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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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22회 작성일 22-12-29 16:57본문
1. 개요[편집]
신체적, 언어적인 방식의 성적 공격성이 정상화 및 규범화되는 문화.
2. 문화로서의 강간이란?[편집]
문화적 의미를 담지 않고 바라보면, 강간은 욕망에 들끓는 성범죄자의 은밀한 악행에 한 불운한 피해자가 걸려들게 된 사건이며, 가해자 대 피해자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해결되어야 할 도덕적 문제에 다뤄지게 된다. 범죄자의 심리가 어떠한지, 범죄가 저질러진 시간과 장소는 어떠했는지, 범죄자가 어느 정도의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적절할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는 낯모르는 타인인지 아니면 지인이었는지 같은 사실 기반으로 접근하게 된다. 강간 문화의 존재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러한 접근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강간 문화라는 용어가 이와 같은 접근을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사회문화 전체의 분석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의 무형적 측면들이 전수될 때,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성욕을 발산할 때에는 조금 거칠게 하더라도 괜찮다, 여성도 그걸 원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은 원래 다 늑대다, 강간을 당하는 건 여성이 몸가짐을 똑바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특히 비공식적으로) 주입한다고 본다. Williams(2007)는 이와 관련하여, 강간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문화라는 단어를 끌어온 이유는, "남성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과 연결된 기대의 일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의 패턴이 형성되고, 조직화되고, 세대 간에 전수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간 문화라는 용어는 인류의 모든 동서고금의 문명과 문화가 전부 강간의 요소를 담고 있다는 보편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저명한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M.Mead)와 다른 후속 연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1] 강간이라는 것이 범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강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우에노 치즈코와 같은 어떤 연구자들은 강간과 같은 성적 폭력성이 인류 역사에서 근대 이후에나 비로소 제대로 나타난 개념일 수 있다고도 주장했으며, 인도네시아의 한 모계 부족사회는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부터 강간 사건이 폭증하기 시작했다는 Sanday(1996)의 보고도 있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다면 강간 문화는 인류와 늘 함께 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강간 문화라는 용어가 이와 같은 접근을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사회문화 전체의 분석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의 무형적 측면들이 전수될 때,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성욕을 발산할 때에는 조금 거칠게 하더라도 괜찮다, 여성도 그걸 원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은 원래 다 늑대다, 강간을 당하는 건 여성이 몸가짐을 똑바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특히 비공식적으로) 주입한다고 본다. Williams(2007)는 이와 관련하여, 강간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문화라는 단어를 끌어온 이유는, "남성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과 연결된 기대의 일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의 패턴이 형성되고, 조직화되고, 세대 간에 전수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간 문화라는 용어는 인류의 모든 동서고금의 문명과 문화가 전부 강간의 요소를 담고 있다는 보편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저명한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M.Mead)와 다른 후속 연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1] 강간이라는 것이 범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강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우에노 치즈코와 같은 어떤 연구자들은 강간과 같은 성적 폭력성이 인류 역사에서 근대 이후에나 비로소 제대로 나타난 개념일 수 있다고도 주장했으며, 인도네시아의 한 모계 부족사회는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부터 강간 사건이 폭증하기 시작했다는 Sanday(1996)의 보고도 있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다면 강간 문화는 인류와 늘 함께 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용어의 학술적 기원[편집]
사회학자 조이 윌리엄스(J.E.Williams)는 《The Blackwell Encyclopedia of Sociology》 에 실은 자신의 리뷰에서,[2] 이 용어가 "알려지지 않은 기원과 불확실한 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언급한다. 확실한 것은, 이 용어가 1970년대 서구권에서 일어난 강간 근절 운동(anti-rapism movement)의 일환으로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조작적 정의를 거치기 전에 이미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선의 운동가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조어였다는 의미가 된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 된 문헌은, 페미니즘의 제2물결 당시 출간된 노린 코넬(N.Connell)과 캐산드라 윌슨(C.Wilson)의 책 《Rape: The First Sourcebook for Women》 의 105페이지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사례이다. 하지만 단어 자체의 언어적인 쓰임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서 정립된 사례로 자주 꼽히는 출처들이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언급할 것은 유명한 페미니스트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의 1975년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에서 언급된 '강간 지지적 문화'(rape-supportive culture)라는 표현이다. 이 도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좋으니까 유혹했겠지", "자기도 즐겼겠지"라는 생각에 대해서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론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 문헌 역시 강간 문화를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되는 출처다.
동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Rape Culture》 의 감독 마거릿 라자러스(M.Lazarus)는 직접적으로 강간 문화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시도하지는 않았으나, 강간 문화의 양상을 묘사적으로 보여주는 데 치중하였다.
처음으로 학술문헌에서 제대로 등장하는 강간 문화의 정의는 1993년에 발간된 (위에서 소개한 바 있는) 《Transforming a Rape Culture》 의 서문이다. 해당 문헌의 내용을 여기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 된 문헌은, 페미니즘의 제2물결 당시 출간된 노린 코넬(N.Connell)과 캐산드라 윌슨(C.Wilson)의 책 《Rape: The First Sourcebook for Women》 의 105페이지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사례이다. 하지만 단어 자체의 언어적인 쓰임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서 정립된 사례로 자주 꼽히는 출처들이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언급할 것은 유명한 페미니스트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의 1975년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에서 언급된 '강간 지지적 문화'(rape-supportive culture)라는 표현이다. 이 도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좋으니까 유혹했겠지", "자기도 즐겼겠지"라는 생각에 대해서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론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 문헌 역시 강간 문화를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되는 출처다.
동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Rape Culture》 의 감독 마거릿 라자러스(M.Lazarus)는 직접적으로 강간 문화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시도하지는 않았으나, 강간 문화의 양상을 묘사적으로 보여주는 데 치중하였다.
처음으로 학술문헌에서 제대로 등장하는 강간 문화의 정의는 1993년에 발간된 (위에서 소개한 바 있는) 《Transforming a Rape Culture》 의 서문이다. 해당 문헌의 내용을 여기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강간 문화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공격성이나 폭력성에 대한 지지를 장려하는 신념의 복잡한 세트(a complex set of beliefs that encourages male sexual aggression and supports violence against women)이다. 이것은 폭력이 섹시해 보이고 섹슈얼리티가 폭력적으로 보이는 사회이다. 강간 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성적인 발언에서 성적인 접촉, 더 나아가 강간 그 자체에 달하는 범위의 위협적인 폭력의 연속선을 인식한다. 강간 문화는 여성에 대한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테러리즘을 규범으로서 용납한다."- Buchwald et al.(1993), p.v.
4. 강간 신화와의 비교[편집]
유사한 개념으로서 심리학 및 법학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되는 주제인 강간 신화(rape myth)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1994년의 한 리뷰에서 개념화한 정의에 따르면,[5] 강간 신화란 "일반적으로 거짓이지만 광범위하고 끈질기게 퍼져 있어서,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단어 상의 차이에서도 보듯이 여기에는 문화라는 단어가 누락되어 있고, 따라서 사회문화적인 측면까지 포괄하는 거시적인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간 신화는 '태도'나 '신념'이라는 개념화에서 보듯이, 그보다는 개인이 내면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생각이나 관점을 지칭하는 것이다.
강간에 대해서 어떤 몰이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개인이 의미 있는 것으로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강간 신화가 된다. 그리고 수많은 강간 신화들이 다수의 대중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다고 할 때, 이는 그 자체만으로 강간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강간 문화는 개인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강간 신화를 정상적인 것으로서 암묵적으로 주입시키는 사회화를 포함하며, 미디어 속에서 폭력적인 성적 접촉에 매력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간 신화를 규범적으로 옳은 것처럼 암묵적으로 납득시키고, 다시금 이 강간 신화가 개인이 습득한 경험적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세대를 거치면서 누적적으로 전수되는 문화 요소가 되도록 만든다. 만일 어떤 사회가 이런 특성들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사회는 강간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문화비평 이론가들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Field(2004)의 설명을 바로 빌리자면, "강간 문화는 강간 신화를 홍보함으로써 그 신념을 강화"하며, "이는 광고나 텔레비전 쇼, 영화, 그리고 뮤직비디오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강간에 대해서 어떤 몰이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개인이 의미 있는 것으로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강간 신화가 된다. 그리고 수많은 강간 신화들이 다수의 대중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다고 할 때, 이는 그 자체만으로 강간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강간 문화는 개인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강간 신화를 정상적인 것으로서 암묵적으로 주입시키는 사회화를 포함하며, 미디어 속에서 폭력적인 성적 접촉에 매력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간 신화를 규범적으로 옳은 것처럼 암묵적으로 납득시키고, 다시금 이 강간 신화가 개인이 습득한 경험적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세대를 거치면서 누적적으로 전수되는 문화 요소가 되도록 만든다. 만일 어떤 사회가 이런 특성들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사회는 강간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문화비평 이론가들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Field(2004)의 설명을 바로 빌리자면, "강간 문화는 강간 신화를 홍보함으로써 그 신념을 강화"하며, "이는 광고나 텔레비전 쇼, 영화, 그리고 뮤직비디오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5. 강간 문화 관점으로 보는 세상[편집]
《Time Magazine》 의 캐롤라인 키친스(C.Kitchens)의 비평이나 이 리얼뉴스 보도에서 보듯이, 근대적 법 체계의 확립은 강간이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여겨서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는데, 이는 언뜻 강간을 지지하는 문화의 존재와 상충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강간은 나쁘다. 그리고 남자가 강간을 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의 두 문장은 "따라서 강간이 나쁜 이유는 피해자에게서 찾아야 한다"로 이어진다. 강간을 이해할 때 가해자에 대한 면책과 피해자에 대한 귀책을 시도함으로써, 강간 문화는 한편으로는 강간을 문제시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죗값'을 피해자에게 물음으로써 강간 행위를 지지할 수 있게 된다. 가해자에 대한 면책은 기본적으로 "강간은 남성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며, 남성들은 원래 사소한 자극만 가해져도 으레 자신의 성욕을 공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게 마련이다"라는 합리화를 바탕으로 한다.
Williams(2007)는 미국 사회에서 "건전한 시민이라면 강간은 저질러서도 안 되고 전수해서도 안 될 도덕적 악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근대적 시민의식이 존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강간 문화가 성립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상황을 인식하면서, 강간 문화가 악행으로서의 강간의 통념적 정의를 살짝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강간은 그것이 섹슈얼리티와 사회적으로 기입된 남성-여성 행동의 공적 표상에 의해 용납된다면 장려될 것이다." 실제로 그가 지적하듯이 강간의 법적 정의는 계속하여 변해 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부부 간 강간을 들 수 있다. Williams(2007)는 강간 문화에서 '허용'되는 강간은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갖는 여성"에 대한 강간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고등학생이 강간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와 훗날 결혼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해서 풀려난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보이는 행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모든 성적 접촉이 심각한 범죄로 판단되도록 사회적, 입법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들 역시 강간 문화 속에서는 강간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했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데, 사회학자들은 이것이 어린 소녀들에게 가르치는 "몸조심해야 한다" 는 규범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문헌에서는 이를 "특별한 공포"라고 불렀는데,[6] 자신이 몸가짐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뭔가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나마 늘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강간을 경험하더라도 사회와 법정으로부터 추가적인 공격을 받을 것, 즉 피해자 비난을 예상하기 때문에 그 공포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야한 옷'을 입지 않거나, 정숙한 품행을 유지하려 하거나,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지 않으려 하거나, 보다 일상적으로는 밤 거리를 걸을 때 주위를 둘러보며 잠재적 위험요소에 신경을 쓰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문화비평가들은 강간 문화가 아닌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이런 "부가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제안하며, 이 공포는 남성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부연한다. 물론 남성 개개인이 밤 거리를 두려워하거나 강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강간 문화의 맥락은 늘 사회화와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상기하자. 어린 소년에게 "남자가 함부로 그렇게 다리 벌리는 거 아니다!" 혹은 "밤 늦은 시간에 그렇게 짧은 바지 입고 다니는 거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남성이 강간의 공포를 교도소에서만 느낀다면 여성은 교도소에 평상 수감되어 살아가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라는 과격한 비유를 하기도 한다. 모든 남성 수감자들이 한 번씩 강간의 경험을 당하는 건 아닐지라도, 어쨌건 모든 남성 수감자들이 유독 그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교도소는 특히 남성들에게 강간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들이 강간을 실제로 겪지는 않지만, 강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유독 강간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며, 여러 연구에 따르면 다른 문화권보다 미국과 같은 강간 문화에서는 실제로 강간 발생률도 더 높게 나타나고[7] 심지어 강간율이 높은 사회는 살인율도 그만큼 더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들도 존재한다.[8]
Williams(2007)는 미국 사회에서 "건전한 시민이라면 강간은 저질러서도 안 되고 전수해서도 안 될 도덕적 악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근대적 시민의식이 존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강간 문화가 성립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상황을 인식하면서, 강간 문화가 악행으로서의 강간의 통념적 정의를 살짝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강간은 그것이 섹슈얼리티와 사회적으로 기입된 남성-여성 행동의 공적 표상에 의해 용납된다면 장려될 것이다." 실제로 그가 지적하듯이 강간의 법적 정의는 계속하여 변해 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부부 간 강간을 들 수 있다. Williams(2007)는 강간 문화에서 '허용'되는 강간은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갖는 여성"에 대한 강간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고등학생이 강간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와 훗날 결혼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해서 풀려난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보이는 행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모든 성적 접촉이 심각한 범죄로 판단되도록 사회적, 입법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들 역시 강간 문화 속에서는 강간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했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데, 사회학자들은 이것이 어린 소녀들에게 가르치는 "몸조심해야 한다" 는 규범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문헌에서는 이를 "특별한 공포"라고 불렀는데,[6] 자신이 몸가짐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뭔가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나마 늘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강간을 경험하더라도 사회와 법정으로부터 추가적인 공격을 받을 것, 즉 피해자 비난을 예상하기 때문에 그 공포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야한 옷'을 입지 않거나, 정숙한 품행을 유지하려 하거나,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지 않으려 하거나, 보다 일상적으로는 밤 거리를 걸을 때 주위를 둘러보며 잠재적 위험요소에 신경을 쓰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문화비평가들은 강간 문화가 아닌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이런 "부가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제안하며, 이 공포는 남성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부연한다. 물론 남성 개개인이 밤 거리를 두려워하거나 강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강간 문화의 맥락은 늘 사회화와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상기하자. 어린 소년에게 "남자가 함부로 그렇게 다리 벌리는 거 아니다!" 혹은 "밤 늦은 시간에 그렇게 짧은 바지 입고 다니는 거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남성이 강간의 공포를 교도소에서만 느낀다면 여성은 교도소에 평상 수감되어 살아가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라는 과격한 비유를 하기도 한다. 모든 남성 수감자들이 한 번씩 강간의 경험을 당하는 건 아닐지라도, 어쨌건 모든 남성 수감자들이 유독 그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교도소는 특히 남성들에게 강간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들이 강간을 실제로 겪지는 않지만, 강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유독 강간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며, 여러 연구에 따르면 다른 문화권보다 미국과 같은 강간 문화에서는 실제로 강간 발생률도 더 높게 나타나고[7] 심지어 강간율이 높은 사회는 살인율도 그만큼 더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들도 존재한다.[8]
6. 용어에 대한 의견[편집]
6.1. 옹호[편집]
6.2. 비판[편집]
중범죄 행위로 정의된 강간이라는 단어를 자신으로 입으로 뱉으면서 강간 가해자의 범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런 성적 폭력성의 만연함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문화적 요소들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주장하는 것 그 자체로 언어도단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화두를 던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비상식적 명명에 대한 면죄부가 될 일이 아니다. 임팩트를 위해 대상이나 현상을 과장하여 명명하는 것은 씁쓸히나마 웃을 수 있는 소재를 두고 풍자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 선을 넘으면 '선동을 위한 언어'가 될 뿐이다.
앞서 줄곧 인용한 사회학자 조이 윌리엄스에 따르면, 강간 문화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그것이 사실상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의 피해자라는 식의 과잉일반화라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를 강간 문화라고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인 수준에서 보면 모든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모든 남성들은 강간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많은 이론가들과 철학자들, 사회학자들은 모든 여성의 경험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며, 모든 남성의 경험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이를 반박해 왔다. 이는 남성 '집단' 과 여성 '집단' 의 갈등론적 대결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정체성 정치 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성범죄에 보다 더 민감해지고 각성해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들 또한 이 용어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강간 문화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만 악한 사회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RAINN과 같은 몇몇 기관들이나 논객들은 강간 문화라는 개념이 범죄자 개인의 악행에 면책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즉 범죄자로 하여금 "제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것이 괜찮다고 말했어요!"라고 변명할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사형제 찬반 논란에서도 보듯이 이들은 인간이 과연 교화될 수 있는 존재인가에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일지라도, 아무리 문화적으로 강간이 나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칠지라도, 끝내 강간을 저지를 범죄자는 저지르고야 만다고 비관한다.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으로》 의 저자 벨 훅스(B.Hooks) 역시 강간 문화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강간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맞지만, 강간이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인식의 틀에서 설명되는 대신에 폭력이라는 선정적인 측면만이 과도하게 강조되게 한다고 우려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정적인 용어는 문서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정성이 높은 쪽으로 사회운동의 구호들이 치환되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강간 문화라는 단어 자체의 개념적 미비성도 문제다.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면, 강간 문화가 아닌 문화는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해서도 미처 답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컨대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전쟁 문화'(war culture) 같은 것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이 강간이 아니라 살해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강간 문화를 단지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만 삼은 채 그 이상의 개념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 문화의 구성 요인(factor)이나 유형(type), 변화의 역동(dynamics)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거의 진공 상태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인도나 중동과 같은 제3세계의 강간 사건들에 대해서 타하루시 논란에서처럼 그곳에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종차별적 시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국내에서도 이민자 반대 논리중의 하나가 이러한 강간문화였다. # 여기서 진보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앞서 줄곧 인용한 사회학자 조이 윌리엄스에 따르면, 강간 문화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그것이 사실상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의 피해자라는 식의 과잉일반화라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를 강간 문화라고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인 수준에서 보면 모든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모든 남성들은 강간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많은 이론가들과 철학자들, 사회학자들은 모든 여성의 경험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며, 모든 남성의 경험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이를 반박해 왔다. 이는 남성 '집단' 과 여성 '집단' 의 갈등론적 대결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정체성 정치 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성범죄에 보다 더 민감해지고 각성해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들 또한 이 용어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강간 문화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만 악한 사회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RAINN과 같은 몇몇 기관들이나 논객들은 강간 문화라는 개념이 범죄자 개인의 악행에 면책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즉 범죄자로 하여금 "제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것이 괜찮다고 말했어요!"라고 변명할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사형제 찬반 논란에서도 보듯이 이들은 인간이 과연 교화될 수 있는 존재인가에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일지라도, 아무리 문화적으로 강간이 나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칠지라도, 끝내 강간을 저지를 범죄자는 저지르고야 만다고 비관한다.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으로》 의 저자 벨 훅스(B.Hooks) 역시 강간 문화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강간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맞지만, 강간이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인식의 틀에서 설명되는 대신에 폭력이라는 선정적인 측면만이 과도하게 강조되게 한다고 우려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정적인 용어는 문서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정성이 높은 쪽으로 사회운동의 구호들이 치환되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강간 문화라는 단어 자체의 개념적 미비성도 문제다.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면, 강간 문화가 아닌 문화는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해서도 미처 답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컨대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전쟁 문화'(war culture) 같은 것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이 강간이 아니라 살해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강간 문화를 단지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만 삼은 채 그 이상의 개념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 문화의 구성 요인(factor)이나 유형(type), 변화의 역동(dynamics)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거의 진공 상태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인도나 중동과 같은 제3세계의 강간 사건들에 대해서 타하루시 논란에서처럼 그곳에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종차별적 시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국내에서도 이민자 반대 논리중의 하나가 이러한 강간문화였다. # 여기서 진보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7. 기타[편집]
참고문헌으로 《Transforming a Rape Culture》[10] 핸드북이 있...으나 국내에서는 꽤나 구하기 어렵다.
2004년에 나온 《Encyclopedia of Rape》 에 실린 리뷰에서는,[11] 강간 문화는 그 자체로 마초적인 현대 미국 사회의 표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는 까칠남녀 프로그램에서 은하선이 한국에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역시 우리나라에 동성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대상 폭력을 성기삽입 중심적인 관점에서 의미화한다고 비판하였으며,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여성혐오 문화', '가부장적 문화', '남성중심적 문화', '여성억압적 문화'에 거의 동의어에 가까운 맥락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2004년에 나온 《Encyclopedia of Rape》 에 실린 리뷰에서는,[11] 강간 문화는 그 자체로 마초적인 현대 미국 사회의 표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는 까칠남녀 프로그램에서 은하선이 한국에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역시 우리나라에 동성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대상 폭력을 성기삽입 중심적인 관점에서 의미화한다고 비판하였으며,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여성혐오 문화', '가부장적 문화', '남성중심적 문화', '여성억압적 문화'에 거의 동의어에 가까운 맥락으로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