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백합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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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59회 작성일 23-01-30 13:30본문
1. 개요[편집]
2. 다방의 침입자[편집]
2007년 4월 15일 오전 8시 45분, 대전 대덕구 신탄진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백합 다방은 영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직 개시를 한 것도 아닌데 한 30대 남자가 가게 안에 거칠게 들어왔다. 도둑으로 보이는 남성이 현금 3만 원을 훔치고 주머니에 넣고 있을 때, 다방 외부 청소를 마치고 들어오던 종업원 최모(47.여) 씨가 남성을 맞닥뜨렸다.
최 씨는 곧바로 "도둑이야!"라는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 방향으로 내달렸지만, 남자는 날카로운 등산용 칼로 최 씨의 등을 찔렀다. 최 씨가 쓰러지자 남성은 칼로 목을 갈라 확인 살해를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은 변태성욕자였던 남자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최 씨의 시신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 씨(45.여)가 다방에 출근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계산대에 있어야 할 최 씨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범인은 다시 칼을 휘둘러 배 부위를 찔렀다. 이 씨는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큰 상처를 입었다. 범행은 발각되기 전까지 모두 20여 분이 걸렸으며, 살인 직후 급히 달아나던 남성은 행인과 어깨를 부딪히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가 범인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최 씨는 곧바로 "도둑이야!"라는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 방향으로 내달렸지만, 남자는 날카로운 등산용 칼로 최 씨의 등을 찔렀다. 최 씨가 쓰러지자 남성은 칼로 목을 갈라 확인 살해를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은 변태성욕자였던 남자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최 씨의 시신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 씨(45.여)가 다방에 출근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계산대에 있어야 할 최 씨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범인은 다시 칼을 휘둘러 배 부위를 찔렀다. 이 씨는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큰 상처를 입었다. 범행은 발각되기 전까지 모두 20여 분이 걸렸으며, 살인 직후 급히 달아나던 남성은 행인과 어깨를 부딪히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가 범인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3. 수사
사건 직후 30대 후반 가량에 키 175cm, 스포츠형 머리, 검정테 안경의 모습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다방 살인현장에서 50여 개의 증거물을 수집했다. 하지만 딱 부러지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범행수법의 대범함과 잔인함 등으로 미뤄 우발적 살인이 아닌 원한 관계로 추정, 면식범 등 주변인물에서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사건 직후 30대 후반 가량에 키 175cm, 스포츠형 머리, 검정테 안경의 모습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다방 살인현장에서 50여 개의 증거물을 수집했다. 하지만 딱 부러지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범행수법의 대범함과 잔인함 등으로 미뤄 우발적 살인이 아닌 원한 관계로 추정, 면식범 등 주변인물에서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사건 직후 30대 후반 가량에 키 175cm, 스포츠형 머리, 검정테 안경의 모습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다방 살인현장에서 50여 개의 증거물을 수집했다. 하지만 딱 부러지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범행수법의 대범함과 잔인함 등으로 미뤄 우발적 살인이 아닌 원한 관계로 추정, 면식범 등 주변인물에서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 쯤에서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 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 듯했다.
점퍼에서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 듯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 묻은 휴지와 점퍼에서 숨진 최 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 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1989년, 충남 연기군 금남면[3]의 한 마을에 살던 17살 오이균은 3명을 연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당시 미성년자에게 내릴 수 있었던 최대치였다.
1989년 1월 11일 오후 4시, 오이균은 한 야산에서 노모 씨(69세, 여)를 강간해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한 다음 남면 속칭 원적불 다리 밑에 암매장했다. 같은 해 5월 24일 저녁 7시, 남면 금강변 하천부지에서 밭일을 가던 심모 씨(62세, 여)를 위협해 강간한 뒤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오이균이 두 명의 노인을 죽이고도 의심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나이 덕분이었다. 10대 소년이 노인을 강간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던 오이균은 평소에도 동네에서 예의 바르고 순한 청년이란 평가를 듣고 있었다.
그가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은 1989년 8월 12일이었다. 당일 오후 1시, 알고 지내던 7살 유모 양이 자기 집 앞에서 놀고 있는 걸 보자, 유 양을 자전거에 태워 마을 뒷산으로 데려갔다. 유 양을 강간하려고 했으나, 유 양이 큰 소리로 울자 발각될 것을 우려한 오이균은 목을 졸라 살해한다. 산에서 내려온 오이균은 2시 30분에 다시 산으로 올라가 가져온 흉기로 시신의 온몸을 깊게 찌른 뒤, 땅에 묻었다. 하지만 목격자가 나오면서 검거되었고, 다른 범행들도 추궁을 받으면서 결국 시인하고 만다.
1989년 1월 11일 오후 4시, 오이균은 한 야산에서 노모 씨(69세, 여)를 강간해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한 다음 남면 속칭 원적불 다리 밑에 암매장했다. 같은 해 5월 24일 저녁 7시, 남면 금강변 하천부지에서 밭일을 가던 심모 씨(62세, 여)를 위협해 강간한 뒤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오이균이 두 명의 노인을 죽이고도 의심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나이 덕분이었다. 10대 소년이 노인을 강간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던 오이균은 평소에도 동네에서 예의 바르고 순한 청년이란 평가를 듣고 있었다.
그가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은 1989년 8월 12일이었다. 당일 오후 1시, 알고 지내던 7살 유모 양이 자기 집 앞에서 놀고 있는 걸 보자, 유 양을 자전거에 태워 마을 뒷산으로 데려갔다. 유 양을 강간하려고 했으나, 유 양이 큰 소리로 울자 발각될 것을 우려한 오이균은 목을 졸라 살해한다. 산에서 내려온 오이균은 2시 30분에 다시 산으로 올라가 가져온 흉기로 시신의 온몸을 깊게 찌른 뒤, 땅에 묻었다. 하지만 목격자가 나오면서 검거되었고, 다른 범행들도 추궁을 받으면서 결국 시인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