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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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32회 작성일 22-12-28 17:39본문
1. 개요[편집]
梅毒 / Syphilis
성병의 하나. 전염력이 매우 강하고 위험한 성병이다. 트레포네마 팔리듐(Treponema pallidum)이라는 스피로헤타(spirochetes) 병균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매독(梅毒)'이라는 이름은 1기 매독의 피부 궤양이 매화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었다. 특이한 모양의 박테리아는 진단을 좀 더 빨리 내릴 수 있게 해준다. 회오리 모양의 박테리아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독의 영문명은 syphilis인데, 이것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의사인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에 쓴 '시필리스 혹은 프랑스 병'에서 오비드에 등장하는 목동 시필리스의 이름을 따왔다.
성병의 하나. 전염력이 매우 강하고 위험한 성병이다. 트레포네마 팔리듐(Treponema pallidum)이라는 스피로헤타(spirochetes) 병균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매독(梅毒)'이라는 이름은 1기 매독의 피부 궤양이 매화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었다. 특이한 모양의 박테리아는 진단을 좀 더 빨리 내릴 수 있게 해준다. 회오리 모양의 박테리아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독의 영문명은 syphilis인데, 이것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의사인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에 쓴 '시필리스 혹은 프랑스 병'에서 오비드에 등장하는 목동 시필리스의 이름을 따왔다.
2. 역사적 배경[편집]
매독의 등장 배경에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
한 가지 설은 아메리카 대륙의 풍토성 성병이 매독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유럽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의 매독균을 보유한 원주민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후 유럽 대륙으로 귀환하면서 구대륙에 매독이 유입되었다는 것.
또 다른 설도 있다. 이미 유럽에 매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시기로 거슬러 올려 잡은 것은 미국 노스이스트 오하이오 관절염 연구센터의 병리학 연구팀이 이탈리아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흑사병 시기까지의 시체 688구를 연구한 기록[1]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매독에 걸리면 뼈에 독특한 상처와 함께 변형이 일어나는데[2], 이것이 800년 전의 사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그럼 왜 매독의 존재를 몰랐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은 그게 매독인지 몰랐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미 이전에 쓰여진 유럽의 임상 기록에도 매독의 흔적은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이것이 매독이라는 증거는 없어서 의학적인 논증을 거치진 못했다. 그럴거라는 심증만 존재할 뿐이다.
매독의 대유행 양상을 살펴보면, 콜럼버스 원정대가 유럽으로 귀환한 이후인 1493년을 기점으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매독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프랑스에도 번져나갔다고 한다. 곧이어 발발한 1494-98년에 1차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프랑스군이 나폴리를 점령함에 따라 이탈리아에도 뿌리를 내렸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이 질병을 확산시킨 군대의 소속을 따서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에서는 질병이 확산되기 시작한 장소를 따서 '나폴리 병'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엔 놀랍게도 20년만에 당시 통상무역을 했던 일본에서도 매독이라는 질환이 나타나고 조선에까지 유행하기에 이른다. 조선에 매독이라는 성병이 퍼진 것은 유럽과 교역을 진행한 일본에 외교관과 상인이 드나들면서부터였다. 물론 당시 중국인 명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골칫덩이인 병이었고 매독은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유행 양상을 보였다. 불과 몇십 년만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병이 비행기도 없고 범선만 존재하던 시절에 지구 정반대편인 동아시아에까지 유행하게 됐다. 게다가 그 증상과 예후가 매우 치명적인 병이기에 이를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전염성이다.[3] 재밌는 것은 상술된 것처럼 매독은 성병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매독이 퍼졌을 당시 유교의 국가에서 이런 병이 퍼졌을리 없다고 생각해 중국병이라는 뜻의 '당창'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후에는 왜놈들의 병 혹은 '외세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럽도 '스페인병', '나폴리병', '프랑스병' 등 병이 유행한 당사국이 문란하다고 생각한 외세의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로부터 구대륙에서의 존재가 확인된 주요 전염성 성병은 임질이었다. 그에 비해 매독은 갑자기 새롭게 나타난 질병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성병인지도 몰랐고, 한센병의 아종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특징적인 전염성으로 인해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전염될 수 있다고도 생각된 데다가 치사율과 통증이 극도로 심각하면서 진행 속도도 빨랐던 탓에, 병에 대한 관찰도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그런데 16세기 초반에 들어서자 매독의 치명성과 병환의 진행 속도, 특히 확산 속도가 사그라드는 한편 르네상스 의학이 발달하면서, 매독 환자에 대한 병리학적 관찰이 이어졌다. 이후 매독이 성병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매독은 이전까지 관찰이 안 되던 병인 데다가 성관계로 전염이 되므로 자연스레 인류의 문란함에 대한 신의 징벌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많이 나돌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엄숙주의가 강해졌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접촉은 그 외에도 많은 질병을 서로에게 전파시켰는데, 구대륙도 매독에 많은 피해를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신대륙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고 연구되고 있다. 이는 인구 규모와 가축의 사육 규모가 달랐기 때문에, 신대륙의 병원체가 상대적으로 종류가 적었던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또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퍼진 전염병은 물이나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종류가 많아서 전염 속도가 매우 빠른 반면,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퍼진 전염병은 매독처럼 피부나 성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전염 속도가 느린 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주민 대학살 시기에 95%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소멸시킨 원인 중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구대륙으로부터 퍼진 질병이다.
어찌됐건 유럽에서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매독의 유행으로 인해서 대륙 전체가 치료법을 찾으려 병의 유래를 추적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결국 병이 퍼진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에 지속된 연회에 참석한 고위 귀족들에서부터였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연구를 이어가던 학자들은 매독이 신대륙에서 아주 오래도록 유행했으며 그 기록도 구체적이고 이를 막기 위해 관련된 법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4] 신대륙을 발견해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콜럼버스는 졸지에 매독 유행의 원인제공자가 됐다.
한 가지 설은 아메리카 대륙의 풍토성 성병이 매독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유럽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의 매독균을 보유한 원주민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후 유럽 대륙으로 귀환하면서 구대륙에 매독이 유입되었다는 것.
또 다른 설도 있다. 이미 유럽에 매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시기로 거슬러 올려 잡은 것은 미국 노스이스트 오하이오 관절염 연구센터의 병리학 연구팀이 이탈리아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흑사병 시기까지의 시체 688구를 연구한 기록[1]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매독에 걸리면 뼈에 독특한 상처와 함께 변형이 일어나는데[2], 이것이 800년 전의 사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그럼 왜 매독의 존재를 몰랐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은 그게 매독인지 몰랐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미 이전에 쓰여진 유럽의 임상 기록에도 매독의 흔적은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이것이 매독이라는 증거는 없어서 의학적인 논증을 거치진 못했다. 그럴거라는 심증만 존재할 뿐이다.
매독의 대유행 양상을 살펴보면, 콜럼버스 원정대가 유럽으로 귀환한 이후인 1493년을 기점으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매독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프랑스에도 번져나갔다고 한다. 곧이어 발발한 1494-98년에 1차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프랑스군이 나폴리를 점령함에 따라 이탈리아에도 뿌리를 내렸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이 질병을 확산시킨 군대의 소속을 따서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에서는 질병이 확산되기 시작한 장소를 따서 '나폴리 병'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엔 놀랍게도 20년만에 당시 통상무역을 했던 일본에서도 매독이라는 질환이 나타나고 조선에까지 유행하기에 이른다. 조선에 매독이라는 성병이 퍼진 것은 유럽과 교역을 진행한 일본에 외교관과 상인이 드나들면서부터였다. 물론 당시 중국인 명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골칫덩이인 병이었고 매독은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유행 양상을 보였다. 불과 몇십 년만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병이 비행기도 없고 범선만 존재하던 시절에 지구 정반대편인 동아시아에까지 유행하게 됐다. 게다가 그 증상과 예후가 매우 치명적인 병이기에 이를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전염성이다.[3] 재밌는 것은 상술된 것처럼 매독은 성병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매독이 퍼졌을 당시 유교의 국가에서 이런 병이 퍼졌을리 없다고 생각해 중국병이라는 뜻의 '당창'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후에는 왜놈들의 병 혹은 '외세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럽도 '스페인병', '나폴리병', '프랑스병' 등 병이 유행한 당사국이 문란하다고 생각한 외세의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로부터 구대륙에서의 존재가 확인된 주요 전염성 성병은 임질이었다. 그에 비해 매독은 갑자기 새롭게 나타난 질병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성병인지도 몰랐고, 한센병의 아종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특징적인 전염성으로 인해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전염될 수 있다고도 생각된 데다가 치사율과 통증이 극도로 심각하면서 진행 속도도 빨랐던 탓에, 병에 대한 관찰도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그런데 16세기 초반에 들어서자 매독의 치명성과 병환의 진행 속도, 특히 확산 속도가 사그라드는 한편 르네상스 의학이 발달하면서, 매독 환자에 대한 병리학적 관찰이 이어졌다. 이후 매독이 성병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매독은 이전까지 관찰이 안 되던 병인 데다가 성관계로 전염이 되므로 자연스레 인류의 문란함에 대한 신의 징벌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많이 나돌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엄숙주의가 강해졌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접촉은 그 외에도 많은 질병을 서로에게 전파시켰는데, 구대륙도 매독에 많은 피해를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신대륙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고 연구되고 있다. 이는 인구 규모와 가축의 사육 규모가 달랐기 때문에, 신대륙의 병원체가 상대적으로 종류가 적었던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또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퍼진 전염병은 물이나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종류가 많아서 전염 속도가 매우 빠른 반면,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퍼진 전염병은 매독처럼 피부나 성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전염 속도가 느린 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주민 대학살 시기에 95%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소멸시킨 원인 중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구대륙으로부터 퍼진 질병이다.
어찌됐건 유럽에서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매독의 유행으로 인해서 대륙 전체가 치료법을 찾으려 병의 유래를 추적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결국 병이 퍼진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에 지속된 연회에 참석한 고위 귀족들에서부터였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연구를 이어가던 학자들은 매독이 신대륙에서 아주 오래도록 유행했으며 그 기록도 구체적이고 이를 막기 위해 관련된 법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4] 신대륙을 발견해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콜럼버스는 졸지에 매독 유행의 원인제공자가 됐다.
3. 과정 및 증상[편집]
피부, 특히 얇고 약한 점막을 통해 매독균이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병으로, 특성상 주로 성관계에 의해 전염되어 성병으로 분류된다. 질, 항문성교는 물론이고 구강성교에 의해서도 전염된다. 다만 성병이라곤 하나 애초에 중요한 건 점막 접촉이기 때문에 성교가 없더라도 점막이나 피부와 매독균이 접촉하면 전염될 가능성이 있어 키스, 심지어는 목욕탕의 물에서도 전염된 사례가 있는 등 매우 전염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 이유로 16세기 이후부터 유럽에서는 목욕을 하면 죽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는 등 목욕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들도 어지간해서는 가급적 목욕을 안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중세 유럽의 목욕탕은 지금처럼 물을 자주 빼지 않은 데다가 그 안에 들어가서 음식과 술을 먹거나 아니면 매춘부들을 불러서 성행위를 하는 일도 잦았기 때문에 수질이 굉장히 나빴고, 그 상태에서 매독에 걸린 환자가 들어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다른 사람들도 그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다가 매독에 걸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도 별반 다를게 없어서, 탕 안에서 똥오줌 싸는 사람도 많았고 수질이 굉장히 안 좋은 경우가 허다했다.
환자가 임신 중인 경우 혈액에 있는 균이 태반을 통해 넘어가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임신부에게는 항생제 사용을 꺼리지만, 신생아 매독의 경우 항생제보다 매독이 더 위험하기 때문에 항생제의 위험을 감수하고 처방한다.
매독에 감염된 증상 및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환자가 임신 중인 경우 혈액에 있는 균이 태반을 통해 넘어가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임신부에게는 항생제 사용을 꺼리지만, 신생아 매독의 경우 항생제보다 매독이 더 위험하기 때문에 항생제의 위험을 감수하고 처방한다.
매독에 감염된 증상 및 과정은 다음과 같다.
- 1기 매독(primary syphilis)의 주요 증상은 통증이 없는 피부궤양(chancre)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 개의 궤양만 관찰되지만 여러 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매독균에 접촉된 후 궤양이 발생할 때까지는 10일에서 90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궤양은 단단하고(indurated) 둥글며 크기가 작고 통증이 없다(painless). 이 궤양은 매독균이 피부 접촉을 통해 들어간 그 부위에 생긴다. 주로 발생하는 곳은 성기 부위(후방/혐오 주의)나 항문 주위 등이다. 통증이 없는 궤양은 3~6주 정도 지속되며, 특별한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14주 안에 호전된다. 이 시기가 가장 전염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매독에 대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으면 2기 매독으로 진행하게 된다.
- 2기 매독(secondary syphilis)은 피부의 발진(혐오 주의)과 점막의 병적인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발진은 1기 매독의 증상인 통증이 없는 궤양이 치유되면서 나타나거나, 또는 치유된 후 약 4-8주가 지난 후에 나타난다. 발진은 전신에 걸쳐 발생하는데, 특히 손바닥과 발바닥에 나타나는 반구진 발진(maculopapular rash)은 매독의 특징적인 증상이다. 발진 이외에도 발열, 눌렀을 때 아프지 않은 양쪽 대칭적인 임파절 종대(painless inguinal adenopathy), 인후통, 두통, 뇌수막염, 간염 체중 감소, 근육통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이 시기 역시 전염성이 높으며, 치료하지 않을 시 약 1/3 이상의 환자에게서 잠복 매독(latent)기로 진행되게 된다.
- 잠복 매독(latent stage)은 1기와 2기 매독의 증상이 사라진 후에 시작되며,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 체내에 매독균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잠복 상태는 수 년에서 수십 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는데, 영국 NHS(국립보건서비스)의 배포 자료에 의하면 최소 3년~최장 35년간 잠복한다고 한다. 잠복기는 혈청 검사(serologic test)시 양성적인 반응이 나타나게 되나, 임상적인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약 2/3의 환자는 이 스테이지에 머물며 아무런 증상이 보이지 않으나, 1/3의 환자에게서 3기 매독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초기 잠복 매독(혈청 검사 양성 결과를 진단 받은 후 1년 안)의 경우 환자가 다시 2기 매독기의 증상이 보일 수 있다고 한다. 후기 잠복 매독기의 경우, 전염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 3기 또는 후발 매독(tertiary syphilis)의 증상은 주로 내부 장기의 손상으로 나타나며 중추신경계(CNS), 눈, 심장(cardiac), 대혈관, 간, 뼈, 관절 등 다양한 장기에 매독균이 침범하여 발생한다. 또한 특징적으로 피하 육아종(subcutaneous granuloma)인 고무종(gumma)이 발견된다.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신경매독의 경우 증상이 없거나 치매(dementia) 증상, 뇌막 자극 증상, 뇌혈관 증상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중추신경계를 침범당하기 때문에 환자가 정신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특징적으로 척수매독(tabes dorsalis)이 발병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기수용감각(proprioception)과 진동(vibratory)의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체인 후섬유단(posterior column)의 손상을 의미한다. 유럽의 유명 인물들 중 말년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사람들은 후세에 신경매독 가능성을 한 번씩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는 나중엔 뼈에까지 영향을 줘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영구적으로 바꿔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이미 죽은 사람의 유해를 연구해서 매독을 앓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좋은 단서 중 하나다.
4. AIDS와 동시감염[편집]
대단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AIDS와 동시에 감염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매독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정한 중요 지표 질병 중의 하나이다. 2002년 기준으로는 매독 환자의 25%가 AIDS 환자였다. 매독이 유행하고 있다면 AIDS 역시 창궐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상당히 주의해야 할 점으로, AIDS와 매독이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일단 AIDS는 성관계로는 전염되는 확률이 높지 않으나(0.7~1.4%, 연구 결과에 따라서 10% 미만까지도 나온다), 매독에 동시감염된 사람, 또는 매독에 걸려있는 사람이 AIDS 환자와 성관계를 할 경우 4배 이상의 전염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아래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첫 번째, HIV의 활동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화된 신체에 매독의 증세가 더 심해진다.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인 매독 선별 검사(VDRL,RPL)시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고, 위음성으로 매독균이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도 음성으로 나와서 치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몸에 반점이 생기고 손발에 반점이 생겨서 VDRL 검사를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 일반적인 피부 알러지나 포진 등으로 진료하고 있다가 치료 경과가 없어서 나중에서야 정밀 검사로 알게 되는 경우다.
두 번째는, 매독균이 활동하면서 HIV RNA 수치를 더 높여 AIDS의 잠복기가 줄어 들고, 빠른 발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HIV 보균자는 치료 시기를 놓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세 번째로는 조기 신경매독의 발병이다. AIDS로 인해 신경계의 면역력이 감소하여 매독균이 질병 초기에 신경계로 침투한다. 이 경우 감염된 지 2,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매독 환자가 일반적인 페니실린 근육주사를 3번(원래 치료 지침에 따르면 1회만 맞아도 충분하다.)이나 맞았음에도 1개월 이내에 증상이 재발하고 반복될 경우, AIDS와의 동시감염을 의심하고 반드시 AIDS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를 하여야 한다. 간혹 감염 기간이 짦음에도 신경계 침투가 활발하여 뇌염 증상이나 뇌막염 증상을 심하게 일으켜, 신경매독 후유증으로 지능 저하나 기억력 저하 시력, 청력, 반사신경 등에 심대한 장애를 영구히 남길 수도 있다.
매독과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의 야리쉬-헤르크스하이머 반응(피부 발진), Treatment 항목에 있다.
상당히 주의해야 할 점으로, AIDS와 매독이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일단 AIDS는 성관계로는 전염되는 확률이 높지 않으나(0.7~1.4%, 연구 결과에 따라서 10% 미만까지도 나온다), 매독에 동시감염된 사람, 또는 매독에 걸려있는 사람이 AIDS 환자와 성관계를 할 경우 4배 이상의 전염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아래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첫 번째, HIV의 활동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화된 신체에 매독의 증세가 더 심해진다.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인 매독 선별 검사(VDRL,RPL)시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고, 위음성으로 매독균이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도 음성으로 나와서 치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몸에 반점이 생기고 손발에 반점이 생겨서 VDRL 검사를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 일반적인 피부 알러지나 포진 등으로 진료하고 있다가 치료 경과가 없어서 나중에서야 정밀 검사로 알게 되는 경우다.
두 번째는, 매독균이 활동하면서 HIV RNA 수치를 더 높여 AIDS의 잠복기가 줄어 들고, 빠른 발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HIV 보균자는 치료 시기를 놓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세 번째로는 조기 신경매독의 발병이다. AIDS로 인해 신경계의 면역력이 감소하여 매독균이 질병 초기에 신경계로 침투한다. 이 경우 감염된 지 2,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매독 환자가 일반적인 페니실린 근육주사를 3번(원래 치료 지침에 따르면 1회만 맞아도 충분하다.)이나 맞았음에도 1개월 이내에 증상이 재발하고 반복될 경우, AIDS와의 동시감염을 의심하고 반드시 AIDS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를 하여야 한다. 간혹 감염 기간이 짦음에도 신경계 침투가 활발하여 뇌염 증상이나 뇌막염 증상을 심하게 일으켜, 신경매독 후유증으로 지능 저하나 기억력 저하 시력, 청력, 반사신경 등에 심대한 장애를 영구히 남길 수도 있다.
매독과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의 야리쉬-헤르크스하이머 반응(피부 발진), Treatment 항목에 있다.
5. 진단[편집]
혈청 검사법(serologic test)은 매독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검사이다.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 매독균 비특이 항체검사(Nontreponemal Test): RPR, VDRL - 매독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sensitive) 검사로, 주로 스크리닝을 위해 쓰이게 된다. 매독에 대한 특이성(specificity)은 약 70% 안팎으로, 이 검사에 양성 결과가 나올 경우 좀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다.
- 매독균 특이 항체검사(Treponemal Test): FTA-ABS, MHA-TP - 위의 검사보다, 매독에 대한 특이성이 높은 검사. 위의 스크리닝 검사 결과에 양성적인 반응이 나타날 경우, 확진을 위해 사용된다.
그 외 암시야현미경법(dark field microscopy)은 매독을 확진할 수 있는 검사 방법으로, 피부 궤양(chancre)에서 샘플을 채취해 균을 확인하게 된다. 환자에게서 피부 궤양이 보여지나, 혈청 검사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경우 이 검사 방법을 이용하게 된다.
또한 HIV 스크리닝 검사를 필수로 동반하게 된다.
6. 예방[편집]
콘돔, 페미돔으로 예방이 불가능하다. 예방하는 가장 좋은 법은 당연히 그냥 안 하는 것(…), 혹은 한 번도 성관계를 한 적이 없는 사람끼리 만나고, 그 외의 사람과는 절대 성적으로 접촉하지 않으면 된다. 매독의 경우 피부나 점막을 통해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병이라 콘돔을껴도 예방이 불가능하지만 다른성병은 콘돔으로 예방하는것이 최선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병을 일으키는 균이나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자연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양쪽 모두 보균자가 아닌 커플이라면 아무리 성적 접촉을 해도 성병에 걸릴 일은 없다. 다만 현대적 감성으로 보면 동정들끼리 만난다는 게 사실상 비현실적인 만큼 그냥 성병 검사를 하면 만사 해결이다. 참고로 결혼 전 성병을 알고도 숨긴 경우 이혼 사유가 된다.
7. 치료[편집]
초기 치료에는 벤질페니실린(Penicillin G) 240만 단위를 근육주사로 1회 투여한다. 환자에게 페니실린 알레르기의 병력이 있을 경우,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5] 500mg 하루 4회 X 14일이나 독시사이클린(doxycycline) 100mg 하루 2회 X 14일 경구 투여로 대신할 수 있지만, 임산부에게는 쓸 수 없다. 테트라사이클린이나 독시사이클린은 페니실린 G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되어있어, 2차 약제로만 쓰인다.[6]
초기에 병을 진단하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병이 진행되어, 매독균이 중추신경계로 침투하여 벤질페니실린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 10일 이상 대용량 투여를 권장한다. 다른 후기 증상이 나타나면 1주일에 한 번씩 벤질페니실린 240만 단위를 근육주사하여 3주까지 치료를 실시한다. 일단 병이 진행된 단계에서는 치료로 병의 악화를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발생한 신체의 피해에는 효과가 적다.
세프트리악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페니실린은 국내 생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프트리악손은 위에 기술된 2차 약제인 테트라사이클린이나 독시사이클린보다도 약효가 확립되지 않았다.
오래 방치하면 망하는 병[7]이니 현실도피하지 말고 병원 가는 것이 좋다. 정 부담되면 종합병원 감염내과나 비뇨의학과를 찾아가면 된다.
21세기 시점에서 한국에서 흔한 성병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니다.
치료 후 매독균 비특이 항체검사(Nontreponemal Test)를 3달에 한 번씩 검사하여 약물 반응을 검사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반응할 경우, 치료 후 6개월 이내에 항체가 1/4 수준으로 저하되게 된다. 참고로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되더라도 혈청 항체 기록이 남는다. 그것도 평생. 하지만 이것은 TPHA 검사 한정. 1기에 유효한 치료를 받아 완치되었을 경우, 혈청 검사인 VDRL 검사에서는 음성(VDRL titer 1/4 이하)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혈청 항체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다고 할지라도 non-reactive로 나오면 완치로 본다. 하지만 완치 후에도 가끔 양성에 reactive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매독 정밀검사를 받아서 항체를 보게 되는데, 항체가 1/4 이하로 나오면 전염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게 된다.
처음 유럽인들이 매독으로 확인된 질병과 접촉했을 때, 매독은 썩은 내와 심한 통증을 동반한 달걀만 한 크기의 종양, 전신통, 그리고 극도의 고열 등 한센병을 능가하는 증상으로 악명이 높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 병환의 진행 또한 수 개월에 불과했다. 최초 접촉 이후 약 20년이 지나면서 매독의 잠복 기간은 길어졌고 진행 속도는 느려졌으며, 그 증상 또한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치료와 증상 완화 연구에도 길이 열리게 되었다. 증상이 독했던 매독균에 감염된 환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염에 실패한 강한 매독균은 도태되고, 비교적 독성과 치사성이 약하고 잠복기가 긴 매독균만 살아남게 되었다.[8]
현대적 약품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수은 증기를 국부에 쐬거나, 수은 연고(mercurial ointment)를 사용하거나, 욕조에 수은을 가득 채워 만든 수은탕에 불을 지펴서 뜨겁게 만든 후 거기에 사람이 들어갔다 나왔다고 한다. 체내로 침투한 수은의 독성으로 인해 매독균이 죽긴 죽었으니 나름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수은 중독에 걸려서 죽거나 죽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수은의 독성에 대해 알려진 게 없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 치료를 받으면 불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유명한 예가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 폰 합스부르크이다. 요컨대, 수은이 사람을 먼저 죽이느냐 매독균을 먼저 죽이느냐엘리전였고 운이 좋게 수은을 견디면 매독이 치료되는 치료법이었다. 다만 매독의 예후가 수은이 아니면 너무나도 끔찍했기에 이 방법은 수은이 인체에 극독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 수백 년 동안이나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매독에 걸렸던 위인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매독의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수은 중독으로 먼저 죽은 기록이 꽤 있다.
과거에는 매독 치료를 위해 말라리아를 이용하기도 했다. 매독균은 열에 약하다. 그런데 말라리아는 매우 높은 열을 발생시키므로 매독에 걸린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고열에 시달리게 하면 그 열을 견디지 못하고 매독균이 사멸하게 되고, 이렇게 매독이 치료되면 그 다음에 말라리아를 치료했다. 그럴 듯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런 무식한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말라리아도 치사율이 엄청난 병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셈. 이 방법 또한 결국 말라리아가 사람을 먼저 죽이냐 매독이 죽느냐의 문제였다. 무식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치료법이지만 이 방법을 개발한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는 놀랍게도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이후 새로운 약품인 606호 등이 개발되면서 점차 독성이 약하고 진전 속도가 느린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이 606호 역시도 비소가 원천이기 때문에 독성이 있었고 부작용에 대해 경고했으나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말라리아로 고열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았던 상황이라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물론 5% 확률로 심장질환을 일으켜 운이 나쁜 몇몇은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후에 매독이 흔하지만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된 것은 페니실린의 개발과 보급으로 상술된 것처럼 초기에만 발견한다면 별 문제없이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대유행하고도 500년이 흐르도록 인류는 이 끔찍한 병에 시달렸던 셈.
초기에 병을 진단하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병이 진행되어, 매독균이 중추신경계로 침투하여 벤질페니실린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 10일 이상 대용량 투여를 권장한다. 다른 후기 증상이 나타나면 1주일에 한 번씩 벤질페니실린 240만 단위를 근육주사하여 3주까지 치료를 실시한다. 일단 병이 진행된 단계에서는 치료로 병의 악화를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발생한 신체의 피해에는 효과가 적다.
세프트리악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페니실린은 국내 생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프트리악손은 위에 기술된 2차 약제인 테트라사이클린이나 독시사이클린보다도 약효가 확립되지 않았다.
오래 방치하면 망하는 병[7]이니 현실도피하지 말고 병원 가는 것이 좋다. 정 부담되면 종합병원 감염내과나 비뇨의학과를 찾아가면 된다.
21세기 시점에서 한국에서 흔한 성병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니다.
치료 후 매독균 비특이 항체검사(Nontreponemal Test)를 3달에 한 번씩 검사하여 약물 반응을 검사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반응할 경우, 치료 후 6개월 이내에 항체가 1/4 수준으로 저하되게 된다. 참고로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되더라도 혈청 항체 기록이 남는다. 그것도 평생. 하지만 이것은 TPHA 검사 한정. 1기에 유효한 치료를 받아 완치되었을 경우, 혈청 검사인 VDRL 검사에서는 음성(VDRL titer 1/4 이하)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혈청 항체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다고 할지라도 non-reactive로 나오면 완치로 본다. 하지만 완치 후에도 가끔 양성에 reactive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매독 정밀검사를 받아서 항체를 보게 되는데, 항체가 1/4 이하로 나오면 전염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게 된다.
처음 유럽인들이 매독으로 확인된 질병과 접촉했을 때, 매독은 썩은 내와 심한 통증을 동반한 달걀만 한 크기의 종양, 전신통, 그리고 극도의 고열 등 한센병을 능가하는 증상으로 악명이 높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 병환의 진행 또한 수 개월에 불과했다. 최초 접촉 이후 약 20년이 지나면서 매독의 잠복 기간은 길어졌고 진행 속도는 느려졌으며, 그 증상 또한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치료와 증상 완화 연구에도 길이 열리게 되었다. 증상이 독했던 매독균에 감염된 환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염에 실패한 강한 매독균은 도태되고, 비교적 독성과 치사성이 약하고 잠복기가 긴 매독균만 살아남게 되었다.[8]
현대적 약품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수은 증기를 국부에 쐬거나, 수은 연고(mercurial ointment)를 사용하거나, 욕조에 수은을 가득 채워 만든 수은탕에 불을 지펴서 뜨겁게 만든 후 거기에 사람이 들어갔다 나왔다고 한다. 체내로 침투한 수은의 독성으로 인해 매독균이 죽긴 죽었으니 나름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수은 중독에 걸려서 죽거나 죽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수은의 독성에 대해 알려진 게 없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 치료를 받으면 불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유명한 예가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 폰 합스부르크이다. 요컨대, 수은이 사람을 먼저 죽이느냐 매독균을 먼저 죽이느냐
과거에는 매독 치료를 위해 말라리아를 이용하기도 했다. 매독균은 열에 약하다. 그런데 말라리아는 매우 높은 열을 발생시키므로 매독에 걸린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고열에 시달리게 하면 그 열을 견디지 못하고 매독균이 사멸하게 되고, 이렇게 매독이 치료되면 그 다음에 말라리아를 치료했다. 그럴 듯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런 무식한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말라리아도 치사율이 엄청난 병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셈. 이 방법 또한 결국 말라리아가 사람을 먼저 죽이냐 매독이 죽느냐의 문제였다. 무식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치료법이지만 이 방법을 개발한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는 놀랍게도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이후 새로운 약품인 606호 등이 개발되면서 점차 독성이 약하고 진전 속도가 느린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이 606호 역시도 비소가 원천이기 때문에 독성이 있었고 부작용에 대해 경고했으나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말라리아로 고열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았던 상황이라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물론 5% 확률로 심장질환을 일으켜 운이 나쁜 몇몇은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후에 매독이 흔하지만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된 것은 페니실린의 개발과 보급으로 상술된 것처럼 초기에만 발견한다면 별 문제없이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대유행하고도 500년이 흐르도록 인류는 이 끔찍한 병에 시달렸던 셈.
8. 근황[편집]
8.1. 선진국들에서의 매독 재유행[편집]
치료법과 예방법이 확실히 알려진 현대에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한국 등 선진국들에서 매독이 재유행세를 타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접어들면서부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매독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들이 2010년대 말부터 각국 보건 당국에 의해 나오고 있다.[9]
각국 보건 당국에서는 이런 매독 발병의 증가 원인으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즉석만남 앱, 랜덤채팅 앱 등의 데이트 앱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상용화와 이를 매개로 한 원나잇 스탠드와 불법 성매매의 활성화를 꼽고있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들은 접대부들이 성병에 걸리면 자신들도 손해가 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신체 검사를 받게 하여 매독과 같은 성병을 방지하는 가게가 많다. 따라서 이를 게을리한 소수의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성병에서 안전하다. 반면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 틴더, 그라인더와 같은 즉석만남용 채팅 앱에서는 익명의 상대와의
각국 보건 당국에서는 이런 매독 발병의 증가 원인으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즉석만남 앱, 랜덤채팅 앱 등의 데이트 앱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상용화와 이를 매개로 한 원나잇 스탠드와 불법 성매매의 활성화를 꼽고있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들은 접대부들이 성병에 걸리면 자신들도 손해가 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신체 검사를 받게 하여 매독과 같은 성병을 방지하는 가게가 많다. 따라서 이를 게을리한 소수의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성병에서 안전하다. 반면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 틴더, 그라인더와 같은 즉석만남용 채팅 앱에서는 익명의 상대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