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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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145회 작성일 22-08-31 15:49본문
개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이내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년 동안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 최초의 사건은 1986년 9월15일에 발생했고, 마지막 사건은 1991년 4월3일에 일어났다. 이 사건들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00년대 초중반에 모두 만료됐다. 1991년 4월3일 마지막 발생한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 끝났다.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1991년)과 함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으나, 2019년 9월 18일 이미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형을 받고 수감중이던 용의자가 특정되었고, 10월 1일 용의자 이춘재가 기존 사건 포함 모두 14건의 범행을 자백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다. 재수사를 벌인 경찰은 12월 17일 진범 논란이 있었던 8차 사건의 수사 관계자 8명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며, 발생 이후 '화성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던 이 사건의 명칭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사건 특징
사건의 주요 특징은 △피해자가 모두 여성 △피해자의 연령대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4,6,7,9차) △피해자 대부분이 목이 졸려 살해됨 △피해자의 음부에서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난도질할 정도로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했다는 점 등이다. 당시 화성 지역에서는 '범인은 비오는 날 혼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성을 노린다', '범인은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삼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수사 전개
경찰은 처음엔 각각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살인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됐고, 경찰도 사건 해결에 경찰력을 집중했다. 용의자의 몽타주는 7차 살해사건 직후 수원에서 화성으로 가는 버스 막차에 올라탄 남자에 대한 운전기사와 안내원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버스 기사가 증언한 범인의 특징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증언과 대체로 일치했다. 범인은 170cm이하의 키에 마른 체격,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자, 부드러운 손 등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정리됐다.
유일하게 해결된 8차 사건의 경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돼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하지만 2019년 다른 죄목으로 수감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었음을 밝힌 후, 경찰이 재조사에 착수했으며 2019년 11월 15일 이춘재가 범인이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10차 사건은 9차 사건과 정액의 유전자가 다른데다 장소나 범행 수법이 여타 사건과 차이가 커 범인이 다른 사건으로 분류된다. 경찰은 10차례에 걸친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물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초반기 범행은 동일범으로 보지만, 후반기 범행은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했다. 이 사건을 소재로 1996년 연극 <날 보러 와요>가 무대에 올려졌고, 2003년에는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주연 송강호, 김상경)이 개봉됐다.
피해자 가족에게 범인의 정체를 안다는 편지가 온 적도 있다. 1990년 12월 4일 9차 피해자 김아무개양의 삼촌 김아무개(당시 33세)씨에게 범행 개요가 적힌 편지 3장이 배달됐다. 편지에는 부산우체국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편지에는 '범인은 김양 동네와 가까운 공장 사람, 나이는 10대 아니면 30대, 사정상 이름을 밝히지 못함, 수사에 참고하기 바람'이라고 써있었다. 경찰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 또는 범인을 잘 아는 주변 인물이라고 보고 수사를 했지만 정체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사건이 바로 이 9차 사건이다.
1~10차 사건 기록
#1차 1986년 9월15일 오전 6시20분께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 이아무개(71)씨
-수원에서 열무 등을 팔고 안녕리의 딸 정아무개씨의 집에서 잠을 자고 귀가중 피살됐다.
-목이 졸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다. 하의가 벗겨져 있었지만 강간의 흔적은 없었다.
#2차 1986년 10월20일 오후 10시께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아무개(25)씨
-결혼 상담 차 송산 수양 모친의 집에 갔다가 귀가하기 위해 버스 타러 가다 강간 피살됐다.
-발견당시 알몸상태였고,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 하체에는 심한 상처가 남아 있었는데 사체의 모습이 너무 끔찍해 큰 충격을 줬다.
#미수. 1986년 11월30일
집 주변 논길 김아무개(45)씨가 범행을 당했지만 생존했다.
#3차 1986년 12월12일 오후 11시께 태안읍 안녕리 축대 권아무개(24)씨
-오후 7시50분께 수원에서 남편 김아무개씨와 헤어져 혼자 귀가하던 중 피살됐다.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4차 1986년 12월14일 오후 11시께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이아무개(23)씨
-수원에서 선을 보고 오후 10시께 버스타고 정남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강간 피살됐다.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숨졌다.
#5차 1987년 1월10일 오후 8시50분께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아무개(18)양
-수원에서 친구와 헤어져 오후 10시35분께 황계리에서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강간 피살됐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양손이 뒤로 묶인 시신으로 발견됐다.
#6차 1987년 5월2일 오후 11시께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아무개(30)씨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강간 피살됐다.
-브래지어 끈과 블라우스로 목이 졸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7차 1988년 9월7일 오후 9시30분께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아무개(52)씨
-오후 8시40분께 수원에서 분식집 일을 마치고 마을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강간 피살됐다.
-상의가 벗겨지고, 양말과 손수건으로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8차 1988년 9월16일 새벽 2시께 태안읍 진안리 피해자방 박아무개(13)양
-안방에서 잠을 자다 강간 피살됐다.
☞1987년 7월25일 피의자 윤아무개(22)씨가 검거되었으며, 범인으로 판단되어 유죄로 확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년으로 감형되어 2009년 출소했다. 하지만 2019년 다른 죄목으로 복역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임을 실토한 후, 경찰이 재조사에 착수하여 2019년 11월 15일 이춘재의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9차 1990년 11월15일 오후 6시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야산 김아무개(13)양
-오후 5시께 하교 후 병점 지하도에서 친구 이아무개양과 헤어져 귀가 중 강간 피살. 목졸려 숨졌다.
#10차 1991년 4월3일 오후 9시께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아무개(69)씨
-수원의 딸 집에 갔다가 오후 8시께 동탄에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던 중 강간 피살됐다.
억울한 피해자들
경찰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연인원 205만여명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했다. 4만116명의 지문을 대조했고 180명을 대상으로는 모발 감정까지 하는 등 다양한 수사의 진기록을 남겼지만 모방범죄로 오인되었다고 후에 밝혀진 8차 사건 외에 나머지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 범인에 의한 각각의 개별 사건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의 불상사가 거듭되면서 '화성괴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경찰의 가혹행위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이 양산됐다. 의심이 가는 남성들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 조사를 받았다. 93년 7월경 4,5차 사건 용의자로 서대문 경찰서 소속 형사들에게 강제 연행돼 가혹수사를 받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뒤 후유증을 앓아온 김아무개(당시 46세)씨가 1997년 2월10일 잠자던 상태 그대로 숨졌다.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연행, 가혹수사를 받은 그가 술과 상실감으로 세월을 보내다 4년여만에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이다.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던 차아무개(당시 38세)씨는 1990년 3월 화성군 태안읍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1991년 4월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장아무개(당시 32세)씨 역시 아파트 4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7차사건 용의자 박아무개씨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8차 사건 범인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무기징역으로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20년 형으로 감형되어 2009년 출소한 윤아무개씨도, 2019년 범인 이춘재의 자백에 따라 피해자임이 밝혀졌다.
진범 확인
공소시효 15년이 지나도록 진범이 밝혀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경찰의 끈질긴 추적과 유전자 분석기술 발달에 따라 실마리가 풀렸다. 2019년 7월 경찰이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새로운 방법으로 DNA분석을 의뢰했고, 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유전자와 용의자 이춘재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용의자 이춘재는 이미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무기수로 25년간 복역중이었다. 용의자는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검사 결과의 제시와 프로파일러를 동원한 대면 조사 끝에 10월 1일 사건의 전모를 자백했다. 자백에 의하면 그는 화성사건 9건을 포함해 모두 14차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춘재의 자백에 따라 재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12월 17일 범인이 특정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한 지역명을 붙여 통용되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진범 논란이 있었던 8차 사건 당시의 수사관이었던 담당 검사와 경찰관 등 8명을 직권 남용 체포와 감금, 가혹행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