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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와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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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51회 작성일 22-11-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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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여, 적어도 나는 당신 때문에 죽는다는 행복과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친다는 행복을 누리고 싶소.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기꺼이 용감하게 죽겠소. 아아, 그러나 친근한 사람을 위해 피를 뿌리고 그 죽음에 의해서 새로운 수백 배의 생명을 북돋운다는 것은 오직 소수의 고귀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것이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

젊은 연인들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그려 오늘날까지도 명작의 하나로 칭송받고 있는 이 작품은 바로 독일의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774년 출간돼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여자 주인공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베르테르에게 공감한 젊은이들은 그를 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이 때문에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따라서 시도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다른 말로 ‘자살 전염’ 또는 ‘모방 자살’, ‘동조 자살’ 이라고도 한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David Phillips)가 붙인 말로,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함을 발견하였다.

TV, 신문과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거나 영화, 드라마, 혹은 책과 같이 친숙하게 수용되거나 인터넷과 같이 손쉬운 정보교류의 수단이 되는 매체들이 유명인의 자살을 다루었을 때 자살사건이 증가하는 경향은 엄연히 존재한다. 대중매체에서 자살의 묘사는 자살을 친숙하고 일반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살에 대한 환상이나 낭만을 심어주기도 한다. 자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자살을 문제 해결의 한 가지 수단으로 여기게 만들고, 모방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홍콩 스타 장국영이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저 세상으로 가 버렸을 때, 또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고 최진실 씨가 자살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자살률이 갑작스레 높아진 바 있다. 이것이 바로 베르테르 효과인 것이다.

이런 모방자살은 특히 청소년에서 쉽게 나타난다. 또한, 자살한 유명인과 나이, 성별 등이 비슷할수록 모방률이 높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접한 자살 사건과 동일한 방법을 통해 자살 행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매체에서 접하는 자살 사건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에게 문제해결 방법의 하나로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모방의 심리적 기전은 사회학습이론의 관점에서 대중이 자살한 유명인을 자신과 동일시 할 경우, 모방행동이 높다고 한다. 또한 자살을 보도하는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자살을 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켜 자살행동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또한, 자살행위를 영웅시 하거나 미화하는 맥락의 미디어 보도는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살행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미디어에서 자살에 대해 보도를 할 때는 그에 따른 영향과 파장을 고려해서 보도내용과 표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우선 자살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는 그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보도가 필요한 경우에는 언론보도의 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호주의 심리학자 퍼키스 등(Pirkis et al, 2006)은 WHO와 8개국에서 제안한 자살 보도의 원칙을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 원칙들은 공통적으로 ▲자살을 미화하거나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말 것, ▲자살에 대한 직접적이고 자세한 묘사는 피할 것,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조할 것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자살보도 권고안’에 미디어의 자살보도 원칙을 제정했다. 구체적인 보도원칙은 다음과 같다.

언론 자살보도에서 하지 말아야 할 내용

  •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 자살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소개하기
  • 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 하기
  • 자살을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기
  • 자살한 사람의 비정상적 정신건강상태나 문제행동(예, 약물중독)을 감추기
  • ‘자살’이란 표현을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死因)을 자살로 강조하기
  • 자살한 사람의 사진을 넣기
  • 유명인의 자살을 지나치게 주요기사로 보도하기

언론의 자살보도에서 가능하면 포함시켜야 할 내용

  • 자살률 등 최근 자살문제의 경향 및 심각성 강조하기
  • 최근의 자살관련 치료 및 상담의 발전양상 소개하기
  • 다양한 도움을 통해 자살위기를 극복한 사례 소개하기
  • 자살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 대해 명시하기
  • 다양한 자살 징후를 소개하기
  • 자살위기에 처한 타인을 도와주는 방법을 소개하기

이 같은 미디어의 보도원칙은 자살을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보도한 미디어보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보도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도리어 조회수나, 방문자수를 늘리기 위해 제목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내세우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이는 자살이 끼치는 사회적인 전염 효과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자살률이 이렇게 높아진 데는 미디어의 무분별한 보도가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부 언론들은 이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언론은 자살 보도가 청소년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 상당수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자 각 개인들에 대해서도 이에 대한 충분한 계몽과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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