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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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32회 작성일 23-04-05 14:03본문
1. 개요
국회폭력(國會暴力 / Parliament Brawl[2]#)은 국회의 다수가 표결로 원하는 법을 통과시키려고 할 때, 반대하는 소수가 몸으로라도 입법절차를 방해해서 통과를 막으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국회의원 간의 과격한 몸싸움을 말한다.
이를 보고 한때 인터넷에서는 국회 공성전이라고 자주 불렀으며 동물국회, 국K-1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통 본회의장의 국회의장석 점거 몸싸움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왜 국회의장석이 중요하냐면, 법안 통과를 위해서 표결 후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표결을 선포하는 것이 법적인 절차로써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3][4][5]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이며,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이 행위가 사라진 대한민국도 한때는 자타공인 국회폭력이 최고로 심한 나라였다.[6]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로는 소수파에서 의결을 저지하는 수단으로써 필리버스터를 도입했으며, 실행하였다. 다만, 2019년 4월 25일에 국회폭력이 발생함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래로 처음으로 생긴 국회폭력 사건이 되었다. 2019년 12월 27일에도 발생했다.
이를 보고 한때 인터넷에서는 국회 공성전이라고 자주 불렀으며 동물국회, 국K-1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통 본회의장의 국회의장석 점거 몸싸움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왜 국회의장석이 중요하냐면, 법안 통과를 위해서 표결 후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표결을 선포하는 것이 법적인 절차로써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3][4][5]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이며,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이 행위가 사라진 대한민국도 한때는 자타공인 국회폭력이 최고로 심한 나라였다.[6]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로는 소수파에서 의결을 저지하는 수단으로써 필리버스터를 도입했으며, 실행하였다. 다만, 2019년 4월 25일에 국회폭력이 발생함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래로 처음으로 생긴 국회폭력 사건이 되었다. 2019년 12월 27일에도 발생했다.
2. 벌어지는 이유[편집]
대체로 민주주의 기반과 전통이 약한 상황에서 많이 벌어진다. 정당정치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들은 극소수 정치인의 절대적 카리스마에 정치를 의존하곤 하는데, 그러다보니 카리스마 있는 정당 총수가 의원들을 상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은 정당 총수에게 충성하는 조폭식 정치를 하게된다. 즉,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의 민의를 대표하기는 커녕 당대표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 다수(50% 이상)의 의원수를 확보한 정당은 총수의 지휘아래 자기들 끼리 똘똘 뭉치면 원하는 법을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게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그릇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나머지 소수(50% 미만)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의 실종'이다. 아예 막장인 경우에는 의회의 토론조차 배제시키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날치기다.
물론 반대하는 소수는 그냥 보고만 있지 않는다. 마지막 절차인 의장의 선포를 막으면 법안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의장석 점거를 노리는것이다. 보통 상황은 2가지인데, 하나는 소수세력이 먼저 점거를 해서 선포를 막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다수세력이 그것을 예상하고 미리 의장석을 점거해버려 선포방해를 막아내는 것. 어느 쪽이든 먼저 점거한 쪽이 수비를 하는 입장이다. 공격 측에서는 당연히 이것을 가만히 보지는 않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본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하며, 이를 막으려는 정당은 바리케이드 등을 세우고 몸싸움이 되는 의원들을 앞에 배치시키기도 한다.
소수로서는 최후의 발악인데, 이렇게 몸싸움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가 이긴다. 다만, 소수가 노리는 것은 이렇게 큰 소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서 문제가 되는 법안의 내용을 알리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국회가 며칠에 걸쳐서 진행되면, 일반국민도 쟁점 법안이 무엇인지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특히 날치기의 경우에는 다수당이 국민에게 당당히 내보이기 떳떳치 못한 법안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이었던 것이 비정규직법[7]. 인기없는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게 알려지면 다수당으로서는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서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그 자체는 결코 옹호될 수 없는 행위다. 게다가 이런 공성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법률은 그 입법 과정부터 떳떳지 못하게 되고 국민들에게는 이로운 것이 없어서 이러한 법안 처리를 두고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의장석을 점거해 법안을 통과 시키는 정당이야 "우리는 국익을 위해..."로 사유를 대지만 이는 전부 핑계다.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다면 날치기가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가끔 이 과정에서 큰일을 터트릴 경우, 각 정당 차원에서 참여한 의원들에게 암묵적인 제약을 주는 듯 하지만, 실상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디서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이라도 하는 건지, 다음 몸싸움에서도 양측의 인원은 거의 그대로 동원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이걸 전담하던 어깨 전문 의원이 비공식적으로 있었을 정도였다. 특히 보수정당의 직업군인 출신 초~재선의원이 이런 케이스가 많다. 18대의 김성회 前 의원을 끝으로 국회선진화법 도입에 의해 대가 끊기긴 했지만 2019년 4월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이 추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그들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이 어기고 몸으로 막아서버려서 어느 정도 다시 살아난 모양새다.
저런 상황에 각종 비정상적 행위부터 밑에서 나올 짤방과 같은 상황 같은 것이 첨가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정말 혐오스러운 정치 문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예전같은 국회 공성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정치에 관련해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2010년 중반대에 이르면서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지닌 집단들이 거리로 나와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실상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된 셈이다.
사실 날치기 그 자체로만 따지면 이승만 정부 시절의 사사오입 개헌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나, 최근에 인지되는 국회 공성전으로 불리는 사건들은 대개 2000년대 후반 즈음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국회 날치기 변천사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 다수(50% 이상)의 의원수를 확보한 정당은 총수의 지휘아래 자기들 끼리 똘똘 뭉치면 원하는 법을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게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그릇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나머지 소수(50% 미만)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의 실종'이다. 아예 막장인 경우에는 의회의 토론조차 배제시키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날치기다.
물론 반대하는 소수는 그냥 보고만 있지 않는다. 마지막 절차인 의장의 선포를 막으면 법안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의장석 점거를 노리는것이다. 보통 상황은 2가지인데, 하나는 소수세력이 먼저 점거를 해서 선포를 막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다수세력이 그것을 예상하고 미리 의장석을 점거해버려 선포방해를 막아내는 것. 어느 쪽이든 먼저 점거한 쪽이 수비를 하는 입장이다. 공격 측에서는 당연히 이것을 가만히 보지는 않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본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하며, 이를 막으려는 정당은 바리케이드 등을 세우고 몸싸움이 되는 의원들을 앞에 배치시키기도 한다.
소수로서는 최후의 발악인데, 이렇게 몸싸움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가 이긴다. 다만, 소수가 노리는 것은 이렇게 큰 소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서 문제가 되는 법안의 내용을 알리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국회가 며칠에 걸쳐서 진행되면, 일반국민도 쟁점 법안이 무엇인지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특히 날치기의 경우에는 다수당이 국민에게 당당히 내보이기 떳떳치 못한 법안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이었던 것이 비정규직법[7]. 인기없는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게 알려지면 다수당으로서는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서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그 자체는 결코 옹호될 수 없는 행위다. 게다가 이런 공성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법률은 그 입법 과정부터 떳떳지 못하게 되고 국민들에게는 이로운 것이 없어서 이러한 법안 처리를 두고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의장석을 점거해 법안을 통과 시키는 정당이야 "우리는 국익을 위해..."로 사유를 대지만 이는 전부 핑계다.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다면 날치기가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가끔 이 과정에서 큰일을 터트릴 경우, 각 정당 차원에서 참여한 의원들에게 암묵적인 제약을 주는 듯 하지만, 실상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디서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이라도 하는 건지, 다음 몸싸움에서도 양측의 인원은 거의 그대로 동원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이걸 전담하던 어깨 전문 의원이 비공식적으로 있었을 정도였다. 특히 보수정당의 직업군인 출신 초~재선의원이 이런 케이스가 많다. 18대의 김성회 前 의원을 끝으로 국회선진화법 도입에 의해 대가 끊기긴 했지만 2019년 4월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이 추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그들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이 어기고 몸으로 막아서버려서 어느 정도 다시 살아난 모양새다.
저런 상황에 각종 비정상적 행위부터 밑에서 나올 짤방과 같은 상황 같은 것이 첨가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정말 혐오스러운 정치 문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예전같은 국회 공성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정치에 관련해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2010년 중반대에 이르면서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지닌 집단들이 거리로 나와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실상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된 셈이다.
사실 날치기 그 자체로만 따지면 이승만 정부 시절의 사사오입 개헌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나, 최근에 인지되는 국회 공성전으로 불리는 사건들은 대개 2000년대 후반 즈음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국회 날치기 변천사
3. 대한민국 국회의 경우[편집]
기본적으로 국회는 다수결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배울 때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되, 소수의 입장을 배려하고 그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회, 나아가 사회에서 야당 혹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다수에 막혀 반영되기 어렵다.
그래도 선거제도가 국민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공정하게 짜여져 있다면, 그리고 국회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진정 국민의 충복으로 기능한다면 다수결 중심의 시스템에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시행된 것이 2004년이다. 비례대표제의 전신인 전국구 의원이 생긴 것은 제3공화국의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였는데, 정당명부제 투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역구 출마 후보들의 득표 합계로 계산을 했다. 당연히 후보를 많이 낼 수 있는 대형 정당이 유리한 판인 것이다. 제4공화국 유신 체제하에서는 그마저도 없어져서, 전국구 의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거수기인 유신정우회로 메꿨다.
제5공화국에서는 유신정우회 같은 거수기가 사라지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부활했지만, 그 배분방식이 3공화국 시기의 지역구 후보자 득표율이 아닌 지역구 확보 의석수였다. 지역구 의석이 많은 당에 전국구 의석도 많이 배분하는 제도인 것. 그나마 이것도 지역구 의석과 비례를 하면 모르겠는데 11~1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 제1당에게 전국구 의석의 2/3을 할당했다. 때문에 12대 총선에서 그 참패를 당한 민주정의당이 비례대표 92석 중 61석을 획득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던 것이다.[8]
그나마 민주화가 된 제6공화국에서는 총선별로 약간씩 개선이 이뤄져서, 13대 총선 때는 제1당에 주어지는 의석수가 1/2로 하향조정되었고,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 획득비율 기준으로 바뀌었으며, 15~16대 총선 때는 제3공화국 시절의 지역구 후보자 득표율 합계 방식으로 바뀌었고, 17대 총선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이다.
제도적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장치가 국회에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필리버스터인데, 원래 한국 국회에도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었지만 김대중, 박한상 두 의원이 장기간의 필리버스터에 대통령 박정희는 유신 이후 필리버스터 제도를 없애버렸다. 즉 소수세력이 비폭력적으로 다수결에 맞설 방법을 박탈한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이후 국회선진화법이 생기고 나서야 다시 부활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석이 적은 야당이 얌전히 토론만 하고 국회의사진행발언만 한 다음 질 것이 뻔한 표결에 참여한다는 것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폭력적 수단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69년 3선 개헌이나, 1979년 9월 16일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발언[9]을 문제삼아 집권당이 인력들을 동원해 날치기 통과하려 했을때 당시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벌인 신민당 의원들을 보고 후대 사람들은 국회폭력이라 하던가? 실제로 국회폭력의 국내 사례로 소개된 내용들도 모두 민주화 이후의 것들이다. 그 이전의 국회폭력 사례들은 부당한 선거제도 등으로 인한 기형적 여대야소 속에 맞선 제도권적 투쟁이었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런 양상들은 오히려 민주적인 모습을 갖추어져 있었다. 이 시절 한국과 같은 신생 개발도상국들은 것은 아예 저런 견제도 할수 없던 일당제가 많았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였다. 민주화 이전의 국회는 선명한 국내 정치노선 투쟁 구도가 있었고, 국회 내 충돌 원인도 대부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국회 내의 갈등은 각 정당의 추구하는 정책과 가치의 충돌로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정부의 비민주적인 법률안 통과에 맞선 야당의 국회투쟁에 대해 폭력이라 비난하긴커녕 잘한다며 응원하였지만, 제1의 목표점이었던 민주화를 달성하고 나니 대체 왜 국회에서 저렇게 치고받고 싸워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국회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은 1996년 안기부법 및 노동법 날치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2005년의 사학법 개정안, 2006년의 주민소환제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2008-09년의 한미 FTA, 미디어법, 금산분리법정도인데 국민들은 과연 이런 문제들이 국회에서 대대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의석 수가 있다. 제1당이어도 과반의석이 아니면 어떻게든 제1야당과 협상(혹은 소수당을 포섭)할 수밖에 없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했다면 협상대신 다수결 투표로 밀고나가는 강공 드라이브의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반대로 소수당 입장에서도 자기들이 과반은 안되어도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한 의석수가 있다면 다른 야당들과 연대하거나 혹은 제1당과 협상을 좀 더 유리하게 끌어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의석수가 적다면 협상에서 씨알도 안 먹히기 때문에 무력행사로 나가게 된다.
이게 바로 18대 국회의 구조적 문제였는데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딱히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170여 석의 거대 제1집권여당[10]이었기에 협상보다 강공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고 더군다나 집권 직후여서 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다.[11] 민주당은 80석 내외로 역대급 폭망을 한 상태였기에 협상에서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점거농성을 통해 실력행사를 한 다음 협상에 나서는 벼랑 끝 전술을 채택한다는 전략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5석이 전부였던 민주노동당은 협상이고 뭐고 과격한 행동 말고는 목소리를 낼 방법 자체가 없었다.[12]
국회폭력은 다수당이 소수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날치기 하려고 할 때 발생하지만 소수당도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자주 하지는 못 한다. (그 정당의 입장에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일 때나 벌이는 것이다. 다음은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회고 중 일부다.
그래도 선거제도가 국민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공정하게 짜여져 있다면, 그리고 국회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진정 국민의 충복으로 기능한다면 다수결 중심의 시스템에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시행된 것이 2004년이다. 비례대표제의 전신인 전국구 의원이 생긴 것은 제3공화국의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였는데, 정당명부제 투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역구 출마 후보들의 득표 합계로 계산을 했다. 당연히 후보를 많이 낼 수 있는 대형 정당이 유리한 판인 것이다. 제4공화국 유신 체제하에서는 그마저도 없어져서, 전국구 의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거수기인 유신정우회로 메꿨다.
제5공화국에서는 유신정우회 같은 거수기가 사라지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부활했지만, 그 배분방식이 3공화국 시기의 지역구 후보자 득표율이 아닌 지역구 확보 의석수였다. 지역구 의석이 많은 당에 전국구 의석도 많이 배분하는 제도인 것. 그나마 이것도 지역구 의석과 비례를 하면 모르겠는데 11~1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 제1당에게 전국구 의석의 2/3을 할당했다. 때문에 12대 총선에서 그 참패를 당한 민주정의당이 비례대표 92석 중 61석을 획득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던 것이다.[8]
그나마 민주화가 된 제6공화국에서는 총선별로 약간씩 개선이 이뤄져서, 13대 총선 때는 제1당에 주어지는 의석수가 1/2로 하향조정되었고,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 획득비율 기준으로 바뀌었으며, 15~16대 총선 때는 제3공화국 시절의 지역구 후보자 득표율 합계 방식으로 바뀌었고, 17대 총선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이다.
제도적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장치가 국회에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필리버스터인데, 원래 한국 국회에도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었지만 김대중, 박한상 두 의원이 장기간의 필리버스터에 대통령 박정희는 유신 이후 필리버스터 제도를 없애버렸다. 즉 소수세력이 비폭력적으로 다수결에 맞설 방법을 박탈한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이후 국회선진화법이 생기고 나서야 다시 부활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석이 적은 야당이 얌전히 토론만 하고 국회의사진행발언만 한 다음 질 것이 뻔한 표결에 참여한다는 것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폭력적 수단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69년 3선 개헌이나, 1979년 9월 16일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발언[9]을 문제삼아 집권당이 인력들을 동원해 날치기 통과하려 했을때 당시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벌인 신민당 의원들을 보고 후대 사람들은 국회폭력이라 하던가? 실제로 국회폭력의 국내 사례로 소개된 내용들도 모두 민주화 이후의 것들이다. 그 이전의 국회폭력 사례들은 부당한 선거제도 등으로 인한 기형적 여대야소 속에 맞선 제도권적 투쟁이었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런 양상들은 오히려 민주적인 모습을 갖추어져 있었다. 이 시절 한국과 같은 신생 개발도상국들은 것은 아예 저런 견제도 할수 없던 일당제가 많았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였다. 민주화 이전의 국회는 선명한 국내 정치노선 투쟁 구도가 있었고, 국회 내 충돌 원인도 대부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국회 내의 갈등은 각 정당의 추구하는 정책과 가치의 충돌로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정부의 비민주적인 법률안 통과에 맞선 야당의 국회투쟁에 대해 폭력이라 비난하긴커녕 잘한다며 응원하였지만, 제1의 목표점이었던 민주화를 달성하고 나니 대체 왜 국회에서 저렇게 치고받고 싸워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국회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은 1996년 안기부법 및 노동법 날치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2005년의 사학법 개정안, 2006년의 주민소환제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2008-09년의 한미 FTA, 미디어법, 금산분리법정도인데 국민들은 과연 이런 문제들이 국회에서 대대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의석 수가 있다. 제1당이어도 과반의석이 아니면 어떻게든 제1야당과 협상(혹은 소수당을 포섭)할 수밖에 없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했다면 협상대신 다수결 투표로 밀고나가는 강공 드라이브의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반대로 소수당 입장에서도 자기들이 과반은 안되어도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한 의석수가 있다면 다른 야당들과 연대하거나 혹은 제1당과 협상을 좀 더 유리하게 끌어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의석수가 적다면 협상에서 씨알도 안 먹히기 때문에 무력행사로 나가게 된다.
이게 바로 18대 국회의 구조적 문제였는데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딱히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170여 석의 거대 제1집권여당[10]이었기에 협상보다 강공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고 더군다나 집권 직후여서 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다.[11] 민주당은 80석 내외로 역대급 폭망을 한 상태였기에 협상에서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점거농성을 통해 실력행사를 한 다음 협상에 나서는 벼랑 끝 전술을 채택한다는 전략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5석이 전부였던 민주노동당은 협상이고 뭐고 과격한 행동 말고는 목소리를 낼 방법 자체가 없었다.[12]
국회폭력은 다수당이 소수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날치기 하려고 할 때 발생하지만 소수당도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자주 하지는 못 한다. (그 정당의 입장에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일 때나 벌이는 것이다. 다음은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회고 중 일부다.
당시 강 대표는 국회폭력의 대명사처럼 불렸습니다.
그러던 그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미FTA를 막아내기 위해 또 한 번 온몸을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물론 한미FTA를 선두에서 막아내던 전문가들까지 나서서 지역 선거 낙선을 우려했습니다. 3선 의원이 되면 더 좋은 역할을 해 주실 수 있을 거라며 말렸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국회에 와서 일하고 있나 말이다. 농민들이 내 국회 보내준 거 아이가? 근데 그 사람덜 죽어나가는 꼴 보면서 내가 우찌 가만히 있노. 그러지도 못할 바에야 국회의원 또 하믄 뭔 소용 있겠나. 난 그렇게 못한다.”
그래도 몸싸움이 보기 안 좋은 것은 사실이어서 결국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었다.
협치에 관한 다음 글도 읽어볼 만 하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계층 간 갈등을 대리하는 것이다. 억지 웃음만 가지고는 정작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3.1. 국회선진화법 이후[편집]
확실히 물리적 폭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예 근절되지는 않고 여전히 소수의 폭력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해당 사안에 대한 처벌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4. 법률[편집]
국회법 제13장 질서와 경호 제145조(회의의 질서유지) ①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서 이 법 또는 국회규칙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이를 경고 또는 제지할 수 있다. ②제1항의 조치에 응하지 아니한 의원이 있을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당일의 회의에서 발언함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 ③의장 또는 위원장은 회의장이 소란하여 질서를 유지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회의를 중지하거나 산회를 선포할 수 있다. 제146조(모욕등 발언의 금지)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 제147조(발언방해등의 금지) 의원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회의중 함부로 발언 또는 소란한행위를 하여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할 수 없다. 제148조(회의진행 방해 물건 등의 반입 금지)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 회의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 또는 음식물을 반입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48조의2(의장석 또는 위원장석의 점거 금지) 의원은 본회의장 의장석 또는 위원회 회의장 위원장석을 점거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48조의3(회의장 출입의 방해 금지) 누구든지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하여 본회의장 또는 위원회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4장 징계 제155조(징계) 국회는 의원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그 의결로써 이를 징계할 수 있다. 다만, 의원이 제7호의2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하고 그 의결로써 이를 징계할 수 있다. 6. 제145조제1항에 해당되는 회의장의 질서문란행위를 하거나 이에 대한 의장 또는 위원장의 조치에 불응한 때 7. 제146조를 위반하여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한 때 7의2. 제148조의2를 위반하여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점거 해제를 위한 제145조에 따른 의장 또는 위원장의 조치에 불응한 때 7의3. 제148조의3을 위반하여 의원의 본회의장 또는 위원회 회의장 출입을 방해한 때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제165조(국회 회의 방해 금지)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본회의·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의 각종 회의를 말하며,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를 포함한다. 이하 이 장에서 같다)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 ①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의 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사람을 상해하거나, 폭행으로 상해에 이르게 하거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폭행 또는 재물을 손괴하거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5. 사례[편집]
- 국회폭력/국내 사례 - 대한민국 국회의 국회폭력
- 국회폭력/국내 사례/국회 외의 사례 - 지방의회나 공청회 중의 난투극
- 국회폭력/국외 사례 - 해외 의회의 사례
6. 기타[편집]
이 과정이 많이 즐기는 MMORPG의 공성전과 흡사하기 때문에 이것을 비꼬는 의미로 '국회 공성전'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이 문서도 국회 공성전이 제목이었던 적이 있었으며 현재도 국회 공성전으로 리다이렉트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쯤에는 인터넷상에서 국회공성전이라는 용어가 더 유행했었다. 다만 이 용어가 언론에서는 정식으로 쓰이지도 않았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현재는 삭제되었다. 관련 흔적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보자.
2000~2010년 즈음에 격투 단체 K-1이 인기가 많았을때 당시 국회폭력을 일삼던 국회의원들을 비꼬아서 국회의원을 국K-1(혹은 國K-1)이라는 멸칭이 나왔으며 지금 인기
2000~2010년 즈음에 격투 단체 K-1이 인기가 많았을때 당시 국회폭력을 일삼던 국회의원들을 비꼬아서 국회의원을 국K-1(혹은 國K-1)이라는 멸칭이 나왔으며 지금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