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보복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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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01회 작성일 22-11-21 14:41본문
1. 개요[편집]
2. 사건 경위[편집]
2.1. 사건 발생 전의 상황[편집]
2005년 11월 5일 새벽, 당시 무직이던 김모(당시 29세)씨는 그 전날인 4일 밤부터 친구 B씨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하지만 김씨는 노래방 도우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노래방 직원에게 노래방 도우미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 과정에서 김씨 등은 노래방 도우미를 공급하는 일명 '보도방'을 운영하던 김○균(당시 31세)[1]과 시비가 붙었고, 근처 오락실 앞길에 나와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중에 우연히 싸움을 목격한 김○균의 후배 최○영이 싸움에 끼어들고, 이어서 김○균의 또다른 후배 C씨까지 끼어들어 2 대 3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김씨는 싸움에서 밀리자[2] 근처 횟집에서 가져온 회칼로 김○균을 위협하며 "죽여버린다!"라고 소리쳤다.
싸움이 끝난 후 김○균은 화가 극에 달해 인천광역시 내의 어떤 거리를 배회하다가 새벽 5시 30분경, 때마침 배회하던 거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고향 후배 박병섭(당시 32세)[3]을 만났다.[4] 이때 그 거리에 서 있던 박병섭은 김○균을 보자 반갑게 맞은 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 도중 싸우다가 싸움 상대[5]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김○균의 말[6]에 깜짝 놀란 박병섭은 "사람을 좀 모아달라"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박병섭은 자신이 김○균과 거리에서 만난 후 김○균의 자초지종을 듣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영[7] 과 김○현, 김○윤에게 "○균이 형님한테 급한 일이 생겼으니 인천으로 넘어와라."라며 연락했다. 김○윤은 또 다른 후배 박○홍, 김○곤, 조○철에게 연락해 김○균과 박병섭이 거리에서 마주친 지 4시간 후인 아침 9시경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의 한 모텔에 8명이 모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씨 등은 노래방 도우미를 공급하는 일명 '보도방'을 운영하던 김○균(당시 31세)[1]과 시비가 붙었고, 근처 오락실 앞길에 나와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중에 우연히 싸움을 목격한 김○균의 후배 최○영이 싸움에 끼어들고, 이어서 김○균의 또다른 후배 C씨까지 끼어들어 2 대 3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김씨는 싸움에서 밀리자[2] 근처 횟집에서 가져온 회칼로 김○균을 위협하며 "죽여버린다!"라고 소리쳤다.
싸움이 끝난 후 김○균은 화가 극에 달해 인천광역시 내의 어떤 거리를 배회하다가 새벽 5시 30분경, 때마침 배회하던 거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고향 후배 박병섭(당시 32세)[3]을 만났다.[4] 이때 그 거리에 서 있던 박병섭은 김○균을 보자 반갑게 맞은 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 도중 싸우다가 싸움 상대[5]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김○균의 말[6]에 깜짝 놀란 박병섭은 "사람을 좀 모아달라"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박병섭은 자신이 김○균과 거리에서 만난 후 김○균의 자초지종을 듣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영[7] 과 김○현, 김○윤에게 "○균이 형님한테 급한 일이 생겼으니 인천으로 넘어와라."라며 연락했다. 김○윤은 또 다른 후배 박○홍, 김○곤, 조○철에게 연락해 김○균과 박병섭이 거리에서 마주친 지 4시간 후인 아침 9시경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의 한 모텔에 8명이 모이게 된다.
2.2. 재충돌 및 용의자 검거[편집]
모텔에서 박병섭은 김○균과 사전에 모의한 대로 김○현에게 "오늘 새벽에 ○균 형님이 신포동 놈들과 대판 싸웠다. 다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칼을 준비해라"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김○현은 잡화점에서 길이 20cm의 회칼, 마스크, 목장갑을 4개씩 산 다음 차 트렁크에 싣고[8] 나머지 김○현, 최○영 등 5명은 김○균의 오락실 앞길로 가 차내에서 대기했다.
그날 오후 6시경, 김○균과 박병섭은 오락실 앞으로 김씨와 B씨, 그리고 이 두명의 선배 D씨를 불러내어, 사과를 요구하며 D씨에게 "후배인 김씨를 빠따로 쳐라"라며 요구했다. D씨가 이를 거부하자, 김○균은 차에서 대기하던 6명에게 "놈들이 나오면 쫓아가 칼 한두방 놓아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박병섭은 김○현 등 6명에게 몇 시간 전 잡화점에서 구매한 회칼과 마스크, 목장갑을 차량 트렁크에서 꺼내 나눠주었고, 6명은 기아 카니발과 기아 포텐샤 차량[9] 2대에 나눠 탄 뒤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김씨 일행을 미행했다.
오후 8시 15분경, 김씨와 B씨가 선학동의 한 편의점 앞길에서 하차하자, 택시가 그 앞에 정차하는 것을 확인한 최○영은 차에서 내려 "야 이 XX들아! 느그들 이리 와봐" 라고 소리쳐 주의를 끌고 B씨를 준비한 회칼로 찌르려다 B씨가 도망쳐 실패했다.
최○영은 이번엔 김씨의 멱살을 잡고 "빨리 연장 가져와!"라고 소리치고, 박○홍에게 회칼을 건네받은 최○영과 김○현, 김○윤 3명이 김씨에게 달려들어 다리와 어깨 등을 총 14회 찔렀다.[10]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6일 아침에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사건 15일 후인 2005년 11월 20일 아침, 경찰은 당시 박병섭과 김○균의 범행을 도운 공범 6명 중 3명을 긴급체포하였고, 이때 공범 중 한 명은 박병섭 형님이 김씨한테 사과를 요구했는데 안 해서 저희한테 회칼을 감추고 김씨한테 다가가서 찌르라고 시켰습니다 는 식의 진술을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범 중 2명이 서울의 한 술집에서 이제 자수하자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를 들은 술집 종업원의 신고에 의해 검거되었으며, 사건발생 10개월 후인 2006년 9월, 주범 김○균 역시 검거되었다.
박병섭은 2007년 상반기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고유번호 1번[11]으로 최초 등록 후 2008년 상반기[12] 고유번호 3번[13]으로 등록되었고, 사건 이후 약 2년 반동안 종적을 감추고 잠적하다가 2007년 7월 26일 특명 공개수배 방송을 통해 공개수배되었고, 특명 공개수배가 종영되고 두 달 뒤인 2008년 5월 27일에 2007년 당시 특명 공개수배에서 방송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되었다.
특명공개수배 방영 당시 이창진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살인에 가담한 후배들은 징역 6년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주범 김○균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박병섭은 같은 해 10월에 징역 10년[14]을 선고받았다.
정확한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날 오후 6시경, 김○균과 박병섭은 오락실 앞으로 김씨와 B씨, 그리고 이 두명의 선배 D씨를 불러내어, 사과를 요구하며 D씨에게 "후배인 김씨를 빠따로 쳐라"라며 요구했다. D씨가 이를 거부하자, 김○균은 차에서 대기하던 6명에게 "놈들이 나오면 쫓아가 칼 한두방 놓아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박병섭은 김○현 등 6명에게 몇 시간 전 잡화점에서 구매한 회칼과 마스크, 목장갑을 차량 트렁크에서 꺼내 나눠주었고, 6명은 기아 카니발과 기아 포텐샤 차량[9] 2대에 나눠 탄 뒤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김씨 일행을 미행했다.
오후 8시 15분경, 김씨와 B씨가 선학동의 한 편의점 앞길에서 하차하자, 택시가 그 앞에 정차하는 것을 확인한 최○영은 차에서 내려 "야 이 XX들아! 느그들 이리 와봐" 라고 소리쳐 주의를 끌고 B씨를 준비한 회칼로 찌르려다 B씨가 도망쳐 실패했다.
최○영은 이번엔 김씨의 멱살을 잡고 "빨리 연장 가져와!"라고 소리치고, 박○홍에게 회칼을 건네받은 최○영과 김○현, 김○윤 3명이 김씨에게 달려들어 다리와 어깨 등을 총 14회 찔렀다.[10]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6일 아침에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사건 15일 후인 2005년 11월 20일 아침, 경찰은 당시 박병섭과 김○균의 범행을 도운 공범 6명 중 3명을 긴급체포하였고, 이때 공범 중 한 명은 박병섭 형님이 김씨한테 사과를 요구했는데 안 해서 저희한테 회칼을 감추고 김씨한테 다가가서 찌르라고 시켰습니다 는 식의 진술을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범 중 2명이 서울의 한 술집에서 이제 자수하자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를 들은 술집 종업원의 신고에 의해 검거되었으며, 사건발생 10개월 후인 2006년 9월, 주범 김○균 역시 검거되었다.
박병섭은 2007년 상반기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고유번호 1번[11]으로 최초 등록 후 2008년 상반기[12] 고유번호 3번[13]으로 등록되었고, 사건 이후 약 2년 반동안 종적을 감추고 잠적하다가 2007년 7월 26일 특명 공개수배 방송을 통해 공개수배되었고, 특명 공개수배가 종영되고 두 달 뒤인 2008년 5월 27일에 2007년 당시 특명 공개수배에서 방송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되었다.
특명공개수배 방영 당시 이창진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살인에 가담한 후배들은 징역 6년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주범 김○균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박병섭은 같은 해 10월에 징역 10년[14]을 선고받았다.
정확한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김○균: 1심 징역 12년, 항소심 징역 10년
- 최○영: 1심 징역 14년, 항소심 징역 10년
- 박병섭: 1심 징역 8년, 항소심 징역 10년
- 김○현: 1심 징역 12년, 항소심 징역 10년
- 김○윤: 1심 징역 12년, 항소심 징역 10년
- 박○홍: 1심 징역 12년, 항소심 징역 10년
- 김○곤: 1심 징역 10년, 항소심 징역 7년
- 조○철: 1심 징역 7년, 항소심 징역 4년
위의 관련 인물들은 현재 형기만료로 전원 출소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