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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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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03회 작성일 22-12-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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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8년 6월 14일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2] 단란주점[3]에서 20대 남성 3인조로 추정되는 범인들이 단란주점 업주와 그녀의 지인이었던 택시 기사, 손님 등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달아난 사건이다.

수많은 시체를 봐왔을 법의학자들조차도 지금껏 봐왔던 범행 중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4] 현장에서 수많은 지문과 족적, 혈흔은 물론이고 목격자들까지도 있었으나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하여 사건 발생 후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버렸다.[5][6]

그것이 알고싶다 1020회[7]에서 사건을 상세히 다루었다.

2. 사건 현장[편집]

사건이 일어났던 1998년 6월 14일 새벽 2시 30분, 이해 6월에는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였고, 사건이 일어난 당일은 대한민국 대 멕시코의 경기가 열렸던 날이다.[8] 그래서 전 국민들의 시선은 경기가 열렸던 프랑스의 리옹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는 피바람이 불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사바이 단란주점의 손님이었던 여성 최 씨가 하반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피를 철철 흘리며 계단에서 올라오면서였다. 그때 단란주점 옆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 한 씨의 앞으로 동남아계의 남성 한 명이 달려왔다. 이 남성은 급한 환자가 있다며 한 씨를 인근 사바이 단란주점 주차장으로 데려갔고 그곳에는 쓰러진 최 씨와 행인으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입고 있던 자켓으로 최씨의 하의를 가린 채 한 씨에게 다급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최 씨를 발견하고 기겁한 한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사건 신고를 받은 경찰은 급히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출동했고, 계단으로 내려가자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현장 곳곳을 수색하던 중 우연히 1번 방의 문을 열었는데, 그때 그들의 눈 앞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와 그녀의 지인인 택시 기사 고 씨, 또 다른 지인인 김 씨 3명이 모두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9] 여주인 이 씨는 허벅지와 등에서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는데 매우 깊숙하게 찔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했지만 입 가장자리에는 무려 13cm 길이의 칼로 찢겨나간 상처가 있었다.[10] 또 택시 기사 고 씨는 몸에 무려 17군데나 칼에 의해 찔리고 베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가장 끔찍하게 죽은 사람은 김 씨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목이 반 쯤 잘려 있었고 이마에는 마치 발로 짓밟힌 듯 선명한 신발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이 3명의 시신들은 모두 밧줄로 결박당해 있었고, 사건 현장에는 물이 틀어져 있었는지 바닥이 흥건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던 접시와 술잔, 술병 등의 기물들이 깨져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사건에서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의문점들이 나왔다. 먼저 피해자들 중 여성 피해자 2명(이 씨, 김 씨)의 머리카락을 칼로 자른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범인은 죽은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잘라갔을까? 범인 입장에서는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최대한 빨리 달아나야 하는데,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칼로 자르는 행위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행위이다. 두 번째로, 범인들은 피해자의 엉덩이를 칼로 찔렀다는 점인데, 엉덩이는 치명상을 입힐 만한 부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자상을 남긴 이유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발견된 김 씨 여인의 시신에서도 특이한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발바닥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

이로 봐서는 범인들은 2명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후에 김 씨는 결박하지 않고 끌고 다니면서 공격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단란주점의 카운터의 수화기는 내려져 있었고 주변은 뭔가 급하게 뒤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 씨의 바지 주머니에는 칼로 찢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강도의 소행인 것처럼 보였다. 수사 결과 금목걸이와 금팔찌,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현금 일부가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또 피해자들에게는 구타를 당한 흔적도 있었는데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입식 옷걸이[11]를 부숴서 만든 몽둥이로 때린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직후 범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남겼을지 모르는 혈흔이나 체액, 그리고 현장 바닥에 남아있을 족적을 감추기 위해 주방 수도꼭지를 틀어 노래방 1, 2번 방 바닥을 물로 흥건하게 적셔 놓았으며 감식요원들의 작업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유리컵과 접시 등을 잘게 부수어 바닥에 뿌렸고 신문지로 자신들의 손길이 닿은 집기 곳곳에 남겨진 지문들을 닦아내는 등 범행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유유히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12] 비록 증거 인멸을 한다고 했지만, 범인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는 검거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애초에 증거를 감출 수단을 갖추고 온 것이 아니라 범행 이후에 인멸을 시도했기 때문에 시간 지체는 물론, 미처 지우지 못한 증거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로 인해 감식반원들이 용의자 3명이 처음 들어간 2번 방과 사람들을 살해한 1번 방, 그리고 금품을 뒤져간 카운터 테이블 주변에서 범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4장의 유류지문[13], 담배꽁초 24개, 운동화 족적 3개를 채취하는데 성공하지만 훗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범인들의 것으로 정식 인정받게 된 흔적은 고작 운동화 족적 3개 뿐이었다.

경찰은 유일한 생존자인 최 씨의 증언을 통해 범인들이 고 씨의 현금 66,000원을 강취해 갔음을 파악하지만, 나머지 피살자들로부터는 얼마의 현금을 강취해 갔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강취해 간 고 씨의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카드, 롯데카드, 김씨의 비씨카드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피해 여성들에게 강취한 18K 금목걸이 2조와 금팔지 1조 등도 현찰화하는 과정에서 근거를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노래방 기계를 조회해 알게 된 것이라고는, 범인들이 부른 다음과 같은 노래들 뿐이었다.
1. 흔적[14]
2. 장난감 병정[15]
3. 문밖에 있는 그대[16]
4. 준비 없는 이별[17]
5. 하나의 사랑[18]
모두 '1998년 히트가요'라는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을 뿐, 수사에는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신의 참혹한 상태와 현장에 난무한 혈흔 때문에 수사에 참여한 경찰들에게는 이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이 역대 최고로 잔혹하기 짝이 없던 강도살인 사건으로 각인이 되었다고 한다.

3. 사건 경위[편집]

목격자인 이 씨 언니의 진술에 따라 추적해 본 사건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6월 13일 저녁 10시경, 본래 사바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이었던 이 씨 대신에 이 씨의 언니가 대신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3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1번 방으로 들어갔고, 용의자 갑이 도우미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의자 을이 "지금은 아가씨를 부를 때가 아니다"라고 말리며 갈등을 벌이다 결국 양주 1병과 과일 안주를 주문해서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20분 후인 10시 20분에 단란주점 근처에서 식당 종업원 일을 하는 최 씨가, 지인인 김 씨와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려고 이 사바이 단란주점을 찾았다. 잠시 후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가 언니와 교대하기 위해 왔고, 언니는 남편이 밤 11시 50분경에 데리고 와서 단란주점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 언니 부부가 가게를 나설 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었는데, 용의자들이 당시 히트곡이었던 최유나의 <흔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범인들은 여유가 있어보였고 차마 이들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차분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범인들은 박강성의 <장난감 병정>과 <문 밖의 그대>,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을 불렀다고 했는데 차마 살인을 일으킬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서정적인 가사의 발라드 노래들만 불렀다는 것이다. 잠시 후 6월 14일 자정, 이 씨의 지인이자 택시 기사였던 고 씨가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단란주점에 잠깐 들렀다고 한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난 새벽 1시 반에 이 씨의 언니가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단란주점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범행은 이 씨의 언니가 전화를 걸었던 6월 14일 새벽 1시 반에서 경찰에게 신고가 들어온 새벽 2시 반까지 1시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범인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이렇게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도대체 이 단란주점의 업주와 그 지인들은 무슨 원한을 샀기에 그토록 참혹한 죽음을 맞았던 것일까?

4. 경찰의 수사[편집]

당초 경찰은 이 사건을 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2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으므로, 이같은 경찰의 판단은 오판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이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단 사건 당일은 축구 중계가 있었던 날이라 단란주점을 찾은 손님들이라고는 피해자 4명과 범인 3명해서 7명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 7명 중에 3명이 살해당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3명은 함께 모여서 단란주점을 방문했으니 자연히 범인은 나머지 3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너무도 많은 증거품들을 남겨두고 갔고, 지문들도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무려 39개나 되는 지문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다 범인들을 목격한 목격자들까지 있었으니, 경찰 입장에서는 이만큼 착한 범인들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 확신했던 그 착한 범인들은 알고 봤더니 매우 교활하고 영악한 범인들이었고, 결국 24년 동안 계속 숨바꼭질을 하게 되었다.

일단 경찰들의 예상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CCTV가 없었다는 점에서였다. 사건이 일어난 1998년만 하더라도 방범용 CCTV 설치가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당시 단란주점 내부에도 CCTV가 없었기에, 범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경찰들은 사건이 일어난 때가 초여름이었기에 새벽에도 어느 정도 통행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사바이 단란주점 건너편에 포장마차가 1~2군데 있었기에 목격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보고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들의 도주로를 파악하고 다른 목격자들을 찾는데 주력했으나, 하필이면 사건 당일이 1998년 6월 14일은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렸던 날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경기보다도 시청률이 높았던 시기였다. 즉 이 때문에 목격자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경찰들은 범행 현장에서 범인들의 흔적을 찾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으나 당시 기술로는 채취된 시료들 중 DNA를 확실하게 뽑아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문을 집중적으로 찾았고, 39개의 지문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중 31개는 대조 가치가 없다고 보았고 나머지 8개의 지문으로 대조해본 결과 모두 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지문이 묻어 있었을 법한 술병과 술잔 등도 범인들이 모두 산산조각을 내버려 지문을 채취할 수가 없었다. 현재의 과학 기술이라면 쪽지문 하나로도 밝혀낼 수 있겠지만 1998년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또 사건이 일어났던 날 서울에는 비가 많이 내린 데다 범인들이 수돗물을 틀어놓아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에는 바닥이 온통 물 천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문 채취에 난항을 겪었고 물 때문에 지문이 훼손되어 어렵게 발견한 것들도 감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5. 생존자 최 씨의 증언[편집]

그래서 경찰은 마지막 남은 생존자 최 씨에게 희망을 걸었다. 최 씨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 김 씨가 자신에게 6월 13일 밤 10시 경에 "내 얘기 좀 듣고 가라"며 자신을 신사동의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 갑의 얼굴을 봤다고 한다. 그때 그는 "화장실 가려다가 잘못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주인 이 씨가 자신과 김 씨에게 범인들이 있던 2번 방에서 합석하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그래서 2번 방으로 들어가보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뭔가 섬뜩한 기운을 느껴 먼저 나왔고[19], 김 씨도 뒤이어 나와 1번 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이 급해서 방을 나온 최 씨는, 카운터에서 택시 기사와 업주 이 씨 그리고 3명의 용의자 사이에 단란주점 카운터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관심없이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1번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1번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상황이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 용의자 갑, 을, 병과 택시 기사 고 씨, 업주 이 씨가 함께 1번 방에 들어왔는데, 고 씨와 이 씨의 손은 뒤로 돌려진 채로 결박되어 있었고, 용의자 3명이 고 씨와 이 씨를 발로 차서 1번 방에 처넣었다고 한다. 택시기사 고 씨는 "말로 해결하자"고 했고 업주 이 씨는 "살려달라"는 소리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들은 고 씨와 이 씨를 잔혹하게 구타했다. 그리고 범인들은 뒤이어 겁에 질린 채로 있던 1번 방 손님인 김 씨와 최 씨에게 다가가 위협했다. 범인은 두 여인 중 먼저 김 씨에게 다가가 "금목걸이를 내놓으라"고 말했는데, 겁에 질린 최 씨가 "그거 그냥 줘 버려!"라고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금목걸이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흥분한 범인은 김 씨를 끌어내 바닥에다 패대기치고 구둣발로 이마를 차고 지근지근 밟다시피 하며 구타했다고 한다.

폭력이 오고 간 이후 처참한 살육극이 벌어졌다. 생존자 최 씨는 먼저 옆구리를 칼로 찔려 정신을 잃은 탓에, 목에 칼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범인들은 이 씨와 고 씨, 김 씨를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죽인 뒤, 피해자들의 머리를 흔들며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고[20] 증거 인멸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서로 자기들끼리 확인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최 씨는 겨우 죽은 척을 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범인들은 "빨리 가자! 시간이 없다!"면서 도주했다고 한다. 최 씨는 목과 옆구리를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급소를 피해 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 씨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바로 범인들이 자신에게 털어놓은 범행 동기였다. 범인들이 칼로 그녀를 위협할 때 최 씨는 "남편이 지금 뇌 수술 중이라 일을 못해서 내가 식당에서 일해서 받은 일당 가지고 겨우겨우 먹고 살고 있다"고 호소하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때 범인이 "우리도 회사 잘려서 아줌마랑 같은 처지이고, 우리도 안 이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폭력과 함께 금품을 요구했고, 실제로 현금 66,000원과 귀금속,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을 빼앗아 갔음이 드러났다.

6.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편집]

일단 현장에 남겨진 흔적들과 피해자의 증언들을 고려해볼 때, 언뜻 봐서는 금품을 노린 범죄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의 실체를 깊이 들여다 보면, 금품을 노린 범죄라고 보기에는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우선 이 범죄가 강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피해자 고 씨의 상태였다. 당시 고 씨는 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계줄은 풀려 있었으나 범인들이 시계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또한 고 씨의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금반지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성 피해자들의 손목에 차고 있던 반지와 금팔찌 등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즉 귀중품을 노린 범죄라고 하기에는 남기고 간 귀중품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급히 귀금속들을 훔치고 입막음을 위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달아났기 때문에 미처 다 챙기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범인들은 업주 이 씨의 입을 찢는다든지 엉덩이를 칼로 찌른다든지 하는 불필요한 시신 훼손을 했고, 또 여성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자르는 짓을 했다. 이렇게 사건 현장 훼손에 오랜 시간을 쏟았다는 점을 보면, 강도의 소행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현금 일부와 신용카드, 체크카드, 귀금속 일부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선 피해자들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는지 수사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카드를 쓰거나 훔쳐간 귀금속들을 장물로 내놓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장물품표를 발부해 전국 보석상에 뿌리다시피 했지만 좀처럼 귀금속들의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로 보아서는 강도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 최 씨 또한 "범인들이 단순한 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범인 일당들 중에서 유독 용의자 갑이 조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990년대 말에는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조폭들이 활개를 치며 갖가지 폭력 사건이라든지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남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신사동은 그 무렵에 조폭들의 이권 다툼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생존자 최 씨는 범인들이 사용한 칼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칼의 길이가 부엌에서 쓰는 일반 식칼 치고는 길이도 길었고 하얗고 반짝거리는데다 두께도 매우 얇았다고 한다. 이 증언대로라면 범인들이 쓴 칼은 흔히 사시미로 부르는 회를 칠 때 쓰는 회칼임이 분명했다. 당시 조폭들이 살인 무기로 회칼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일당들이 조폭들일 수도 있다는 데에 설득력이 있다. 정말 범인들은 이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조폭들이었을까?

2016년 2월 2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이 딸린 건물의 건물주를 만나 그 사실에 대해 물었다.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은 유명한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이 자주 들락거리는 고급 음식점인 사바이 음식점에 딸린 단란주점이었고, 사바이 음식점은 3명이서 돈을 합자해 투자해서 운영한 고급 음식점이었다고 하는데, 혹 이들 사이에서 지분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지는 않았는가 했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바이 음식점은 1998년 무렵에 매출이 급감한 상태였고, 이 씨 자매에게 따로 단란주점만 임대해준 것이지 조폭이 노릴 만한 이권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그 주점은 본래 사바이 음식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2차로 놀다 가라고 서비스 룸 형식으로 만들어둔 것이었고, 이 씨 자매가 임대를 받아 단란주점을 운영한지는 고작 반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사바이 음식점 건물 관계자는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서 한 인터뷰에서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형사들이 범행 동기에 대해 '택시 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가 아니냐'는 추리를 한 것을 들었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돈을 노린 범죄였다면 범인들은 주점에 들어온 직후에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나는 것이 더 사리에 맞다. 그런데 범인들은 6월 13일 밤 10시 쯤에 단란주점에 들어와서 최소 3~4시간 정도 지나서야 범행을 저질렀다. 그 사이에 택시 기사 고 씨가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지인이었던 이 씨가 운영하는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들어왔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은 단순 강도살인이 아닌, 애초부터 고 씨를 타깃으로 노리고 저지른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입막음을 위해 살해한 것이고, 물건 일부를 훔쳐가고 카운터 등을 어지럽힌 것도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택시 기사 고 씨는 무슨 원한을 샀기에 남에게 청부살해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까? 정말로 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들은 살인청부업자였을까?

6.1. 범인은 이 씨의 전 남편?[편집]

범행 동기가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것이나 강도의 소행이 아니라 애초부터 택시 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가장 먼저 범인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살인을 교사한 인물로) 거론된 사람은 업주 이 씨의 전 남편이었다. 사건 당시 업주 이 씨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는데, 이 씨의 전 남편이 이 씨와 사이가 각별했던 택시 기사 고 씨가 불륜 관계가 아닌가 의심해서 살인청부업자에게 살인을 교사했던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 고 씨의 지인들은 "그가 남들로부터 원한을 살만 한 짓을 저지르거나 보복당할 짓을 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살인교사범으로 의심했던 이 씨의 전 남편도 그 무렵에 경제적으로 심히 쪼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 청부를 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 점과 더불어 뚜렷한 혐의점도 없기에 결국 이 씨의 전 남편을 기소할 수는 없었다.

6.2. 범인 검거?[편집]

경찰이 조기에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또 하나의 근거는, 생존자 최 씨가 사건 당시의 일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범인들의 몽타주가 조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무려 10만 장이 넘는 범인들의 몽타주가 그려진 수배지를 전국에 뿌렸고,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방송하는 등 대대적으로 공개 수배를 알렸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으로 의심되는 1명을 검거했다. 경찰 측에서 검거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범인 3명 중 을이었다. 일단 피해자의 진술로 얻어낸 을의 몽타주를 보았을 때 피의자의 얼굴은 몽타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고, 3명의 범인을 목격했던 이 씨의 언니도 "용의자가 범인 3명 중 한 사람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정말로 범인 3명 중 1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용의자가 잡히게 된 이유는,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용의자의 얼굴이 범인 3명 중 1명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체포된 용의자는 이 씨의 언니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이 씨의 언니가 그를 보자마자 온갖 욕설을 퍼부었을 때도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용의자는 6월 14일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이때 사건 조기 해결에 목숨을 걸었던 경찰은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용의자를 신나게 구타하며 강압수사를 하는, 불에다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말았다! 결국 강압수사에 못 이긴 피의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도 제대로 대지 못했고 거기에 '내가 진범인데 기억을 못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겹쳐 허위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사건이 있었던 당일 용의자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형과 축구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결국, 경찰은 용의자를 풀어줘야 했고 이 사건은 단순한 촌극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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