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친구 없어서... 성매매 덫에 걸린 경계선지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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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386회 작성일 22-08-23 17:21본문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인 성폭력 피해 양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의한 성폭력이다. 경계선지능인의 상당수는 외롭고 친구가 없어 위안을 찾던 중 스마트폰에 의지하게 되고, 이를 매개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것.
A양도 그런 경우였다. A양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늘 노력했지만, 성적은 항상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부모는 좋은 학원, 좋은 과외선생님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 생각하며 좋다는 학원과 정평이 나 있는 과외 선생님을 A양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친구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관계는 늘 틀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 지능검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 A양은 IQ72 경계선지능인이었다. 부모는 인정하지 않았고,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며 더욱더 학습에 매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A양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는 것이다.
그런 A양에게 위안이 됐던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A양은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그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말도 많이 시키고, 칭찬도 많이 해 주었다.
위안을 받았고 행복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고받았던 사진은 어느새 협박의 빌미가 되었고 성폭력, 자해, 자기학대로 이어지는 '고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스마트폰, 경계선지능인과 성폭력의 연결고리가 되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성폭력상담소 상담사들은 A양 사례가 최근 성폭행 피해를 입은 경계선지능 여성들의 '전형적인 코스'라고 말한다. 학업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소할 곳을 찾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과 가상공간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은 곧 성폭력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경계선지능 여성 청소년(청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은 SNS로 인한 성폭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대 여성을 자녀로 두고 있는 B씨는 "다양한 경험이 없고 특히 성적인 부분의 경험이 없어서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 당할까봐 두려워요. 조금만 잘해줘도 따라가곤 하니까요. 늘 걱정입니다"라고 전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2020년 발간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 성매매 피해 예방방안(이하 '성폭력 피해 예방방안')'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친구가 없고 외로워서 스마트 폰 등을 이용한 채팅이나 온라인으로 남성 가해자를 자주 만났다.
특히 몇몇 피해자는 조건만남으로 성매매를 시작했고, 이들은 성매매 후에도 상대가 잘해주고, 돈도 줬고, 진심으로 대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고, 오히려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으며, 이용당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실 경계선지능인들이 비장애 시설에 가면 완전히 소외되고 일단 천덕꾸러기가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곳에서도 소통이 잘 안되니까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은 그곳에서도 또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야말로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인거죠.""비장애시설에서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준이 맞지 않아요.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장애카드가 있어야 하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재판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루밍 경우에도 장애 파트로 가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되는데 비장애로 가면 참작되는 게 전혀 없습니다.""경계선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다거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로 인해 사회적 적응이 어렵고, 인식의 왜곡이나 정서장애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동반되어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거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제2·제3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는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정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즉 검사 당일 컨디션에 따라 2~3 정도는 충분히 바뀔 수 있고, 지능지수만으로 한 사람의 지능을 전부 판단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송은주 원장은 "예전에 만났던 친구는 놀랍게도 IQ가 91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IQ는 좋지만 조울증이나 정신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웠는데도 장애등급을 받지 못했어요. 조울증이나 정신장애 모두 경계선급이라 장애판정이 안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분명히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데 국가에서는 장애가 아니랍니다. 이게 바로 모순입니다"라고 전했다,
실제 학계에서는 IQ검사 자체에 대한 논란도 상당하다. 런던 사이언스뮤지엄의 로저 하이필드 박사 연구팀은 이미 2012년 전 세계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12가지 지능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결과 연구팀은 "IQ테스트만으로 뇌 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순이고 인간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무엇을, 어떤 상태를 장애로 보느냐'하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의하는 장애인이란, '신체·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0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5.4%다. 그러나 외국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장애 판단 기준은 지극히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20년 발표한 '2020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의 장애인 비율은 무려 35.7%이고, 그리스는 23.1%, 영국은 21%, 미국은 12.7%에 이른다. OECD국가들의 장애인 비율 평균은 24.5%다.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 활동가가 지난해 8월 <한겨레21> '한국 장애인은 왜 영국의 4분의 1도 안될까'를 통해 밝힌 다음의 내용은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장애는) 누군가가 지닌 손상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이 일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어떤 활동의 제약과 차별을 경험하고 어떤 필요(needs)를 갖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 인정 여부에서 여전히 철저하게 의료적 기준을 따르는데 이는 매우 임의적일 뿐만 아니라 여러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