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이해하는 강박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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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74회 작성일 22-11-17 16:22본문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 멜빈(잭 니콜슨 분)은 로맨스 소설 작가다. 뒤틀리고 꼬인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면박주기 일쑤이며, 상대방에게 상처를 가하는 말도 대수롭지 않게 하곤 한다.
그의 마음에는 공격성과 짜증, 분노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길을 걸을 때도 보도블록의 틈을 절대 밟지 않는 대단히 완고한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람과 스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며 걷는다.
그가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게 된 캐롤과 사귀게 된 그는, 그녀와 같이 간 식당에서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급 식당에 걸맞지 않게 대충 옷을 입고간 그에게 웨이터가 정장을 빌려주겠다고 하자 그는 웨이터를 향해 “어떻게 남이 입은 옷을 입느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강박장애의 다양한 증상들
멜빈이 보이는 이러한 특성들은 강박장애 환자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증상들이다. 강박장애의 증상은 크게 특정 생각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맴도는 ‘강박사고’와 특정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강박행동’으로 구분된다. 강박사고가 주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강박행동이 더 비중이 큰 사람도 있고, 두 가지 모두가 함께 뒤섞여 있는 이들도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의 손이 오염되거나 병이 옮을까 두려워 사무실 문 손잡이를 만지지 못한다든가, 특정 주제의 성적인 내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 등이 강박사고의 한 예다.
강박행동은 멜빈의 경우처럼 어떤 특정한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거나(이를테면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않는 것), 물건을 항상 대칭으로 놓거나 잠긴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게 매우 불편하면서도 문이 계속 잠겼는지를 확인하는 경우와 같은 행동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 외에도 손을 계속 씻는 것과 같이 청결에 집착하는 행동 등 매우 다양한 증상들을 보인다.
물론,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강박장애는 아니다. 정도가 심하지는 않더라도 일반인 중에도 상당수에서 약간의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강박사고나 행동이 멜빈처럼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대인관계, 직업적 기능 등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올 때 강박 장애로 진단하게 된다. 국내의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 강박장애 환자는 약 1.9%로 추산된다.
강박장애의 이면에 깔려 있는 것은 ‘불안’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강박장애 환자들은 매우 완고해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멜빈처럼 공격적이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멜빈의 내면은 오히려 정반대다. 그의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안한가? 무엇이 두려운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멜빈이 보도 블록의 금을 밟지 않는 이유는 금을 밟았을 때 뭔가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이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식당에서 웨이터가 옷을 빌려주겠다고 했을 때 멜빈은 병이 옮으면 어떡하느냐며 화를 낸다. 자신에게 병이 옮을까봐, 혹시라도 세균이 옮을까봐 불안한 것이다.
이처럼 강박장애 환자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강박장애 환자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생각이나 행동이 불합리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최소한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음 속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안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못한다. 정신의학적으로도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세로토닌 분비의 불균형이 강박장애의 한 원인
그렇다면 이러한 강박장애는 왜 생기는 것일까?
우선 신경계통의 호르몬(신경전달물질)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로 세로토닌이 있다. 우리의 뇌 신경계에서 세로토닌은 불안 및 불안행동과 관련된 대표적인 신경 호르몬의 하나이다. 이러한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대사되는 과정에 불균형이 생기면 강박장애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강박장애의 대표적인 치료약물로 세로토닌 계통의 약물이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세로토닌 외에 우리 신경계에는 많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여러 신경전달물질들도 강박장애의 발생이나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의 구조(신경 회로)적인 측면에서 보면 ‘띠 이랑’(cingulate gyrus)이라고 불리는 부위나 ‘꼬리핵’(caudate nucleus)을 비롯한 몇몇 부위의 이상이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이상은 MRI 등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경계통에서는 일반적인 검사로는 확인이 안될 정도의 대단히 미세한 불균형만으로도 강박장애와 같은 매우 불편한 질환 또는 증상이 유발될 수 있다. 또한 유년기를 비롯해 성장 과정에서 지나치게 경직된 양육 환경이나 학습, 유년기의 트라우마 등도 관련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