 속한다. 애초에 반지성주의의 뿌리이자 결말로 '그 이상 알면 다친다,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같은 속설로 지성을 가진 자를 권위로 찍어누르려면 결과적으로는 힘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라에 문제가 있다면 권력이나 폭력(전쟁 등)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 형태에 속한다. 애초에 반지성주의의 뿌리이자 결말로 '그 이상 알면 다친다,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같은 속설로 지성을 가진 자를 권위로 찍어누르려면 결과적으로는 힘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1.2. 스탈린주의와 반지성주의[편집]
모든 공산주의가 전체주의나 파시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공산권 국가들의 경우 스탈린주의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정권을 거치거나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과 중국, 루마니아[5], 북한과 일부 아시아, 아프리카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있다. 이 국가들의 특징으론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 대표되는 소련과 중국이 영향을 받아[6]공산당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 전체주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기에 연관이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주체사상으로 나누어 보기도 하지만 그 뿌리는 스탈린주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스탈린주의로도 불린다.
현실에서 파시즘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점은 전체주의가 사회 전체에 자리잡은 이후의 전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파시즘은 이민족 등 배타 세력을 선정하고 집단의 정체성이 구성된 후에는 집단의 결속력과 우월함을 중시하고 국가의 감시 인력들이 개인의 일탈 행위를 막았다. 반면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 등에서는 배척 세력을 걸러낸 뒤에도 소속 집단 전체에 대해 의도적으로 걸러내기 작업을 실시해 지식인들과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식을 제거하였으며, 구성원끼리 고발하고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지식에 대한 갈망과 탐구를 포기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우민화로 이어지게 된다. 다만 파시즘 국가들이 오래 가지 못해 망했기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에서 파시즘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점은 전체주의가 사회 전체에 자리잡은 이후의 전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파시즘은 이민족 등 배타 세력을 선정하고 집단의 정체성이 구성된 후에는 집단의 결속력과 우월함을 중시하고 국가의 감시 인력들이 개인의 일탈 행위를 막았다. 반면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 등에서는 배척 세력을 걸러낸 뒤에도 소속 집단 전체에 대해 의도적으로 걸러내기 작업을 실시해 지식인들과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식을 제거하였으며, 구성원끼리 고발하고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지식에 대한 갈망과 탐구를 포기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우민화로 이어지게 된다. 다만 파시즘 국가들이 오래 가지 못해 망했기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4.2. 대중주의와 우민화[편집]
반지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지식인들이 다수의 대중과 격리된 엘리트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과 여론 등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러한 지식인들과 대립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특히 다수결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먹혀들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다수결의 맹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독차지 하거나 국민들을 핍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 요제프 괴벨스와 아돌프 히틀러를 필두로한 선동과 가짜뉴스, 선전 등을 이용해 투표로 선출된, 다수결에 의해 독재자가 뽑혀서 민주주의가 자멸해버린 사례이자 군중의 선택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리는 그대로, 비판적 수용 없이 믿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A가 좋다'는 헛소문이나 실제로 심지어 팔리기까지 하는 수소수, 게르마늄 팔찌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일반인 집단이 갖고 있는 반감이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양측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기사도 있다.
이처럼 대중, 특히 비전문가들은 지성적인 토론과 교류를 통한 합리적 선택보다는 선동과 날조에 따른 감정적인 선택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수결의 맹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독차지 하거나 국민들을 핍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 요제프 괴벨스와 아돌프 히틀러를 필두로한 선동과 가짜뉴스, 선전 등을 이용해 투표로 선출된, 다수결에 의해 독재자가 뽑혀서 민주주의가 자멸해버린 사례이자 군중의 선택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리는 그대로, 비판적 수용 없이 믿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A가 좋다'는 헛소문이나 실제로 심지어 팔리기까지 하는 수소수, 게르마늄 팔찌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일반인 집단이 갖고 있는 반감이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양측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기사도 있다.
이처럼 대중, 특히 비전문가들은 지성적인 토론과 교류를 통한 합리적 선택보다는 선동과 날조에 따른 감정적인 선택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4.3. 탈진실(Post-truth)[편집]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을 부정하고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현대적 현상이다.[7] 특히 과학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을 가장 불신하는데, 이는 과학과 역사의 특성상 '100% 확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매번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신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지 확실하게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학교 과학시간에도 나오지만 그 이론이 나옴으로서 증명하고, 그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다가도 새로운 가설과 이론, 증명이 나온다면 그것을 다시 반박하거나 받아들이듯, 과학에는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기 매우 힘들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변형되어 기록되거나 소실되는 경우도 많으며, 위서 등이 많기 때문에 '이랬을 것이다' 라 추측할 뿐 완벽하게 맞다고 말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학자들이나 과학자, 혹은 성향이 탐구적인 사람이라면 이런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여 결과에 대한 현상과 물증 등을 근거로 토론이나 교류를 통해 잘못된 내용을 걸러낼 수 있겠지만, 예/아니오라는 단순한 답만 좋아하거나 뭔가를 확실하게 믿는걸 원하는 성향의 사람들, 혹은 새로운 내용에 무관심 하거나 토론과 대화 등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면 과학계의 이런 절차를 불신하거나 귀찮아 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해할 수준이 안되었음에도 대충 이해하고 맞다며 자기합리화에 빠지면서 탈진실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좋은 정보가 많아진 만큼 가짜뉴스도 많아지고,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편향된 정보만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8] 지구평면설, 천동설, 그림자 정부 등 음모론과 탈진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완전한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과학이나 역사학이 쓸모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성 과학과 역사학은 아예 거짓에 가까운 음모론이나 유사과학, 유사역사학과는 비교 자체가 실례인 수준의 정확도로, 정교하게 현실을 묘사하고 예측한다. 기성 학문이 진실을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진실'을 택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오류를 범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현대 과학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학문이 아니며, 과학으로 규명된 분야보다 그렇지 않은 분야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쓸모없는 학문일까? 고리타분하고 알아듣기 힘든 기성학문의 이론들보다, 흥미 위주의 음모론이나 유사과학이 훨씬 귀에 더 잘 박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더 정확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또, 탈진실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대중의 불신을 일으키고, 선동가들이 돈, 정치적 영향, 관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선동하다 보면 그것이 나중에 틀렸음이 증명되었음에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해당하는 정보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과학계는 매번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신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지 확실하게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학교 과학시간에도 나오지만 그 이론이 나옴으로서 증명하고, 그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다가도 새로운 가설과 이론, 증명이 나온다면 그것을 다시 반박하거나 받아들이듯, 과학에는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기 매우 힘들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변형되어 기록되거나 소실되는 경우도 많으며, 위서 등이 많기 때문에 '이랬을 것이다' 라 추측할 뿐 완벽하게 맞다고 말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학자들이나 과학자, 혹은 성향이 탐구적인 사람이라면 이런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여 결과에 대한 현상과 물증 등을 근거로 토론이나 교류를 통해 잘못된 내용을 걸러낼 수 있겠지만, 예/아니오라는 단순한 답만 좋아하거나 뭔가를 확실하게 믿는걸 원하는 성향의 사람들, 혹은 새로운 내용에 무관심 하거나 토론과 대화 등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면 과학계의 이런 절차를 불신하거나 귀찮아 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해할 수준이 안되었음에도 대충 이해하고 맞다며 자기합리화에 빠지면서 탈진실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좋은 정보가 많아진 만큼 가짜뉴스도 많아지고,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편향된 정보만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8] 지구평면설, 천동설, 그림자 정부 등 음모론과 탈진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완전한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과학이나 역사학이 쓸모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성 과학과 역사학은 아예 거짓에 가까운 음모론이나 유사과학, 유사역사학과는 비교 자체가 실례인 수준의 정확도로, 정교하게 현실을 묘사하고 예측한다. 기성 학문이 진실을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진실'을 택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오류를 범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현대 과학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학문이 아니며, 과학으로 규명된 분야보다 그렇지 않은 분야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쓸모없는 학문일까? 고리타분하고 알아듣기 힘든 기성학문의 이론들보다, 흥미 위주의 음모론이나 유사과학이 훨씬 귀에 더 잘 박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더 정확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또, 탈진실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대중의 불신을 일으키고, 선동가들이 돈, 정치적 영향, 관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선동하다 보면 그것이 나중에 틀렸음이 증명되었음에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해당하는 정보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5. 사례[편집]
6. 지식인층 비판과의 구분[편집]
간혹 곡학아세 등의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 내지는 '비전문가가 전문가 앞에서 이견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반지성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행태 비판을 동일시하는 주장을 하는 '지식인', '전문가'들의 경우 그 의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지식인, 교수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E. H. 카도 역사란 무엇인가 사후개정판 서문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9] 보통 우민화 정책 등과 연관해서 비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용어지만, 이 개념 자체가 꼭 틀린 것은 아니다. 대립되는 양쪽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싣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극단적인 반지성주의로 가는 경우이다.
이건 모든 전문가들의 배후에 거대한 흑막이 있으리란 유치찬란한 음모론을 펼치란 말이 아니다.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하는 말이니 무조건 옳다고 단정짓고 무비판적으로 넙죽넙죽 신용해선 안되고, 최소한의 교차검증은 거치란 얘기다. 지식인이나 전문가 역시 어디까지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인 만큼 그들의 전문성을 이권과 권력을 위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오해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 어떤 것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게 된다. 지식인이면 지식인이고 전문가면 전문가지 그들 모두가 관련 정보에 목마른 당신을 위해 발벗고 나설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등처먹을 호구들을 호시탐탐 찾아재끼는 부류도 있기 마련이다. 이 분야에서 두말하면 입 아픈 부류가 바로 정치인들로 반지성주의와 지식인,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학 교수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인들보다 정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건 반동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건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은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반민주적 결론이 도출된다.
또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독재 국가와 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가 드물고 또 그러한 인재가 독재 국가라는 특성상 어용 학자, 기자, 작가 등으로 전락할 여지가 큰 환경[10], 다시 말해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어차피 (독재자 의견을 뒷받침 해주는) 지식인 미만잡이니까 정권 비판하는 늬들 다 틀렸다" 식으로 나오면 할말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더더욱 위험해진다. MC 스나이퍼는 이를 자신의 1집 So Sniper...의 수록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은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일부에선 엘리트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일반화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독재에서 시작한 엘리트주의는 권의주의적 행동이나 확증편향, 진영논리 등으로 인한 반지성주의적 행동을 하며, 엘리트들이 자기 전공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 반지성주의적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엘리트주의로 시작된 일들이 인류의 입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들이고, 이러한 엘리트 중심에는 오히려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을 앞당기는 등 반드시 엘리트주의가 반지성주의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건 모든 전문가들의 배후에 거대한 흑막이 있으리란 유치찬란한 음모론을 펼치란 말이 아니다.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하는 말이니 무조건 옳다고 단정짓고 무비판적으로 넙죽넙죽 신용해선 안되고, 최소한의 교차검증은 거치란 얘기다. 지식인이나 전문가 역시 어디까지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인 만큼 그들의 전문성을 이권과 권력을 위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오해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 어떤 것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게 된다. 지식인이면 지식인이고 전문가면 전문가지 그들 모두가 관련 정보에 목마른 당신을 위해 발벗고 나설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등처먹을 호구들을 호시탐탐 찾아재끼는 부류도 있기 마련이다. 이 분야에서 두말하면 입 아픈 부류가 바로 정치인들로 반지성주의와 지식인,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학 교수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인들보다 정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건 반동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건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은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반민주적 결론이 도출된다.
또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독재 국가와 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가 드물고 또 그러한 인재가 독재 국가라는 특성상 어용 학자, 기자, 작가 등으로 전락할 여지가 큰 환경[10], 다시 말해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어차피 (독재자 의견을 뒷받침 해주는) 지식인 미만잡이니까 정권 비판하는 늬들 다 틀렸다" 식으로 나오면 할말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더더욱 위험해진다. MC 스나이퍼는 이를 자신의 1집 So Sniper...의 수록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은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일부에선 엘리트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일반화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독재에서 시작한 엘리트주의는 권의주의적 행동이나 확증편향, 진영논리 등으로 인한 반지성주의적 행동을 하며, 엘리트들이 자기 전공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 반지성주의적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엘리트주의로 시작된 일들이 인류의 입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들이고, 이러한 엘리트 중심에는 오히려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을 앞당기는 등 반드시 엘리트주의가 반지성주의로 연결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