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가 성범죄율 낮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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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50회 작성일 22-09-01 15:08본문
최근 57세 남성이 8살 여자 어린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해 신체 일부를 훼손시킨 일명 ‘조두순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법원은 조씨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 7년, 신상정보 공개 5년을 확정했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은 “형량이 가볍다”는 쪽으로 기울며 인터넷 청원까지 벌어지고 있다. 과연 성범죄자의 구형을 늘리면 범죄율을 낮출 수 있을까.
“개를 묶어 두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감금효과에 대해 구치소에 수감 중인 한 성폭행범에게서 돌아온 답변이다. 미쳐 날뛰는 개를 목줄로 묶으면 당장은 조용해지지만 목줄이 풀리는 순간 개는 다시 날뛸 것이다. 성폭행범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죄를 짓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감금은 범행 동기를 없앨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처럼 구속은 성범죄를 늦출 뿐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화학적 거세가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폴란드 의회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에게 화학적 거세를 시키는 법안이 통과돼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율을 낮추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남성의 음경이나 고환을 제거하는 외과적 거세는 성범죄 예방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체 기능이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화학적 거세가 일반적이다. 1996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루이지애나, 몬타나, 위스콘신, 조지아, 플로리다, 콜로라도 등 10여개 주와 캐나다에서 화학적 거세가 실시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란 몸에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차단하는 약물이나 에스트로다이올과 같은 여성호르몬을 주입해 성욕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캐나다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데포 프로베라’(Depo Provera)와 ‘CPA’(Cyproterone Acetate)라는 여성호르몬 복합물을 주사한다.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가 개발한 이 호르몬제는 원래 여성 피임약으로 개발됐지만 남성에게 주사하면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춰 주기 때문에 성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몸에 칼을 대지 않고 현대판 내시를 만드는 형벌인 셈이다.
캐나다 교정국은 “화학적 거세는 장기적으로 만성피로, 우울증, 두통, 간기능 장애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단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밝혔다. 2006년 3월 대한비뇨기과개원의 협의회가 실시한 ‘화학적 거세 도입에 관한 찬반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체 응답자 74명 가운데 화학적 거세에 반대한 의사는 31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했지만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3명에 불과했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43명(57%)이 호르몬 조절을 통한 성욕 억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성욕 억제는 성폭행 재범을 막는 최소한의 방법’이라는 이유가 3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성폭행범의 왜곡된 성의식을 그대로 둔 채 성욕만 줄인다고 성범죄가 감소하지는 않는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성폭행범 처벌이 강화되고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면 화성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늘어날 것이다”고 말한다. 성범죄자들의 특성상 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완전범죄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는 곳에서는 약물사용과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형법 제 645조를 살펴보면 재범 이상의 모든 성범죄자에 대해 화학적 거세를 강제로 적용하고, 가석방의 조건으로도 화학적 거세가 설정돼 있다. 또 약물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는 교정국이 교도소위원회에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할 때까지 계속된다. 화학적 거세의 효과는 약물 투여 기간에만 발생하고 약물투여를 중단하면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약물투여는 당사자가 사망할 때까지 평생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심리치료가 재범방지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국내에서는 상습 성폭행범에게 기껏해야 최고 15년의 형량을 구형하고 있다. 성범죄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할 수 없다면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 현재 수원구치소에서도 성범죄자에게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가령 성폭행범이 폭력적인 장면을 보면서 성충동을 느낄 때 역한 냄새나 전기 자극, 혹은 구토제 같은 외부 자극을 줘 신체의 거부반응을 인위적으로 유도한다. 또 역할극을 통해 자신의 범행으로 고통당한 피해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권한다. 한국은 아직 성범죄자 유형에 적합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단계다.
놀라운 사실은 심리치료를 시작하기 전 실시한 ‘강간통념 검사’에서 성범죄자 10명 중 단 한 명도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들은 강간 혐의를 부인했으며, 오히려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는 왜곡된 성의식에 사로잡힌 성범죄자에게 외과적ㆍ화학적 거세만으로 재범률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식이 없고,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적은 것이다.
우리사회에 성범죄 사건이 있을 때마다 형량을 높이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정작 그들의 심리에 대해선 고민해 보지 못했다. 이제라도 심리치료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통해 성범죄 해결의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