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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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11회 작성일 22-09-16 11:21본문
저는 올해 22살 된 여자인데요. 굳이 이 세상을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얼굴도 못생겼고 집도 별로 부자가 아니라서 어차피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하는 위로는 모두 형식적인 것 같고, 그런 말들이 모두 진실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일찍이 사회학자 E. 뒤르켐(E. Durkheim)이 이타적 자살, 이기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론적인 자살 등으로 사회학적 관점에서 자살을 분류했듯이,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을 모두 개인의 심리적 문제나 우울증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크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작게는 한국사회의 성공지상주의와 아무 대안 없는 학벌 경쟁, 최소한의 생활보장도 되지 않는 사회복지제도 등 사회경제적인 원인도 많기 때문이죠. 모두 다 사회와 국가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다 개인 책임은 아닌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발전의 시기를 지나, 큰 변화 없이 발전이 정체되는 시기로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연구논문 중에 동물이나 사람은 어떤 성취가 일어나기 직전에 뇌에서 보상 호르몬 등의 분비가 커져 그 순간에 중독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도박이나 쇼핑(특히 택배 오기 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 이 뇌과학적 의견을 적용하자면, 지금까지는 계속된 발전과 성취로 힘을 낼 수 있었으나 더는 무언가를 기대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고, 현 수준이라도 유지하려는 노력은 성취도 쾌감도 없어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이유의 자살 충동은 우울증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외도 있어서 청소년기의 자살은 우울한 감정보다 충동적인 태도가 더 문제라고 합니다. 모든 우울감정은 정신역동적으로 자책과 자기 비난을 내포하는데요.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으로 인해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고 공격하며, 그 극단적인 형태로 자신을 벌하는 자살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원망스러운 경우,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죠. 그 외에 고인과의 재결합에 대한 환상, 현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 새로운 삶을 위한 환생에 대한 기대 등이 자살을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혹시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아이가 죽고 싶다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저러다가 자살하실까 봐 걱정돼요 참조)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 같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점차 심해지면, 구체적인 자살계획을 세워보고 도구 등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자살을 시도해보는데 처음에는 머뭇거리기도 하고 실패도 하다가 수회 시도 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주변에 자살사고에 사로잡힌 것 같은 지인이 있다면, 그런 생각 말라며 덮어버리거나 피하지 말고 꼬치꼬치 상황을 물어야 합니다. 실제 계획을 세우고 한 번이라도 자살 시도를 한 적 있는 사람은 다시 시도할 확률이 몇 배 더 높습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끝까지 죽음 앞에서 망설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을까, 말까?’ ‘죽을 때 아플까, 아픔을 못 느낄까?’ ‘죽으면 정말로 모든 게 끝일까?’ 아니면 ‘하늘나라가 있거나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 누구나 망설이고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자살 문제로 상담하게 되면, 삶 혹은 죽음 이후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해보는데요. 현재의 괴로움과 그 이유를 살피는 것 외에도 죽음 이후 어떤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지, 어떤 죽음을 맞는 것이 존엄한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시야가 좁아진 상태라, 자신의 소멸만이 문제 해결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하고 죽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일단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야 합니다. 생각을 쉬고, 일도 쉬고, 감정도 쉬고, 그냥 쉬는 것에만 집중하세요. 너무 지친 상태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심지어 죽는 것에 대한 생각도 뒤로 미뤄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쉬면서 자살 충동이 있는 것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상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공격적 감정이 배설되어 자살 충동이 줄어들 것이며, 대화 상대가 자신을 돕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자살 충동은 계속 강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등락을 거듭하므로, 믿을 만한 누군가와 계속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자살 충동이 솟구칠 때마다 상대가 개입만 해줘도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간혹 오랜 시간 자살 충동으로 고생한 사람은 종종 주변사람을 비난합니다. 아무리 말해봐야 남들은 자신을 돕지 못할 것이고, 자기같이 나쁜 사람은 당신도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한편,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죄책감을 줄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격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고, 전문가조차도 치료를 포기하게끔 만든다는 점이죠. 따라서 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살 위협과 비난에도 항상 일정한 반응과 안정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살 충동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하지만 평소 자신의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깊은 의미를 깨닫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가’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삶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가’ 등 깊은 생각으로 내면의 생각들을 복잡하게 얽어놓으면, 이후 우울의 골짜기로 떨어질 때 그 생각들을 붙잡고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