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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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14회 작성일 23-01-09 16:55본문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1784년, 황해도 평산에 꽤 행세하던 조 씨 일가가 살았는데, 조 씨 일가의 집안에 시집온 시댁이 갑자기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그런데 시댁에서는 며느리 박씨(박 여인)가 뚜렷한 이유 없이 죽었는데도 관아에 신고 하지 않고 서둘러 장례를 치뤘다. 이 사실을 안 친정 쪽 식구는 박 여인의 죽음이 의심스러워서 신고했다. 그때 당시 평산 군수 였던 정경중은 검시를 했으나 자살로 판정했다. 그러나, 칼[1]에 찔린자국과 목을 맨 자국 이 있는걸로 보아 타살인건가 싶었지만[2] 시신에 방어흔이 없고 자세가 자살이였기 때문에 자살로 판정 났다. 복검을 시행한 배천 군수인 이서회 역시 밝혀낸것이 없어 황해도 관찰사 홍병찬도 초검과 복검의 보고서를 그대로 믿은 채 자살했다고 판단을 내린다. 그러던 중 황해도 관찰사가 엄사만으로 바뀌는데, 엄사만이 부임하던날, 박 여인의 오라버니가 가서 재조사를 진행해달라 한다.
엄사만은 박여인 사건의 검안을 다시 조사한 결과 몇가지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우선 당시의 초검관 정경증과 복검관 이서회가 피의자 집안의 먼 친척뻘이 되어 검시를 맡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검시를 맡았다는 것이었으며 초검관인 정경증은 시신의 가족에게 반드시 주게 되어있는 시장을 박장혁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건처리에 하자가 있었다고 생각한 엄사만은 적극적인 재수사를 형조에 요청하였고, 그 결과 암행어사 이곤수가 사건 현장인 평산에 파견되었다. 결국 어사 이곤수는 사건을 재수사한 끝에, 연약한 아녀자가 통증을 이겨가며 자기 목을 세 번이나 찌르기 어렵다는 점, 초검에서 보였던 목의 줄 상처가 복검에선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타살로 판정하고 결국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 내었는데…
엄사만은 박여인 사건의 검안을 다시 조사한 결과 몇가지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우선 당시의 초검관 정경증과 복검관 이서회가 피의자 집안의 먼 친척뻘이 되어 검시를 맡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검시를 맡았다는 것이었으며 초검관인 정경증은 시신의 가족에게 반드시 주게 되어있는 시장을 박장혁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건처리에 하자가 있었다고 생각한 엄사만은 적극적인 재수사를 형조에 요청하였고, 그 결과 암행어사 이곤수가 사건 현장인 평산에 파견되었다. 결국 어사 이곤수는 사건을 재수사한 끝에, 연약한 아녀자가 통증을 이겨가며 자기 목을 세 번이나 찌르기 어렵다는 점, 초검에서 보였던 목의 줄 상처가 복검에선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타살로 판정하고 결국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 내었는데…
2.1. 사건의 전말[편집]
이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시어머니 최씨가 친척 조카뻘 되는 조광진과 눈이 맞아 간통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박여인에게 간통사실을 들키자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해 그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집 안 사람을 다 내보내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둘만 있게 된 어느 날, 조광진과 최씨는 몸이 아파 누워있는 박여인의 목을 조르고 다시 세 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후 자살을 가장해 대들보에 목을 매어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