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포 소아 참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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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397회 작성일 22-12-29 15:11본문
1. 개요[편집]
2. 사건[편집]
1924년 2월, 진남포부 억량기리에서 2세 정도로 추정되는 유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신의 상태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범인은 아이의 목을 자르고 두개골을 깨뜨린 후 뇌를 빼갔으며 팔다리와 생식기도 모두 절단했다. 당시로서는 상상이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엽기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언론에선 보도통제에 들어가 많은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도통제에 관한 당시 기사 링크
사건 현장 주변에 사는 이창포(당시 24세)가 진남포 경찰서로 찾아와 자신이 범행을 목격했다며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신고했다. 이창포는 평소에 주변에서 나사 빠진 인간 정도로 취급되어 경찰은 이창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현장으로 가서 확인한 결과 시신 현장 상태가 이창포의 신고 내용과 놀라우리만큼 일치했다. 경찰은 바로 이창포를 유력 용의자로 체포하고 취조 끝에 이창포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창포는 처음에 공동묘지에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파내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는데 우물쭈물거리고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등 모호한 진술을 반복했다. 경찰이 부립병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죽은 아이의 시체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산 아이를 그대로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져 이창포의 진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포는 곧 말을 바꾸어 자신이 죽였다며 범행에 사용한 칼과 훼손한 아이의 살점도 자기 집에 있을것이라고 얘기했다. 경찰은 이창포를 데리고 이창포의 집에서 수색을 펼쳤다. 이창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까 사용한 칼과 아이의 살점은 어디에 두었소?"라고 물었는데 어머니가 "이 미친놈!"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며 경찰에게 범행 일체를 강력히 부인했다. 경찰은 이창포의 집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그 어떠한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창포의 형과 동생 등 가족 등도 탐문을 벌였지만 어떠한 특이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것은 피해자 아이의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98년 전에 발생했으니, 당시 국내에는 과학 수사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리가 만무했다. 경찰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진남포 일대의 호구조사뿐이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말이 계속 오락가락하던 이창포도 이후로는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이창포의 정신이 정상이 아닌데다 말이 안맞고 계속 진술이 바뀌는 점, 발견된 물증이 전혀 없다는 점 등으로 경찰은 이창포를 구속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창포가 매독 환자였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이창포의 가족이 공모하여 매독 치료를 위해, 당시의 나돌던 미신을 믿고 범행을 저지른것이라고 의심도 해보았으나 특별한 발견 없이 사건은 오리무중 속으로 빠졌다. 이후에 관련 기사도 전혀 없었던 것을 보면 결국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기사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이창포가 진범이 아니라면 이창포는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창포는 그냥 시신을 목격하고 신고한것에 불과한건지 등 여러 의문점들에 대해 사건이 너무 오래된 데다 관련 정보 또한 극히 적어 수수께끼가 많은 사건이다. 애당초 일본 순사들은 독립운동 관계 사건이 아니면 조선인들의 사건에 별로 끼어들려 하지 않았던 경향이 있었다.[1]
사건 현장 주변에 사는 이창포(당시 24세)가 진남포 경찰서로 찾아와 자신이 범행을 목격했다며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신고했다. 이창포는 평소에 주변에서 나사 빠진 인간 정도로 취급되어 경찰은 이창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현장으로 가서 확인한 결과 시신 현장 상태가 이창포의 신고 내용과 놀라우리만큼 일치했다. 경찰은 바로 이창포를 유력 용의자로 체포하고 취조 끝에 이창포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창포는 처음에 공동묘지에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파내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는데 우물쭈물거리고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등 모호한 진술을 반복했다. 경찰이 부립병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죽은 아이의 시체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산 아이를 그대로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져 이창포의 진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포는 곧 말을 바꾸어 자신이 죽였다며 범행에 사용한 칼과 훼손한 아이의 살점도 자기 집에 있을것이라고 얘기했다. 경찰은 이창포를 데리고 이창포의 집에서 수색을 펼쳤다. 이창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까 사용한 칼과 아이의 살점은 어디에 두었소?"라고 물었는데 어머니가 "이 미친놈!"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며 경찰에게 범행 일체를 강력히 부인했다. 경찰은 이창포의 집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그 어떠한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창포의 형과 동생 등 가족 등도 탐문을 벌였지만 어떠한 특이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것은 피해자 아이의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98년 전에 발생했으니, 당시 국내에는 과학 수사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리가 만무했다. 경찰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진남포 일대의 호구조사뿐이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말이 계속 오락가락하던 이창포도 이후로는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이창포의 정신이 정상이 아닌데다 말이 안맞고 계속 진술이 바뀌는 점, 발견된 물증이 전혀 없다는 점 등으로 경찰은 이창포를 구속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창포가 매독 환자였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이창포의 가족이 공모하여 매독 치료를 위해, 당시의 나돌던 미신을 믿고 범행을 저지른것이라고 의심도 해보았으나 특별한 발견 없이 사건은 오리무중 속으로 빠졌다. 이후에 관련 기사도 전혀 없었던 것을 보면 결국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기사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이창포가 진범이 아니라면 이창포는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창포는 그냥 시신을 목격하고 신고한것에 불과한건지 등 여러 의문점들에 대해 사건이 너무 오래된 데다 관련 정보 또한 극히 적어 수수께끼가 많은 사건이다. 애당초 일본 순사들은 독립운동 관계 사건이 아니면 조선인들의 사건에 별로 끼어들려 하지 않았던 경향이 있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