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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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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32회 작성일 22-10-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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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에서 내려오자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한다. “민정 씨, 목소리가 너무 예뻤어요. 하나도 안 떨고, 무척 잘 했어요.”

오래간만의 칭찬에 아직 어리고 앳된 얼굴로 빨갛게 뺨을 물들이며 웃는 김민정 씨(30세, 여). 방금 그녀는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주최한 ‘정정당당’(정신장애인의 정당한 권리 당사자가 당당하게 말하다) 공청회에서 전체 사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몇 달간 정신 없이 준비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지난날의 상처들이 여전히 욱신거리지만, 이런 격려를 받고 나면 또 한발 앞으로 내디딜 힘이 생긴다.

지독한 외로움이 만든 사춘기 소녀의 병

민정 씨는 올해 서른이다. 그리고 현재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는 정신질환자이기도 하다. 발병 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면이 있는 것 외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학교생활도 성실하게 하는 발랄한 여중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친구와 말다툼을 하게 됐다. 이유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작은 일이었지만, 그 일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다툰 친구가 주축이 되어 몇몇 친구들이 집단적으로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말로 ‘왕따’를 당한 것이다. 친구들은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여린 사춘기 소녀에게 집단 따돌림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다.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방안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곧 가라앉았고, 그녀는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감정조절이 어려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예상과 달리 녹록하지 않았다. 매일 영어를 써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가족들이 모두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낯선 타국에서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마음을 주고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배신당하면서 그녀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만 갔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게 되자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해져만 갔다.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극심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그래서였을까? 그 즈음, 갑자기 그녀의 귀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했고, 악마가 되기도 했으며, 아이의 목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소곤소곤 떠들던 것이 증상이 심해지면서 “네가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등의 압박을 하거나, “일어나! 앉아!!” 하는 식으로 명령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이것이 환청인지 무엇인지 구별이 가지도 않았고, 무조건 그 말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했다. 환청이 이어질 때면 죽을 듯 괴로운 두통도 함께 왔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머리를 톱으로 자르는 것’ 같이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다. 너무 괴로워서 자살을 수도 없이 꿈꿨다. 왜 자신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신과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차마 자살 시도를 못한 것은 가족 때문이었어요. 팔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가 쓴 책 『Life Without Limits』를 읽었는데, 그는 자살을 하고 싶어지면 자기 무덤에서 우는 가족들을 상상하면서 생각을 돌이켰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가족이 자신의 장례식에 서 있을 것을 생각하면 모진 마음을 먹었다가도 차마 실천할 수는 없었어요.”

치료에 대한 용기와 회복

그녀는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환청 때문에 그만두었던 학교에 다시 복귀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간호전문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학업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약해져 있었고, 환청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결국 그녀는 학교를 그만 두고 치료를 결심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못 이기고 죽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살든 죽든 치료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미국의 치료비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그녀의 가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워하는 엄마를 졸라 홀로 한국으로 왔다. 오직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귀국하자마자 병원부터 찾았다. 조현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것도 당장 입원이 필요한 중증이었다. 그때부터 두 달간 입원해 있으면서 약물치료를 받았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과 입원치료가 불안할 법도 하지만,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증상은 빠르게 좋아졌다.

입원 후에 딱히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던 그녀는 ‘이음’이라는 주거시설에 입소해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만난 이들도, 숙소에서 만난 이들도 그녀에게 편안하고 자상하게 다가왔기에 그녀는 오랜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다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아지니 안정이 찾아왔고, 증상도 수그러들었다.

현재 그녀는 ‘동작 하늘샘’이라는 주거시설에서 머물며, ‘태화 샘솟는 집’이라는 복지시설을 통해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시설의 소개로 일을 갖기도 했다. 첫 직장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두터운 편견의 벽,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성공적인 사회 복귀에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내친김에 어린 시절 꿈이었던 간호사의 꿈을 이루고 싶어졌다. 병력이 있기 때문에 의료인인 간호사가 되는 것은 힘들겠지만, 법적으로 의료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간호조무사는 병력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간호전문학교를 다녔을 때도 우수생으로 칭찬을 받았던 만큼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녀는 간호조무사학원에 등록하고 간호조무사의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이론수업을 모두 마치고 실습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에겐 실습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병력이 있기 때문에 간호조무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관련 규칙과 자료들을 찾아가서 따져보았지만 학원 측 태도는 완강했다. 결국 그녀는 쓸쓸하게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큰 좌절이고 상처였지만, 다행히 그녀는 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만난 그녀의 동료들, 자원봉사자들과 상담선생님들이 그녀를 울타리처럼 지켜주고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서 깊은 교감을 이루는 동안 마음은 한층 강해졌다. 어떤 아픔이 있어도 ‘미국에서의 그 시간만 하랴’는 생각이 들면 두렵지도 않았다며 그녀는 웃으며 얘기했다.

“그 많은 직업 중 이제 하나 도전해 봤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녀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번듯하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은 작은 라디오 DJ에 도전을 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녀가 다시는 정신질환장애인복지시설인 ‘태화 샘솟는 집’에 작은 라디오 방송실이 생겼는데 거기에 DJ로 응모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 종교방송국 등을 시작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유명 DJ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살포시 기대감도 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우선 자신처럼 외로움에 아픈 이들에게 선배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처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꿈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단호한 목소리로 싸울 것이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로 머리 속의 허깨비 같은 목소리에 갇혀 있었던 사춘기 소녀는 이제 새장을 던지고 훨훨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이 두렵고 무섭기도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서 용기를 내어 본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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