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 육아 ∙ 살림을 다 하려니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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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93회 작성일 22-09-16 11:26본문
아침에 정신없이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그 길로 출근을 해서 온종일 힘들게 일하죠.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은 엉망이고, 저녁식사를 준비해야겠는데 아이는 보채고, 남편은 또 늦는다고 하니 정말 미칠 지경이에요.
요즘 엄마들이 겪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육아와 직장생활의 병행입니다. 그중에서도 엄마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큰 문제가 바로 살림입니다. 대가족제도가 깨져 집안에서 부양해야 할 가족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가사를 도와주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쏟아져나와 살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기대수준 또한 높아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깨끗한 옷을 입고 항상 청결한 환경에서 생활하려 하며, 끼니마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만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살림은 체감상 줄어든 것 같지 않고, 힘들여 해놔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문화의 과도기에 겪게 되는 한국적 상황들도 있습니다. 아빠들은 집안일을 하는 것이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하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직장문화가 육아나 가사를 분담하기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야근이 통상적이며 회식이 잦습니다. 집에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봐야 한다고 말하면, 상사나 동료들이 한심하다는 듯 눈치를 주기도 하죠.
엄마들 역시 자식에 대한 애착과 투자가 과도한 편입니다. 아이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엄마의 잘못 때문이라 느끼며, 아이가 제대로 크지 않으면 아무리 직장에서 승승장구해도 꼭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아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항시 대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는 서점 한쪽을 육아 관련 책들로 가득 채우고, 엄마들이 교육 관련 방송들을 챙겨보고 반별 학부모 모임에 빠지지 않도록 만듭니다. 실험에서도 우리나라 엄마들의 이러한 열성은 그대로 증명이 되는데요. 미국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엄마들은 자기 자신이 이득을 얻었을 때보다 아이가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보상뇌(Reward Brain)가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과테말라의 출산병동에서 시행된 연구에서, 한 집단은 진통과 출산 과정을 혼자 겪도록 한 데 반해 다른 집단은 입원에서부터 퇴원까지 산모를 도와주는 일반인을 곁에 두게 했습니다. 비교 결과, 도움을 받은 경우에 진통시간이 짧아지고 출산 후에 산모가 깨어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엄마는 아기를 쓰다듬고, 미소 지으며 아기에게 말을 거는 행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엄마는 더 편해지고, 그러면 아기도 더 행복해지는 것이죠.
엄마의 곁에서 함께할 일차적인 책임자는 아빠입니다. 아기가 절반의 유전자를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만큼 아빠는 아기에 대한 50퍼센트 책임자입니다. 아무리 아기에 대한 투자가 엄마보다 적고 자식에 대한 확실성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화와 의료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까지 통할 이야기는 아닌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것을 당연시해야 합니다.(남자인 제가 육아에까지 꼭 신경을 써야 합니까 참조)
남편과 일을 나눌 때에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힘들다고 해서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상하기 쉽죠.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를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다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는 것인지,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인지,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인지 등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세요. 그러고는 내가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들에 각각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지 계산해봅니다. 직장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지, 집안일을 하는 데 몇 시간이 필요한지, 아이는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돌보고 있으며, 나 자신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적어보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어디에서 시간이 모자라는지가 좀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만일 수면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으로 나온다면, 주말만이라도 남편에게 밤에 아이를 돌보라고 이야기하고 마음 놓고 편하게 푹 잘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점이 정리되었다면, 두 번째로 자신이 맡은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순서대로 나열해봅니다. 집안일, 직장일, 아이와 놀아주기, 자기계발과 휴식 가운데 우선순위를 적어보세요. 그러고 나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아이와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안일이나 직장일에 대한 불안으로 순서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자꾸 손톱을 물어뜯어요 참조)
셋째, 남편에게 일을 맡길 때 남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겨야 합니다. 요령 있게 일을 시켜야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목표 지향적이어서 원인과 결과가 없으면 곤란해합니다. 여자들의 수다에 짜증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자신이 주도적이길 바라며, 시작과 끝이 자기 계획 하에 있다 싶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반대로 아이가 무얼 바라는지 읽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자신이 잘 모르는 육아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따라서 일을 분담할 때는 집안일보다는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가 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일을 시킬 때는 구역을 정해주고 알아서 계획 하에 일을 끝내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남편이 무언가를 수행했을 때 “당신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아준 덕분에 밀린 일들을 다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해주면,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아내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는 생각에 성취감과 만족감이 생길 것입니다.
넷째, 일을 너무 정확하게 반반씩 나누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빨래는 내가 했으니, 청소는 당신이 하는 게 당연하고 공평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다시 누가 더 힘드냐를 따지는 싸움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사람과 협업할 때에는 내가 훨씬 더 많이 하고 상대방에게는 양보한다고 생각해야 실제로는 공평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집안일과 육아는 내 담당인데, 남편은 그래도 많이 분담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야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남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많이 참여한 것 같아도 사실은 여전히 아내가 더 많은 가사를 떠맡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엄마 곁에는 남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친정부모나 시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자매나 이웃, 친구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 안되면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죠. 다시 강조하지만, 엄마가 편해야 아이가 행복해집니다. 다만 남편이든 부모든, 내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는 만큼 그들에게 명확하게 내가 필요로 하는 바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엄마, 오늘 나도 야근이 있고 김서방도 늦는다는데, 저녁에 애들 좀 봐주면 안 돼요? 이번 주말에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제안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 살림을 위해, 없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짜내는 것은 결국 끝도 없는 과도한 책임에 스스로를 얽매는 일일 뿐입니다. 집안일보다 중요한 것은 잠시 동안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임을 명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