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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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971회 작성일 22-11-17 14:21본문
평화롭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갑자기 보호자에게 떠밀려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보호자는 현재 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신의 의지와 달리 이송된 환자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외래에서 진료를 보면 자신 및 가족의 정신적인 상태에 대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해 달라고 요청 받을 때가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니라면 사실상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다를 때 ‘비정상’과 ‘정상’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정신건강의학과적 관점에서의 ‘정상’과 ‘비정상’
‘정상’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특별한 변동 없이 제대로인 상태’, ‘지극히 평범한 상태’라고 나와 있다. 일반적인 의학 영역에서는 정상 여부를 질병의 유무나 검사결과의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해 ‘있어야 할 것이 다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을 때’가 정상이다.
정신건강의학과적 면담에서는 환자가 정상이냐 아니냐를 어떠한 사실의 유무로 판단하기가 가장 어렵다. 예를 들면, 며칠 전 남편이 사망한 뒤 슬퍼서 대성통곡하는 아내의 모습은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주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간주하고 그 배경을 알아보아야 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누군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을 하는데 남편이 실제로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거나, 과거에도 바람을 피운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남편이 성실하고 전혀 바람을 피운 정황이 없는데도 아내의 의심이 계속되고, 그러한 의심이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의심은 비정상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실에 대처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고 독특한 경우에도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할 때는, 환자가 처한 상황과 과거의 경험, 어떤 일의 개연성 등을 모두 따져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정상과 비정상이 비교적 쉽게 판단되는 증상도 있다. 예를 들면 망상이나 환각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영역의 정상과 비정상은 일반인들도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환청이나 “사람들이 나를 계속 감시하고 도청한다”는 피해망상, "나의 특별한 능력으로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다"는 과대망상과 같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감각 경험이나 생각이 있다면 비정상인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신증 환자가 모든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환청이나 망상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는 않아도, 과거에 비해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위생관리를 못 하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는 등 부적절한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증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증상이다. 따라서 환청이나 망상의 유무만을 가지고 환자를 평가하려 한다면 자칫 병적인 모습이 간과될 수도 있다.
‘현실의 왜곡’은 곧 정신증의 증거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환자들이 현실이 아닌 다른 행성이나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들의 사고 기반 및 체계가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환자가 주장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 일상생활의 유지가 힘들어지는 경우까지 발생하게 된다. 또 정신증 환자들은 현실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현실의 일부분을 왜곡해서 보기 때문에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왜곡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정신증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다수의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도 사물이나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좁혀지지 않는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