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공기총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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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02회 작성일 22-12-13 14:15본문
1. 개요[편집]
2. 사건 전개[편집]
2.1. 용의자 김양호와 아내의 별거생활 중 김양호가 세운 범행 계획
이 사건의 용의자인 김양호(당시 25세)는 사건 발생 3년 전인 1993년에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가 만난 같은 공장 여직원 서씨와 사귀었고 1994년경부터 동거를 시작해 1995년에 이 둘은 결혼을 했다.[4] 동년 8월엔 딸을 낳았으며[5] 이 세 가족은 오순도순하게 살 줄 알았는데...
하지만 김양호와 서씨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크게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김양호와 서씨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크게 곤두박질쳤다.
- 딸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심한 부부싸움 끝에 서씨가 가출하자, 졸지에 혼자가 됨과 동시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김양호는 서씨가 친정으로 도망갔으리라는 낌새를 알아챘는지 서씨가 가출한 그날 밤에 아내가 불안해서 떨고있든 말든 상관없이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부산의 거리 일대에 놓인 공중전화로 처갓집에 전화를 걸어 서씨를 끈질기게 추적[7]하였고, 통화 중에 아내로부터 앙심섞인 말[8]을 들음에도 김양호는 포기할 수 없다며 기어이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리라는 생각으로 꼬박 33일 가량을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자신의 고향이자 자택이 있던 부산[9]에서 아내의 친정이 있는 영주까지 무려 240km 가량의 거리를 홀로 전전하던 중에 우연찮게 아내 서씨와 만나게 된다.
- 이때 33일 동안의 끈질긴 추적 끝에 아내를 만난 김양호는 반가움보다 배신감이 차올랐고 아내에게 화해하는 척하며 아내와 친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10]
2.2. 계획된 범행 실행[편집]
사건 전날이자 김양호가 부산과 영주 일대를 물색하며 아내를 찾기 시작한 지 33일 뒤인 9월 20일 오후 5시 30분에 영주 시내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세 식구는 저녁 식사를 하게되며[11],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던 김양호는 아내에게 "오늘 밤은 셋이서 같이 보내자" 라고 하며 제안을 한다. 김양호의 제안에 아내는 그러자며 수긍을 했고, 이후 이 둘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내는 친정집에 가서 딸의 기저귀와 분유를 가져오겠다 하는데 김양호는 나중에 부산으로 가서 사면 된다는 등의 말을 하였고, 서씨가 딸을 데리고 모텔로 가려고 했지만[12] 김양호는 모텔 객실료보다 호텔 객실료가 더 비쌈[13]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호텔만 고집했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친정집에 들른 후에 모텔로 가겠다 했지만 김양호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아내의 손에서 딸의 젖병을 자신의 손에 넣은 뒤 딸을 데리고 같은 날 저녁 7시에 풍기읍 성내리에 위치한 1성급 호텔인 풍기호텔[14]에 체크인을 하고 7층(703호)에서 투숙했다.[15]
김양호는 객실에 입실한 후 맥주를 연신 들이켰고, 아내 서씨는 식사 후 흩어진 지 9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김양호는 이에 더 큰 배신감을 느꼈고, 네가 끝까지 날 버리는구나 라고 분노하며 호텔에 체크인을 한 지 9시간 20분 가량 지난 21일 새벽 4시 20분, 딸이 잠든 걸 확인한 김양호는 집을 나설 때 들고 나간 짐가방에 미리 넣어놓은 공기총[16]을 꺼내고 탄환을 장착한 뒤 딸을 눕혀놓은 침대로 총구를 겨냥하여 자고 있는 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딸은 김양호가 발사한 공기총에 맞아 아무 말도 못 하고[17] 과다출혈로 숨졌다.[18]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친딸에게 무기를 겨눠 잔인하게 살해한 김양호는 야밤에 호텔을 빠져나와 객실 열쇠를 반납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층의 위치 기준으로 최소한 6, 7, 8층[19]에서 총성이 감지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이 상황에 대한 최초 신고가 어떻게 접수되었는지의 기록은 불명이다.[20]
사건 발생 3일 후인 9월 24일, 김양호는 충청남도 당진군에 위치한 한보철강[21]까지 이동해 그곳에서 일을 시작[22]했고, 이때 김양호는 회사 전화로 처갓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서씨가 계속 찾으며 추궁하자 입술만 빨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후 김양호의 공식적인 행적은 끊기고 말았다.[23][24]
김양호는 객실에 입실한 후 맥주를 연신 들이켰고, 아내 서씨는 식사 후 흩어진 지 9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김양호는 이에 더 큰 배신감을 느꼈고, 네가 끝까지 날 버리는구나 라고 분노하며 호텔에 체크인을 한 지 9시간 20분 가량 지난 21일 새벽 4시 20분, 딸이 잠든 걸 확인한 김양호는 집을 나설 때 들고 나간 짐가방에 미리 넣어놓은 공기총[16]을 꺼내고 탄환을 장착한 뒤 딸을 눕혀놓은 침대로 총구를 겨냥하여 자고 있는 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딸은 김양호가 발사한 공기총에 맞아 아무 말도 못 하고[17] 과다출혈로 숨졌다.[18]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친딸에게 무기를 겨눠 잔인하게 살해한 김양호는 야밤에 호텔을 빠져나와 객실 열쇠를 반납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층의 위치 기준으로 최소한 6, 7, 8층[19]에서 총성이 감지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이 상황에 대한 최초 신고가 어떻게 접수되었는지의 기록은 불명이다.[20]
사건 발생 3일 후인 9월 24일, 김양호는 충청남도 당진군에 위치한 한보철강[21]까지 이동해 그곳에서 일을 시작[22]했고, 이때 김양호는 회사 전화로 처갓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서씨가 계속 찾으며 추궁하자 입술만 빨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후 김양호의 공식적인 행적은 끊기고 말았다.[23][24]
3. 김양호의 도주 이후
1999년 8월 25일, 김양호는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통해 공개수배가 한 차례 이루어졌고[29], 이후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에 2007년 상반기[30]까지 올라왔으나[31]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인 2011년 9월 20일까지 검거나 자수 등에 대한 말이 존재하지 않아, 현재 이 사건은 끝내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32]
이후 1999년에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양호는 검거나 자수 등의 말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사망했거나 어딘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지금 잡는다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나, 한 가지 희망이라면, 김양호가 해외로 도피했을 경우 공소시효는 정지되어 처벌이 가능해진다.[33]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범인을 발견하면 꼭 신고하도록 하자.
이후 1999년에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양호는 검거나 자수 등의 말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사망했거나 어딘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지금 잡는다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나, 한 가지 희망이라면, 김양호가 해외로 도피했을 경우 공소시효는 정지되어 처벌이 가능해진다.[33]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범인을 발견하면 꼭 신고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