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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맥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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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88회 작성일 22-09-2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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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4월19일 168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의 주범.

티모시 맥베이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소년 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때까지 A와 B학점을 유지했던 내성적인 성격의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펜들튼에서 2년제 대학을 다니며 컴퓨터를 전공했다.

무기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가졌던 맥베이는 군입대를 했으며 이때 미사일을 다루는 솜씨나 폭발물 제조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군복무 중 훗날 오클라호마 사건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군동료 마이클 포티어, 테리 니콜스 등을 만나게 된다.

걸프전에 참가 무공훈장까지 받고 91년 12월 군에서 제대한 맥베이는 뉴욕 버팔로에서 경비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반정부 민병대에 가담하기 위해 캔저스, 애리조나등을 전전했다.

맥베이가 본격적으로 정부에 적대감정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2년 불법 무기소지 혐의를 받던 민간인 랜디 위버가 연방수사관 들에게 반항하다 사살된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93년 텍사스 웨이코에서 사교집단 다윗파 교도 80명이 연방수사관들과 무장대치 끝에 의문의 화재로 몰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로 알려졌다.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맥베이는 1년전까지 애리조나에서 20대 초반의 여자친구와 갓난 딸을 데리고 트레일러에서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 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 시티 연방건물 폭발물 테러사건 현장 부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후에도 `연방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1997년 연방 배심원들로부터 1급살인 및 음모에 관한 11개 항목 전체에 걸쳐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2001년 6월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연방교도소 사형집행실에서 독극물 주사에 의해 사형되었다. 멕베이는 죽기직전 최후진술을 하지 않고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하고 내 스스로 내 영혼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19세기 시 '인빅터스'(정복되지 않은 자)를 손으로 써서 제출했다.

맥베이의 사형은 유가족 대표 등 증인 10명과 기자 10명 등 20명 뿐아니라 교도소 밖에서도 수백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폐쇄회로TV를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는 1936년 켄터키주 오웬스보로에서 흑인 성폭행범 레이니 베시아(22)에 대한 교수형이 공개된 이래 65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 집행된 것이고, 1963년 유괴살인범 퓨거 이래 38년 만에 연방 정부 차원에서 집행한 사형이어서 미국내에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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