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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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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61회 작성일 23-02-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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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나 에드 켐퍼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연쇄살인하면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다.

2. 생애[편집]

1938년 5월 9일 콜은 아이오와주 수시티에서 태어났다.
1939년 콜의 여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얼마 후, 콜의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콜의 아버지 라번 (Laverne)은 조선조에 취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아버지가 떠나자 콜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는데 그동안 어머니는 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하고, 여자옷을 입히고 친구들 앞에서 놀려대곤 했다. 심지어는 다른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 성매매를 하면서 그 모습을 콜이 지켜보게 했다. 나중에 콜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한 말에 따르면, 이때부터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생겼다고 했다.

1946년 어느 여름 콜은 친구들과 함께 리치몬드에 있는 항구에 수영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평소 콜의 이름을 가지고 놀려대는 친구인 듀안 (Duane)이 그날도 어김없이 콜의 이름을 가지고 놀려대기 시작했는데,[1] 이것에 대해 화가 난 콜이 듀안이 수영을 할때까지 기다렸다가, 듀안을 물속으로 끌어당겨 익사시켰다.[2] 10대 때 콜은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고, 사소한 경범죄를 계속 저질렀는데, 대부분 음주와 절도, 방화 등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지능은 높았지만[3]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평균학점은 D+였다. 고등학교를 어찌어찌 졸업하고는 미 육군에 입대 했지만, 1958년 권총을 훔친 혐의로 제대했다. 제대한 뒤로는 일정한 직업 없이 강도나 자동차 절도를 하며 생계를 이었고,[4] 1960년에는 밤에 주차된 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한 커플을 망치로 공격했다. 얼마 후, 경찰의 조언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자신이 여성들을 목졸라 죽이는 환상을 품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콜은 이후 3년 정도를 정신병원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다. 이후 정상 판정을 받아 정신병원에서 나와 형이 살고 있는 텍사스주 델러스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빌리 휘트워스 (Billie Whitworth)라는 스트리퍼를 만났다. 둘은 서로의 비슷한 점[5]에 끌렸고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2년 뒤 콜은 빌리가 모텔에서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모텔에 불을 지르면서 결혼 생활은 끝나게 된다. 결국 그는 방화 혐의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출소 후에 콜은 다시 11세 소녀의 목을 졸라 죽일려고 시도했다. 콜은 다시 체포되어 5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하지만 가석방 후에 콜은 또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퇴원 후에는 샌디에이고로 돌아가게 된다.

3. 살인[편집]

이 시점부터 콜은 연쇄살인을 시작하게 된다...
1971년 5월 7일 샌디에이고의 술집에서 에시 벅 (Essie L. Buck)이라는 여성을 만난 뒤 차에 태운 다음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후에는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유기했다 2주 후 콜은 또다시 다른 여성을 만나 목을 졸라 죽인 후 숲에 유기했다. 1주 후 콜은 또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살해한 뒤 땅에 묻었다.

콜이 의외로 빨리 검거될 수도 있었다. 1971년 6월에는 음주운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당시 에시 벅의 시신이 발견되서 수사가 진행중이었다. 수사를 맡은 로버트 링 (Robert Ring)형사가 콜을 용의자로 의심하고는 추궁하자 콜은 그녀가 숨진 날 밤에 그녀와 함께 있었지만 다음 날 일어나보니 그녀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될까 봐 유기했던 거라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콜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는데, 에시가 평소에도 과음을 자주 하고 마약중독자였기에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형을 마친 콜은 1972년 3월에 출소했고, 또다시 살인을 이어갔다...

얼마 후 콜은 또다시 멕시코국경 근처에서 히스패닉계 여성 두 명을 차에 태웠고, 두 여성 중 한 명이 차에서 잠시 내렸을때 콜은 차에 있는 여성을 망치로 살해하고, 나머지 여성 또한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후 그는 두 여성의 시체를 사막에 버렸다.

1972년 여름 콜은 다이애나 파샬 (Diana Pashal)이라는 바텐더를 만나 2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둘은 함께 네바다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뒤 콜은 라스베가스에 있는 카지노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콜은 계속 여러 지역을 떠돌며 살인을 저질렀고, 심지어 1977년 11월에는 한 여성을 살해 후 시신을 절단하고,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엽기 행각도 벌인다. 결혼 생활 중에 콜과 다이애나는 계속 작은 말다툼을 했고, 결국.. 1979년 8월에는 다이애나와 심하게 다툰 뒤 그녀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살해 후에는 시신을 담요로 싸서, 옷장에 숨겼다. 8일 후,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게 된다. 경찰이 시신을 발견하고, 부검을 실시했으나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콜은 무혐의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콜은 트럭 운전기사로 일했고, 일하면서 만난 여성 직원과 3번째 결혼을 하였다. 결혼 생활이 그의 살인을 잠재우지는 못했는지, 3번째 결혼 후에도 4명의 여성을 추가로 살해했다.

4. 체포 및 재판[편집]

콜은 1980년에 텍사스주 델러스에서 마지막으로 저질렀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살인 혐의로 체포되게 된다. 이후 콜은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살인을 자백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9년 동안 최소 14명을 살해했지만, 모든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콜은 네바다주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변호인단은 정신이상을 주장하면서 감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는 남은 3주 동안, 감옥에서 지내면서 자서전을 쓰고, 신경외과 의사가 사후 자신의 뇌를 연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985년 12월 6일 콜의 사형(약물주사형)이 집행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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