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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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01회 작성일 22-11-17 14:35본문
영미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지 햇수로 벌써 3년째다. 소위 ‘스펙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번지르르한 대기업만 고집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보내는 이력서마다 서류전형에서 미끄러지곤 한다. 어쩌다 면접을 보게 된다고 해도 휴대전화로 오는 문자메시지는 실망스러운 얘기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취업은 더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아침에 일어나 자동적으로 인터넷을 켜고 취업정보사이트를 들어가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몇 군데 보내지만 이제는 무기력해질 뿐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며 용돈을 집어주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도 민망하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이 만나자고 전화를 하면 옛날에는 얻어먹는 재미와 회사 정보라도 듣는다는 생각에 나갔지만, 이제는 그것도 지쳐서 연락이 와도 잘 나가지 않은지 몇 달째다.
하루는 밤에 잠이 영 오지 않고 답답한 마음이 든 그녀. 식구들이 잠든 밤에 거실에 나와 작은 소리로 TV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나서 조금 후련해지기는 했지만, 이게 우울증이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너무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취업 같은 것은 영 남의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이 느껴졌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일어나기도 싫고, 더 이상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수정해서 보내는 일도 그만둬버렸다. 해 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어느덧 믿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복된 실패가 만들어내는 만성 무기력
취업 스트레스는 현재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다. 비단 영미씨의 특수한 사례만은 아닐 것이다. 취업이라는 사회진입의 반복적 실패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심하면 우울증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취업 스트레스는 196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개를 이용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한 집단은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두 번째 집단은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받았다. 세 번째 집단은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후 다시 세 집단에게 전기충격을 줬다. 이번에는 불이 켜지고 난 다음 전기충격이 오고, 그 다음에 작은 담장을 넘어서면 전기가 없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집단의 개는 바로 중앙의 담을 넘어갔지만, 두 번째 집단은 충격이 가해져도 피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려있으면서 전기충격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셀리그만은 이 개들이 무기력에 학습되었다고 해석했다. 자극을 받지 않았거나 혹은 자극을 받아도 피할 수 있었던 개들과 달리, 노력해도 자극을 피할 수 없었던 개들은 피할 수 있는 자극이 주어진다고 해도 회피반응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노력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면, 무기력함에 빠져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반복적 취업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끝없이 좌절을 경험하고 나면, 결국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더 이상 노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상태가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취업대란이다. 취업 실패를 반복하면서 위의 도표와 같은 일반화된 무력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사회가 가진 스펙 중심의 높은 사회 진입 장벽 탓에 취업 스트레스를 느끼는 젊은이들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뒤에서 새로 배출되는 졸업생들은 나오는데, 아직 사회생활의 시작이라는 진입자체를 하지 못한 채 무력감만 갖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보기보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태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취업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새롭게 의욕을 불태우고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또한 반복적 취업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극심하게 느끼는 이들은, 학습된 무기력감이 자신을 지배하기 전에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