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오래 사귀지 못하고 금방 헤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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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90회 작성일 22-09-23 16:35본문
제 남자친구는 저보다 8살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너그럽고 저를 잘 배려해주는데요. 때로는 저를 아이처럼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또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자주 싸워요. 이젠 지쳐서 헤어져야 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성장합니다.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는 매우 가깝습니다.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심리적으로 아기가 처음 엄마를 만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M. 말러의 대상관계이론을 인용하자면, 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두 사람은 유아기로 자연스럽게 퇴행하는 것이죠.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기 위해서 자신의 경계를 잠시 허물고 마치 두 사람이 한 사람인 것같이 느끼고 행동합니다(공생기와 유사한 시기). 이 시기는 서로에게 연인이라는 것을 허용하고 인정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대상관계이론 참조)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퇴행상태에서 회복되어 각자가 독립된 성인임을 인식하고 분리개별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바로 이 시기가 중요한데, 두 사람이 자신의 특성과 상대의 특성을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 서로에게 애착과 신뢰가 형성되면서 서로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지 않고 사랑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서로에 대해 대상항상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연애는 유아기의 심리적 성장과정을 재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연애를 통해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상처를 반복하여 경험하게 됩니다. 전자의 연애는 행복할 것이고, 후자의 연애는 힘겨울 것입니다. 이번 사례의 주인공이 하는 연애가 바로 힘든 경우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부족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끌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상처를 받고 이별하게 되는 것이죠.
커플 중에는 매우 뜨거우면서도 서로를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강박성 성격장애1) 와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의 결합입니다. 이 둘은 어떤 면에서는 남녀의 전형적인 성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런 두 사람이 처음 만나면 천생연분처럼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박성 성격을 가진 남자는 밝고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히스테리성 성격의 여자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에게 감정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녀를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규칙에 집착하고, 융통성이 부족하고, 완벽주의적인 강박성 성격의 남자는 히스테리성 성격을 가진 상대가 즉흥적이고 계획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참지 못합니다. 그는 그녀를 하나하나 고치고 싶어하고, 이를 관심과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히스테리성 성격을 가진 여자는 강박성 성격을 가진 남자의 성실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인해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정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라고, 동시에 이상적인 아버지와 같이 자상하게 자신을 포용해주고 받아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강박성 성격을 가진 남성은 감정적인 표현이 부족하고 자상함은 없는 엄격한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가 이기적이고 무관심하며 냉정한 독재자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는 상대의 특성에 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로 이 특성들 때문에 상대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반대로 남자가 히스테리성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여자가 강박성 성격을 가진 커플도 있습니다. 히스테리성 성격의 남자는 자신이 강한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많은 여자를 사귀고 싶어하며, 감정표현이 얄팍한 것이 특징입니다. 강박성 성격의 여자는 규범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요. 이 커플의 경우, 여자는 남자가 즉흥적으로 행동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행동을 하면 그 상황을 힘들어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를 변하게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남자에게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합니다. 이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 믿지만 유사한 문제로 반복해서 싸우다가 결국 지치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강박성 성격과 히스테리성 성격은 둘 다 어릴 적의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모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강박성 성격이 되고, 부모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예뻐보이는’ 행동을 발달시킨 사람은 히스테리성 성격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만남이 지속됨에 따라 매력적으로 느끼던 상대방 성격의 이면에 자신과 똑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있음을 차츰 알게 되고, 서로에게서 더 많은 애정을 받아내려 하다가 결국 파국적인 관계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쪽은 부당하게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복종하는 커플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심리학적으로는 경계성 성격장애2) 와 의존성 성격장애3) 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죠.
경계성 성격을 가진 사람과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자기 내면을 살펴보는 능력이 부족하고 공허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특징입니다. 경계성 성격은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고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의존성 성격은 자신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리고 의존할 수 있는 상대가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조종하길 원하는 경계성 성격과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의존성 성격이 만나면, 처음에는 마치 음양의 조화처럼 잘 어우러집니다.
연애 초기에 이들 커플은 경계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애인을 끔찍이 챙겨주고, 의존성 성격의 상대는 따르기만 하면 되므로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균형점이 깨지고 둘 사이에 위험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한쪽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의 부당한 요구에도 무조건 복종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상대에게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남자(혹은 여자) 그리고 맞거나 학대당하면서도 상대를 떠나지 않는 여자(혹은 남자)의 관계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커플의 경우, 경계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때문에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 주변에 더 안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는 의존할 대상, 즉 애인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경계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애인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반복해서 느끼고, 이 불안 때문에 애인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또는 버림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도 합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들었지만, 실제 이와 유사한 관계가 많은 연인 사이에서 관찰됩니다.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커플들 역시 위와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서로 성숙해지는 관계와 악연이 되는 관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전자는 성숙하고 독립된 두 사람이 만나서 연인으로 함께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으려고 하고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일방적으로 취하려 하거나 상대방을 자기 취향에 맞게 바꾸려고만 하는 사람들이고요.
따라서 연애를 오래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성격이나 과거의 연애형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데, 이런 준비는 결국 성공적인 결혼, 즉 인생 중반과 후반을 위한 주요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