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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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40회 작성일 23-02-21 09:33본문
1. 개요[편집]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부르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부른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 중에서
2. 설명[편집]
좋은 예 가운데 하나는 '부탄', '나트륨', '칼륨'으로서 대한화학회에선 미국식 발음에 가까운 '뷰테인', 그리고 미국식 표현인 '소듐', '포타슘'으로 공식 표기를 바꿨지만, 일상생활에선 여전히 독일어식 이름인 '부탄(Butan)', 라틴어식 이름인 '나트륨(Natrium)', '칼륨(Kalium)'으로 통하며, 정작 마트에 가서 "뷰테인 가스 주세요"라고 하면 대부분 "뷰테인이 뭐지?"하며 못 알아듣는다. 또 "소듐 섭취를 줄입시다.", "포타슘은 신장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좋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소듐·포타슘이 뭐죠?"라고 반문하기 십상이다. 결국 '부탄'과 '뷰테인', '나트륨'과 '소듐', '칼륨'과 '포타슘'이 복수표준어로 인정받았다.
또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단어의 의미를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디 게임'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소형 개발사가 대형 회사의 지원 없이 제작한 게임'라고 정해져 있는데, 어떤 개인이 나타나 '인디 게임은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라고 의미를 바꾸거나 '상업적 목표를 두고 만든 게임은 인디 게임이 아니다[3]'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사실상 한 언어의 화자들이 같은 곳에서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어권 내에서 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예가 바로 사투리와 은어, 민간어원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무수히 많은 낱말들은 제 나름의 사회성 검증을 거치고, 그 가운데의 몇몇은 다른 언중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키에 등록된 각종 문체를 보면 한국어 화자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성을 충족하지는 못했어도 특정 집단의 사회성 차원에는 부합하는 언어를 볼 수 있다. 이는 거짓짝과도 관련 있다. 또, 규범상은 옳은 번역이지만 사람들은 오역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형용사 '없다'와 '있다'의 관형사형이 '없는', '있는'인 것처럼 어떤 말이 불규칙으로 활용되거나 'ㅄ' 받침처럼 어떤 구조의 낱말 수가 적거나 '관하여', '불구하고', '위한'처럼 불완전하게 활용돼도 그런 말들이 자주 쓰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어 문서에도 적혀 있듯이 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겐 복잡하고 어려워도 해당 국어 화자들은 거의 자연히 숙달해서 그렇게 잘 안 느낀다. 이는 '비효울의 숙달화'의 예로 볼 수도 있다('경로의존성' 문서 참고).
또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단어의 의미를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디 게임'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소형 개발사가 대형 회사의 지원 없이 제작한 게임'라고 정해져 있는데, 어떤 개인이 나타나 '인디 게임은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라고 의미를 바꾸거나 '상업적 목표를 두고 만든 게임은 인디 게임이 아니다[3]'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사실상 한 언어의 화자들이 같은 곳에서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어권 내에서 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예가 바로 사투리와 은어, 민간어원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무수히 많은 낱말들은 제 나름의 사회성 검증을 거치고, 그 가운데의 몇몇은 다른 언중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키에 등록된 각종 문체를 보면 한국어 화자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성을 충족하지는 못했어도 특정 집단의 사회성 차원에는 부합하는 언어를 볼 수 있다. 이는 거짓짝과도 관련 있다. 또, 규범상은 옳은 번역이지만 사람들은 오역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형용사 '없다'와 '있다'의 관형사형이 '없는', '있는'인 것처럼 어떤 말이 불규칙으로 활용되거나 'ㅄ' 받침처럼 어떤 구조의 낱말 수가 적거나 '관하여', '불구하고', '위한'처럼 불완전하게 활용돼도 그런 말들이 자주 쓰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어 문서에도 적혀 있듯이 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겐 복잡하고 어려워도 해당 국어 화자들은 거의 자연히 숙달해서 그렇게 잘 안 느낀다. 이는 '비효울의 숙달화'의 예로 볼 수도 있다('경로의존성' 문서 참고).
3. 언어의 역사성과의 관계[편집]
언어/낱말이 탄생하고, 변화하고, 사어가 되는 것도 언중들의 약속에 기반하므로 '언어의 역사성'과 연계된다. 단어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단어의 뜻이 달라지거나 단어에 다른 뜻이 더해져 사용되는 때에 사회성을 얻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되고, 반대로 자주 쓰이던 단어가 다른 단어에 밀려 잊어진 때에는 사회성을 잃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어떤 개인이 임의로 언어의 변화를 막을 수도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이름과 실제가 다르게 통용되기도 한다.
- 어떤 말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이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옅어지면서 규칙대로이지만 불완전하게 활용되거나 어느 규칙에서 어긋나게 자주 쓰이게 되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더더욱 옅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불규칙 활용이 생기기도 하고, 차용어도 귀화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규칙 활용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면 그런 활용형에서 기본형이 거꾸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위와 반대로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인 '서울'이 현재는 고유명사인 '서울특별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 '외딸다'는 동사였으나 불완전하게 활용되면서(외딴) 품사 의식이 옅어졌기 때문인지 형용사로 바뀌었다.
- 어떤 낱말이 다른 언어에는 외래어로 남기도 하지만, 자국어에서는 사라질 수도 있다.
-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언어유희도 새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