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정신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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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078회 작성일 22-09-30 13:19본문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경험하면, 흔히 ‘미쳤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이 말은 너무 남용되는 경향이 있죠. 이제는 본래의 의미보다 상대방을 비하하는 욕설로 인식되고 통용되곤 합니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정신병적 증상(Psychotic Feature)1) 이라고 합니다.
정신병적 증상은 조현병(과거 정신분열병)이 있는 경우 흔히 나타나지만, 망상장애2) 나 조울증, 우울증, 치매 등이 심한 경우나 알코올/마약의 급성중독 또는 금단상태에서도 보이는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에 문제가 있고, 병에 대한 인식(Insight)이 부족한 편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이 정신적으로 병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정신병적 증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제 자극이 없는데도 감각을 느끼는 환각3) 입니다. 가장 흔한 증상이 환청이죠. 앞 사례에 등장하는 아들처럼 주변사람은 듣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욕하는 소리,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증상이 심각해지면, 구체적으로 대화할 정도까지 되는데요. 대개는 애매하게 중얼거리거나 파편 같은 소리를 던집니다. 실재하지 않는 허상을 보는 환시4) 를 비롯해 환촉5) , 환후6) , 환미7) 등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실존 인물인 존 내시(John Nash) 박사의 조현병 경험을 영화화한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를 보면 환청, 환시의 경험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내용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가장 흔한 증상은 피해사고8) 및 피해망상9) 입니다. 한 예로, “국가정보기관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데, 나를 감시하는 사람과 차가 항상 바뀐다. 지금 상담하는 이 순간 저 창 밖으로 보이는 차도 나를 감시하러 온 것이다”라고 말하는 환자를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체계적으로 믿고 있다면, 심각한 상태로 보아야 합니다. “윗집 사람은 나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어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한다. 특히 자려고 누우면 더 심해져서 내 욕을 한다”라고 하면, 앞 사례처럼 층간소음 문제로 오인될 수도 있는데요. 이럴 때는 생각의 일관성과 흐름에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피해망상과 비슷한 증상으로 관계사고10) , 관계망상11) 이 있습니다. 앞서 바깥의 차가 나를 감시하러 온 사람들이 탄 차라고 했던 사람도 피해망상과 함께 관계망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면 누구나 경험하는 문제로, 자신감이 없고 대인관계에 불편감이나 불안증이 있는 경우에는 타인이 쳐다만 봐도 그 사람이 나를 비웃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감각에 장애가 있는 분들은 좀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 “모든 사람이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라거나 “TV에서 내 생각을 읽고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외에도 과대망상12) , 상대방이 외도를 한다는(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알려진) 질투망상13) , 병적 스토킹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유명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색정망상14) , 몸 안에 이상한 생물이 살고 있다는 신체망상15) 등 생각의 내용에 장애가 있는 다양한 정신병적 증상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지난 1년 동안 과학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특이한 종교적 경험을 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약 60퍼센트가 그런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간헐적인 특이한 경험이나, 약물이나 술, 명상, 음악이나 예술행위에 심하게 몰두한 경우나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정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기존 질환의 악화로 갑자기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전문기관의 평가가 꼭 필요합니다. 요즘은 종교시설에서도 급작스러운 영적 체험을 했다거나 심한 정서적 혼란을 경험했다는 사람을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질환 중 대표적 질환은 조현병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생물학적 이론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도파민 가설입니다. 환각과 망상은 대뇌의 도파민 경로 중 중뇌변연계경로(Mesolimbic Pathway)의 도파민 과활성과 관련 있는데요. 일부 마약들 역시 같은 부위에서 도파민 활성을 증가시켜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하게 하는 등 유사성을 보입니다. 정상인의 경우, 환청이 있어도 전두엽 기능은 정상이어서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조현병 환자의 경우 전두엽의 실행조절능력에 장애가 있어 환청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생물학적 기전이 명확한 데서 나타나듯이,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병적 질환은 유전자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 질환들이 유전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조현병일 때 그의 자식이 조현병에 걸릴 확률은 고작 10퍼센트입니다. 이 수치는 부모 모두 정상일 때 걸릴 확률인 1퍼센트보다 10배나 높은 것이긴 하지만, 거꾸로 보면 부모 중 1명이 조현병이라도 90퍼센트는 조현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현병은 유전자와 스트레스 등 여러 인자가 동시에 발현될 때 발병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방아쇠 이론’이라 합니다. 권총에 총알이 있다 해도 방아쇠를 당겨야 총알이 발사된다는 것이죠. 이때 총알은 ‘어떤 병에 걸릴 체질’을, 방아쇠는 ‘그 병이 발생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의미합니다.
정신병적 증상의 치료에는 약물치료가 가장 우선적이고 효과적입니다. 도파민 과활성을 감소시키는 항정신병약물(Antipsychotic Drug)을 복용하면, 환각과 망상의 증상들이 호전됩니다. 조현병 치료제로 알려져 있지만 우울증, 조울증, 치매, 중독 등 모든 정신병적 증상의 치료에는 항정신병 약물이 사용됩니다. 1950년대 클로로프로마진이라는 항정신약물의 발견으로 시작된 정신약물학은 지난 60여 년 동안 그 어느 분야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신과 약물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20년 전까지 사용된 약물들이 추체외로증후군16) 부작용이 있어 중증 환자의 경우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원래 질환의 경과상 인지기능과 감정표현이 사라지는 것을 약물부작용으로 오해한 결과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부작용이 대폭 개선된 약물이 개발되어 환자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조현병은 발병 이후 시간을 지체하면 뇌 기능의 상실이 오므로, 그만큼 호전의 정도가 더뎌집니다. 병 자체가 경과에 따라 점점 진행되고, 한 번 심각하게 증상이 악화될 때마다 예후가 나빠집니다.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초기에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초기에 적절한 약물을 투여하면, 아무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데요. 자칫 사회적 편견으로 시기를 놓쳐 점차 악화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정신병적 증상은 다른 정신과적 문제보다 심각한 증상이어서, 이 증상을 경험하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질환을 앓으며 지치고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치료진과의 신뢰관계, 약물치료를 포함한 꾸준한 치료가 증상의 호전을 가져올 수 있단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