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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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77회 작성일 22-09-01 13:48본문
클레어 사건
2009년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주에 살던 클레어 우드(Clare Wood)라는 여성(36)이 자신의 전 남자친구 조지 애플턴(40)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둘은 2007년 4월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사귀었다. 클레어는 이 남성이 과거 연인을 칼로 위협해 납치하고 폭행하는 등의 전과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클레어는 이듬해 2월 조지가 역시 인터넷을 통해 만난 4명의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을 알고 결별했다.
헤어진 직후부터 클레어는 애플턴의 지속적인 폭행, 협박 등을 당했다. 클레어는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애플턴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등 위협하고 있다거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거듭 신고했다. 그러나 애플턴은 잠시 구금됐을 뿐 다시 풀려났다. 2009년 2월 애플턴은 결국 클레어를 강간하고 목졸라 살해한 뒤 그녀의 시신을 불태워 훼손했다. 애플턴은 이후 6일 간 종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 기간 동안 인터넷에서 상대를 찾는 '페이스북 살인마'로 불리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클레어의 집 인근 버려진 술집에서 목을 매 자살한 채 발견됐다.
딸의 사망 이후 클레어의 부친은 "사전에 가해자의 폭력 전과를 알고 있었다면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연인간 폭력 전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입법을 청원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노동당 각료를 지낸 블레이어 헤이즐 등이 이 운동에 동참했고, 그 결과 가정폭력 정보공개 청구제도(domestic violence diclosure scheme), 일명 클레어법이 도입됐다. 클레어법은 2012년부터 1년 2개월간 간 궨트주, 노팅엄셔주, 그레이터맨체스터주, 윌트셔주 등 4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을 거쳐 2014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클레어법의 목적 · 절차
영국에서 시행 중인 '가정폭력 정보공개 청구제도', 즉 클레어법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법은 개인에게 배우자(파트너)가 가정폭력 전과나 폭력에 관계된 전과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를 '요구할 권리(Right to ask)'라고 부른다. 당사자의 가족이나 이웃, 친구 등 제3자와 기관도 정보공개를 신청할 수 있다.
당사자가 조회를 요청한다고 해서 바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경찰에 전화하거나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신청할 수 있고, 경관과 대면 면담 등을 통해 해당 파트너의 폭력적 행동 등에 대한 진술을 한다. 이에 경찰과 교정 담당자 등이 당사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 가능성 등을 평가하고 합법적이고 필요한 경우에만 파트너의 정보를 공개한다. 경찰은 잠재적인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제공할지도 함께 결정한다.
클레어법 이전 영국은 가정 폭력을 중심으로 여성 폭력 문제를 접근해왔다. 그러나 클레어 사건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여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가정 폭력이라는 접근법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 데이트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만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 보호와 피해 회복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확산시켰다.
한국의 데이트폭력 문제
한국에서도 데이트폭력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2015년 연인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폭행이나 성폭행 등을 당한 사람은 3만 6362명에 이른다. 2014년 한해만 보면 애인에게 폭행, 상해, 강간, 살인미수 등을 당한 사람은 6774명이었다. 연인에게 살해당하거나 폭행치사, 상해치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지난 5년간 29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은 주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폭력이 반복·지속되는 경향을 보이나 연인관계의 특성상 피해자가 참고 넘어가는 등 대체로 범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피해자가 범죄임을 인식하더라도 협박이나 스토킹 등 보복범죄를 두려워하거나, 피해자가 철저하게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등 신고 자체에도 부담이 큰 편이다. 또 제3자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도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에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여타 유사 범죄보다 재범률이 월등히 높은 편이다. 2016년 치안정책연구소의 '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연인간 폭력 범죄자의 재범률은 76.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인간 폭력 범죄자의 재범률은 유사범죄의 재범률(가정폭력재범률 2015년 1.9%, 성폭력 재범률 2.1%)보다 월등히 높다.
한국의 경우 현재 데이트 폭력을 별도로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그 행위의 유형에 따라 경범죄처벌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형법,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의 적용을 받아 처벌하고 있다. 대체로 경범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많고 사전 예방을 위한 조치나 신고·처벌 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데이트폭력 중 하나로 자주 발생하는 '스토킹' 에 관한 법안은 여러번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19대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않았다. 1999년부터 모두 7건이 발의되었고 계속 국회에 계류되는데 그쳤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상담사례 중 스토킹 피해는 애인이나 과거 애인, 채팅 상대자 등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한 경우가 75.6%를 차지하고 있다. 또 피해자 뿐 아니라 가족도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법 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처벌법에 규정된 '지속적인 괴롭힘'에 해당해 통상 범칙금 8만원 부과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한국판 '클레어법' 도입 계획
경찰은 데이트 상대방에 대한 폭력범죄 전과를 조회해볼 수 있는 한국판 '클레어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2016년 2월 3일~3월 2일 한달간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1272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868명이 입건됐고, 61명이 상습 폭행 혐의로 구속됐는데, 이중 전과자가 466명(58.9%)으로 절반을 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1~3범 이하(31.2%)가 다수지만, 9범 이상의 상습 전과자도 11.9%나 됐다. 피해 유형은 폭행·상해 61.9%로 가장 많았고, 체포·감금·협박 17.4%, 성폭력 5.4% 순이었다. 연인간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도 각각 1건씩 발생했다.
경찰은 대략적인 '클레어법' 절차도 발표했다. 공개를 희망하는 정보와 피해 내용을 조사해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신청자와 면담을 통해 위험성 여부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경찰은 신청서를 접수한 뒤 기초조사와 대면면담, 종합심사를 진행해 20일 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최종 결정은 경찰서, 보건소,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로 구성된 지역정보결정위원회가 확정한다. 공개되는 내용은 폭력전과 의삼자의 전과, 신원정보 등이다. 경찰은 정보 공개 신청이 없더라도 연인간 폭력으로 인한 피해 우려가 상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직접 정보 공개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 격리 중요
해외 사례를 보면 데이트 폭력의 재발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피해자와 격리하는 조처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은 1994년 제정한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에서 '의무체포'와 민사보호명령(민사상접근금지명령)을 뒀다. 법원에서 영장을 받지 않아도 경찰관이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경찰관은 가해자가 신체적 폭력을 가했거나, 피해자에게 신체적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는 언어·정신적 폭력을 가했을 것으로 의심되면 72시간 내에 가정폭력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다. 2000년에는 데이트 폭력도 여성에 대한 폭력의 하나로 규정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형사상 처벌 외에도 금전적 배상을 의무화하는 등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왔다.
영국이 운영 중인 '가정폭력보호명령(domestic violence protection orders)'도 피해자 격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법원의 결정 없이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 격리 등 신속한 임시조치를 취할수 있게 한다. 경찰은 가정폭력 발생 후 가해자가 집으로 돌아가 피해자와 접촉할 수 없도록 최대 28일까지 접근금지를 할 수 있다. 피해자가 도움과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주는 의미다.
호주는 '경찰명령' 제도를 두고 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명령 72시간 동안 가해자는 피해자 또는 피해자가 있는 곳에 접근할 수 없다. 경찰이 가해자를 보석, 석방할 경우에도 법원에 출두하기 전까지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건부 석방을 결정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