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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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03회 작성일 22-09-06 10:15본문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왜 그렇게 박해를 받아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을 증오하던 히틀러가 유대인 멸종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아우슈비츠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유대인들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아 왔다. 대량 학살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미국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도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환영을 받지 못한 민족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뿐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말이다.
아우슈비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유대인들이 왜 박해를 받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기독교보다 먼저 생긴 종교인데 구약 성서를 기반으로 하고, 모세를 예언자로 믿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다 예수가 등장했고 예수를 전지전능한 신,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만들어 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유대교에 의해 자신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믿음만 가지면 민족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는 기독교에 비해 배타적이었고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없었다. 유대교가 배타적일 때 기독교는 유럽을 장악하게 되었고 유대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오랜 시간을 살면서 그들만의 전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해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이 돈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을 속인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유럽 사람들이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유대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분위기가 만연해 있던 유럽,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나라가 완전히 붕괴되었던 독일의 정권을 히틀러가 잡았던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불운이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되지만 히틀러가 유대인만 싫어한 건 아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물론 유대인들이지만 처음부터 유대인들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가장 처음 이곳에 수용된 건 폴란드 정치인들이었고 장애인, 동성 연애자, 집시, 소련군 포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집단 학살을 당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 즉 아리아인만이 세계에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우수한 아리아인의 존재를 방해하는 다른 것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종적 해결’이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계획을 만들어 놓고 전 유럽에서 유대인과 집시, 장애인, 동성 연애자 등을 닥치는 대로 수용소로 보냈고 마지막에 주로 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소련군에 의해 히틀러의 패배가 임박해지자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숨기기 위해 건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에 쫓겨 이곳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와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1945년 드디어 이곳 수용소는 해방되었다.
제1수용소 아우슈비츠(Auschwitz)
소련군이 코앞에 들이닥치자 당황한 독일군은 수용소 파괴를 가장 우선순위로 삼았지만 제1수용소까지 파괴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곳 수용소의 보존 상태는 매우 좋다. 처음엔 폴란드 군대의 막사였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일부 자신들의 행정 시설 및 숙소로 사용해 겉으로만 보면 마치 빌라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부에 조성된 참혹한 환경을 보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총 28개의 건물 안에 약 2만 8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했으며 처음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은 총살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0블록과 11블록 사이는 ‘죽음의 벽’이라고 불린다. 이에 수천 명의 사람들을 총살하면서 집행하는 병사들의 정신적 충격과 총탄 소모를 생각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가스실이었다고 한다. 원래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이클론-B는 공기와 접촉하면서 급격하게 용해돼 독가스를 분출하는데 밀폐된 공간에 파이프를 통해 자이클론-B를 투입하면 짧은 시간 동안 한 번에 대량 학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때부터 자이클론-B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수용소 4, 5, 6, 7, 11동에 고스란히 전시돼 있고, 수감자가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소지품, 안경, 수족, 빗, 머리카락으로 만든 옷감 등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원래 7톤 가량이 발견됐지만 2톤 정도만 전시되고 있다.
또 하나 가슴 아픈 흔적인 화장터는 당시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부터 왠지 모를 스산함이 전해진다. 이외에 지하감옥과 집단 교수대, 생체 실험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장터 옆으로 아주 작은 교수대가 있는데, 루돌프 헤스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 전쟁이 끝난 뒤 전범 재판을 받고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이 교수대에서 교수형을 당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유형 : 볼거리
소재지 : Więźniów Oświęcimia 20, 32-603 Oświęcim(전화: 033-844-81-00)
개관 시간 : 12월 08:00~14:00 / 1, 11월 08:00~15:00 / 2월 08:00~16:00 / 3, 10월 08:00~17:00 / 4, 5, 9월 08:00~18:00 / 6~8월 08:00~19:00
가격 : 가이드 투어 일반 40zł, 학생 30zł / 15:00 이후와 겨울 시즌에는 무료 입장
사이트 : www.auschwitz.org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Birkenau)
제1수용소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첫 입구인 죽음의 문은 바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주요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광활한 대지에 철조망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데 특별한 건 수용소 안으로 철길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철길이 끝나는 곳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엔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파괴한 가스실의 흔적이 있다. 작은 웅덩이는 소각한 사람들의 재를 뿌렸던 곳이라고 한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총 300개 이상의 건물 중 상당수의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일부 67개 동 건물은 남아 있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이송된 사람은 적게 잡아 130만 명이며, 이중 110만 명 가량이 살해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유형 : 볼거리
소재지 : Czernichowska 44, 32-600 Brzezinka(전화: 033-844-80-99)
개관 시간 : 12월 08:00~14:00 / 1, 11월 08:00~15:00 / 2월 08:00~16:00 / 3, 10월 08:00~17:00 / 4, 5, 9월 08:00~18:00 / 6~8월 08:00~19:00
사이트 : www.auschwitz.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