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 다니기가 싫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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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948회 작성일 22-09-30 13:23본문
초등학교 1학년 예림이는 6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가 끝나고 영어학원에서 매일 2시간씩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유치원도 곧잘 다니고 영어동요도 잘 부르던 아이가 갑자기 학원에 다니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더니 영어로 된 글자만 봐도 고개를 젓고 화를 낸다나요. 겁이 난 엄마가 예림이의 손을 끌고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예림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영어를 암기과목처럼 가르치기 때문
검사 결과 예림이는 영어에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뿐 지극히 정상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영어학습을 계속 하면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림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예림아, 영어학원 다니는 거 싫어?"
"네."
"왜 그런지 이야기해줄 수 있니?"
"숙제가 너무 많아요."
"숙제가 뭐였는데?"
"매일 단어를 10개씩 외워야 해요. 그거 안 외우면 학원에서 혼나요."
영어유치원에서 재미있게 영어를 배웠던 예림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영어교육 방법이 바뀌면서 힘이 든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매일 단어 10개를 외우고, 또 평가를 받아야 하니 그럴 만도 했지요.
영어는 머리 싸매고 외워야 하는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 언어입니다. 학원에서 암기식으로 영어를 배울 경우 예림이와 같은 거부반응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할 언어를 하나하나 다 외워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은 영어를 언어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배우는 것 자체가 지겹습니다. 요즘은 유아 때 영어를 놀이식으로 배우다가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갑자기 주입식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학년을 대상으로 언어환경을 잘 조성해서 마치 생활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체득하는 학원도 간혹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떠들고 아이들은 듣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입니다.
또한 영어학원의 지나친 레벨테스트도 평가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큰 압박이 됩니다. 따라서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영어학원을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어공부는 동기부여가 우선
학원에 다니든 학습지로 공부하든 영어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입니다. 영어에 대한 동기는 웬만해서는 잘 생기지 않습니다. 저도 잠깐이지만 정모를 영어유치원에 보내 보고, 학습지도 시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많이 들리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문장을 읽고 외우게 해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이도 다른 과목은 공부한 만큼 효과를 거두는데, 영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못하니까 금방 따분해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웃에 살던 외국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면 한동안 영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단 그 아이와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간단한 영어 몇 마디는 해야 하니 "엄마, 빌려달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해?" 하며 열심히 듣고 연습을 했지요. 그러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그 친구가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니까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져. 그런 발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구석에 처박아둔 영어 비디오를 꺼내 보면서 "다음에 만났을 때 저렇게 말해봐야지" 하며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친구와의 만남이 확실한 동기로 작용한 것입니다.
영어는 언어가 아닌 학문으로 익히면 지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학원에 가기 싫은 이유도 지겨워진 공부가 하기 싫어서입니다. 책을 보고 단어와 문장을 외우게 하고 레벨테스트를 받고 시험을 보면서, 영어는 더는 말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언어가 아니라 지겹도록 외우고 쓰고 익혀야 하는 공부가 됩니다.
아이가 영어학원을 싫어한다면, 학원의 지나친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는 판단이 선다면 일단은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교육은 길게 생활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1학년 때 한두 달 쉰다고 큰 지장은 없습니다.
학원을 싫어할 때는 집에서 엄마와 재미있게
아이가 영어학원을 싫어할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이나 비디오교재 등을 선택해서 꾸준히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순간 아이의 영어실력도 늘어납니다. 어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틔는 것처럼 영어 역시 일정 발달단계에 이르면 귀가 틔고 말문이 열립니다. 단 그 과정에서 반드시 엄마와 아이의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영어로 말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와 동기만큼 효과적인 공부법은 없습니다.
또한 영어를 배울 때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영어를 직접 사용하도록 해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영어캠프를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1학년은 집 밖에서 하루 이상 지내는 것이 힘들므로 '30분 동안 영어로 말하기' 등 집안에서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상담을 마친 후 예림이 엄마에게 당분간 영어학원을 쉬게 하라고 했더니 대번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불안하다고 영어학원에 계속 보내면 예림이는 영어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거에요. 지금 학원에 보내는 비용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예림이가 3~4학년이 되었을 때 영어캠프에 보내보세요. 다른 아이들과 뒤섞여서 생활하며 영어를 배우다 보면 잃었던 흥미로 다시 찾을 수 있어요."
'재밌게 한 공부가 더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즐겁게 함께 하는 공부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아이와 관계에 자신이 없을 때는 먼저 아이와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영어공부는 그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