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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희망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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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19회 작성일 22-11-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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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립 희망원은 1958년 개설된 대구광역시의 복지시설이다. 초창기 원장은 정인택이었으며, 이후 1980년 순수 민간으로만 운영되던 시설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이관되었다.[1]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동안 정부로부터 전국 우수 부랑인 복지시설로 계속 운영되고 있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대통령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2]

그러나 생활인들에 대한 학대 감금 폭력 사건, 생활인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국가보조금 등이 횡령으로 빼돌려지는 등의 비리 문제가 발생하였다. 열악한 시설 운영으로 6년 간 309명이 사망했는데, 2014~2016년까지 확인된 것 만으로도 129명의 생활인들이 사망하는 등 수십년간 참혹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대구 희망원은 한국 천주교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고, '천주교가 운영한 '인간사육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2.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편집]

2016-10-08, #1048, <가려진 죽음 - 대구 희망원, 129명 사망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3. 희망원 1기(민간운영), 그 운영 실태[편집]

1958년도에는 당시 사회적 약자 격리시설이 그렇듯 학대가 일상이었다고 한다. 초창기 입소자였던 임대관 옹의 증언으로는 전후 부모를 여의고 대구에서 부랑하던 고아였는데,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격리시설 담당자들이 발견하더니 전용 차량에 강제로 탑승해서 수용했었는데, 고문과 폭행은 일상이었다고 하며 심지어 개줄을 걸어서 부리기도 하였다. 임 옹은 대가리박기 때문에 이미 탈모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왼손에 고문을 당해서 왼손이 불구가 되었으며, 그의 증언으로는 당시 어림짐작으로 일주일에 평균 5명이 죽어나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단 사망한 사체는 그냥 대충 장기간 자연 부패되도록 방치하였다고 한다.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당시 3~4공 정권에서 대외적 여론 호도를 위한 복지시설 수상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980년에 5공 정권으로 바뀐 뒤 100% 민간으로만 운영되던 시설은 정부에 의해 천주교 대구대교구로 운영이 이관했다. 당시 80년대에 부산 형제복지원이 한창 신나게 비판당할 무렵이었는데, 이 시설만은 천주교 및 종교단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 때문에 늦어도 2016년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교황 대사가 방문하고 갈 정도였다.

4. 천주교 이관 이후의 희망원 2기[편집]

천주교에서 운영한다고 하니까 그만큼 안에서 잘 짜져서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예전에 그렇게 때려죽이고 병 들여 죽이고 했으면 되었지, 이게 지금 대한민국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 임대관, 1960년대에 7년간 수용되었던 원생

그리고 명목상으로 원장신부를 수장으로 두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자는 김○○ 부원장이었으며 실질적으로도 원장신부보다도 발언권이 훨씬 강했다고 한다. 원장신부는 그저 부원장에 호의적일 뿐인 소악당 바지사장에 가까웠다. 애초 김 부원장은 종교직도 아니었으며, 원래 희망원 부원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대구광역시의 일개 공무원이었지만 인수과정에서 낙하산 인사인지 부원장 자리직에 앉았고 실질적으로 2기 희망원 전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2기 희망원의 전말이 알려진 시점에서 그는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2016년 초부터 익명의 투서들이 대구광역시 주요 공기관 및 천주교 단체에 송신되는 걸 시작으로 의혹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시민단체와 야권 정치인들로 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해 2016년 9월 19일 현장 조사를 하자 깨끗한 것처럼 보이려다가도 몇몇 의혹에 대해서 변명하는 시설 관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장 조사 후 일단은 관리 중역에 있는 바지 사장 및 그 하수인 성직자들과 어찌 면담까지 하였다. 그중 배식 의혹에 대해서는 "식자재 구매 내역을 옳게 검수하지 않았다 이거지요" 극구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시민 연대쪽에 우리가 조사를 받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일단은 의원님 선에서만 응답받도록 하겠습니다"라면서 이 간담회가 더 알려지는 것을 어떻게든 원치 않는 눈치였다. 또 어떤 사제는 "공정하게 모든 부분들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지만, ''악의를 먼저 가지고 와서 그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좀…"이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러한 전말은 국가인권위 및 진상위의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늦게 잡아도 2014년부터 2016년 중순까지 전체 수용인원의 10%인 129명이 사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4.1. 원생에 대한 강압적 관리[편집]

25년간 근속했던 전 스탭 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인들을 한 방에 쑤셔넣는 건 기본이었으며, 폭염 같은 집중 관리가 필요한 기간도 예외는 없었다. 이때 사망자가 나와서 성직자로 구성된 상부에 호소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담당선생한테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일축했다. 자신이 당시 근무했던 동 건물에서 8년을 일한 동안에 관리직 성직자들이 올라온 일들이 없었다고 한다.

6년 근속했었던 전 스탭 민○○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 원생의 신체에 몸을 구속당한 흔적이 자주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심리안정실이라는 이름의 독방은 명목적으로는 조현병 환자의 '폭력성 행위 방지'를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외부에서 잠그고 내부에서는 정상적으로 빠져나올 길이 없는 사실상의 독방으로 운영하다시피 했다. 강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독방에 수용되는 이들은 규율을 어긴 원생에게 징계라고 해서 심하게는 3주~1달이상 격리시켰다고 한다.

직원들에 의한 폭행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특히 말이 어눌하거나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뺨을 때리는 식으로 은밀한 폭행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4.2. 시설문제[편집]

목욕탕의 구조도 전혀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도 허술해서, 몸 불편한 사람이 목욕하다 미끄러져서 죽어도 모를정도.

4.3. 외부 자원봉사자 및 내부 직원에 대한 입단속[편집]

그동안 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숱하게 왔지만 대부분의 외부 봉사자들에게는 정해진 코스로만 봉사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근속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실상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6년 근속했었던 전 스탭 민○○ 씨의 증언은 상부 관리직들이 '봉사자로서 을 지켜라, 여기서 본 것을 그대로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걸 삼가라'고 지시했었다고 한다. 또한 공익으로 근속했던 최○○씨는 희망원 측에서 입단속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한다.

시설 내의 부조리를 함구하는 데에는 종교인이었던 중간 이상 관리직들도 마찬가지여서, 전직 직원이었던 박○○씨는 "신부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한 울타리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 되겠냐, 구타 장면을 목격한 건 알겠지만 물증도 없는 네 증언만 가지고는 그냥 처벌을 해야 되겠냐"는 식으로 나왔다고 증언한다.

그나마 내부에서 작성한 자체 감사 보고서도 '모든 규칙에 의거되고 잘 처리… 전문적이고 잘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하며… 회계 처리가 적정하였다'는 식의 짧은 자화자찬이 전부다. 이에 대해서 임성무 사무국장은 "작은 시민사회조차도 감사보고서를 A4 한쪽으로 쓰지 않습니다"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4.4. 허술한 관리 - 직원 프렌들리[편집]

고된 직업이라 알려져 있는 사회복지사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의 직원들은 처우가 좋았으며, 근무시간도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일정했다. 대부분의 직원이 다 그렇게 일하며 칼퇴근을 한다. 특히 이러한 '직원 프렌들리'는 간부급일수록 더 두드러지는데, 이런 간부급이 받는 연봉이 타 복지시설의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천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교대~3교대 등 야간 교대 시스템이 제대로 있던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한 이후에는 소수의 인원과 관계자만 남는데, 그 안에서는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원생들을 모니터링할 인원은 부족하고, 자연스레 원생들은 방치되며, 원생들을 구별 없이 대충 몰아넣는(것으로 추정되는) 수용형태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건장하고 험상궂은 원생들이 약한 원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약육강식의 수라가 되기 일수였다.[4] 원생 간의 폭행으로 인한 사인으로 의심되는 시설 희생자들도 종종 있었다. 이런 희생자들은 보통 병으로 죽었거나 자기 실수로 죽었다는 식으로 사망진단서가 끊어졌다고, 진상위에 참여했던 야당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밝혔다.

심지어 원생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동안 직원들은 원장신부 축일 파티를 성대하게 치른다면서 인근 성당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연습/시행하였다는 관계자 증언까지 나왔다. 2~3주 동안 연습하는데, 하루 전이 되면 직원들이 시설 일은 뒷전이고, 오히려 그 시간대에 축일파티 리허설에 매진했다고 한다.

4.5. 시설 내 의료 문제[편집]

양심 있는 하급 직원이 문제가 생긴 원생에게 응급조치를 취하려고 하면 상급자 직원이 봉사자의 영역이 아니라면서 제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약품 관리의 경우, 냉장 보관해야 할 약품들이 상온인 일반 수납장 안에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도록 굴러다니는 경우가 숱했다. 담당직원 말로는 냉장고 공간이 모자라서였다고 하지만 9월 19일 진상위 현장 조사에 따르면 냉장고에는 약보다 남아도는 술, 기타 식품같은 것들이 먼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투약 과정 자체도 문제였는데, 항상 칼퇴근 본능에 시달리는 절대 다수의 직원들이 칼퇴근하더라도 약은 먹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녁 때 먹어야 할 것을 한낮에 먹이는 일이 빈발했다. 게다가 처방의 대부분도 수면제성분인 클로르프로마진인데, 안 그래도 빈속에 먹는 것이라 약효가 더 강할 수밖에 없었고, 정작 저녁 먹을 때에 원생들이 졸려서 빌빌댔다.

또한 어떤 홍보사진에는 야외에서 장사진을 세워놓아 가면서 1명씩 천천히 정신병리용 약을 먹이는 모습이 버젓하게 내걸려 있었는데, 땡볕 아래라 그렇다고 하면서 장기 근속직원도 충격적이라고 회고할 정도다. 관리 인원 부재는 의료적으로도 자연스레 적용되어서,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한 시간이 되면 간호 인력도 부족해 의료 사각에 놓이는 경우가 훨씬 빈발했다. 윗선의 고의적 지시인지는 불명이지만 이러한 시설 내 응급상황이 일어나는데도 119를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 의료진조차도 119가 어딘지 모른다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희망원에서 불과 1마일 정도 위치한 지역 119에서는 희망원쪽의 응급 제보를 접수받은 기록이 전혀 없으며 지역 119 서장조차 희망원의 문제점을 신문을 보고서야 알게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서장의 증언으로는 "공공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내부적으로 쉬쉬해서 노출이 안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내부에서 알리지 않고 싶은 그런 것도 있지 않나 당장 타박상 같은 경우는 눈으로 드러나잖아요."해서 고의적으로 신고를 안 했음을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시설 측에서는 119보다는 연계병원을 주로 이용했으나, 그 연계병원이라는게 시설에서 20~30분정도 떨어진 소규모 병원[5]들이다. 심지어 가장 먼 연계병원이라는 시설은 영천시에 위치해 있다. 이러다보니 그 멀고 먼 후송과정에서 원생이 사망하면 도로 돌아와서 진단 끊어주기 일수다. 그나마도 사고사로 처리하면 경찰과 엮여서 골치아파질 테니, 시설 내의 윗선에서 거의 내사 처리 수준으로 덮는다는 것이다. 하급자들은 입바른 소리만 해도 찍히기 때문에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4.6. 급식 문제[편집]

섭식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일 때, 식탁이나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시도도 없이 그냥 누운 상태에 올라타서 밥을 우격다짐으로 떠넣으라는 지시를 했다. 잘못하다가 식품이 기도에 막혀서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방식인데, 그냥 감행했다고 한다. 이때 밥을 먹는 원생은 제대로 음식이 들어갈 일도 없으니, 음식을 뿜는 게 다반사였으며 섭취도 제대로 될리 없었다.
처음에 이렇게 밖으로 드러난 문제는 급식에서 썩은 사과가 나왔다,
-임성무,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6] 전 사무국장
[7]

이것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원생들 급식으로 썩은 사과가 배급되었다는 의혹에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당시 썩은 사과를 배급한 영양사는 3개월 감봉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졌으며, 그나마도 얼마 안 가 오히려 승진까지 했다. 진상위 조사과정 중 이 의혹에 관해서 해당 영양사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납품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형사고발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는 사과가 영양사의 친오빠가 운영하던 농장에서 공급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식을 허접하게 하는 동안 상급 직원들은 고기를 청구하는 식으로 단가 조작, 수량 부풀리기 등으로 식자재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 익명의 투서에 따르면 2012년의 식자재 납품 과정에서 챙긴 착복 차익만 해도 무려 3.15억에 달한다.

5. 김 부원장 전용 하녀 의혹[편집]

1988년 입소 후 2011년 사망한 서○○원생은 입소한지 10년된 1998년부터 부원장의 개인 비서로서 부원장 앞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주로 부원장 집안의 허드렛일을 맡았다.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이었고, 정신질환자지만 온순한 성격 때문에 저항감이 덜해서 기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월급 4만원으로 부려먹었다.

부원장의 아들 역시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는데, 허드렛일로도 모자라 부원장의 아들까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부원장의 아들과 관련된 잡무까지 떠넘기고 있었다. 당시 부원장 아들에게 붙었던 전직 활동보조사 중 한 명은 서씨가 부원장 집으로 들락날락하는것에 대해 "제가 알기로 자발적으로는 희망원에서 그렇게 못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서씨 스스로 부원장 집을 들락날락한 게) 당연히 상궤에서 대단히 벗어난 일이라 생각했다"라고 증언한다.

25년 근속 前 직원 역시 지적장애도 있던 그런 사람(서씨)를 자기 아들 돌보라고 보낸 것 자체가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이 사실은 중급 직원 이상이었으면 공공연하게 아는 비밀이었지만 하급자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입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잡일로 부려먹은 것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원장이 서○○에게 자신의 아들과 성적인 접촉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 관계자 송○○씨가 고발한 사례에 따르면 아들에게 목욕을 시키는 과정에서 아들의 음경부분을 씻으라고 집요하게 강요했으며, 나중엔 아들이 TV를 보는 일상생활 도중까지 아들의 음경을 만지라고 했다. 이때는 서씨가 거부의사까지 밝혔지만 강제로 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연령이 낮아 순한 성격에 순종적이라 해도 2010년부터도 그녀가 지쳤는지 하녀 일이 힘들다는 고통을 호소했다는 기록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SBS<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이 김 부원장을 취재했을 때 부원장 내외는 그녀가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성접대 강요에 관해서 묻자 이를 극구 부정했다.

5.1. 의문사[편집]

2011년 11월 27일 사망 당시 사인은 폐렴 및 호흡부전이었는데, 죽기 1일전의 상태를 감안하면 거의 급사 수준이라 사망 직전의 의료처리 과정을 미필적 고의에 가깝게 방치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사망하기 1주일 전 시작은 분명히 감기였는데, 관리소홀인지 병이 사망 하루 전 패혈증으로 악화된 것이었다. 3차 이송으로 지역 대학병원에 이송되었는데, 큰 병원 중환자실에서 관리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상황에서 2차 이송병원이었던 좀 더 작은 병원으로 역후송을 했다. 이는 의학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대단히 상궤를 벗어난 일이었다고 김대희 교수(가톨릭대 의대)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당시 희망원 간호팀장은 오히려 "대학병원 의료진이 그분은 가망이 없으니까 2차 병원으로 옮기라는 처방을 내려서 우리가 옮겼다"라고 해명하고 자체적으로도 '가망 없음'으로 기재했지만 패혈증의 경우 가장 나쁜 순간만 잡아내면 암과 비교해서 생존율이 훨씬 높은 상황임에도 갑자기 가능성이 없다면서 역후송한 거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김대희 교수는 지적한다.

당시 결정권에 대해서 당시 간호팀장은 당직자보다도 윗선의 입김이 셌다면서, 2차 병원 역후송을 묵묵히 지시받고 수행했다고 항변한다. 상급자인 사무국장은 "(우리도) 3차 병원에 있겠다 이런 부분으로 이렇게 건의도 하고 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못한 것은 저희의 실수입니다" 라면서 항변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정황을 낱낱이 물고 늘어진 바에 따르면, 2차 병원으로 옮긴 장본인은 간호팀장임이 기정사실화되었다.

6. 주변 주민들의 증언[편집]

오지 시골이나 섬 같은 데에 있는 격리시설[8], 그외 각종 작은 사회적 환경과 달리 다른 시민들이 사는 아파트나 민가에 둘러싸였기 때문에 시설에서 나는 소리를 인근 주민들이 듣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새벽에 매를 맞는 소리인지 뭔지 몰라도 시끄럽거나 으엉으엉거리는 애들 우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새벽에도 소리가 났다" 는 증언을 호소했지만 외부인의 한계 때문에 관리가 조금 미흡한 정도로만 여긴 사람도 있었다. 아파트 경비에도 민원이 들어왔고, 경비원도 그 소리를 들었는데, 특히 여름밤에 막 고함을 지르고 여자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더라는 증언을 하고 있다.

7. 반응 및 여파[편집]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 권익단체가 폭발했다. 특히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며 탈시설 아젠다를 밀어주는 진보 계열 장애인 권익 단체들에서는 더더욱.

희망원 측은 해명에 나섰지만… 문제는 해명 기사가 난 곳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운영 중인 매일신문이었다.

7.1. 대중들의 인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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