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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고 못 걸어도… “출산·양육은 벅찬 행복”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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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359회 작성일 22-02-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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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14개월이에요. 한 번은 제 가방을 메고 뺏길까 봐 도망 다니는 게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그런 추억은 마음에만 남기고 있어요.”

딸 사진을 찍지 못하는 엄마. 이하림(가명·29)씨는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가진 시청각 중복(데프블라인드·Deaf-Blind) 장애인이다. 시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청력은 보청기를 껴야 가까운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청기를 껴도 안방의 아기 울음소리를 거실에서는 잘 못 듣는다. 두 살 많은 남편도 시각장애인. 두 사람은 양가 부모 도움 없이 아기를 키우는 ‘장애인 부모’다.

부부는 고교 시절 특수학교 선후배였다가 하림씨가 스무 살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동거하다 재작년에 아이를 가졌고, 결혼식 없이 출산 전 혼인신고를 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하림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서울 큰 병원에도 가봤지만 시력을 되돌릴 수 없었다. 13세 때 특수학교로 전학했는데 이윽고 귀도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아 14세 때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다. 보청기를 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가 된다.

임신은 순전히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던 부부는 2018년부터 난임 치료를 받았지만 잘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들어섰다.

아이를 원한 이유를 묻자 하림씨는 “장애인이기 전에 나도 인간”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떠나 그냥 여자로서, 한 사람 인간으로서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딸은 지금까지 검사에서 장애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작년 임신을 처음으로 확인한 산부인과 의사는 축하한다는 말 없이 ‘테스트기에서 임신으로 나옵니다’고 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전까지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아 처음 간 곳이었다. 계획 임신이라고 말해주니 그제야 안심한 눈치였다.

하림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아기를 키운다. 활동지원사는 평일 오전 4시간가량 식사준비와 청소, 빨래 등 가사 일을 하고 아기도 조금 봐 준다. 하림씨는 중증장애여서 더 많은 활동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원을 더 받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제가 엄마잖아요. 진짜 어려운 부분만 부탁하고 최대한 제가 양육하고 싶어요.”

시청각 중복장애 엄마의 육아는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하루는 새벽 3시쯤 아기 몸이 너무 뜨거웠다. 보통 한 번 먹일 분량의 해열제를 미리 준비해두는데 이날은 준비된 해열제가 없었다. 응급실도 갈 수 없어 119에 전화를 했다. “부모가 시각장애인인데 아이가 열이 많이 나요. 와서 체크만 해주세요.” 구급대원의 도움에 열은 곧 내렸다.

책을 읽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점자책을 대여했지만 아이는 책을 장난감으로 알고 찢으려 했다. 일반 책을 아이가 들고 올 때마다 난감하다.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여기 그림이 있네’ 정도로 말해줄 수밖에 없어요.”

부모가 장애인이라 세상이 아이를 함부로 대할까 걱정이다. “TV에 아동학대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비장애인도 빨리 눈치를 채기 어려운데 저희는 더 어려우니까요.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림씨 부부는 시각장애인 일자리 사업 등으로 일을 한다. 현재 월 200만원가량 수입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다. 활동지원 외에 장애 부모로서 아이를 키운다고 받는 정부 지원은 없다. 하림씨는 “장애 아이가 있을 경우 지원이 많은데, 부모가 장애인이고 아이가 비장애인인 경우는 지원이 하나도 없다”면서 “아이를 키우는 장애 부모가 있다는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룬다. 거의 모든 장애 유형에서 가족을 이루는 일이 가능하다. 다만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지는 알 수 없다. 부모가 된 장애인에 관한 실태를 조사한 적이 없어서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선 만 18세 이상 장애인 중 82.5%가 결혼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혼 뒤 장애가 생긴 사람도 포함한 조사다. 같은 조사에서 만 49세 이하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장애인에게 가장 최근 임신 시 장애를 갖고 있었는지 물었더니 62.7%가 ‘그렇다’고 답했다. 적지 않은 여성 장애인이 임신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분명한 점은 장애인 여성의 출산이 해마다 1000건 이상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 여성 출산 건수는 2017년 1574건, 2018년 1434건, 2019년 1323건이다. 2019년 전체 출생아 수가 30만2700명이었으므로 태어나는 아이의 0.4%는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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