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과잉 시대, 잘 쉬는 것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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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83회 작성일 23-01-17 17:33본문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
한국인들만큼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까. 항상 피로에 만연돼 있다 보니 같은 강도의 피로감이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만큼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야근은 일쑤, 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업무가 파한 후에는 인맥을 쌓거나 비즈니스를 위해 술도 마셔야 한다. 요즘과 같은 초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을 채찍질하다 보니, 우리는 늘 피로에 쩔어 있다.
헛개나무로도, 박카스로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를 모래주머니처럼 발목에 달고 달리다가, 간신히 주말이라는 임시 휴식처에 다다르면 너무 지쳐서 꼼짝달싹할 기운이 없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만 오면 늘어지기 바쁜 아빠에 대해 불만이 쌓인다. 맞벌이 주부들의 사정은 이보다 더하다. 직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육아와 가사 노동까지 산넘어 산이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저서 <피로사회>에서 “성과지향주의의 시대가 되면서 현대인들은 피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우울증, ADHD, 소진증후군과 같은 경색성 질병이 만연하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성과지향주의 시대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이 경쟁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현대인들에게 경쟁은 일종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성과를 포기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노력,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과제, 주변의 기대치, 스스로의 목표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인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안고 이대로 달릴 수도 그렇다고 길 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면?
답은 정거장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정거장을 만들어 사이사이에 숨을 돌리고 쉬는 것이다. 잠시의 멈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만든다. 그리고, 정류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내 안의 문제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들을 태우는 순환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 해답에 대해 당신은 ‘이미 그렇게 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잘 쉬고 있는 것일까? 의외로 우리는 참 ‘못’ 쉰다. 주말 내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던 이도, ‘힐링’을 외치며 주말 내내 이런저런 여가활동에 바빴던 이들도 월요일엔 평소보다 몇 배는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휘청댄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있게 ‘쉬었다’고 한다. 진짜 휴식이라면 우린 훨씬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휴식은 게으름도 나태함, 싸구려 유흥도 아니다. 제대로 된 휴식은 되려 일상에 파고들기 쉬운 피로를 물리치고 당신의 일상을 충실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아군이다. 휴식을 잘 이용하면 경쟁력은 도리어 올라간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승려인 아잔 브라흐마는 한국인에 대해 “열심히 하는 것은 잘하는데, 쉴 때를 모른다. 평화와 고요 속에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잘 쉬는 능력’ 즉, ‘휴식력(休息力)’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잘 쉬기 위한 6가지 제안
1. 가끔은 ‘멍 때려라’
찰나를 참지 못하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컴퓨터 모니터와 TV, 그마저 없을 때는 활자 가득한 신문과 잡지 등으로 현대인들의 뇌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당장 손에 든 것들을 내려 놓고 멍하니 뇌와 눈을 그냥 두어보자. 아무것도 없는 창밖을, 하늘을, 혹은 천장 벽지를 보며 사고가 제멋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뇌는 비로소 휴식을 취하고 생각을 재정비한다. 칸트, 베토벤, 뉴턴은 산책을 통해 머리를 비웠고, 투자의 신 워렌버핏은 멍하니 천정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멍하게 있는 동안 사고가 흘러가다 닿는 곳에서 우리는 휴식과 새로운 창의적인 에너지를 찾는다.
2.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여행은 나에게 있어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고 안데르센은 말했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 낯선 공기는 익숙함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자극을 주어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낸다. 달성해야 하는 성과와 복잡한 인간관계들로 촘촘히 채워진 일상에서 잠시 몸을 피해보자. 마음이 크게 숨을 내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일단 움직여라
일명 ‘해피니스 호르몬(happiness hormone)’이라고도 불리는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과 수면, 근력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기억력, 학습력 그리고 사고기능과도 관계한다. 이 세로토닌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보다 잘 분비된다. 복잡한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서 머리가 아파올 때는 잠시 멈추고 맨손 체조나 산책 등 가볍게 몸을 움직여 보자.
4. 잔소리 말고, 설교 말고, 수다! 수다를 떨어라!
수다는 많은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친구, 동료들과 신나게 수다를 떠는 시간을 마련해보자. 단,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설교와 잔소리는 절대 금지.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수다는 정신적인 해방감과 동시에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5. 하루를 잘 이겨낸 당신에게 상을 주어라
“당신은 오늘 하루 3번의 사직충동과 5번의 스트레스를 참아 냈으므로 상을 받을 만하다”고 역설하던 맥주 광고를 기억하는지. 고된 하루일수록 그 하루를 무사히 끝낸 우리는 상을 받을 만하다. 하루가 끝날 때, 혹은 한 주를 마무리할 때 스스로에게 작은 상을 주자. 광고처럼 한 잔의 시원한 맥주도 좋고, 맛있는 요리도 좋고, 영화 감상도 좋다. 나의 고단함과 수고를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알아주고 격려해주자.
6. 일과 휴식에 규칙을 정하라
제대로 쉬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함에 있어서도 계획과 규칙이 필요하다. 스스로 휴식의 기준과 방법을 정해두면 휴식이 나태함이나 게으름 혹은 시끌벅적한 유희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퇴근 길 20분간 산책, 점심 식사 후 10분간 ‘멍 때리기’, 3시 휴게실에서의 5분간 커피 브레이크 등과 같이 소소한 나만의 휴식 규칙을 정해보자. 휴식이 몸에 습관처럼 익숙해지면 휴식의 효과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