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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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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373회 작성일 23-02-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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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 Sexual Slavery

성행위를 위한 용도로 두는 노예.

SM 플레이에서 말하는 "주인님과 노예"와는 엄연히 다르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SM 플레이를 하는 상황을 고조시키기 위한 상황이자 단어로서 쓸 뿐이지, 실제 관계는 주종이 아닌 양자 합의 하에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에 이 경우는 합의는 전혀 없이 일방적인 강압으로 진행된다.

즉 SM에서의 주인과 노예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일종의 연극으로서 행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라면, 실제 성노예와 그의 주인은 일반적인 주인-노예로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관계.

SM에서는 어느 정도 선이 있고 원하는 플레이가 정해져 있지만, 실제 성노예는 자신의 의지나 요구사항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에 있다.

SM에서는 원하는 주인"역" 스타일이 있고, 서로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실제 성노예는 주인을 선택하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과거 위안부로 불렸던 "성노예" 할머니들도 선택의 자유가 없기에 위안부(마치 매춘부와 같은 성행위 종사자)가 아닌 성노예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2. 현실[편집]

로마 제국에서 군사시설을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성행했다. 옛날 동아시아의 귀족에게는 성노예에 준하는 천첩이라는 개념이 있었다.[1] 같은 의 자식이라도 천첩의 경우에는 얼자(孼子)[2]라고 해서 한 단계 더 낮은 대우를 받았다. 양반가의 천첩은 성노예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본부인과 주인이 온갖 성적 학대를 해도 받아들여야 했었다.

이슬람에서 성노예는 적어도 20세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노예는 남자가 많았지만 이슬람에서 노예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쿠란과 샤리아는 성노예의 사용을 공식화하고 후대의 율법학자들도 이를 지지했다. 왕실 하렘은 물론 일반 가정도 가사와 성적 봉사를 제공하는 노예 서넛정도는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부인과 친척의 노예를 돌려쓰는 경우도 흔했다.[3] 노예는 이슬람으로 개종해도 노예였다. 남자가 소유할 수 있는 성노예의 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여자가 성노예를 두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성노예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고 종류와 역할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었다.[4] 성노예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사업도 성행했다.

이슬람 초기 성노예는 자유롭게 매매될 수 있었고, 노예의 아이도 노예였지만 후에 법이 개정되면서 주인의 아이를 낳은 움왈라드는 매매가 불가능해진다.[5] 그러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대손손 노예로 부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무왈라드라고 한다.[6] 이슬람 법학자들은 무왈라드가 친자식과 산파와 함께 주인의 아이를 낳은 것을 증언하면 움왈라드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자유민 여성도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마당에 성노예가 증인을 데리고 나돌아다닐 수 없었으므로 유명무실한 조항이었다.[7]

물론 피임을 하는 편법도 있었다. 저명한 이슬람 법학자 알 가잘리는 성노예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피임을 권장했다.[8] 이슬람 법학자들은 불임이거나 월경을 안 하는 척하는 노예들이 많으니 월경을 눈으로 확인한 후 구입하라고 충고했다.

일본은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과 교역을 하였을 당시에 같은 일본인들을 포르투갈 등 서양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었고 그때에 팔린 일본 여성들이 포르투갈 등에서 성노예로 착취당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1555년 교회의 기록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다수의 일본인 노예 소녀들을 매입하여 성적인 목적에서 포르투갈 현지에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 심지어 일본 노예 여성들은 1598년 문서에서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인 Luis Cerqueira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 무역하는 포르투갈 선박에서 일하는 유럽인과 아시아인 또는 아프리카 선원들에게 성노예로 팔리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 그 당시 일본인 노예는 이러한 이유 탓인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선호되었으며 행선지는 고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이지만, 포르투갈 본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해외로 끌려간 일본인 노예는 포르투갈 출신 노예 상인들이 주도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 피해자는 대략 5만 명에 이른다고한다. 하지만 이 5만 명이라는 숫자에 관해서는, 덴쇼 10년(1582년)에 로마에 파견된 덴쇼 소년사절단(天正遣欧少年使節) 일행이 세계 각지의 가는 곳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노예로 착취당하고 있는 모습들을 목격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일본인 노예들이 전세계로 팔려나간 게 아니었을까라고 추정하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1 #2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루스 호가 쿨리들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엇입니까? 그녀들은 어릴 때 돈으로 팔려서 가혹한 조건 아래 홍등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페루인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까."

마리아 루스 호 사건 당시 영국인 변호사 디킨스의 변론
"설사 창녀 매매에 의해 예증될 만한 노예제가 일본에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노예를 국외에 내보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청나라인 노동자를 요코하마에서 국외로 이송하려 한 페루인 선장의 행위는 위법이다."

마리아 루스 호 사건 당시 특명재판장 오오에 타쿠(大江卓)의 판결

이후에도 일본은 성매매 방지법이 들어서기 전 중근세까지 공창을 법적으로 인정했기에 각 유곽들이 각 지역에 있었다(대표적으로 에도의 요시와라 유곽). 문제는 당시에 인권 개념이 없었던 만큼 전부 인신매매로 팔려 와서 유녀가 되었거나 유곽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이 의사에 관계없이 유녀가 되었고 쓸모없어질 때까지 착취당하다가 나이가 들거나 죽으면 내다 버려졌다. 그래서 에도 시대때의 유곽들은 현대적인 공창이 아닌 성노예 양성 소굴이였다. 심지어 이는 메이지 시대 당시 일본 법원 또한 인정한 사실이었다. 그나마 유녀들의 상급 계급인 오이란이 돼서야 손님 선택 권리가 주어졌지만 이 권리만 빼면 오이란도 아무 권리가 없었고 착취의 대상이였다. 심지어 근대화 시절인 19세기 메이지 유신 무렵부터 20세기인 1920년까지 일본에서는 가라유키상이라고 하여 규슈 지역의 가난한 여자들 30만 명을 해외에 성노예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링크1링크2링크3링크4

최근에는 아프리카에서 반군들이 소년병(주로 여자아이들)을 성노예로 부려먹고 있다. 성노예 짓에 이어서 총알받이로 내몰기까지 했으니 더 나쁘다. 물론 이 경우 살아남더라도 사실상 이후 인생은 끝장. 그리고 2015년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발호하고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는 아예 지하드 알-니카라는 이름 하에 신의 뜻이라면서 이런 미치광이 짓을 권장한다. 전투 중 잡아들인 포로나 민간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심지어 팔아먹기까지 한다. 게다가 이들과 커넥션이 있는 보코 하람 역시 여학생들을 납치해 성노예로 쓰고 있다.

일본에서 한 남자가 옆 아파트의 여대생을 이것을 목적으로 납치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잠시 포기했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또 어떤 남자는 옆집의 여대생을 같은 이유로 납치했다가 반항이 심해 찔러죽인 뒤 시신을 훼손했는데, 텅 비어있는 자신의 집을 수상하게 생각한 여성의 언니가 신고해 체포되었다(고토 맨션 행방불명 살인 사건).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으나 살해 의도가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었고 살해 수법[9]이 잔혹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어 복역 중이다.

그나마 윗 사건은 실제 성노예화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18년간이나 감금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제이시 두가드 감금사건이라는 실제 성노예 사건이 일어났다. 심지어 아리엘 카스트로라는 인간 말종이 3명의 10대 여자아이들을 10년간 감금하고 5차례 넘게 임신시킨 사건이 클리블랜드에서 일어났다. 기사에 나와 있는데, 여성들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처럼 네 발로 걷게 했다는 진술도 있을 정도.

치안이 좋은 선진국에서도[10]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데 치안이 정말 나쁜 나라에서는 어떨지 상상이 간다. 확실한 건 처벌 수위가 엄격한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검거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런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에로게나 동인지를 제외한 성인물에서도 나타나는데 '여자들은 강간 당하면 좋아한다.'는 막장 판타지적인 시츄에이션이 그것. 물론 헛소리 중의 헛소리다. 애당초 강간 자체가 범죄 행위이며, 범죄 여부를 떠나 남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11] 그런 건 어디까지나 허구의 내용이니, 현실과 혼동하지 말고 성적인 판타지로써 생각은 하더라도 절대 실제로 행하진 말 것.

일반적으로 성적 착취의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지만, 남성 역시 성노예로 학대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에서도 미소년을 침노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서에서 등장하는 남색이라는 표현도 사도 바울로가 귀족들의 성노예가 되어 학대당하는 미소년들을 보고 적은 것.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에도 인신매매나 납치/감금을 당해 강간당하는 남성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12] 그러나 남성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과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게 사회적 거세로 직결되는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들이 수감된 교도소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교도소가 성별로 나뉘어있기에 동성 강간을 위한 성노예라는 점.

3. 처벌[편집]

일단 제 발로 성노예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라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나 성매매지 성노예가 아니므로 당연히 납치 등이 이루어질 것이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추행목적약취유인죄가 성립한다. 그리고 당연히 탈출도 못하게 감금해 둘 것이므로 체포와 감금의 죄도 성립되며, 강간죄도 성립할 수 있다.

음행매개는 성립하기 힘들다. 음행매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성노예 행위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 물론 영리를 위해 성노예들을 부린 경우라면 포주죄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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