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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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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527회 작성일 23-01-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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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술적 의미[편집]

1.1. 방어기제의 하나[편집]

마약과 자동차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 알아? 사람들이 자동차를 팔지 않으면 나도 무기 안 팔아! 적어도 내 총은 안전장치라도 있어.
- 유리 올로프, 로드 오브 워 중에서

정신분석학에서, 어떤 행동을 한 이후에 초자아(superego)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자아(ego)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제안되었고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발표한 방어기제 유형의 하나다.

1.2. 집단사고의 한 징후[편집]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Janis)가 제시한 집단사고 이론에서 그 징후로 제시된 8가지 중 하나다. 여기서도 rationalization라고 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으로.

2. 일상적 의미와 악용[편집]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한 이후에 타인의 반발이나 비판, 지적이 두려워서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 또는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온갖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상대편이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는데, 이는 당사자가 더 이상의 판단여지가 없는 사실에 대해 합리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2] 때문에 자신은 이게 정당하다고 생각을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게 빤히 보이기 때문에 키배 등에서 털리다가 이런 행동을 보이면 '합리화 한다'는 식으로 다시 공격받기 일쑤이다. 대개는 자신이 왜 까이는지 모르며, 설령 안다 해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기를 매우 싫어한다.

키배 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에서도, 자기합리화가 심한 사람의 경우 소외받게 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넘어가면, 이 항목을 보고서도 '에이, 나는 아니야'라고 착각하는 케이스. 이 정도 되면 답이 없다. 다만 상대방에게 비판 당했을 때 본인이 자기합리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비판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때 그 상대방이 상대를 보고 '자기합리화 한다' 라고 한 것은 그 상대방이 자기합리화 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러는 사람을 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정치인, 기업인 등 국가적 사무를 맡은 사람이 자기합리화를 행하면 그 자리의 책임에 비례해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매우 심각하다.

그밖에 범죄자들, 특히 흉악범들이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성장 과정이나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 등을 운운하며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 등이 문제만 없었어도 자신이 범죄자가 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단 논리를 펴거나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범죄로 나타난 거라는 논리를 펴는 경우들이 많다.아동학대범의 99% 이상이 과거 아동학대 피해자였던 점이나 자기 부모를 상대로 한 노인 학대범들 상당수가 과거 아동학대 피해자들이었던 게 괜히 그런줄 아냐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도 자기합리화의 일종이다.
=== 사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자세한 건 권위주의/병폐 문서로. 사실 이러한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합리화라고 보기 힘들다. 개인의 자아의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 지도층의 책임을 회피 및 정권 유지를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이 자기합리화를 잘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도록 하려면 한국인이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권위주의/병폐는 개개인이 합리화를 해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일이다.

인지부조화와의 관련성도 언급해볼 수 있다. 인지부조화는 인지 차원에서의 자기개념(self-concept)과는 다른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자연스러운 인지 수준의 현상인데 반해 자기합리화는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무의식 수준의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2.0.1. 자존심[편집]

이런 경우가 제일 많은데 주로 해당 분야의 권위자나 해당 업적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은 경우나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거나 라이벌, 또는 그의 태도 때문에 끝까지 고수하는 경우며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는다. 드물게도 자기가 다시 연구하여 자기가 다시 뒤집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한 거지 남이 한 게 아니라서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역사 속의 한 예를 들자면 토머스 에디슨은 전기계의 꽤 저명한 인사로 직류 방식을 고집했지만, 이후에 자신보다 어린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를 주장하자, 직류 방식이 전기를 멀리 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도 끝까지 직류를 주장했다. 결국 테슬라라는 단위가 생성될 때까지 테슬라는 비운의 인물로 묻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 책임[편집]

위보다 드물지만 더 심각한 것이다. 위의 경우는 그냥 알량한 자존심이나 기싸움에 불과한데... 예를 들면 내 업적이나 연구로 다치거나, 죽거나, 재산을 잃거나, 아무튼 책임을 져야 한다면 엄청나게 합리화된다.

예를 들어 모리 오가이는 군의관으로 당시 영양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내놓았다. 그 결과 군대가 피해를 입었고 나중에 반박이 나왔다. 그는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지위가 지위고 게다가 사람이 엄청나게 죽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 이론을 고수했다. 사실 이런 건 사고를 내서 남을 다치게 하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는 등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포함된다. "내가 일부러 그랬겠어?"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쉽게 말하지는 않지만...

2.0.3. 현실도피[편집]

2.0.4. 숙청[편집]

가장 최악의 경우다. 특히 다수결이 숙청을 목표로 할 경우 실제로 이루어지면 집단 내에 정치적 약점이 생겨 보복을 방지하기 위해 닫힌 사회가 되어버린다. 강경파의 비중이 높아지고 온건파의 비중이 낮아져 유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인 물은 썩는다.

2.1. 극복 사례[편집]

  • 브루스 커밍스
    훗날 소련 자료가 공개되자 기존에 주장했던 남침유도설을 철회했다.
  • 스티븐 호킹
    자기가 자기 주장을 뒤집은 사례라고 일반인들은 오해할 수 있겠지만,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평생 주장했던 이론이라도 실제 결과가 맞지 않을 때 망설임 없이 뒤집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3. 자기합리화의 필요성[편집]

자살은 월별로 보면 10~12월 사이의 증가 폭이 큰데 '계절성 우울증'이 생기는 시기이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소녀도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되어 죽을 뻔 하다 자기합리화로 살아난다. 노인 화가는 비록 '거짓된 희망'일지언정, 소녀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선물을 베푸는데 우울한 사람에게는 냉혹한 '팩트'보다 따뜻한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그것이 사람에게 이성 외에 감성도 존재하는 이유중 하나이며, 그렇기에 사람은 감정 없는 인형처럼 살 수 없는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죽음은 최후의 수단이니 뭔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구조요청의 암시를 남기는데, 그래서 자살한 사람이 힘들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바빠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걸 자책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은 비록 거짓된 희망일지라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어하기에 팩트폭행으로 "넌 루저야, 실패했잖아, 여자들이 널 거들떠도 안보겠지"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오히려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에, 노인화가처럼 자기합리화를 시켜주는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서 다들 차갑게 외면할 때 그 종교에서는 비록 다른 목적이 있을 지언정 일단 겉으로는 가식적으로라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위로해주니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비합리적인 자기합리화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기에 문제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한 것도 문제다. 현직의사가 쓴 칼럼에서 '이유만 알아도 견딜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유 없는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찾아온 분들께 '그 놈의 코로나가 문제'라고 하면 환자들이 잘 털어내고 좋아진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라도 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관계의 끈을 놓지 말자고 당부한다.# 핑계라도 대며 합리화시켜주면 마음의 상처가 일정부분 치유(힐링)된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 최민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펑펑 울었다. 오히려 은메달을 딴 훈남 오스트리아 파이셔가 최민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고, 파이셔의 품에 안겨 최민호는 펑펑 울었다. '승자'의 등을 다독여주며 위로해주는 '패자' 파이셔의 매너가 화제가 되어 실질적인 승자는 파이셔라는 의견도 있었다. 파이셔도 패배하여 속이 쓰렸을텐데, 패배한 선수 앞에서 최민호가 자기 밖에 모른다는 비판의견도 있었을 정도다. 한데 최민호에게 뭐라 할게 아닌게, 그만큼 금메달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 동메달을 땄던 최민호는 이 정도면 어디냐며 스스로에게 자기합리화를 하여 만족했는데, 기자들과 국민들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여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1등주의' 한국에서는 패배자가 만족하는 모습은 비웃음당하며, 오직 1등이면 다 용서가 되는 사회였던지라, 동메달 따고 만족하던 최민호는 정신승리나 하는 바보취급 당하며 조롱당하고 외면받았고 금메달 딴 선수들만 왕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최민호가 이를 악물고 4년간 지옥의 훈련 끝에 드디어 금메달을 따냈기에,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간 무시당했던 설움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흘렀던 것이고 상대선수를 배려하거나 매너를 지키거나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장 금메달 못따면 본인이 죽게 생겼는데, 상대선수에 대한 배려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였을 수도 있다.

그나마 최민호야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만, 만약 최민호가 파이셔에게 져서 끝내 올림픽 왕좌를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정글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루저들은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경쟁열차에서 뛰어내린 뒤 번아웃 증후군처럼 질려버려 폐인이 되거나, 아예 '인간 혐오증'에 걸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회와 손절하고 혼자 사는 삶을 택할 수도 있다. 파이셔처럼 패자라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승자에게 손을 내밀며 위로해줄 수 있는 문화가 아닌, 패자는 사람취급도 못받고 손가락질 받으며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문화에서 상처받은 루저라면 비참한 심정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또 흙수저를 자녀에게 물려주면 자녀 역시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을 것이 뻔하니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미안해서 출산을 기피할 수도 있다.

정윤수 스포츠문화 칼럼니스트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위대한 체념'을 언급했다. 한만청 서울대병원장이 발간한 책에서 ‘암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 놈과 친구가 되라’고 충고했듯이 어쩌면 상실과 결핍을 극복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감싸안고 어루만지는 것이 약이 되는 수가 있다고 한다. 상실과 결핍은 인간의 숙명이기에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며,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고통이라면 어차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껴안고 가야하므로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위대한 체념’으로 끌어안는 것이 운명이라고 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1등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며, 엄청난 성과를 올려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번보다 더 완벽한 성취를 이루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가 끝없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질주하고 있는데, 뭐든지 완벽하게 완성하려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의 무결점 심리때문이라고 한다. 욕망의 열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바로 자기합리화다. 내가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성취에도 기쁘게 생각하며, 사소한 일상에도 무한한 감사를 표명한다면 큰 성공만이 성공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갭 모에처럼 나보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을 바라보면 그만큼의 갭으로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근거있는' 합리화다. 또 '곡선의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하는데, 곡선의 마음은 자신과의 경쟁을 즐긴다고 한다.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라며 행복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 있다고 한다. 마치 게임에서 엔딩을 보면 현자타임을 느끼고, 엔딩까지 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과 같다.

과거 한국에서 올림픽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패배자'처럼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강초현이라는 어린 고등학생 선수가 2000 시드니 올림픽 사격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좋아하는 모습으로 신선한 문화충격을 줬다. 올림픽 은메달로 만족하면 정신승리니 자기합리화니 하며 비웃고 더 채찍질해야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으나, 유영만 교수는 오히려 1등을 해야만 성공이라고 해석하는 성공 중독증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강초현도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는 순간 탄식하며 울기도 했었으니, 정말 솔직한 마음이라면 속상할 것이다. 하지만 시상대에서는 이내 밝은 모습으로 좋아했는데, "은메달이라도 어디냐"라고 생각하며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고 금메달에 대한 욕망만 내세웠다면 시상대에서 죽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직선의 마음은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지만 곡선의 마음은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믿는다며, 비록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탄력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만약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자기합리화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영영 못일어나며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다.

보성 어부 살인 사건 가해자의 아들은 자살했다. 일본에서도 가해자의 형제나 부모들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신 사과하고 자살하기도 하는데, 유럽 등지에서는 가해자의 가족을 보호하는 NGO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돌보다가 손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사하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애인을 불렀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내가 부르지 않았다면 살았을테니 내가 죽였다며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폐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가 사고를 치든 사고를 당하든 '내 잘못'이라고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일이 많다.

이런 사례들은 오히려 주변 지인들이 자기합리화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운이 없었을 뿐이야"라고 위로해주나, 자기 책임이라고 죄책감에 빠지기 시작하면 극심한 정신적 고통 끝에 끝내 자살하기도 한다. 이때 어느 정도 자기합리화를 해야 마음의 위안이 되며 살아날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말들을 "그저 예의상 위로일 뿐"이라며 무시하고 자기합리화는 싫다고 거부하다간 죄책감을 못이겨 자살을 택할 수도 있다.
김종인/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굽는 걸 보고, 먹고 싶은데 돈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겠어?"##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탐스러워 보이는 포도를 어떻게든 따먹으려 노력하던 여우가 도저히 안되니까 "어차피 신포도일꺼야"라며 룰루랄라 떠났다는 얘기다. 정신승리 내지는 자기합리화로 인용되긴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애초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은 채 신포도라고 외면해버렸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도저히 안된다면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명언처럼 자기합리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드래곤볼의 크리링은 인조인간 18호라는 미인 아내를 얻으나, 사실 처음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차였었다. 냉정한 18호가 "웃기는 소리 하지마, 손이라도 잡아달라는 거냐? 애늙은이 같은 놈"이라고 차갑게 내뱉고 떠나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낙담한다. 하지만 이내 어차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꽃미남 17호가 함께 있어야 제격이라며 오히려 둘이 잘되길 응원한다. 여우가 신포도를 깨끗하게 단념하듯 크리링도 쿨하게 포기했기에 스트레스에서 해방됐으나, 만약 차였음에도 계속 집착한다면 폐인이 되거나 스토커가 되는 등 현실부정을 하며 정신이상까지 올 수도 있다. 심지어 실연당한 후 충격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하면 더 멀어진다'는 말처럼, 오히려 스토커처럼 달라붙는다면 더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군대명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도 바람직한 자기합리화의 예이다. 물론 피할 수 있다면 굳이 받아들여 즐기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장일단'이라고, 안좋은 일에도 잘 찾아보면 작지만 장점은 있으니 그걸로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실제 '긍정 강사' 김미경은 모든 불행은 반드시 방향을 두개 갖고 온다면서 이것때문에 잘못될 방향과 한단계 도약할 방향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불행이 나한테 주는 선물을 고민해보라고 하는데, 김미경 강사 역시 IMF때 폭망하여 자살 생각을 했으나, 오히려 IMF와 관련된 책을 써서 히트치며 스스로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냈다. 한때 잘나가던 김미경 강사는 IMF때 직격탄을 맞아 허름한 집으로 옮겼을 때 정말 절망스럽고 죽고싶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는데, 만약 계속 예전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정말 폐인이 되거나 신변비관으로 자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신포도의 여우'처럼 그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동아줄을 찾아 스스로 부여잡아 재기할 수 있었다.

4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계절성 우울증'[3]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도 여주인공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울증이 점차 악화된다. 계절성 우울증의 증상은 대개 가을과 겨울에 시작되어 봄에 회복된다고 한다. 신체도 환절기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감기에 걸리는 등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데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도 군대 명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자기합리화'가 일정부분 필요하다. 마치 새로운 집에 이사가거나 직장을 옮겼을 때 낯설어서 모든게 다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때는, 계속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는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게 최선이듯 말이다. 계속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해봐야 우울증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집에서도 반팔과 반바지에서 긴팔과 긴바지로 바뀌어 둔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빨리 적응해서 불편을 못느끼도록 하는게 최선이다. 실제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겼거나, 과거 잘나가다가 명예와 부, 애인을 잃은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폐인이 되거나 자살하기도 하는데, 긍정강사 김미경처럼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만이 우울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일요일'이란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자기 합리화를 활용한다. 빡센 학교에 온 학생이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기숙사 생활에 무척 힘들어하는데, 그의 유일한 낙은 바로 일요일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숨쉴틈 없는 하루일정 속에서 유일한 '보상'인 일요일에 뭐하고 놀까, 고민하면서 보내는게 낙이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기다렸던 일요일에 이거하기엔 아깝고, 저거하기엔 아깝고 각만 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가 저물어가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일기장에 "그래도 내일부터 다시 일요일을 기다리는 희망은 있다"고 써놓으며 끝을 맺는데, 마찬가지로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기보단 "다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 우울증세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뜻하는 '항상성'은 심리학에서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어도 친숙한 대상은 항상 같게 지각되는 현상'으로 정의하는데, 한번 싫다고 여기면 계속 싫게 느껴지거나 점점 더 싫어지며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장일단'이므로 분명 가을과 겨울에도 장점은 있으므로, 그 장점을 찾아 위안하는게 최선일 수 있다. 심지어 계절성 우울증이 심하고 건조한 환경에 피부 트러블이 심한 경우는 에버그린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살고싶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처럼 본인이 싱가포르에 이민가서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야 이민을 희망으로 삼아 버티면 된다. 하지만 본인이 이민갈 처지가 안되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싱가포르에 집착하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것처럼 우울증만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 차라리 그냥 쳐다보지 말고, 마음에서 내려놓고 한국에서 장점을 찾아 자기합리화라도 해서 '즐기려는 노력'을 통해 우울증을 완화시키는게 최선일 수 있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다. 예를 들면 모태솔로들은 애인만 생겨도 좋겠다고 하고, 심지어 여자 손만 잡아봐도 좋겠다고 하지만 막상 애인이 생기면 이제 애인을 당연하게 여기고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대부분 결혼하는 선에서 만족하나, 배우자의 모든걸 '소유'해야한다고 여겨 의처증과 의부증에 걸리며 배우자의 사생활을 통제하기도 한다. 행복강사들이 '놓아주라'고 하는데, 과도한 집착, 배우자가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집착하면 본인이 괴로울 수 있다. 굶어죽기 직전에 짜장면 한그릇 먹으면 감동할 수 있으나, 최고 맛있는 어머니의 집밥에 눈높이를 맞추면, 아무리 맛있는 맛집에 가도 불만족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욕구도 끝이 없다. 빠삐용은 그저 지옥같은 감옥에서 탈출한 것만으로 무한 자유의 쾌감을 만끽했으나, 결혼을 하면 자유를 잃고 억압적인 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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