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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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11회 작성일 23-04-04 16:53본문
1. 대중적인 의미[편집]
대중적으로는 소수민족/인종, 성 소수자들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소수자 지위로 인해 경험하는 낙인 관련 스트레스(stigma-related stress)를 의미한다. 사회적 차별로 인해 경험하는 스트레스 또한 개인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된다. 이를 학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는 하단에 다시 설명하게 될 심리적 매개 프레임워크(PMF)가 있다.
이하에서 설명할 이론은 이 중에서 성 소수자들, 그 중에서도 LGB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이므로 대중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협소하게 활용된다.
이하에서 설명할 이론은 이 중에서 성 소수자들, 그 중에서도 LGB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이므로 대중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협소하게 활용된다.
2. 소수자 스트레스 이론[편집]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들이 사회적 낙인과 차별, 억압으로 인해 경험하는 만성적 스트레스.
컬럼비아 대학교의 공공보건학(public health) 교수 일란 메이어(I.H.Meyer)가 2003년에 자신의 논문에서 소수자 스트레스 이론(이하 MST; minority stress theory)을 발표하여 유명해졌다.[1] 현대에는 정신의학(psychiatry)이나 공공보건 분야 이외에도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건강심리학, 성적 지향을 연구하는 성심리학, 낙인(stigma) 효과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 기타 학문으로서 사회학, 정책학 등의 다양한 분야들에서 관심 갖고 취급하고 있다. 2019년 현재 확인 가능한 가장 최신의 리뷰 논문은 2017년에 나왔을 만큼[2] 현대에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론이다.
짧게 말하면 LGB 인구가 사회적인 멸시와 천대의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그것이 마침내 그들의 정신건강 수준까지 떨어뜨려서 우울과 불안, 자살, 자해, 폭음, 흡연, 마약 등등의 위험으로 내몰아 간다는 게 MST의 요체다. 2003년 이전까지 관련 학계에서는 사회적인 차별이 LGB들에게 엄연한 스트레스원(stressor)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스트레스는 둘째치고, LGB들이 수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도 대부분 90년대말~2000년대초 사이에 이슈화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그 이전까지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연구하던 심리학계의 이론적 조망이 소위 일반적 적응 증후군(GAS; general adaptation syndrome), 즉 전적으로 생리학을 위시한 개인 내면의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는 분석 수준(level of analysis)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3] 즉,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적응적 압력으로 인하여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피질이 반응하고, 이것을 인지적 수준에서 주관적으로 평가(appraisal)하고 대처(coping)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 스트레스 연구의 주류였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는 것이나 낙인 찍힌 집단에 소속되는 것 또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80-90년대 학자들의 인식 수준에서 신속히 떠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MST가 학계에 출현함으로써, 모든 스트레스가 꼭 주관적인 것은 아니며 객관적인 스트레스도 존재한다는 주장에 비로소 학계의 인증 도장이 찍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수자 스트레스라는 단어 자체는 기존의 '주관적' 인 스트레스 개념을 대체하는 개념은 아니며,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뜻밖의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민감해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 스티븐 홉폴(S.E.Hobfoll) 등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연구할 때 그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인간관 중의 하나를 채택할 수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공공보건학(public health) 교수 일란 메이어(I.H.Meyer)가 2003년에 자신의 논문에서 소수자 스트레스 이론(이하 MST; minority stress theory)을 발표하여 유명해졌다.[1] 현대에는 정신의학(psychiatry)이나 공공보건 분야 이외에도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건강심리학, 성적 지향을 연구하는 성심리학, 낙인(stigma) 효과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 기타 학문으로서 사회학, 정책학 등의 다양한 분야들에서 관심 갖고 취급하고 있다. 2019년 현재 확인 가능한 가장 최신의 리뷰 논문은 2017년에 나왔을 만큼[2] 현대에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론이다.
짧게 말하면 LGB 인구가 사회적인 멸시와 천대의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그것이 마침내 그들의 정신건강 수준까지 떨어뜨려서 우울과 불안, 자살, 자해, 폭음, 흡연, 마약 등등의 위험으로 내몰아 간다는 게 MST의 요체다. 2003년 이전까지 관련 학계에서는 사회적인 차별이 LGB들에게 엄연한 스트레스원(stressor)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스트레스는 둘째치고, LGB들이 수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도 대부분 90년대말~2000년대초 사이에 이슈화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그 이전까지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연구하던 심리학계의 이론적 조망이 소위 일반적 적응 증후군(GAS; general adaptation syndrome), 즉 전적으로 생리학을 위시한 개인 내면의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는 분석 수준(level of analysis)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3] 즉,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적응적 압력으로 인하여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피질이 반응하고, 이것을 인지적 수준에서 주관적으로 평가(appraisal)하고 대처(coping)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 스트레스 연구의 주류였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는 것이나 낙인 찍힌 집단에 소속되는 것 또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80-90년대 학자들의 인식 수준에서 신속히 떠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MST가 학계에 출현함으로써, 모든 스트레스가 꼭 주관적인 것은 아니며 객관적인 스트레스도 존재한다는 주장에 비로소 학계의 인증 도장이 찍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수자 스트레스라는 단어 자체는 기존의 '주관적' 인 스트레스 개념을 대체하는 개념은 아니며,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뜻밖의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민감해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 스티븐 홉폴(S.E.Hobfoll) 등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연구할 때 그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인간관 중의 하나를 채택할 수 있다.
-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가는 능동적 행위자
이 관점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개인을 바라볼 경우, 그 개인이 환경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내적인 역량을 긍정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관점에 입각하여 연구하는 키워드로는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자기연민(self-compassion), 회복탄력성(resilience), 강인함(hardiness),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그 불공정함으로 인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요컨대, 스트레스는 전적으로 '지 잘못' 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역경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결국 스트레스의 괴로움은 '약한 척' 이나 '우는소리' 가 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기계발서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대중심리학적인 메시지를 설파하는 경우가 많다.
-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 받는 수동적 피해자
이 관점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개인을 바라볼 경우, 그 개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져야 할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스트레스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입각한 키워드가 바로 소수자 스트레스이고, 인간관을 공유하는 다른 연구주제들로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전투 스트레스 반응(CSR; combat stress response) 등이 있다. 그렇다고 이 관점이 소수자들에게 전적으로 공정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인간관은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이 역경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며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없는 취약한 존재로 비관하기 때문이다. 즉, 소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empowering)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란 메이어 등의 연구자들은 either-or 개념이 아니라 both-and 개념을 선택한다. 때때로, 똑같은 게이라고 할지라도 이 게이는 저 게이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이럴 때에는 능동적 행위자 관점으로 설명하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두 게이 모두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게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고민하게 되는 삶의 고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설명하려면 수동적 피해자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4]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그 사회 자체를 비판하고 변화를 도모할 필요성도 느끼지만,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개인의 긍정적 잠재력을 끌어내어 회복시키고 견뎌낼 수 있는 방법 또한 제공한다. 어떤 한 인간관이 정치적으로 '더' 혹은 '덜' 올바른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도외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해서 덜 올바른 접근이 되는 것이다.
사실 2003년 이전에도 LGB 인구가 유독 술과 마약에 쩔어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동성애가 정신병 목록에서 내려간 게 불과 1973년의 일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학자들은 LGB 인구가 얼마나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연구는 자칫 성 소수자들의 삶을 병리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서 "거봐, 그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건 결국 그들이 퇴폐적이고 방종해서 그래!" 라고 선전할 수 있었고, 이는 동성애자들이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데 큰 지장을 주는 이성애규범적 차별에 힘을 싣는 것이었다. 그들의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으면서 정치적으로 더 올바른 설명이 나올 때까지 학계는 조심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MST가 세상에 나타난 뒤에야 비로소 학계는 그들이 왜 그렇게 괴로운지를 '퇴폐 가설' 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LGB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2.1. 스트레스의 재개념화[편집]
우선 기존의 학계에서 말하던 스트레스는, 상기했듯이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의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가치 있는 자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작동하는 적응적 반응에 가까웠다. 만일 그 개인이 스트레스 사건에 적응하기에 필요한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역량이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스트레스는 개인에게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질병을 갖게 만드는 역경(adversity)이 되었다. 리처드 라자루스(R.S.Lazarus) 등의 스트레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를 무작정 회피하려거나 음주를 하기보다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문제 자체를 규정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심리학개론 수업에서 접할 수 있는 스트레스 개념에 대한 대략의 내용이다.
그러다가 사회적 스트레스(social stress), 즉 사회적 사건이 스트레스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외부 환경에 대해 적응하기 위한 자원의 소비임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스트레스는 개인과 그 개인의 사회적 경험이 서로 충돌하거나 불일치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자원의 소비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나 타고난 범주에 의해 형성될 때이다. 주위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집단에서 자신이 탈출하면 그만이지만, 자신이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어딜 가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그렇다면 낙인 찍힌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상시 자신의 자원을 소비하게 되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게 된다. 이들은 얼마 못 가서 모든 자원을 잃어버리고 탈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례를 연구자들은 소수자 스트레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란 메이어는 소수자 스트레스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인식은 긍정적이고자 하는데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식은 늘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타인의 인식에 스스로를 계속 적응시켜야 한다" 는 어려움을 준다고 하였다. 그는 소수자 스트레스 모형(minority stress model)을 만들어서, 소수자 스트레스는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회적 현상으로부터 기원하며,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평범한 스트레스에 덧붙여져서 추가로 경험하게 되는 부가적(additive)인 성격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소수자들은 이 스트레스로 인해 과잉경계(hypervigilance)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를 내면화(internalize)하는 데 이를 수 있다고도 하였다.
물론 어떤 사건은 무조건 '사회적' 이고, 어떤 사건은 무조건 '개인적' 이라는 식의 설명은 학문적인 설득력이 없다. 뉴스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게이 배싱(gay bashing) 사건을 접하는 경험, 게이라고 따돌림을 당할까 하여 친구 사귀기를 망설이는 경험, "게이도 아니고 그게 뭐냐" 라는 친한 친구의 무심한 말에 속으로 상처받는 경험은 전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MST에서는 스트레스 자체를 말단 개념(distal concept)에서부터 근접 개념(proximal concept)에 이르는 연속선에 위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은 개념적 연속선에서 가장 근접한 것이겠지만, 전적으로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경험은 가장 말단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근접 스트레스원은 개인의 지각(perception)과 인지적 평가에 영향을 주지만, 말단 스트레스원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보고(report)의 형태로서 개인의 지각과 인지적 평가에 영향을 준다.
환경을 당장 바꿀 수 없을 때 더 무서운 것은 말단 스트레스원이다. 개인이 자신의 소수자 지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그 사회 자체로부터 탈출하지 않는 한 상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접 스트레스원은 개인이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자신이 게이라는 인식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자주 떠오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근접 스트레스원은 아예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지적 재평가 방식을 통해서 근접 스트레스원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간혹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근접 스트레스원에 정말 많이 시달릴 것이다. 그런데, 말단 스트레스원은 이런 개인차가 거의 없다. 방금 열거한 모든 사람들은 말단 스트레스원의 해악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게 된다. 스트레스 자체가 개인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경을 아무리 바꾸더라도 자기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근접 스트레스원이 더 무섭다. 이를 비유하자면 자기 자신을 자신만의 '사적인 지옥'(private hell)에 밀어넣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5] 자신이 게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서 자신의 커밍아웃을 주변 사람들이 수용해 주고 지지해 줄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계속 위축되고 불안해할 수 있다. 낙인 연구자 페기 소이츠(P.A.Thoits)는 이런 심리를 자기-낙인찍기(self-stigmatization)라고 불렀다. 이런 내면화된 문제는 매우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음주나 자해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다가 사회적 스트레스(social stress), 즉 사회적 사건이 스트레스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외부 환경에 대해 적응하기 위한 자원의 소비임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스트레스는 개인과 그 개인의 사회적 경험이 서로 충돌하거나 불일치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자원의 소비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나 타고난 범주에 의해 형성될 때이다. 주위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집단에서 자신이 탈출하면 그만이지만, 자신이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어딜 가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그렇다면 낙인 찍힌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상시 자신의 자원을 소비하게 되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게 된다. 이들은 얼마 못 가서 모든 자원을 잃어버리고 탈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례를 연구자들은 소수자 스트레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란 메이어는 소수자 스트레스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인식은 긍정적이고자 하는데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식은 늘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타인의 인식에 스스로를 계속 적응시켜야 한다" 는 어려움을 준다고 하였다. 그는 소수자 스트레스 모형(minority stress model)을 만들어서, 소수자 스트레스는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회적 현상으로부터 기원하며,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평범한 스트레스에 덧붙여져서 추가로 경험하게 되는 부가적(additive)인 성격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소수자들은 이 스트레스로 인해 과잉경계(hypervigilance)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를 내면화(internalize)하는 데 이를 수 있다고도 하였다.
물론 어떤 사건은 무조건 '사회적' 이고, 어떤 사건은 무조건 '개인적' 이라는 식의 설명은 학문적인 설득력이 없다. 뉴스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게이 배싱(gay bashing) 사건을 접하는 경험, 게이라고 따돌림을 당할까 하여 친구 사귀기를 망설이는 경험, "게이도 아니고 그게 뭐냐" 라는 친한 친구의 무심한 말에 속으로 상처받는 경험은 전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MST에서는 스트레스 자체를 말단 개념(distal concept)에서부터 근접 개념(proximal concept)에 이르는 연속선에 위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은 개념적 연속선에서 가장 근접한 것이겠지만, 전적으로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경험은 가장 말단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근접 스트레스원은 개인의 지각(perception)과 인지적 평가에 영향을 주지만, 말단 스트레스원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보고(report)의 형태로서 개인의 지각과 인지적 평가에 영향을 준다.
환경을 당장 바꿀 수 없을 때 더 무서운 것은 말단 스트레스원이다. 개인이 자신의 소수자 지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그 사회 자체로부터 탈출하지 않는 한 상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접 스트레스원은 개인이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자신이 게이라는 인식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자주 떠오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근접 스트레스원은 아예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지적 재평가 방식을 통해서 근접 스트레스원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간혹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근접 스트레스원에 정말 많이 시달릴 것이다. 그런데, 말단 스트레스원은 이런 개인차가 거의 없다. 방금 열거한 모든 사람들은 말단 스트레스원의 해악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게 된다. 스트레스 자체가 개인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경을 아무리 바꾸더라도 자기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근접 스트레스원이 더 무섭다. 이를 비유하자면 자기 자신을 자신만의 '사적인 지옥'(private hell)에 밀어넣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5] 자신이 게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서 자신의 커밍아웃을 주변 사람들이 수용해 주고 지지해 줄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계속 위축되고 불안해할 수 있다. 낙인 연구자 페기 소이츠(P.A.Thoits)는 이런 심리를 자기-낙인찍기(self-stigmatization)라고 불렀다. 이런 내면화된 문제는 매우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음주나 자해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1.1. 소수자 스트레스 과정[편집]
그렇다면 소수자들은 어떤 경험을 스트레스로서 받아들이게 될까? 일란 메이어는 LGB 인구 내의 다양성을 유발하는 개인차 조절변인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 경험을 들고 있다. 요컨대, 자신과 유사한 다른 성 소수자가 경험한 반동성애적 폭력 및 차별 사건, 그리고 타인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취약성의 느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부담감 및 사회적 고립, 마지막으로 내면화된 반동성애적 규범을 경험할 때 LGB 인구들은 소수자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 편견 사건(prejudice events)
소수자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희롱,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레고리 헤렉(G.M.Herek)과 같은 동성애 연구자들에 따르면, 전체 LGB 인구 중에서 편견과 차별의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20~25% 정도로 나타나며, LGB는 이성애자에 비해서 폭력과 차별의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두 배 정도 더 높은 인구집단이라는 사회조사 결과도 존재한다. 특히 그 폭력의 동기가 명확하게 혐오범죄일 경우에는, 그렇지 않거나 그 동기가 불확실한 범죄에 비하여 LGB들에게 더 큰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된다.[6] 수많은 문헌들에 따르면, 이런 편견 사건들은 선진 서구사회에서는 청소년일수록 그 경험 가능성과 피해규모가 증가하게 된다고 한다. 어른들은 타인을 대놓고 게이라며 놀리거나 배척하지 않지만, 청소년들은 실제로 타인이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이다.
- 배척에 대한 예상과 경계(expectations of rejection)
편견 사건이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너무나 만연해 있다면, 소수자들은 자연히 타인과 만나는 매 순간마다 배척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게 된다.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사회심리학계에서 기존에 이루어져 왔던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 연구나 낙인 연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클로드 스틸(C.M.Steele)과 조슈아 아론슨(J.Aronson)이 보고했던 가장 극적인 연구성과는, 이러한 불안함이 결과적으로는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게 되어서, 단순히 불편감이나 취약한 느낌을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실제로 개인의 사회적이거나 학업적인 성취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낙인의 효과가 자존감까지 낮추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제니퍼 크로커(J.Crocker)라는 한 저명한 사회심리학자는 이것을 낙인의 자기보호적 속성(self-protective properties)으로 설명하였다.[7]
- 성적 지향의 은폐(hiding and concealing)
많은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들은 자신이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가족 및 타인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하며, 마치 자신이 흔한 이성애자인 것마냥 실제로는 없는 이성 파트너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한다. 이를 패싱(passing)이나 커버링(covering)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적 지향이라는 것이 피부색이나 2차 성징처럼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 인 속성이라는 점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은폐는 개인이 취하는 스트레스 대처의 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많은 LGB 개인들은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비슷해 보이는 타인에게 은근슬쩍 시그널을 주거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시도한다. 이런 식으로라도 사회적 연결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LGB들은 자신을 지지하고 성원하며 격려할 수 있는 다른 LGB 동료나 소수자 커뮤니티와 접촉할 기회 자체를 차단당한다. 건강심리학자 스티브 콜(S.W.Cole)의 몇몇 문헌들에 따르면,[8][9] 이러한 은폐는 면역력까지 떨어뜨려서 LGB들이 에이즈 보균자일 경우 병세가 더 빠르게 악화되며 설령 비보균자라 하더라도 각종 질병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 내면화된 반동성애(internalized homophobia)
일란 메이어는 이것이 가장 주관적인 수준의 스트레스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아인 윌리엄슨(I.R.Williamson)의 리뷰에 따르면,[10] 이 스트레스원은 LGB들에게 늘 자기통합을 저해하고 커밍아웃을 방해하는 내면의 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이것은 커밍아웃을 한 이후까지도 평생 남아서 개인을 괴롭히는 스트레스원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연구들은 이 스트레스로 인하여 LGB들이 (커밍아웃 이후에도) 타인과 안정적이고 깊이 있는 친교를 유지하기 어려워하며, 우울증에 더 많이 시달리고, 섭식장애를 겪기도 하며, 성 기능 장애를 겪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2. 정신적 장애들[편집]
앞서 언급했듯이, 개인이 버티고 버티다 끝내 무너질 정도로 상시적이고 집요한 스트레스는 그 사람의 건강을 해치게 만든다. 예컨대 저질체력이라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신체적 자원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며칠만 무리하고 나면 곧바로 심한 몸살과 감기를 앓게 된다. 이는 스트레스가 인체의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정신과적인 문제들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실직이나 이혼, 사별 등등 스트레스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우울증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개입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된다. 문제는, LGB들 역시 이런 정신적 장애(mental disorder)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70-90년대 무렵만 하더라도 LGB들이 과연 유독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헌도 부족했지만 연구방법론 자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방법론적으로 모범적으로 수행된 두 건의 연구에서[11][12] LGB들의 고충이 드러나면서 학계에 비로소 화제가 되었고, 2001년에 수행되어 똑같은 격차(disparities)를 보여준 두 건의 연구는[13][14] 마이클 킹(M.King)이 수행한 메타분석 논문에서[15] 연구의 질적 수준이 높다는 찬사를 받았다. 킹의 메타분석은 11,971명에 달하는 LGB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의학 논문인데, 각종 수치를 종합할 경우
70-90년대 무렵만 하더라도 LGB들이 과연 유독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헌도 부족했지만 연구방법론 자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방법론적으로 모범적으로 수행된 두 건의 연구에서[11][12] LGB들의 고충이 드러나면서 학계에 비로소 화제가 되었고, 2001년에 수행되어 똑같은 격차(disparities)를 보여준 두 건의 연구는[13][14] 마이클 킹(M.King)이 수행한 메타분석 논문에서[15] 연구의 질적 수준이 높다는 찬사를 받았다. 킹의 메타분석은 11,971명에 달하는 LGB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의학 논문인데, 각종 수치를 종합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