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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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02회 작성일 22-12-15 14:48본문
1. 개요[편집]
1990년 1월 28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샛별룸살롱에서 10대 4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1990년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같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4세[1] 조경수, 22세[2] 김태화[3]가 벌인 연쇄 살인사건이다. 해당 연쇄살인의 첫 발생은 1990년 1월 2일이다.
2. 상세[편집]
2인조의 샛별룸살롱에서의 범행은 1990년 1월 28일에 일어났다.
1990년 1월 29일 새벽 1시경 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 808-40[4] 지하1층 샛별룸의 살롱 안에서 술집 종업원 10대 3명과 인근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10대 한 명(남성 2명, 여성 2명)이 예리한 흉기에 온몸을 난자당해 살해당한 채 목격되어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인 해당 건물 2층 원미자 씨에 의하면 영업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20분 후 내려가보니 지하출입문 앞, 홀 안, 내실 안에서 3명이 이미 쓰러져 숨져 있었고 술집 여종업원 한 명은 생존해 신음하는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송 중 사망했다. 피살된 네 명은 모두 온몸을 4~14차례 잔인하게 칼로 찔려 살해당했고 여종업원 2명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룸살롱의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28일 밤 9시경 스포츠머리를 한 청년 2명(25세 전후로 추정)이 위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여종업원 한 명과 한 시간가량 술을 마신 후 나갔다 밤 11시 40분경에 다시 룸살롱으로 와 외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해당 여종업원이 애인이 있다고 거절하자 이 2명은 해당 여종업원에게 후환이 있을 거라는 협박을 한 후 술집을 나갔다. 29일 0시 30분 경에 주인은 귀가한 직후 불안한 예감에 룸살롱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옆건물에서 당구를 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 아르바이트생 역시 살해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구로경찰서 오봉파출소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라도 말씨를 사용하는 175cm 전후의 용의자를 추적했다.
1990년 1월 29일 새벽 1시경 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 808-40[4] 지하1층 샛별룸의 살롱 안에서 술집 종업원 10대 3명과 인근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10대 한 명(남성 2명, 여성 2명)이 예리한 흉기에 온몸을 난자당해 살해당한 채 목격되어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인 해당 건물 2층 원미자 씨에 의하면 영업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20분 후 내려가보니 지하출입문 앞, 홀 안, 내실 안에서 3명이 이미 쓰러져 숨져 있었고 술집 여종업원 한 명은 생존해 신음하는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송 중 사망했다. 피살된 네 명은 모두 온몸을 4~14차례 잔인하게 칼로 찔려 살해당했고 여종업원 2명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룸살롱의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28일 밤 9시경 스포츠머리를 한 청년 2명(25세 전후로 추정)이 위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여종업원 한 명과 한 시간가량 술을 마신 후 나갔다 밤 11시 40분경에 다시 룸살롱으로 와 외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해당 여종업원이 애인이 있다고 거절하자 이 2명은 해당 여종업원에게 후환이 있을 거라는 협박을 한 후 술집을 나갔다. 29일 0시 30분 경에 주인은 귀가한 직후 불안한 예감에 룸살롱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옆건물에서 당구를 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 아르바이트생 역시 살해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구로경찰서 오봉파출소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라도 말씨를 사용하는 175cm 전후의 용의자를 추적했다.
2.1. 장기간 도주 후 검거[편집]
범인은 범행 신고 하루만인 1990년 1월 30일에 1985년 3월 광주에서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조경수 김태화 2인조로 특정되었다. 하지만 위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범인은 한동안 잡히지 않았다. 범행 1주일간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고, 1990년 2월 1일을 시작으로 택시기사를 협박하거나 미용실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 등 도주자금을 벌기 위해 범행을 계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계속해서 나왔지만 경찰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 했다. 1990년 2월 10일 조선일보 3면 기사에는 <警察의 한심한 服務자세>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수사력을 비판하는 사설이 게재되기도 했다.
2월 9일 조경수가 부산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2월 14일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이들이 부산에 잠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있기도 했다. (1990년 2월 15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釜山잠입설에 잔뜩 긴장>)
그러다 1990년 2월 27일 샛별룸살롱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카페에 나타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때도 경찰은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잠복경찰이 6명이나 있는데 눈치도 못 채고 신고자인 박양이 조경수의 애인 이모양과 김태화가 차에 타 데리고 간 걸 신고한 이후에야 알았다고. 대담해진 이들은 1990년 3월 3일에는 대전 거리를 활보하며 경찰을 가리켜 '나를 잡으러 왔다'는 농담까지 하기도 해 경찰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이틀만인 1990년 3월 5일 오후 조경수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다. 그리고 3월 10일 나머지 한 명의 범인인 김태화가 조건부 자수를 하겠다고 전화한 것으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다.
2월 9일 조경수가 부산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2월 14일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이들이 부산에 잠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있기도 했다. (1990년 2월 15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釜山잠입설에 잔뜩 긴장>)
그러다 1990년 2월 27일 샛별룸살롱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카페에 나타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때도 경찰은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잠복경찰이 6명이나 있는데 눈치도 못 채고 신고자인 박양이 조경수의 애인 이모양과 김태화가 차에 타 데리고 간 걸 신고한 이후에야 알았다고. 대담해진 이들은 1990년 3월 3일에는 대전 거리를 활보하며 경찰을 가리켜 '나를 잡으러 왔다'는 농담까지 하기도 해 경찰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이틀만인 1990년 3월 5일 오후 조경수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다. 그리고 3월 10일 나머지 한 명의 범인인 김태화가 조건부 자수를 하겠다고 전화한 것으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