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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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88회 작성일 23-01-05 11:21본문
1. 개요[편집]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
1978년 4월 8일에 백화양조의 계열사 사장의 아들인 강 모군(당시 18세)[1]이 김 모양(당시 18세)을 백화양조 실험실에서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회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다.
1978년 4월 8일에 백화양조의 계열사 사장의 아들인 강 모군(당시 18세)[1]이 김 모양(당시 18세)을 백화양조 실험실에서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회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다.
2. 사건의 전말[편집]
강 군은 김 양과 사귀는 사이였으며 4월 3일에는 김 양이 어머니에게 "부잣집 아들과 가까워져서 이제 나도 잘 살 수 있게 됐다." 고 말했고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4월 7일에는 강 군이 김 양의 집에 전화해 다음 날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러다가 4월 8일에 강 군이 김 양을 그녀의 집 앞에서 만나 백화양조 앞을 지나가다가 경비원이 없는 틈을 타 실험실로 들어가 김 양의 남자 관계에 대해서 추궁하다가 김 양이 "나는 너 외에는 사귀는 남자가 없다." 고 말하면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옷을 모두 벗은 후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하자 술통에 빠트려 익사시켜버렸다.
3. 재판[편집]
4. 기타[편집]
- 양조장 발효통 안에 빠진 사람이라는 도시전설과 유사하다.
-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거짓말탐지기를 도입한 수사기법을 사용했다. 다만 이것은 실용화 단계이며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년 후 일어난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부터이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사건으로 인해 백화양조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회사에서 판매된 소주인 '백화소주'는 시체가 들어간 상태로 출시되었고 당시 주간경향에서 심층보도를 하고 백화양조 측에서 재판매했다는 내용을 번복하는 등 기사 내용을 두고 주간경향과 백화양조 간의 신경전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 백화양조는 이 일로 위기를 맞았지만 이 사건과는 상관없이 양주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는데, 당시 판매되었던 브랜드는 '조지 드레이크', '베리나인', '알렉산더', '삼바25' 등이 있으며 1982년에 회사명 또한 베리나인으로 독립하였고 이후 두산그룹이 인수하게 되었다.
- 해당 사건이 일어났던 공장은 사건 이후에는 롯데주류BG의 공장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