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연쇄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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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95회 작성일 22-09-08 14:16본문
유영철(柳永哲[8], 1970년 4월 18일 ~ )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생애[편집]
1970년 전라북도 고창군[9]에서 태어났으며 1살이 되던 해에 서울 마포구로 올라와 살게 되었다. 형제로는 형 2명(1994년경에는 작은 형이 사고로 사망하였다.)과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은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함께 태어난 여동생은 1년 후 출생신고됐다.
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음주와 노름, 폭력 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아, 유영철이 1985년 6월 12일에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후 홀어머니 아래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예체능계에 소질을 보여 중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 달리기, 투포환, 기계체조 선수로 활동하면서 지속적인 체력단련을 통해 강한 손목과 악력을 갖추는 한편, 장차 화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하였으나 색약 등의 이유로 인해 예고 입학이 좌절되었다. 그의 꿈을 접고 국제공고에 입학하였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게 되었고, 유영철이 1988년 8월 23일에 동네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 구속됐다. (이후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으로 병역면제 처리함)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 이후 경찰관을 사칭하여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유영철이 21살 때 마사지사인 황 모씨와 1991년에 결혼하여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 하지만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간질 증세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000년 3월 15일,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구속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를 받아,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았다. (당시 아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10] 이 때부터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이후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인이 진술한 바 있다.
살인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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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서울로 돌아와서 어머니 집에 잠시 머물게 된다. 칼로 큰 개를 찔러 보는 살인실험을 통해 칼을 쓰면 피만 많이 나올 뿐이고, 곧바로 죽이지 못하는 칼보다는 망치로 머리를 강타하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곧바로 쓰러뜨릴 수 있는 효과적인 살해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공사장에서 손자루가 긴 망치를 가지고 와 자루를 떼어낸 후 그 자리에 길이가 짧은 장도리 자루를 넣어 실리콘처리를 하는 방법으로 범행도구인 손자루가 짧은 해머 한 자루(약 4kg)를 특별 제작하고, 위협용 재크나이프 한 자루(칼날길이 약 15cm), 범행시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세무장갑 한 켤레와 코팅 목장갑 여러 켤레, 위와 같은 범행도구를 넣어 다니는 검은색 어깨걸이 가방을 각각 준비한다.
부유층 살인 사건[편집]
- 2003년 9월 24일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모 씨(73세)의 자택에서 이모 씨와 부인 이모 씨(68세) 등 두 명을 살해했다.
- 10월 9일에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모 씨(85세), 이모 씨(60세), 자폐증이 있는 주차관리원 고모 씨(34세) 등 일가족 3명을 살해했다.
- 10월 16일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모 씨(69세)를 살해했다.
- 11월 18일에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모 씨(87세), 배모 씨(57세) 등 2명을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질렀다.
- 2004년 4월 14일에는 서울 중구 황학동 삼영빌딩 1층 백성프라자약국 앞에서 노점을 차려 놓고 잡화와 함께 음란 CD와 비아그라 등을 판매하던 노점상 안모 씨(44세)를 안 씨의 기아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인천 월미도에 유기했다.
이 전에도 2003년 9월 24일부터 2004년 4월 14일까지 4차례에 걸쳐 서울 각지 등의 주택가에 침입하여 9명을 살해하였다.
여성 살인 사건[편집]
- 2004년 3월 15일 신촌 전화방 종업원 권모 씨(23세)를 살해했다.
- 4월 내지 5월 중순 피해자 신원불명(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살해했다.
- 5월 7일 신원불명(25세)을 살해했다.
- 6월 1일 신촌 피해자 신원불명(20대 후반)을 살해했다.
- 6월 초순 피해자 신원불명(20대 후반)을 살해했다.
- 6월 7일 오전 5시경 장모 씨(26세)를 살해했다.
- 6월 17일 오후 10시경 김모 씨(30세)를 살해했다.
- 6월 23일에서 6월 25일 사이에 우모 씨(28세)를 살해했다.
- 7월 1일 출장 마사지 도우미 김모 씨(26세)를 살해했다.
- 7월 3일 출장 마사지 도우미 권모 씨(24세)를 살해했다.
- 7월 9일 오전 1시 30분경 출장 마사지 도우미 임모 씨(27세)를 살해했다.
- 7월 13일 오전 1시경 출장 마사지 도우미 고모 씨(24세)를 살해했다.
이에 앞서 서울 마포구 신수동과 노고산동 오피스텔 (유영철의 자택 203호)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인근 야산과 서강대학교 도서관 뒷산 등산로에 암매장하기도 하였다. 이 일련의 살해 사건으로 인해 유영철은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게 된다.
검거 이후[편집]
2004년 7월 15일 오전 5시 30분, 유영철은 출장 마사지 업주의 신고로 체포되었는데 서울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에 수갑을 풀고, 7월 16일 오전 12시 4분에 의경을 밀치고 도망을 간 유영철은 11시간만에 오전 11시쯤,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역무원과 서울특별시지방경찰청 형사과 전원에 의해 재검거되었다.
2004년 8월 13일 유영철은 구속 후 기소되었다.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유영철은 1심과 2심 공판에서 중대범죄 복합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죄목이 추가되고 형사 소송법 및 양형 규정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살인,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2004년 12월 13일 사형 선고를 받고, 1년 뒤인 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11] 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12]
수감 이후[편집]
2010년 법무부는 유영철, 강호순 등 흉악 연쇄 살인범에 대해 사형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외교마찰 등의 우려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13] 또한 2014년 말에 성인소설과 일본 만화책을 특정 교도관을 통해 밀반입 하다가 다른 교도관에게 적발 되어 멱살을 잡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