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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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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84회 작성일 23-01-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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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으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공주 연쇄살인 사건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범죄 수범이 매우 비슷해 2019년 9월 이춘재가 유력 용의자로 밝혀지기 전까지 혹시 그 사건의 범인도 강창구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을 정도이다.

2. 시작[편집]

1983년 7월 31일 오후 한 여성이 사라졌다. 실종자는 충청남도 공주군 XX면에 사는 홍 씨(여•50)였다. 실종 당일 홍 여인의 행적에는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 근처 밭에 일을 하러 나간 것이 홍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평범한 주부였던 홍 씨가 갑자기 집을 나갈 이유가 없다며 곧 돌아올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홍 씨 는 며칠 후 우성면 용봉리의 소룡골 계곡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홍 여인은 옷이 벗겨진 채로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상이 없는 데다가 계곡 주변에서 홍 여인이 멱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무더운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 사고사’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7개월 후 1984년 2월 21일 공주에서 또 부녀자 한 명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종자는 역시 공주군 **면에 사는 이 씨(여•51)로, 실종 당일 반포면 내흥리에 소재한 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고 확인됐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이 씨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 결과 외상이 없는 데다가 위액에서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는 등 타살로 단정 지을 만한 단서들이 발견되지 않아 이 씨의 죽음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몇 달 간격으로 발생한 두 부녀자의 죽음이 범죄에 연루된 낌새가 드러난 것은 이 씨가 사망한 그해 여름, 공주시 ○○면에 사는 박정순(가명·21)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8월 19일 오후 2시경 박 씨가 우성면 용봉리에 소재한 소룡골 산길을 지날 때 사건이 일어났다.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대낮인 데다가 평소 익숙한 길이라, 박 씨가 별 경계 없이 걸어가는데 웬 남자가 숲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 남자는 박 씨를 가로막고 으로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 남자는 박 씨를 깊은 산속까지 끌고가 강간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 씨가 소리를 지르며 격렬히 반항하자 그 남자는 포기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박 씨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변을 피할 수 있었다. 벌건 대낮에 마을 야산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강간미수사건은 소리소문 없이 퍼져 부녀자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3. 다시 시작된 범행[편집]

주민들의 경계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공주에서는 이렇다 할 강력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예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 씨 강간미수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나 1985년 8월 말, 또 다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공주군 반포면 마티고개 인근의 한 계곡에서 웬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2]

사체는 완전히 부패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현장에는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피해자는 외지인인 탓에 실종신고조차 되지 않았다.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 수사도 없었던 것이다.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4번째 피해자는 21세 젊은 여자였다. 하지만 부패가 워낙 심해 사인규명조차 어려웠다. 관광객인 이 씨는 마티고개 인근에 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목격자가 없었다. 결국 타지에서 온 젊은 여자의 석연찮은 죽음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나 1987년 1월 29일 조용한 시골마을을 또다시 공포에 떨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5번째 피해자는 공주군 ○○면에 사는 주부 김 씨(47)로, 암자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김 씨가 평소 다니는 길과 사찰 주변, 인근 야산 등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쯤 지나 2월 28일 공주시 ○○면에서 6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 사는 서 씨(57)가 행방을 감춘 것이다. 수사 결과, 사건 당일 서 씨는 마을 외곽에 위치한 교회에 갔다고 확인됐다. 실종 당일 저녁 8시 무렵 버스 정류장에서 서 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정황상 서 씨는 예배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었던 듯했지만, 이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흘 후 서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서 씨의 사체는 볏짚으로 덮인 채 농로에 버려졌는데, 목에 찰과상이 있는 데다가 버선과 팬티가 벗겨진 상태였다. 명백한 강간살인이었다.

공주시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부녀자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할서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서 씨의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들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홀로 길을 나섰던 부녀자가 홀연히 사라져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분명 어떤 연관이 있다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간 사인을 알 수 없었던 피해 여성들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7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해 4월 1일 공주시 ○○면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이금순(47)이 사라진 것이다. 실종 당일 장사에 필요한 간이 상수도 호스를 점검한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부녀자 3명이 연달아 변을 당하자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 부녀자가 사라진 지점 일대를 중점으로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색에 나서, 다음날 허벅지 부분에 자상을 입은 변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 바로 1월 말 실종됐던 김 씨였다.

김 씨의 사체가 발견된 다음날 경찰은 눈 언저리에 피멍이 든 채 죽은 이금순의 사체를 추가로 발견했다. 3년 9개월 동안 공주시에서 부녀자 6명이 실종돼 사체로 발견됐고 한 명이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4. 검거[편집]

충격을 받은 경찰은 무려 강력반 형사 60여 명을 차출해 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그간 사인불명으로 변사 처리됐던 사건들까지 되짚어보았다. 그 결과 홀로 집을 나선 부녀자들이 변을 당했고 살인 전에 강간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사체가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계곡 등지에 유기되어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렸다. 그리고 낮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을 시도했으므로 범인은 공주 일대 지리에 익숙하고, 또 일부 피해자의 시신 상태로 보아, 금품갈취보다는 성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피해자를 강간한 후 살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을 제시했다.

수사팀은 '동일범이 저지른 연쇄 강간살인'으로 가닥을 잡고, 공주시내 동일수법 전과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했다. 그러던 중 수사팀은 한 스님으로부터 중요한 진술을 들었다. ‘키 165cm 쯤 되는 30대 남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티고개 정상에서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 남자는 항상 검정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의 눈이 사팔뜨기였다.’는 진술이었다. 스님의 진술대로라면 그 남자는 분명 수상한 인물이었다. 불자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주로 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아무것도 없는 고개 정상에서 자주 내렸다는 사실은 용의자로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얼마 후 수사팀은 중요한 첩보 또 한 건을 받았다. 당시 공주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1985년에 공주 ○○면에서 한 남자가 같은 마을에 사는 부녀자를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당사자끼리 합의를 보고 조용히 무마했다.’는 소문을 접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형사들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1984년 여름에도 한 남자가 동네 주민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공주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들과 범인이 같은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형사들은 당시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당시 피해자와 합의를 본 남자를 찾아내었는데,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제의 남자는 충남 공주시 옥룡동에 사는 30살 독신남 강창구(미장공)였다. 놀랍게도 강창구는 스님이 목격한 수상한 사내와 인상착의가 비슷했다. 은밀히 내사를 진행한 수사팀은 강창구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강창구의 집을 급습했다. 잠을 자던 강창구는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며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했다. 조사 결과 강창구는 홀로 외진 길을 지나는 부녀자들을 위협, 강간하고 범행 은폐를 위해 목을 졸라 살해해 왔고, 그간 단순변사로 처리됐던 여자들도 모두 강창구가 죽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5. 드러난 범행[편집]

연쇄살인범 강창구
강창구의 첫 번째 범행은 1983년 7월의 마지막 날,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공주시 우성면에 소재한 한 계곡 근처로 꼴을 베러 간 강창구는 계곡에서 멱을 감는 주민 홍 씨를 발견하고 몹쓸 마음을 품었다. 강창구는 홍 씨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어 실신시킨 뒤 강간했다. 그리고 범행을 숨기기 위해 익사시킨 뒤, 사체를 물속에 넣어 유기하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첫 번째 범행이 의외로 쉽게 성공하자, 강 씨는 외진 길에 혼자 다니는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풀기로 마음 먹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강창구는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몹시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성장했다. 가정형편 상 국민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강 씨는 형의 집에 얹혀 살면서 시멘트 미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강창구는 사팔뜨기인 데다가 어린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었고, 10대 때부터 간질까지 앓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강창구의 주변에는 보듬어줄 사람도,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강창구는 항상 외톨이였고,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은 강창구가 쳐다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도망가거나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고 한다. 외적인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놀림과 왕따가 계속되자, 강창구의 마음속은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무시당하는 신세를 한탄해오던 강 씨는 서서히 여성에게 증오심을 품고, 급기야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비뚤어진 성욕과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6. 결말[편집]

6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강간·살해한 강창구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반성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에서 가톨릭에 귀의했다. 강창구는 1990년 4월 17일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때 자신의 과 콩팥을 기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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