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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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48회 작성일 23-02-09 13:09본문
1. 개요[편집]
2. 성적 억압과 성소외자[편집]
인간으로서의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욕구 중 하나인 성욕을 충족받지 못하고, 그로 인한 차별과 조롱을 받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인 성소외자도 한편으로 이러한 성적 억압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전근대 시절의 특수사항과 출생주의와의 연관[편집]
아프리카의 아카 민족의 경우에는 그 어떠한 주류 종교가 접촉한 적이 없고, 수렵/채집 위주 사회에 걸맞는 남녀평등 사회임에도[2] 출산을 목적으로 한 성행위 그 외의 모든 성행위를 배격한다.
이는 성적 억압이란 것이 그냥 막연히 종교인들이 비싼 밥 먹고 몽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고, 오히려 환경에 의한 원인도 있음을 세속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된다. 기성 종교들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밈으로서 퍼뜨리는 기능을 했을 지언정, '종교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성적 억압을 '만들었다'고 치부하면 곤란할 수 있다.
백신이라는 치트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영아/유아사망률부터가 상상을 초월했으며, 의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정말 별의 별 이유로 사람 죽기 십상이었다. 거기다가 냉병기 시절의 전쟁터는 비슷한 기술적 요건에서는 머릿수가 많아야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 외 어지간한 자잘한 일은 전부 인력으로 해결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기어코 네임드 문명들이 족적을 남겼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인 인구수를 확보했을까? 모든 성행위를 출산을 위한 목적으로 집중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종교나 대중 문화 등의 밈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고 노예 삼을 만한 인력이 확보될 수 있었던 이유 자체가 여성들의 출산을 강요함으로서 사람을 찍어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패권과는 거리가 먼 저런 소수 민족들도 어떻게든 존속을 위해 저러는 마당에, 성적 억압을 단순히 몰상식과 착취가 가져온 악이라고 치부하기는 곤란하다.
이는 성적 억압이란 것이 그냥 막연히 종교인들이 비싼 밥 먹고 몽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고, 오히려 환경에 의한 원인도 있음을 세속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된다. 기성 종교들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밈으로서 퍼뜨리는 기능을 했을 지언정, '종교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성적 억압을 '만들었다'고 치부하면 곤란할 수 있다.
백신이라는 치트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영아/유아사망률부터가 상상을 초월했으며, 의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정말 별의 별 이유로 사람 죽기 십상이었다. 거기다가 냉병기 시절의 전쟁터는 비슷한 기술적 요건에서는 머릿수가 많아야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 외 어지간한 자잘한 일은 전부 인력으로 해결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기어코 네임드 문명들이 족적을 남겼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인 인구수를 확보했을까? 모든 성행위를 출산을 위한 목적으로 집중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종교나 대중 문화 등의 밈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고 노예 삼을 만한 인력이 확보될 수 있었던 이유 자체가 여성들의 출산을 강요함으로서 사람을 찍어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패권과는 거리가 먼 저런 소수 민족들도 어떻게든 존속을 위해 저러는 마당에, 성적 억압을 단순히 몰상식과 착취가 가져온 악이라고 치부하기는 곤란하다.
4. 기성 종교와 성적 억압[편집]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보수주의자 스스로의 착각과 달리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의 규범에서 시작된 것이며 근대 시대에 이전에도 개방적인 성문화를 지난 지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유교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공통적으로 개방적인 성문화를 지녔지만 16세기부터 시작된 서구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영향과 기독교, 이슬람교의 확산으로 개방적인 성문화가 쇠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 폭발>>이라는 책에 의하면 6000년 전에 사하라시아[3]의 거주민들이 급격한 사막화로 인한 환경 변화로 거주민들의 육체에 대한 혐오가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된다.[4] 이 저서에서는 신석기 시대까지 만해도 인간의 육체[5]를 묘사하고 성욕을 드러내는 데에 수치심이 없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기원전 4000년경 이후로 이러한 유물들이 점점 감소하고 여성성을 금기시하는 제도와 기록이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유대교 형성에 영향을 미친 조로아스터교는 정신을 선(善)으로 하고 육체를 악(惡)으로 여기는 교리가 있는데 이는 최초로 성적 억압이 성문화된 사례라고 인용되곤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선악이분법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바하이교가 공통적으로 성소수자를 배척하며 피임, 낙태, 자위, 간음, 노출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된다.
힌두교는 카마수트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성적으로 자유로운 종교로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여성을 열등하게 간주하고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금지했다. 게다가 자위도 기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동아시아에서는 유교가 성적 억압을 주도했고 도교가 성적 자유주의를 주도했다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동양의 종교문제에 접근한다. 이들은 동아시아 역사 상 도교보다 유교가 지배했던 시기가 더 길었고 사실상 대부분 역사가 성을 억압한 것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교와 도교는 서로 상생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였지, 어느 한쪽을 다른 쪽이 핍박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외려 유학의 주류를 차지한 성리학은 성학십도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태극과 오행 등 도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학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과거 조선시대부터 유교 문화에 의한 성적 보수주의로 인해 성적 억압이 매우 강했었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 원리주의(교조화)가 심해져서 성문화는 커녕 이슬람권에서 유래한 장옷이 널리퍼지고 남녀 모두의 장신구도 단촐하게 변해버렸다. 이러한 기반이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때도 이어져 왔다. 군국주의와 전체주의가 흔히 그렇듯 일제는 성적 대중문화, 성적 문화예술행위에 대해 매우 억압적인 분위기로 사회를 옥죄었고, 군사 정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6]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전두환 정권 시절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지만 자유화 정책을 통해 유흥산업과 에로 영화가 성행했던 것도 이시기이도 하다. 이러한 유교 문화로부터 이어져 온 성적보수주의 경향과 성적 억압은 군사정권이 해체됐음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결합하여 성적 억압이 더 강화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성인포르노 제작과 유통이 이슬람 국가와 북한,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불법으로 취급한다.
일본의 성 문화를 보고 일본은 성적 자유주의가 완전한 수준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음지로 구분해 생각만큼 개방적인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오해와 달리 2차 대전 이후 일본에선 성매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적이 없었다(물론 말만 이렇지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윤락가도 있고) 참고로 일본에서도 야동배우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도 않다. AV 한 번 찍었다고 성우 사회에서 퇴출된 적도 몇 번 있었던 나라가 일본이다. 아무튼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다소 과장된 인식은 한국의 반일주의자들이 일본을 비하할 목적으로, 또는 친일주의자들이 일본을 찬양할 목적으로 생겨난 편향된 정보로 인한 가능성이 있다.[7][8] 사실 여기에 기름을 부었던 일본의 섹스 관련 산업의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우, 조로아스터와 유대교의 영향을 제외한 성적 억압에 대한 원류를 찾으려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소년애 문화에 대한 비판, 키벨레 신앙과 관련된 비판[9], 수도자들의 파계 문제 등이 있다. 어쨌든 4세기의 엘비라 공의회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식 소년애를 저격하는 내용들이 공포된다. '성 세르기오스와 바쿠스'라는, 정황상 동성 커플로 의심되는 성인도 있으며, 심지어 '아델포포이에시스', 문자 그대로는 '형제 만들기'이지만 그 실체를 뜯어보면 마치 동성 결혼식이 의심되는 전례도 있다.[10] 심지어 그 스페인 종교재판의 경우도 '동성' 관련 혐의로 조사받은 대부분의 경우는 오늘날 기준으로 따지면 미성년자 의제강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해서 중세 시대 가톨릭의 주류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행위를 처벌하는 교회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으며, 헨리 8세의 치세하에 1553년 통과된 버거리법도 분명히 세속의 법이지만 '신/하느님' 들먹이며 종교적인 색채를 띈다. 문제는 엄밀히는 저렇게 출발한 교회의 그것이 세월이 흐르며[11] 출산을 위한 성행위를 제외한 모든 성행위를 배격하는 쪽으로 확대되었으며, 특히 비슷한 내용의 세속 형법들은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르네상스 이후로 가면 리하르트 풀러 본 호헨부르크나 한스 헤르만 본 카트[12] 같이 관련 다 큰 어른끼리 합의하에 그러는 행위로도 사형까지 당한 예가 분명히 나온다. 영국과 미국에서 '계간법(소도미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바로 이것이다.[13] 계간, 수간 등 다양한 성행위를 처벌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성애', 그 중에서도 남성 간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으로 20세기까지 존속했다. 수간금지법의 존폐 여부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과 결부되어 이슈화되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 폭발>>이라는 책에 의하면 6000년 전에 사하라시아[3]의 거주민들이 급격한 사막화로 인한 환경 변화로 거주민들의 육체에 대한 혐오가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된다.[4] 이 저서에서는 신석기 시대까지 만해도 인간의 육체[5]를 묘사하고 성욕을 드러내는 데에 수치심이 없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기원전 4000년경 이후로 이러한 유물들이 점점 감소하고 여성성을 금기시하는 제도와 기록이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유대교 형성에 영향을 미친 조로아스터교는 정신을 선(善)으로 하고 육체를 악(惡)으로 여기는 교리가 있는데 이는 최초로 성적 억압이 성문화된 사례라고 인용되곤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선악이분법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바하이교가 공통적으로 성소수자를 배척하며 피임, 낙태, 자위, 간음, 노출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된다.
힌두교는 카마수트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성적으로 자유로운 종교로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여성을 열등하게 간주하고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금지했다. 게다가 자위도 기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동아시아에서는 유교가 성적 억압을 주도했고 도교가 성적 자유주의를 주도했다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동양의 종교문제에 접근한다. 이들은 동아시아 역사 상 도교보다 유교가 지배했던 시기가 더 길었고 사실상 대부분 역사가 성을 억압한 것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교와 도교는 서로 상생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였지, 어느 한쪽을 다른 쪽이 핍박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외려 유학의 주류를 차지한 성리학은 성학십도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태극과 오행 등 도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학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과거 조선시대부터 유교 문화에 의한 성적 보수주의로 인해 성적 억압이 매우 강했었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 원리주의(교조화)가 심해져서 성문화는 커녕 이슬람권에서 유래한 장옷이 널리퍼지고 남녀 모두의 장신구도 단촐하게 변해버렸다. 이러한 기반이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때도 이어져 왔다. 군국주의와 전체주의가 흔히 그렇듯 일제는 성적 대중문화, 성적 문화예술행위에 대해 매우 억압적인 분위기로 사회를 옥죄었고, 군사 정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6]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전두환 정권 시절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지만 자유화 정책을 통해 유흥산업과 에로 영화가 성행했던 것도 이시기이도 하다. 이러한 유교 문화로부터 이어져 온 성적보수주의 경향과 성적 억압은 군사정권이 해체됐음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결합하여 성적 억압이 더 강화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성인포르노 제작과 유통이 이슬람 국가와 북한,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불법으로 취급한다.
일본의 성 문화를 보고 일본은 성적 자유주의가 완전한 수준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음지로 구분해 생각만큼 개방적인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오해와 달리 2차 대전 이후 일본에선 성매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적이 없었다(물론 말만 이렇지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윤락가도 있고) 참고로 일본에서도 야동배우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도 않다. AV 한 번 찍었다고 성우 사회에서 퇴출된 적도 몇 번 있었던 나라가 일본이다. 아무튼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다소 과장된 인식은 한국의 반일주의자들이 일본을 비하할 목적으로, 또는 친일주의자들이 일본을 찬양할 목적으로 생겨난 편향된 정보로 인한 가능성이 있다.[7][8] 사실 여기에 기름을 부었던 일본의 섹스 관련 산업의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우, 조로아스터와 유대교의 영향을 제외한 성적 억압에 대한 원류를 찾으려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소년애 문화에 대한 비판, 키벨레 신앙과 관련된 비판[9], 수도자들의 파계 문제 등이 있다. 어쨌든 4세기의 엘비라 공의회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식 소년애를 저격하는 내용들이 공포된다. '성 세르기오스와 바쿠스'라는, 정황상 동성 커플로 의심되는 성인도 있으며, 심지어 '아델포포이에시스', 문자 그대로는 '형제 만들기'이지만 그 실체를 뜯어보면 마치 동성 결혼식이 의심되는 전례도 있다.[10] 심지어 그 스페인 종교재판의 경우도 '동성' 관련 혐의로 조사받은 대부분의 경우는 오늘날 기준으로 따지면 미성년자 의제강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해서 중세 시대 가톨릭의 주류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행위를 처벌하는 교회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으며, 헨리 8세의 치세하에 1553년 통과된 버거리법도 분명히 세속의 법이지만 '신/하느님' 들먹이며 종교적인 색채를 띈다. 문제는 엄밀히는 저렇게 출발한 교회의 그것이 세월이 흐르며[11] 출산을 위한 성행위를 제외한 모든 성행위를 배격하는 쪽으로 확대되었으며, 특히 비슷한 내용의 세속 형법들은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르네상스 이후로 가면 리하르트 풀러 본 호헨부르크나 한스 헤르만 본 카트[12] 같이 관련 다 큰 어른끼리 합의하에 그러는 행위로도 사형까지 당한 예가 분명히 나온다. 영국과 미국에서 '계간법(소도미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바로 이것이다.[13] 계간, 수간 등 다양한 성행위를 처벌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성애', 그 중에서도 남성 간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으로 20세기까지 존속했다. 수간금지법의 존폐 여부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과 결부되어 이슈화되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5. 현황[편집]
5.1. 종교근본주의[편집]
5.1.1. 유대교[편집]
5.1.2. 기독교[편집]
5.1.3. 이슬람[편집]
이슬람주의자들은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고 있고 서구내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이 히잡을 정당화하려고 온갖 프로파간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 프로파간다를 유지하기 위해 서양의 성적 자유주의를 타락한 문화로 선전하면서 페미니즘도 탄압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극단주의로 경도되면 히잡을 안 썼다고 사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케이스의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ISIL, 알 샤바브,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이다.[17]
여담으로 똑같이 이슬람주의가 상당히 세가 있는 경우라도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억압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대표적으로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이 종교에 의지해야 될 정도로 빈곤하거나 내전이 일어나서 치안이 불안정하다면 이슬람주의의 수준이 극우 파시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저렇게 저개발이고 빈곤한 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인 경우는 이슬람주의가 강세이긴 해도,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지만 속에 란제리를 입는 것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물론 터키 같이 이슬람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세속주의가 강하다면 히잡조차도 안 쓰는 경우도 있다.
여담으로 똑같이 이슬람주의가 상당히 세가 있는 경우라도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억압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대표적으로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이 종교에 의지해야 될 정도로 빈곤하거나 내전이 일어나서 치안이 불안정하다면 이슬람주의의 수준이 극우 파시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저렇게 저개발이고 빈곤한 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인 경우는 이슬람주의가 강세이긴 해도,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지만 속에 란제리를 입는 것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물론 터키 같이 이슬람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세속주의가 강하다면 히잡조차도 안 쓰는 경우도 있다.
5.1.4. 성리학[편집]
存天理去人欲
존천리거인욕
본래 이 세계에서 빼어난 기를 품수 받은 존재인 사람은 천리를 부여받아 그 존재본질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성을 구비하고 있다. 그것이 천명지성(天命之性)이요, “성즉리(性卽理)”이다. 이에 덕성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람마다 기품(氣稟)의 차이도 있고 식욕(食欲)과 성욕(性欲), 물욕(物欲), 그리고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식욕이나 성욕, 물욕 전체를 욕망, 즉 인욕(人欲)이란개념으로 귀속시켜 볼 수 있는데, 이 인욕 때문에 사람의 존재본질인 덕성이 가려져 온전히 실현해 내기가 어렵게 된다. 이점에서 인욕이 지나치면 천리의 실현을 막는다고 말한다. 인욕이 늘어나면 천리가 줄게 마련인 것이다. 말하자면 천리와 인욕은 사람의 의식이나 심리활동상 상호 소장(消長)의 관계에놓여 있다.정상봉, 주자의 욕망관과 그 현대적 의의,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67, 2017, 통권 67호 pp. 53-88 (36 pages)#
고려사회는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었다. 결혼 후 남성이 여성의 집에서 사는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으며, 재산상속 역시 여성이 남성과 꼭 같은 재산을 분배받는 남녀균등상속제였다. 性的으로 고려사회는 조선에 비해 훨씬 개방적인 사회였다. 조선이 건국되자, 사대부들은 사회를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사회로 만들려고 하였고, 그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인간의 성적 욕망을 관리하고자 하였다. 이 방법의 특징은 여성의 성욕을 부도덕한 것으로 인식케 하는 담론을 유포하여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물론 남성에게도 성욕의 절제를 요구하였으나, 그것은 부부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이었고, 남성들은 蓄妾制와 기생제도를 통해 일탈적 성욕을 충족시킬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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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성욕을 억제하려 한다. 이때의 성욕의 배후에 있는 것은 쾌락으로서의 성이다. 성욕을 억제하는 것은 성리학의 수양론이다 퇴계와 율곡을 거치면서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양론에 의한 성욕의 억제는 성리학자들 사이에는 보편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강명관, 조선시대의 성담론과 性, 한국한문학연구 vol., no.42, 2008, pp. 9-43 (35 pages)#
고려시대에는 야외에서의 남녀혼욕이 일상적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혼욕은 사라지고, 목욕횟수가 줄어들었고, 목욕할 때도 타인에게 신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하여 목욕전용 옷을 입고 목욕을 하게 된다. #1 #2
조선시대에는 내외법/내외 관습법이라는 형태의 남녀간의 접촉을 막기 위한 관습이 존재하였다. 이에 따라서 사대부의 집은 사랑채와 안채로 나뉘어 남녀가 서로 분리된 구조로 이루어졌다. #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조선은 특히 성리학의 영향으로 춘화의 등장이 늦었고, 전해져 오는 것도 적은 편이다. 그리고 인조 때 명나라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