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왜 먹고 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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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14회 작성일 22-11-02 11:18본문
깡마른 체격,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의 A씨(24세, 女)는 항상 표정이 어둡다. 오랫동안 불면증과 우울감, 의욕 상실을 앓고 있으며, 자기비하적인 생각도 끊이지 않아 괴로운 날들이 많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자기 외모에 자신을 잃고 날씬한 몸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음식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소보다 조금 적게 먹거나 가끔 끼니를 거르는 정도였지만, 점차 절제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하지만 식욕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식욕을 참는 대신 음식을 먹은 후 화장실에서 토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아예 식사를 하지 않는 까닭에 엄마와는 싸움을 하기 일쑤였고, 가족 식사 모임도 가지 않으려고 해서 가족과 갈등도 심해졌다. A는 자신이 못생겼고 볼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하는 체중이 되었지만, 만족이 되지 않았고, 언제든 다시 살이 불어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녀는 음식을 밖에서는 거의 먹지 않았고, 집에 들어갈 때면 성인 3~4명은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을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먹고는 토하기를 반복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성들을 만났지만,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우울감은 더욱 심해졌고, 불면증, 의욕 상실에 힘들어하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왜곡된 우리의 미의식
텔레비전을 통해서 매일 보여지는 여성들의 몸매는 날이 갈수록 마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만 봐도 제목에는 ‘극세사 다리’, ‘초절정 날씬 각선미’ 등 마른 몸매를 강조하는 문구가 달려 있다. 누군가 다이어트로 몇 주 만에 수십 kg을 감량했다는 기사는 항상 조회수 상위권에 등극한다. 그만큼 마른 몸매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뜻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깡마른 여배우들과 가수들의 마른 몸매는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자신의 몸매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고 열등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최근에는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외모지상주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신체 이미지를 비뚤게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여학생 중 5% 정도만이 과체중이지만, 실제로 정상 체중의 여학생 중 35% 이상이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10대 청소년들이 왜곡된 신체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식사로 나를 통제한다?
날씬함과 가녀림, 섹시함과 같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문화풍조도 문제지만, 자기를 통제하려는 욕구가 과한 것도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삶이 섭식, 즉 먹는 것으로 대치되어 먹는 것을 통제하려는 행위로 그 욕구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불안감을 심하게 느끼거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종종 이런 증상을 찾아볼 수 있다. 불안감은 스스로가 조절하기 어려운 감정이고,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은 자신의 조건이나 외모 등에 끊임없이 실망하고 좌절감을 느끼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느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제대로 삶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 종종 사람들은 먹는 것을 통해 통제력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체중을 달성하게 되는 것만이 자존감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혹은 문제를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거식증이 뭐길래…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은 비만에 대해서 병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는 상태로, 마를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여성 200명중 1명꼴로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과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도달한 것에 대한 희열감을 느낀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거식증 환자들은 다이어트를 계속하여 피부와 뼈만 남을 때까지 온갖 수단 방법을 이용해서 살을 빼기 시작한다. 식사를 계속 줄여가면서 체중의 상당 부분이 빠지게 되는 것은 물론, 생리가 중단되고 급기야 몸이 위험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거식증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식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식에 대한 생각에 심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또 살찐다고 여겨지는 음식을 극도로 제한한다. 적게 먹기 위해서 음식을 잘게 자르고 그릇에 늘어놓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초반에는 대개 음식을 극도로 절제 하지만, 식욕을 오랫동안 참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먹고 토하는 식으로 발전하곤 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이 오래되면 더 이상 음식 절제가 어렵기 때문에 신경성 폭식증으로 변하기도 한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여성은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늘어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항상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 때문에 강박적으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었다 싶으면 체중 조절을 위해 일부러 구토를 하거나 살 빼는 약을 먹기도 한다. 심각하게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태를 부인한다.
마른 몸매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급기야 삶의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목표로 바뀌게 된다. 신체적 문제 또한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다. 깡마르게 된 몸이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여성 자신에게는 예뻐졌다는 만족감을 줄 진 몰라도, 신체적으로는 부정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볍게는 변비와 복통, 어지럼증, 전신 부종, 마르고 건조한 피부, 생리 불순, 골밀도 감소 등이 생기게 되며, 가임기의 여성은 불임까지도 올 수 있다. 심각한 거식증으로 인해 저체중이 된 경우에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모델과 같이 마른 몸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갖기 쉬운 여성들 중에는 거식증을 앓다가 사망에 이른 경우도 더러 있다.
신경성 폭식증이란?
음식 섭취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종종 반복적인 폭식으로 이어진다. 폭식증을 앓는 사람들은 대개 보통 사람이 한번에 먹는 양의 몇 배를 한꺼번에 먹게 되고, 곧 이어 후회를 하게 된다. 폭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를 피하기 위해 구토를 하거나, 이뇨제 등을 복용하기도 하고, 지나친 식이 제한이나 과도한 운동을 시도하기도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조절력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폭식증 환자들의 상당수는 정상체중이고 때론 과체중인 경우도 있다.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처럼 이들 역시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신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들은 한 번의 폭식에 1000~2000칼로리를 소비하는데, 폭식 회수는 일주일에 한 두 번에서 하루 수 차례까지 다양하다. 폭식을 끝나면 죄책감, 우울한 기분, 자기 혐오가 뒤따르게 된다.
보통 폭식을 하고 나면 자발적으로 구토를 하려 하거나, 설사약을 마구 먹는 등 충동적인 폭식의 결과를 해소하려는 보상 행동을 보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단순히 폭식만을 하는 예도 있다. 신경성 폭식증 환자의 1/4~1/3에서는 과거에 신경성 식욕부진을 앓았던 병력이 있다.
식이장애 얼마나 흔할까?
거식증과 폭식증에 관한 제대로 된 국내 연구는 별로 없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15~40세 여성의 1~2%가 신경성 폭식증을 겪고 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은 10만명 당 1~5명의 비율이며, 대부분 10대 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2010년 자료에 의하면 13~18세 사이 평균 유병률이 2.7%였고, 여성의 경우 3.8%, 남성의 경우는 1.5%로 여성이 남성의 약 2배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연구에 따라서 여성과 남성의 성비는 10배에서 20배까지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