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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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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77회 작성일 22-09-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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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매춘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가무를 하는 유녀(遊女), 고려시대의 기녀, 조선시대의 기생 등 남성을 상대로 유흥 접대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었고 사당패들도 매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매춘은 극히 소수의 특수 신분에 속했고 나름의 엄격한 법도를 갖고 있었다. 현대와 같은 매춘 형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일제 때이다.

일제는 조선을 침탈하면서 각 도시에 유곽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1916년 '유곽업 창기 취체 규정'을 발표해 공창제도를 만들었다. 또한 1944년 '여자정신대노동법'이 공포되어 일본군의 종군위안부라는 명목으로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다. 한편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의 주둔이 지속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매춘여성의 집단 거주지인 '기지촌'이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확대된 매춘은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정착했다.

특히 1947년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1년에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매춘을 불법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대 한국사회 매춘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서울특별시 청량리 동이나 미아동, 부산직할시 완월동 등 소위 '특정지역'의 사창이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번창한 룸살롱, 스탠드바, 성인 디스코, 고급 사우나,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 등의 향락산업도 크게 보아 매춘의 범주에 든다.

1989년 기독교청년회(YMCA) 시민지구운동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준매춘 여성을 포함한 전체 매춘 여성의 수가 대략 120만~15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5~29세의 여성 620만 명 중 약 1/5에 해당하는 놀라운 수치이다. 이와 더불어 향락업소의 연간 총 매출액이 한국 국민총생산(GNP)의 5%에 해당하는 4조 원을 넘는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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