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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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61회 작성일 22-11-17 16:02본문
“우리들은 부끄럽다는 기분 속에 살아간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벌거벗은 피부를 부끄러워하듯이,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수입에 대해서, 의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
- 조지 버나드 쇼 -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만의 감정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이라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질만큼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추위와 햇빛, 바람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이유는 바로 창피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부끄러움을 몰랐다고 한다. 굳이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동물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짐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분노, 우울, 불안 등의 감정과 달리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인간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죄책감은 곧 양심의 작용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터부(Taboo), 즉 금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언급한다. “우리에게 터부시되는 것은 신성하면서 불결한 것이고, 더러우면서 순결한 것이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 우리가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들의 상당수는 우리에게 금지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대상에게 매혹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부하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을 지니게 된다.
특히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욕망은 여러 가지 규칙과 제도로 통제되고 억제된다. 다른 사람의 재산이 탐이 난다고 해서 함부로 뺏을 수 없고, 덥더라도 공공장소에서는 옷을 벗을 수 없으며, 화가 나도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되는 등의 여러 규칙과 예절, 법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규칙들은 오랜 시간 내려오면서 우리 마음 속에 내재되어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는 이른바 ‘양심’으로 작용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죄책감은 이 양심의 활동이다. 양심은 규칙(터부)을 어긴 자신에 대해 비난하고, 사회적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외부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수치심
내적 규율인 양심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과 달리 수치심은 외부의 반응에 의해 발생한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매우 비슷한 감정 상태이지만 이를 유발하는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좋지 않은 성적표를 부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학생은 수치심을 느끼겠지만, 아마 죄책감까지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몰래 컨닝으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수치스럽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으로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죄책감, 수치심과 비슷한 감정으로 부끄러움이 있는데, 부끄러움은 죄책감이나 수치심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전반적인 감정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실제로는 분명하게 나누는 것이 아주 어렵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서양인과 일본인의 문화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양은 ‘수치(恥, はじ)’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한 수치, 즉 ‘하지(はじ)’란 타인의 비판, 조소, 반대에서 느껴지는 일본인 특유의 감정을 말한다. 일본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느낌, 즉 '세켄테이(世間体, せけんてい)'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녀는 일본인에게 죄 자체보다는 타인을 의식하는 걱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죄책감은 죄의식에 가까운 수치스러움이고, ‘하지(はじ)’는 당황스러움에 가까운 수치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치심과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으로 당황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흔히 죄책감을 동반하지만, 당황스러움은 죄책감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대개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느끼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반드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감정일까? 어느 문화에서나 수치와 죄책감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는 각각 다르다. 심지어 같은 문화권에서도 상황에 따라서 같은 행위에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명동 한복판에 수영복만 입고 다니라고 하면 몹시 부끄러울 테지만, 해수욕장에서라면 별로 수치스럽지 않을 것이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상태이다. 자기 방안이라면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높은 직장 상사 앞에서라면 작은 실수에도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아주 복잡한 감정이며 문화적 배경이나 개인적 특성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이는 감정이다.
사이코패스와 도덕적 마조히즘의 사이
우리 주위에는 이런 수치심, 죄책감이 일반적인 기준보다 현저하게 낮은 사람들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깨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때문에 공동체의 규칙을 무시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쉽게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경향이 강해서 아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한다.
반대로 스스로 망신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즐기고 추구하려는 성향의 사람도 있다. 일종의 피학증으로 도덕적 마조히즘(masochism)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그라프트 에빙(Richard Freiherr von Kraft-Ebing)이 처음으로 진단한 마조히즘(masochism, 피학증)은 이후 프로이트에 의해 성애발생적 마조히즘, 여성적 마조히즘 그리고 도덕적 마조히즘으로 나뉘어졌다. 수치심을 추구하는 도덕적 마조히즘은 무의식 속의 죄책감 때문에 불필요한 벌을 스스로 받고 싶어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프로이트는 이에 대해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속박하려는 마음이 과도하게 발달해서 생기는 증상으로, 양심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굳이 도덕적 마조히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작은 행동과 사고에서 생긴 과오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자신을 비하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많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너무 강해지면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게 된다.
누구나 가슴 속에 주홍글씨 하나쯤은 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수많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그에 따르는 심리적 허탈함을 극복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주홍글씨>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긴 채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어간 목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사실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가슴 속의 새겨진 주홍글씨를 숨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주홍글씨가 있다. 우리의 과제는 자신의 주홍글씨를 이겨내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